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zy genius striker RAW novel - Chapter (70)
나태한 천재 스트라이커-70화(70/202)
< 069화 – 포근한 겨울 >
“···!”
“···!?”
요한의 선제 골에, 제이미 코치와 슈미트 감독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서로를 쳐다봤다.
헛웃음을 터뜨리는 제이미 코치.
“제가 잘못 본 거 아니죠?”
“내가 묻고 싶은 말인데.”
“옌킨슨 크로스가 요한이 머리에 닿았어요! 어시스트를 올렸다구요!”
“쟤, 내가 아는 그 옌킨슨 맞지?”
사실 그렇게 놀랄만한 크로스는 아니었다.
크로스 자체는 평범했고, 놀라운 건 누가 봐도 말도 안되는 타점을 보여준 요한의 헤더였다.
그러나, 옌킨슨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크로스에 더 놀랄 수밖에 없는 장면이었다.
크로스의 퀄리티를 떠나서, 자신감 있고 간결하게 시도했다는 거.
그 쉬운 게 안됐던 옌킨슨이었다.
이 정도만 했어도 그놈의 크로스 얘기가 옌킨슨을 따라 다니진 않았겠지.
방금의 크로스는 지극히 평범한, 아니 요한이 아닌 다른 공격수였다면 점프를 뛰지 못했을 정도로 부정확한 크로스였다만.
뭐가 어찌됐건.
일단은 옌킨슨이 주저 없이 크로스를 시도 했다는 게 중요했고, 마수걸이 도움을 기록했다는 게 중요했다.
“자식···”
동료들과 얼싸안는 옌킨슨을 보며 피식 미소를 짓는 슈미트 감독.
선수들은 마침내 첫 도움을 기록한 옌킨슨에게 무한한 축하를 해주고 있었다.
슈미트 감독도 그러고 싶은 마음이었다.
옌킨슨, 녀석은 절대 남탓을 하는 성격이 아니었다. 스스로에겐 엄격하면서.
한데, 그게 너무 심한 나머지 자신감도 부족한 녀석이었다.
크로스가 아무리 안좋아도, 뻔뻔한 녀석들은 계속 시도를 한다.
아무리 똥 크로스를 뻥뻥 질러대도, 미안하다는 기색 하나 없는 녀석들도 부지기수란 거다.
옌킨슨이 차라리 그런 성격이었다면 오히려 괜찮았을지 모른다.
그랬다면 최소한 전반기 마지막 경기에 와서야 첫 도움을 기록하진 않았겠지.
어떻게 대충 주기만 하면, 지금처럼 요한이 강제 어시스트라도 만들어 줬을테니.
어쨌든, 지금이라도 혈이 뚫린 이상.
녀석도 조금은 자신감을 찾을 수 있을 것이었다.
이게 아주 중요했다.
슈미트 감독도 웬만하면 옌킨슨을 계속 쓰고 싶어했다.
옌킨슨은 분명 성장 가능성이 큰 풀백이었으니까.
“···”
슈미트 감독은 자리에서 일어나 테크니컬 에어리어로 향했다.
그리고, 제 자리로 돌아오는 옌킨슨을 향해 손을 뻗었다.
“지금처럼만.”
“···예!”
옌킨슨은 감개무량한 얼굴로 그 손을 마주 잡았다.
자신감이 샘솟는 듯한 얼굴이었다.
*
<오오, 뒤로 넘어가긴 했지만 지금도 위협적이었습니다!>
<오늘 미카엘 옌킨슨 선수의 컨디션이 괜찮아 보이는데요. 웨스트 햄의 오른쪽 공격이 살아나고 있습니다.>
<부진하던 자원의 약진은, 새로운 영입이나 마찬가지죠.>
<라이트백 자리를 놓고 고심하던 슈미트 감독의 고민이 조금은 해결이 될 듯 한데요. 이 정도면 말이죠.>
확실히 자신감이 차오른 옌킨슨은 더욱 더 활발하게 오른쪽을 공략했다.
물론 매 크로스가 요한의 머리에 닿고 있는 건 아니었다.
상대 수비 발에 걸릴 때도 있었고, 터무니없는 방향으로 튀어 나갈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크로스가 나와도 옌킨슨이 평소처럼 고개를 푹 숙인 채 자책하지 않고 있다는 게 중요했다.
계속 시도를 한다는 게 중요했다.
그리고, 그 결실은 전반 24분에 한 번 더 터져 나왔다.
<콜먼! 콜먼이 팀의 두 번째 골을 집어 넣었습니다! 2대0으로 앞서가는 웨스트 햄!>
<이게 빠른 크로스의 무서움입니다. 계속 시도하다 보면 결국 수비도 모두 완벽히 막아내기란 어렵거든요.>
이번엔 조너선 네이슨 대신 출장한 콜먼이 골을 주워 담았다.
