Lazy genius striker RAW novel - Chapter (69)
나태한 천재 스트라이커-69화(69/202)
< 068화 – 포근한 겨울 >
느낌이 정말 이상했다.
눈을 감고 크로스를 올리는 기분이다.
박스 안을 보지도 않고, 오로지 공만 보고 크로스를 올리는 기분 말이었다.
물론 이게 좋은 습관은 아니다.
크로스도 패스고, 패스라는 건 두 명 이상의 선수들을 이어주는 상호작용이니까.
일방적일 수가 없는 행위인거다.
때문에 패스를 주고 받는 선수들은 항상 서로의 위치를 확인해야 한다.
특히, 패스를 주는 쪽은 더더욱.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일반적인 경우고.
여기, 웨스트 햄이라면 다르다.
요한이 박스 안에 있는 경우라면 다르다는거다.
요한의 위치를 굳이 확인할 필요는 없다.
녀석은 언제나 제 자리에 서 있을 뿐이다.
그러니, 보고 올리지 말고.
그냥 올려라.
마치 슈팅을 때리는 것처럼.
골대는 움직이지 않으니, 슈팅할 때 공을 쳐다보는 공격수들처럼 말이다.
뻐어어어엉-!
“나이스, 봐봐. 이러면 수비한테 걸릴 일이 없지.”
“빨라졌다.”
“방금 정도면 녀석 머리에 닿았다. 조금만 더 가다듬어 보자.”
보는 시간을 없애 버리니, 옌킨슨의 크로스도 훨씬 간결해지고 빨라졌다.
킥의 정확성도 오히려 좋아졌다.
어차피 한 곳으로만 보낸다는 생각으로 차니까, 킥도 일관성 있게 나가는 것이다.
다만,
‘이 정도 킥으로도 된다고?’
여전히 불안한 감을 지울 수는 없는 옌킨슨이었다.
너무 쉬워서 오히려 못미더웠다.
페트로비치는 이 정도 크로스면 요한에게 연결될 거라고 말하지만, 여전히 자신의 킥에 자신감이 없는 옌킨슨은 믿기가 어려웠다.
“도와줘서 고마워. 난 좀만 더 하다 들어갈게.”
그러니 더 훈련하는 수밖에 없다.
페트로비치 덕분에 방향성은 잡은 듯 하지만, 아직 많이 불안하다.
이 불안감을 해소하려면, 한 번이라도 공을 더 차는 수밖엔 없다.
그래도 완전히 해소되진 않겠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있기엔 마음이 급하다.
추운 겨울이 다가오고 있다.
“나도.”
“같이 더 하자. 나도 딱히 할 거 없어.”
“···다들 괜찮겠어?”
“야. 네가 잘해야 내 쪽도 편해 진다구.”
“마찬가지다.”
훈련장에 함께 남아, 더 훈련을 해주겠다는 페트로비치와 휴리첼을 보며 옌킨슨은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운 동료들이다.
이들 뿐만이 아니다.
모든 동료들, 그리고 코칭 스태프들.
모두 고마운 존재들이다.
이들에게 보답하는 길은, 결국 제 역할을 멋지게 해내는 것뿐.
“그럼, 다시 해볼게.”
“오케이.”
그날 훈련장의 골대 앞엔, 수십 개의 공이 계속해서 쌓여 나갔다.
추운 겨울을 조금이라도 포근하게 보내기 위해선, 계속 공을 차는 수밖에 없었다.
ㆍㆍㆍ
2027년 12월 17일.
웨스트 햄이 리그 19라운드 상대로 에버튼을 불러 들였다.
전반기 마지막 경기.
리버풀 원정에서 돌아온 뒤 4일의 휴식을 취한 웨스트 햄이었다.
4일 휴식, 확실히 충분한 휴식은 아니었다.
특히나 안필드 원정 이후여서 더욱 그렇다.
왔다 갔다 하는 시간도 무시할 수 없었고, 또 그 경기가 좀 빡셌어야지.
주전들이 모두 선발 출장한 경기였다.
그리고 그 대부분이 풀타임을 소화했고.
하필 마지막 극장골로 이긴 경기라, 마지막까지 쉴 틈도 없었다.
