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zy genius striker RAW novel - Chapter (81)
나태한 천재 스트라이커-81화(81/202)
< 080화 – 트로피 집착남 >
보통 같은 포지션의 선수가 팀에 합류하면, 아무래도 반갑지만은 않을 수 있다.
같은 팀이라 해도, 어쨌든 경쟁 상대라고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한은 달랐다.
“저랑 같은 공격수예요?”
“응.”
“그럼, 저 쉴 수 있는 날이 많아지는 거네요?”
“뭐, 그런 셈이지.”
“오.”
요한은 함박웃음을 지었다.
형들에게 이야기를 들어보니, 케인은 자신의 백업 스트라이커라고 했다.
혼자서 모든 경기를 뛸 순 없으니, 적당히 부담을 나눠 가지며 뒤를 받쳐주는 역할이라고.
그러니 요한에겐 반가운 일이었다.
자신을 대신해 뛰어줄, 귀찮음을 덜어줄 선수가 왔다는데 반갑지 않을 수 있을까.
요한은 반가운 마음에, 케인에게 다가가 먼저 인사를 하기까지 했다.
“잘 부탁드려요.”
“어, 어···”
그리고, 그런 요한의 인사에 케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더니, 요한을 바라보는 케인의 눈빛이 반짝반짝 빛난다.
‘런던의 귀인···’
프로에 데뷔한지 올해로 17년째.
그동안 리그 득점왕도 해보고, 도움왕도 해보고, 해볼 건 다해본 케인이었다.
한때는 세계 최고의 공격수 중 한 명이라는 이야기도 들었었고.
하지만, 그럼에도 커리어 내내 하나도 따내지 못한 우승 트로피.
그 운명의 장난 같은 기구한 커리어 때문에, 어쩌면 케인이 ‘운’이라는 요소에 심취한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처음엔 그저 심심풀이였다.
갈라타사라이에서 마저도 우승에 실패한 뒤.
케인은 터키의 거리를 걷다, 답답한 마음에 한 점성술 집에 들어가 점을 봤다.
그런데,
점성술사가 하는 말 하나 하나가 케인의 가슴을 후벼팠다.
“모든 걸 다 이룰 운명이지만, 가장 원하는 것 하나를 이루지 못할 운명이군.”
누가 봐도 자신의 이야기였다.
자신이 가장 원하는 것.
우승 트로피.
다른 건 다 이뤘는데, 그것 하나만 없지 않은가.
그걸 위해서 유럽을 떠돌았는데도 운명의 장난처럼 트로피는 자신을 피해가고 있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데요?”
“귀인을 만나야 해.”
“귀인···?”
“자네의 운명과 반대의 운명을 가진 귀인. 그 귀인과 함께 해야, 숙원이 풀어질거야.”
“반대의 운명?”
“딱히 노력하지 않고도 원하는 것을 모두 얻는 운명.”
점성술사는 한참이나 점괘를 보더니 말했다.
“런던··· 황소자리··· 그가 자네의 귀인이군.”
“런던? 황소자리? 누군데요, 그게?”
“황소자리 중 가장 빛나는 별. 그게 런던을 비추고 있어.”
“아니, 그래서 그게 누구냐고요.”
“이 이상은 천기누설일세.”
“미친.”
끈질기게 물어도 점성술사는 천기누설이라는 이야기만 하며 대답을 거부했고, 케인은 점성술 집을 나와 콧방귀를 뀌었다.
그러면서 비참한 기분이 들었다.
잠깐이나마 이런 미신 따위에 혹했던 자신의 처지가 말이었다.
이후로 케인은 그 날의 일을 잊고 살았다.
그런데,
케인이 그 일을 다시 떠올리게 된 건 우연히 요한 반이라는 선수를 보고 나서였다.
<런던에 새로운 스타가 나타났습니다!>
<웨스트 햄의 신성, 요한 반!>
웨스트 햄의 괴물 스트라이커.
요한을 보자마자 왜 그 날의 일이 떠올랐는지는 케인도 알지 못한다.
하지만, 뭐에 홀리기라도 한 듯 요한에 대해 검색해본 케인은 입을 틀어 막았다.