모든 수비가 요한과 몸을 비비는 틈에 콜먼에게 프리 찬스가 났고, 그걸 가볍게 마무리한 것.
“젠장!”
경기를 지켜보던 에버튼의 마크 티어니 감독은 앞에 세워져 있던 물병을 냅다 까버렸다.
전반 15분까지만 해도 의도대로 흘러가던 경기였다.
준비했던대로 중앙과 오른쪽의 방비를 단단히 세워, 상대 공격을 효과적으로 차단하는데 성공하고 있었다.
이제 역습 찬스만 한 두 번 오면, 충분히 리드를 잡고 경기를 더 쉽게 풀어갈 수 있으리라 생각했었단 말이다.
그런데, 이게 웬걸.
상대의 오른쪽 공격이 갑자기 살아나기 시작하더니, 순식간에 두 골을 내주고 말았다.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어떻게 합니까, 감독님?’
‘계속 놔둬요?’
눈빛으로 자신에게 묻는 선수들을 보며, 티어니 감독이 입술을 깨문다.
오늘 경기를 준비하며, 훈련 내내 강조했던 게 있다.
“옌킨슨은 놔두라고!”
상대 라이트백인 미카엘 옌킨슨.
이 녀석이 공을 잡더라도 놔두라고.
신경쓰지 말고 중앙 수비만 두텁게 세우라고 강조하고 또 강조했었다.
근데, 그 녀석을 통한 공격으로 벌써 두 골을 먹혔으니.
이걸 어찌해야 하나 싶은거다.
‘사실, 놔두는 게 맞긴한데.’
솔직히 말하면, 옌킨슨의 크로스는 여전히 놔둘만 했다.
저걸 위협적이라고 하기엔, 그쪽 수비를 강화시키는 게 자존심이 상할 정도다.
‘문제는 저 녀석이···’
근데 문제는, 역시 요한 반.
저 녀석이다.
저 녀석이 그 별거 아닌 크로스도 택배 크로스인 것처럼 만들어 버릴 수 있으니까 문제인 거다.
나 참. 이러니 왼쪽 수비를 강화하지 않을 수도 없다. 자존심 상한다고 어쩌겠는가.
계속 놔두면, 세 번만 올려도 한 번은 들어가게 생겼는데.
“벌려!”
결국, 하는 수 없이 수비 위치를 조정하는 티어니 감독.
그 지시에, 한쪽으로 쏠려 있던 에버튼의 수비가 간격을 정상적으로 벌렸다.
근데, 그렇다는 건.
결국 중앙의 공간이 넓어진다는 거다.
그러자, 더 위협적인 공격이 에버튼을 기다리고 있었다.
<버클리, 요한에게 찔러 줍니다! 박스 안에서 공을 잡는 바니!>
에버튼에겐 옌킨슨의 각성이 외통수였다.
애초에 에버튼의 중앙 수비가 통하고 있던 건 왼쪽을 버리면서 중앙의 수적 우위를 가져갔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정상 위치로 수비가 조정되며 더 이상 그 수적 우위를 가져가지 못하게 되었고,
동수로는 요한에게 공이 가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그렇게 되니, 이젠 박스 안에서 공을 잡는 요한을 막을 수가 없었다.
<공을 지켜내면서, 돌아섭니다! 곧바로 슈웃-! 고오오올-!>
<이야, 멋진 원맨 골입니다! 수비가 아무런 대처도 할 수 없었습니다!>
<에버튼의 박스를 파괴해버리는 요한 반!>
전반 38분, 요한의 두 번째 골이자 웨스트 햄의 세 번째 골이 터졌다.
에버튼은 생각보다 쉽게 무너지기 시작했다.
*
<심판의 휘슬과 함께 경기가 종료 됩니다. 스코어 4대1, 웨스트 햄이 낙승을 거두며 전반기 1위 자리를 지켜 냈습니다!>
<대단한 성과네요. 시즌 절반까지 온 시점에서, 웨스트 햄이 1위 자리를 지켜낼 거라고 생각한 사람은 많지 않았죠.>
경기는 4대1의 스코어로 끝이 났다.
8위를 달리고 있던 에버튼은 만만치 않은 상대였고, 주전이 셋이나 빠졌던 웨스트 햄의 상황을 생각해본다면 무척이나 고무적인 결과.
물론 숙제도 남은 경기였다.