때문에 오늘 경기는 로테이션이 필수였다.
일단 리버풀 전에서 풀타임, 총 12.1킬로미터를 뛴 조너선 네이슨이 빠졌다.
또한 수비형 미드필더를 담당하고 있는 드류 메켄지와 주장 팀 고든 역시 오늘은 벤치에서 경기를 시작한다.
맨시티 같은, 스쿼드가 두터운 팀이라면 주전 중 3명 정도가 빠졌다 해도 큰 티가 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웨스트 햄은 다르다.
핵심 세 명이 한 번에 빠진다는 건, 아예 다른 팀이 되어 버리는 정도다.
“버클리, 오늘은 네 역할이 크다.”
“마, 지가 20키로 뛸 테니께 걱정 마이소!”
동료들이 빠진 탓에 준에이스가 되어버린 버클리는 기분이 좋아 보이지만, 사실 그럴 상황은 아니다.
그나마 요한이 건재한 모습으로 출전한다는 게 유일한 긍정적 요소인데.
특히나 오늘 상대인 에버튼이 그리 만만한 팀이 아니었다.
현재 리그 8위를 달리고 있다.
웨스트 햄이 맨 위에 있고, 그 밑으로 빅6가 나란히 줄지어 있으니 8위라고 해서 낮은 등수가 아니다.
빅클럽들을 제외하면 현재 1위라는 거다.
그러니, 절대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콜먼, 왼쪽으로. 웨스트 햄의 공격 방향이 계속해서 왼쪽으로 흐르죠?>
<중앙은 에버튼이 단단히 에워싸고 있고. 결국 사이드에서 풀어야 하는데. 오른쪽 라인은 공격력이 전무하다시피 하거든요. 결국 왼쪽 밖에 없습니다.>
<에버튼도 그걸 알고 있다는 듯, 방비를 단단히 해두고 있습니다.>
전반 초반.
원정팀 에버튼은 일단 수비적으로 나서는 모양새.
에버튼은 일단 순위 차를 인정하고 경기를 풀어나갈 생각인 듯 했다.
더군다나 상대의 홈이기도 하고.
일단은 수비를 단단히 구축하며, 역습으로 경기를 잡아낼 생각.
그런 에버튼의 생각은, 꽤나 효과적으로 먹혀 들어가는 듯 보였다.
<수비가 상당히 많습니다. 계속해서 패스를 돌리는 웨스트 햄. 박스 안으로 한 번에 찔러 넣기가 어렵습니다.>
<이럴 때 필요한 게 박스 안으로 붙여줄 수 있는, 띄워주는 패스가 필요한데요.>
<결국 다시 왼쪽으로. 페트로비치, 라인을 타고 들어갑니다! 크로스! 아, 상대 수비의 발에 막힙니다. 터치 아웃!>
에버튼의 수비가 괜찮게 먹혀들고 있었다.
아니, 웨스트 햄을 답답하게 만들 만큼 효과적으로 틀어막고 있다.
애초에 쉽다.
가운데와 왼쪽.
오른쪽은 버려도 되니 수비를 집중하기가 너무 쉽다.
웨스트 햄의 패턴을 완벽하게 분석해온 모습.
그러나, 애초에 복잡한 분석도 필요없을 만큼.
웨스트 햄의 패턴은 단순하다.
그러니 어려울 것도 없는 대처였다.
“오른··· 흐음.”
경기를 지켜보던 제이미 코치가 뭐라 지시하려다 말았다.
시즌 초중반까지만 해도, 최대한 다양한 공격 패턴을 가져가라 주문했었던 슈미트 감독과 제이미 코치였다.
허나, 어느 순간부터는 살짝 포기한 감이 있었다.
일단 요한이 워낙 알아서 잘해주는 이유도 있었는데, 아무리 말을 해봐야 오른쪽 공격이 살아나질 못했기 때문이 더 컸다.
미카엘 옌킨슨.
이 친구의 성장이 더딘 탓이었다.
물론 1차 책임은 제이콥 버클리에게 있다.
온 더 볼 상황에서 측면을 부술만한 파괴력이 부족한 버클리인데, 버클리는 어쨌든 공격 포지션인 윙어니까.