요한 반
출생 : 2011년 4월 26일 (황소자리)
“런던! 황소자리!”
케인은 확신했다.
그 날 점성술사가 말했던 그 귀인이, 바로 요한이라는 것을.
이후 웨스트 햄에서 오퍼가 들어왔을 때, 케인이 고민도 없이 응한 건 당연한 일이었다.
트로피에 대한 집착.
그 운명을 바꿔줄 수 있는 건 웨스트 햄으로 가는 것 뿐이었으니까.
“왼발, 왼발.”
훈련을 위해 워밍업을 하는 선수들.
요한도 몸을 풀고 있는데,
“···”
어디선가 따가운 시선이 느껴져 고개를 돌렸더니, 케인과 눈이 마주친다.
눈을 마주친 케인은 베시시 웃었고, 요한은 어색한 미소로 답했다.
‘뭐지.’
고개를 다시 돌린 뒤 미간을 찌푸리는 요한.
저렇게 웃으니까··· 뭔가 좀 무섭다.
왜 자길 쳐다보고 있는거지.
그 헤벌레한 웃음은 또 뭐고.
아니, 잠깐.
아직도 따가운 시선이 느껴지는데?
“···헤.”
“···”
슬쩍 고개를 다시 돌려보니, 케인과 또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케인은 또 자길 보며 웃었다.
······진짜 무서운데?
요한은 머리를 긁적였다.
*
“···.”
훈련 내내 꺼림칙한 느낌은 계속 되었다.
훈련을 하다가 이상한 느낌이 들어 고개를 돌리면, 그곳엔 항상 케인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웃으면서.
‘뭐냐고.’
안필드에서도 쫄지 않았던 요한이었다.
수만 명의 콥들에게도 쫄지 않았었단 말이다.
근데, 그런 요한도 좀 무서웠다.
190센티미터에 가까운 큰 남자가, 생각을 읽을 수 없는 묘한 표정을 한 채 계속해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
이게 어떻게 안 무섭고 배겨.
같은 남자끼리 뭐가 무섭냐고?
같은 남자라서 더 무서운 거라고.
“저, 가보겠습니다.”
“고생했어. 내일 보자구.”
어쨌든 훈련을 마치고.
퇴근을 위해 가벼운 발걸음으로 라커룸으로 향한 요한.
옷을 갈아입기 위해 라커를 열려는데,
“···!”
요한이 손이 멈칫했다.
원래 자신이 쓰는 라커의 옆자리는 조너선 네이슨이 쓰고 있었다.
그런데, 주인이 바뀌어 있다.
해리 케인으로.
“···”
훈련 내내 자신을 뚫어지게 쳐다보던 케인의 얼굴이 떠올라 섬뜩하다.
라커까지 왜 하필 자기 옆자리에···
굳이 빈 자리를 놔두고 말이다.
아니, 이러니까 진짜 무섭잖아.
“휴우.”
빨리 퇴근을 해야할 것 같다.
요한은 땀이 벤 트레이닝 복을 벗고, 새 옷을 챙겨 라커룸 내에 위치한 샤워실로 향했다.
촤아아아-
상남자 특.
비누 하나로 다 해결함.
비누로 머리부터 몸 구석구석을 씻는 요한.
그런데,
툭-
손이 미끄러져 비누가 땅에 떨어졌다.
그 비누를 주우려 허리를 숙이는 순간.
“···?”
거대한 그림자가 요한에게 드리워졌다.
요한은 고개를 들었고,
“···!”
그 그림자의 주인은 해리 케인이었다.
홀딱 벗은 케인이 자신을 내려다 보고 있었다.
“으아악!”
요한이 비명을 내질렀다.
*
“하하하!”
샤워실에서 들려온 비명 소리에 후다닥 들어온 팀 고든은, 요한에게 자초지종을 듣곤 폭소를 터뜨렸다.
“오해할 만하네. 나 같아도 지리겠다.”
충분히 오해할 만한 상황이긴 했다.
그러나, 말 그대로 오해였다.
케인은 결혼도 하고, 애까지 있는 사람이었으니까.