옌킨슨이 활발한 오버래핑을 가져간 건 좋았지만, 그 탓에 수비 밸런스가 앞으로 쏠리며 오른쪽 뒷공간을 노출해, 상대의 역습에 한 골을 내줬고 위협적인 장면도 여러 번 내줬다.
에버튼의 결정력이 조금만 더 좋았다면, 몇 개의 실점을 더 할 수도 있었고, 경기가 박빙으로 흘러갈 수도 있었다.
그나마 중앙 수비가 집중력을 잃지 않고 중심을 잡아준 덕에 3점 차 승리를 할 수 있었던 경기.
그러나, 그런 걸 떠나서 수확이 더 큰 경기임은 사실이었다.
무언가 깨달음을 얻은 것인지, 스스로의 벽을 깬 듯한 옌킨슨이 보여준 모습.
그 모습은 웨스트 햄에게 활기를 불어다 주었고, 앞으로 만날 상대들의 머리를 복잡하게 만드는 활약이었다.
“후우!”
경기를 마친 옌킨슨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도 밝았다.
2도움을 올렸다.
시즌 개막 때부터 18라운드까지.
한 개의 도움도 올리지 못하며, 공격 쪽엔 아무런 보탬이 되지 못했다는 사실에 괴로워했던 옌킨슨이었다.
하지만 오늘, 그 괴로움이 한 번에 해소되는 느낌이었다.
드디어 팀의 승리에 도움이 된 것 같은 기분에, 옌킨슨의 얼굴에선 미소가 끊이질 않았다.
“옌킨슨, 좋았다.”
“야, 하니까 되잖아. 사실 별거 아니지?”
“고마워. 정말 고마워.”
동료들도 옌킨슨에게 축하를 건넸다.
특히, 같은 풀백인 페트로비치는 자기 일처럼 기뻐하며 옌킨슨을 안아 주었다.
같은 팀 안에서도, 센터백 듀오라든가 중앙 미드필더들, 좌우 풀백처럼 같은 포지션에 있는 선수들은 서로 간의 유대가 남다르다.
페트로비치 역시 옌킨슨과 함께 고민해주었고, 항상 같이 훈련했었다.
그러니, 옌킨슨의 밝은 얼굴이 보기 좋을 수밖에.
옌킨슨도 그런 페트로비치가 고마웠다.
다만, 특히 더 고마운 녀석이 있다.
역시나, 요한이다.
옌킨슨도 안다. 오늘 자신의 크로스가 뛰어나서 2도움을 올렸다는 게 아니란 걸.
그저, 전부 요한이가 만들어줬을 뿐이다.
“요한!”
“?”
“고마워.”
“뭐가요?”
“그냥, 우리 팀에 있어 줘서 고마워.”
고맙다고 하니 요한이 고개를 갸웃였고,
옌킨슨은 웃으며 막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이 녀석은 정말 보물이다.
그런 녀석에게 이제나마 도움이 될 수 있었다는 게 옌킨슨은 기뻤다.
또한, 지금 이대로.
옌킨슨은 이 녀석과 함께 오랫동안 웨스트 햄의 승리를 위해 뛰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ㆍㆍㆍ
홈 경기의 장점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요한에겐 특별히 몇 가지가 더 있다.
일단 출퇴근 길이 가깝다는 점.
그리고,
이렇게 경기가 끝난 뒤엔 엄마가 해주는 따뜻한 집밥을 먹을 수 있다는 점이 있다.
아빠가 주는 식단이 아니라, 엄마의 밥 말이다.
오늘처럼 기분 좋게 승리한 날엔, 엄마가 음식 솜씨를 발휘하는 날이다.
“어때? 괜찮아?”
“맛있어요.”
“그치? 역시 우리 아들. 당신도 요한이처럼 팍팍 좀 먹어!”
“난 됐어. 보기만 해도 짜다.”
“하여간, 증말. 당신은 참 오래 살긴 할 거야.”
“요한아, 너무 배부르게 먹지 말아라.”
“무슨 소리야. 마음껏 먹어. 마음껏.”
“···나트륨 덩어리야.”
“김치찌개보고 나트륨 덩어리? 당신 한국 사람들한테 돌 맞고 싶어?”
“이미 많이 맞았어.”
“참 내.”
평소 식구들의 식사를 책임지는 건 반석호였다.
반석호는 식습관이 선수에게 얼마나 중요한 요소인지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성인 때까지 한국에서 생활하다, 해외로 나온 뒤 외국 선수들과 몸을 부딪혀보곤 뼈저리게 느꼈던 반석호였으니까.
물론 자신도 먹을 걱정 없이 크긴 했지만, 어릴 때부터 고기 먹고 자란 이 외국인 놈들은 확실히 피지컬이 차원이 다르다는 걸 말이다.