우측 공격이 무딘 이유로 버클리를 1차적으로 꼽는 게 맞다.
다만 버클리에겐 그보다 더 중요한 역할이 있고, 그쪽에서 제 역할을 다해주고 있으니 감안해야 하는 측면이 있었다.
대신 그 역할을 해줘야 하는 게 옌킨슨이다.
그래서 프리시즌 때부터 이를 강조하고, 훈련을 시켰었다.
그러나, 사실 크로스라는 게 간단해 보여도 쉬운 스킬이 아니다.
단기간에 확 늘 수 있는 부분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게 가능했다면, 많은 윙어들이나 풀백들이 고작 그 크로스 하나 때문에 골머리를 앓진 않았을 것이다.
“으음···”
복잡한 표정으로 경기를 지켜보는 슈미트 감독.
사실은 옌킨슨에게 좀 미안하기도 한 슈미트 감독이다.
옌킨슨은 꽤 전도유망한 젊은 선수였다.
피지컬도 준수하고, 발도 빠르며 수비력도 괜찮다. 아직 24살로 어린 나이까지 감안하면, 그는 지금도 충분히 좋은 활약을 해주고 있었다.
무엇보다 성실하고 마인드가 성숙한 친구다.
남탓이나 환경탓을 하는 일 없이, 끊임없이 스스로에게서 문제를 찾는 스타일이 옌킨슨이었다.
때문에 슈미트 감독은 옌킨슨을 처음 봤을 때부터 좋아했고, 아직 부족하다고 비판을 받을 때부터 꾸준히 그를 기용했다.
다만, 팀의 현재 상황이 옌킨슨과는 맞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옌킨슨이 해줘야 하는 역할이, 하필 그의 단점이 부각될 수밖에 없는 역할이다.
때문에 팀이 잘나가는 와중에도, 녀석만 언론으로부터 적잖은 비판을 받고 있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했다.
맞는 말이기도 했고.
현재 웨스트 햄의 중심은 요한이다.
이건 의심의 여지가 없다.
따라서 모든 포커스를 요한에게 맞추어야 한다. 모든 포지션이 요한을 위해 뛰어야 하고, 요한에게 도움이 되도록 만들어야 한다.
다른 게 다 좋아도, 그 부분이 부족하면 단점이 확 드러날 수밖에 없다.
만약 옌킨슨이 공격력이 출중한 오른쪽 윙어가 있는 팀에서 뛴다면, 지금과는 평가가 확연히 다를 것이었다.
그래서 슈미트 감독에겐 아픈 손가락이었다.
잘하는 친구인데, 현재의 팀엔 맞지 않는다.
어떻게든 쓰고 싶지만, 이대로라면 어쩔 수가 없다.
여름 때부터 이미 녀석에게 주어진 시간은 길지 않다고 생각했던 슈미트 감독이다.
이번 겨울.
겨울 때까지 원하는 만큼 크로스가 올라오지 못한다면, 새로운 인물을 찾는 수밖엔 없었다.
녀석을 좋아하는 만큼 너무나 아쉽지만, 팀을 위해서라면 그럴 수밖엔 없었다.
<페트로비치, 여의치 않습니다. 중앙으로.>
<그러나 갈 곳이 없습니다. 에버튼의 수비는 이끌려 나오지 않아요. 패스를 줄 곳이 마땅치 않습니다.>
<다시 페트로비치에게. 페트로비치, 오른쪽으로 길게 전환! 좋은 패스입니다!>
<자, 전환은 좋습니다만. 여기서 한 번에 올라갈 수 있나요?>
왼쪽에서 공간이 나지 않자, 오른쪽으로 길게 패스가 연결 되었다.
공을 받은 건 옌킨슨.
옌킨슨 쪽, 그러니까 에버튼 입장에서 왼쪽 공간은 상당히 넓다.
당연히 그 이유가 있다.
어차피 옌킨슨이 공을 잡아봐야, 전혀 위협적일 게 없기 때문이다.
타탓-
수비 하나가 천천히 붙어 나온다.
녀석을 앞에 두고 천천히 공을 몰고 들어가는 옌킨슨.