요한의 비명에 더 당황한 건 케인이었고, 고든의 설명을 들은 요한은 그제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니, 이봐요. 그러게 애를 왜 그렇게 뚫어져라 쳐다 봤어요?”
“아니··· 그냥 좋아서···”
“···예? 잠깐만. 확실히 하고 갑시다. 그 말 들으니까 갑자기 나도 헷갈려서 그러는데. 진짜 오해 맞죠?”
“뭐, 뭐가?”
“좋아서 쳐다 봤다고요?”
“아, 아니. 그러니까. 선수로서. 같은 공격수로서 좋다는 거지. 무슨.”
“그쵸? 확실한 거죠?”
고든의 눈초리에 당황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케인.
“아, 근데 진짜 웃기네. 요즘 들어 최고로 웃겼다.”
아무튼 오해였다.
요한은 괜히 미안해서 사과했고, 그렇게 오해는 정리되었다.
케인도 오해를 살만한 행동을 한 게 미안했던건지, 아직 차가 없는 요한을 집에 데려다 주겠다고 했다.
그렇게, 요한은 케인의 차를 타고 퇴근길에 올랐다.
‘별일이 다 있네.’
창밖을 보며 아까 일을 떠올리곤 피식 웃는 요한.
아니, 근데 그 순간엔 진짜 무섭긴 했다.
하필 또 그때 비누를 놓칠 게 뭐람.
딸까지 있는 사람을 오해해서 미안하긴 한데, 솔직히 누가 봐도 오해할만 했잖아···
“내일 보자.”
“감사합니다. 들어가세요.”
케인 덕분에 금방 집에 도착해, 차에서 내려 집으로 향하는 요한.
그런데,
‘···응?’
집으로 향하던 요한이 멈칫했다.
잠깐만.
그러고 보니까, 이상하네?
케인한테 집 주소를 안 가르쳐 줬었잖아?
근데, 어떻게 정확히 집 앞에 데려다 준거지?
“···”
뭔가 이상해 요한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
케인의 차가 옆옆 집으로 들어가는 걸 확인한 순간.
요한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지, 진짜 오해 맞지···?’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요한이었다.
ㆍㆍㆍ
2028년 1월 24일.
시즌 25라운드가 있는 날.
웨스트 햄은 리그 최하위 번리를 상대하기 위해 터프 무어로 떠났다.
번리의 홈, 터프 무어 원정은 꽤 까다롭기도 유명하다.
일단 경기장이 위치한 랭커셔 주가 런던에서 멀기도 하고, 번리가 워낙 소도시인 관계로 이동 자체도 쉽지 않다.
뿐만 아니라 일주일 중 4일은 비가 온다고 할 정도로 날씨가 궂은 곳이라.
거친 수비 위주의 축구를 하는 번리의 스타일과, 외부적인 요소들이 합쳐지는 날이면 강팀들 조차도 고역을 겪는 게 터프 무어 원정이었고, 원정을 치르고 나서도 회복에 오래 걸리는 게 터프 무어 원정이었다.
그걸 의식한 것인지, 이번 원정에서 슈미트 감독은 요한을 명단에서 제외했다.
이번 주는 휴식.
지난 17라운드, 뉴캐슬 전 이후로 FA컵 경기를 포함해 8경기 연속 출장 했으니 쉴 타이밍이기도 했다.
특히 번리와의 경기 다음엔 토트넘과의 더비 매치가 기다리고 있어, 확실히 휴식이 필요한 주간이었다.
또한, 터프 무어 원정이 어렵다지만 현재 번리의 팀 분위기가 많이 무너져 있으니, 요한이 없다고 해도 충분히 승리를 가져갈 수 있을거란 판단도 있었다.
무엇보다, 훈련 동안 지켜본 해리 케인의 몸 상태가 나쁘지 않았다.
애초에 터키 리그에서 문제없이 경기를 소화하다 왔으니 컨디션에 큰 문제는 없는 케인이었고, 곧바로 경기 출장이 가능한 상태였는데.