때문에, 아들들을 위해 철저히 식단을 관리해온 반석호였고, 김라희는 부엌에 들어오지도 못하게 했다.
다만 그래서인지 요한과 로한은 가끔씩 엄마가 해주는 밥을 더 좋아했다.
솔직히 닭가슴살 샐러드랑 찐 생선만 먹다가, 돼지고기 듬뿍 넣고 끓인 김치찌개 먹으면 누구나 그럴거다.
그냥 눈이 돌아가는거지.
혀를 타고 온몸으로 퍼지는 감칠맛과 자극적인 염분.
크으.
이게 진짜 저녁 식사지.
어느 고급 호텔에 가도 이 맛을 못 따라온단 말야.
“킨슨이, 걔 때문에 오늘 내가 다 기쁘더라. 맨날 걔만 보면 안쓰러웠는데, 활짝 웃는 거 보니까 마음이 놓이더라구.”
“오늘 웬일로 잘하더라구요? 대체자를 찾고 있었는데, 오늘만큼만 하면 그럴 필요도 없을 것 같아요.”
“어머, 정 없어라.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좀 모자라다고 바로 딴 사람을 구해?”
“엄마. 그게 프로의 세계랍니다.”
“다 사람이 하는 일이야. 로한이, 너도 너무 정없이 그러면 안된다.”
“제가 뭘요?”
“좀 쳐지는 애가 있으면 서로 더 도와주면 되지. 바로 바로 갈아치우는 건 너무 야박하잖니.”
“옌킨슨 욕 제일 많이한 게 엄마면서?”
“됐고. 얘, 요한아. 나중에 킨슨이 걔 집에 한 번 데리고 와. 엄마가 맛있는 밥 해줄 테니까.”
김라희의 말에, 입안 가득 넣은 밥으로 볼이 빵빵해진 요한이 고개를 끄덕였다.
“암튼, 오늘 요한이 인터뷰 덕분에 일이 잘 풀릴 것 같아요.”
“그게 무슨 말이니?”
“엄마 말대로 이것도 사람이 하는 일이라. 선수들도 팀을 볼 때, 거기 누가 있느냐를 보거든요. 오늘 요한이가 확실히 밝혔으니까, 새 선수들을 데려오는데 도움이 될거란 말이죠.”
로한이 말한 인터뷰란, 에버튼과의 경기가 끝난 뒤 요한이 했던 인터뷰를 말했다.
다가오는 겨울 이적시장.
요한의 거취를 두고 무성한 소문들에 대해 물었던 기자들이었다.
하지만, 요한은 오늘 한 마디로 그 소문들을 싹 정리해버렸다.
“이사 가기 귀찮아요. 전 집이 좋아요.”
다른 선수가 그렇게 말했다면, 아마 기자들이 그랬을 거다.
대답하기 싫으면 그냥 노 코멘트를 하지, 무슨 그런 이유를 대냐고.
하지만 그 말이 요한의 입에서 나오니, 게임 끝이었다.
귀찮다? 요한에게 있어 이보다 강력한 이유는 없다.
때문에, 인터뷰가 있자마자 기사들이 마구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요한이 최소한 이번 겨울 동안은 웨스트 햄에 잔류할 확률이 99퍼센트에 가깝다는 기사들이 말이었다.
“그니까, 요한이랑 같이 축구하고 싶어서 선수들이 올 거라구?”
“네. 요한이 없었으면 안 올 선수도, 요한이가 있으면 올 거예요. 얼핏 듣기로, 프론트에서 접촉한 선수들이 연봉보다 먼저 묻는 게 요한이가 팀에 남느냐는 거였다던데요? 다들 요한이랑 같이 뛰고 싶어 한다는 거죠.”
“와, 우리 아들. 인기 최고네? 역시 300만 팔로워 다워. 그 중 절반은 엄마 팬이지만.”
“에이, 절반은 너무 가셨다. 엄마.”
“···삼 분의 일!”
로한의 말은 사실이었다.
선수들이 이적과 잔류를 결정하는데 있어, 때론 연봉 같은 조건보다도 더 큰 역할을 하는 게 동료다.
만약 그 팀에 가게 된다면, 어떤 선수들이 자신의 동료가 되느냐.
중요할 수밖에 없는 문제 아닌가.
그런 면에서, 웨스트 햄은 또 다시 요한의 덕을 볼 수밖에 없는거다.
현재 유럽에서 가장 핫한 공격수와 한 팀으로 호흡을 맞출 수 있다.
이건, 선수들에겐 엄청난 메리트가 아닐 수 없었다.
특히, 몇몇 선수들에겐 더더욱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