평소 이런 상황에서 옌킨슨의 선택은 대부분 백 패스로 이어졌다.
자신감이 없어서다.
본인이 직접 치고 들어가봐야, 어차피 위협적인 장면을 만들어내지 못할 거라고 스스로 먼저 생각했으니까.
‘간결하게··· 간결하게···’
하지만, 오늘은 뭔가 다르다.
공이 자신에게 향해올 때부터, 옌킨슨은 속으로 되뇌이고 있었다.
해보자.
페트로비치의 말대로, 훈련한대로 해보자.
불안하지만, 이겨내는거다.
그래야 이곳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옌킨슨은 이곳이 좋았다.
동료들이 좋았고, 런던 스타디움을 떠나고 싶지 않았다.
그러려면, 스스로를 이겨내야 했다.
타탓-
파아앙-!
옌킨슨이 공을 길게 차 놓고 달리기 시작했다.
코너 플래그를 향해 파고드는 옌킨슨.
속도는 확실히 빠르다.
그러나, 그런데도 뒤따라오는 상대 수비의 모습이 다급해 보이지 않는다.
어차피 크로스를 올리는데 한 세월이라는 걸 아는 모양이다.
하지만,
옌킨슨은 오로지 공만을 보며 달리고 있었다.
‘큭···’
고개를 돌리고 싶다.
박스 안의 상황을 확인하고 싶다.
동료들의 위치를 파악하고 싶다.
강렬한 욕구가 일었으나, 옌킨슨은 이를 악 물고 공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불안하다.
눈을 감고 공을 차는 기분이다.
그러나, 그게 오히려 더 정확한 크로스를 위한 길이라는 걸 믿어야만 한다.
어차피, 녀석은 그 자리에 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그 자리에 있을거다.
그러니,
믿고 올리자.
이대로!
뻐어어어어어엉-!
옌킨슨의 오른발 크로스가 간결하게 문전으로 올라갔다.
모두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옌킨슨이 그렇게 가볍게 크로스를 올린다는 게 말이었다.
하지만,
‘···아.’
자신의 발을 떠난 크로스를 바라보는 옌킨슨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아아, 젠장.
조금 높다.
왜 이 모양일까.
그렇게 훈련했는데도, 왜 정확히 날아가지 않는 걸까.
이 죽일 놈의 오른발은 왜 연습하고 또 연습해도 늘질 않는거냔 말야.
옌킨슨은 자신의 오른발이 원망스러웠다.
그러나, 그 순간이었다.
슈우우우웅-!
상대 수비들의 틈바구니에서, 요한의 얼굴이 슉 하고 튀어나왔다.
조금 높아 보이는 공을 향해 뛰어 오른 요한.
아직 다른 수비수들은 발을 땅에서 떼지도 않은 시점이었다.
어차피 뒤로 흘러가거나, 키퍼가 처리할 공이었거든.
하지만,
요한에겐 그렇지 않았다.
파아아아아앙-!
철썩-!
요한의 이마가 옌킨슨의 크로스를 내리 찍었다. 그리고, 그 헤더는 에버튼의 골망을 시원하게 갈랐다.
<고오오오올-! 요한의 완벽한 헤더가 터집니다! 어시스트는 옌킨슨!>
<이야, 이거 대단한데요? 웨스트 햄이 기어코 오른쪽에서 해결책을 찾아냅니다!>
환호하는 런던 스타디움.
그 속에서, 옌킨슨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이게··· 진짜 되네?’
한편으론 어이가 없다.
그 감정이 먼저였다.
하지만,
“형, 좋았어요.”
자신을 가리키며 다가오는 요한을 보는 순간.
왠지 모를 감동이 밀려드는 옌킨슨이다.
고맙다.
녀석에게, 너무 고맙다.
“고··· 고마워!”
“···네?”
요한을 덥썩 끌어안는 옌킨슨.
희한한 광경이다.
어시스트를 한 선수가 골을 넣은 선수에게 고맙다고 하는 것이.
하지만,
옌킨슨은 진심으로 요한에게 고마웠다.
어쩌면, 이번 겨울이 조금은 포근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게 만들어 주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