역시 클래스 있는 선수고 워낙 경험도 많은 베테랑이다 보니, 몇 번의 훈련만으로 팀 전술을 완벽히 이해한 케인이었기에 슈미트 감독은 그를 바로 선발 명단에 올렸다.
<눈과 비가 섞여 내리고 있는 터프 무어입니다. 오늘, 이 날씨가 양팀 모두에게 변수가 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아무래도 번리 선수들에게 더 익숙한 날씨인 건 사실입니다. 어쩌면 이 변수가 이변을 만들어낼지도 모르겠습니다.>
<일단, 해리 케인이 최전방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프리미어 리그 복귀전인데요.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궁금하군요.>
<과연 요한의 공백을 메워줄 수 있을지, 기대해봐야겠습니다.>
터프 무어에 진눈깨비가 내리는 가운데 경기가 시작되었다.
경기의 양상은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대로 흘러갔다.
번리는 큰 수비수들을 앞세워 뒤로 깊게 내려 앉으며 단단히 수비 벽을 세웠고, 웨스트 햄은 카펠로에게 공격권을 쥐어주고 번리의 텐백을 부수기 위해 기회를 엿봤다.
사실, 이 매치업이 12월에만 열렸어도 웨스트 햄은 쉽게 경기를 풀어가지 못했을 것이다.
요한이 없는 상황에서 번리 같은 팀의 수비를 뚫어낸다는 건 쉽지 않았을 테니까.
하지만, 지금의 상황은 완전히 달랐다.
웨스트 햄엔 경직된 수비를 흔들 수 있는, 창의적인 패스가 가능한 카펠로가 있었고.
요한의 빈 자리를 메꿔줄 수 있는 해리 케인이 있었다.
<잘 봤습니다! 케인! 슈우웃!>
<고오오올-! 해리 케인의 골이 터졌습니다! 전반 16분! 케인이 프리미어 리그 복귀를 신고합니다!>
<역시 클래스는 어디 안가는 군요! 웨스트 햄 유니폼을 입고 첫 골! 그 첫 골을 프리미어 리그 복귀 경기에서 터뜨립니다!>
케인은 전반 16분만에 골을 터뜨리며 프리미어 리그 복귀를 신고했다.
프리미어 리그 통산 225골 째이자, 웨스트 햄 소속으로 첫 골.
케인의 클래스는 확실했다.
요한이 결장한 경기에서 모두 패배를 당했었던 웨스트 햄이었다.
때문에 요한을 쉬게 해주고 싶어도, 그러지 못했던 경기도 많았다.
그러나, 이젠 케인이 있으니 믿고 요한을 더 관리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경기 종료 되었습니다. 웨스트 햄이 터프 무어 원정에서 승점 3점을 챙겨 갑니다!>
<맨 시티는 더욱 긴장해야겠군요. 웨스트 햄이 한층 더 강해진 것 같습니다. 한 번이라도 삐끗하는 순간, 다시 1위의 주인이 바뀔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경기는 웨스트 햄이 2대1로 승리했다.
그리고, 경기 MOM으로 선정된 해리 케인은 인터뷰에서 복잡미묘한 듯한 감정을 쏟아냈다.
“오랜만에 고향이 돌아온 기분일 것 같은데요. 소감은요?”
“성공적인 경기를 치러서 기쁩니다. 웨스트 햄을 위해 뛰는 선수가 될 겁니다.”
“사실, 왜 하필 웨스트 햄이냐는 질문이 많았습니다. 이에 대한 답변은요?”
“쉽지 않은 선택이었습니다만, 확신은 있었습니다. 웨스트 햄엔 훌륭한 선수들이 있고, 이곳에서라면 트로피를 들어올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단순히 현재 순위가 높았기 때문이었나요?”
“그것보단, 정말 함께하고 싶었던 선수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요?”
“요한 반 선수죠.”
요한과 함께하고 싶었다는 케인의 인터뷰.
그 인터뷰를,
요한은 집에서 아빠와 함께 보고 있었다.
“하하! 든든하구나. 그치, 요한아?”
“······네.”
든든하다라···
아뇨. 아빠.
사실은 좀 무서워요···
요한은 티비 속의 케인이, 마치 자기를 바라보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