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zy genius striker RAW novel - Chapter (85)
나태한 천재 스트라이커-85화(85/202)
< 084화 – 네가 필요해 >
<양 팀 모두 반드시 이겨야 하는 경기입니다. 잉글랜드는 오늘 경기를 이기면 남은 경기와 상관없이 조 1위를 확정 지을 수 있고요. 이탈리아는 1위 탈환의 가능성을 오늘 지지 않아야만 이어갈 수 있습니다.>
<좀 더 신중한 쪽은 이탈리아라고 볼 수 있겠네요. 원래 스타일도 스타일이지만, 일단은 홈에서의 경기 임에도 수비에 좀 더 집중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잉글랜드는 4-5-1의 포메이션을, 이탈리아는 3-5-2의 포메이션을 들고 나왔다.
포메이션 상으로 양 팀의 미드필더 숫자는 같다.
다만, 실상은 완전히 다르다.
잉글랜드는 세 명의 미드필더들이 중앙을 이루고 있고, 나머지 둘은 좌우 날개를 담당한다.
그 날개의 뒤엔 풀백들이 자리를 받치고 있기 때문에, 공격적인 움직임을 더 가져가는 윙어들이라 볼 수 있다.
반면 이탈리아의 양 날개는 윙백들이다.
수비 시엔 풀백의 역할을 하는 윙백들.
즉, 잉글랜드의 윙들과는 달리 수비적인 롤이 더 강한 선수들인 것이다.
따라서 실제로 이탈리아의 포메이션은 파이브 백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이게 원래 이탈리아의 스타일이긴 하다.
다만, 오늘은 더 수비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일단 절대로 져서는 안되는 경기다.
최소한 무승부는 거둬야 1위 경쟁의 끈을 이어갈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요한이 선발로 나왔다는 게 신경 쓰일 수밖에 없다.
이미 호되게 한 번 당했으니까.
그것도, 선발이 아니라 교체로 들어온 요한에게 말이다.
그때, 요한은 후반 15분쯤에 메이슨 매과이어를 대신해 경기장에 투입 되었었다.
그러니까, 실제로 경기에 뛴 시간은 대략 30분 남짓.
그러나, 그 30분 만에 이탈리아의 빗장 수비를 부숴버렸던 요한이다.
그런데 오늘은 90분 동안 그런 요한을 상대해야 할 지도 모르니, 이탈리아가 시작부터 빗장을 단단히 걸어 잠근 건 예상 가능한 일이었다.
<중원에서 천천히 공을 돌리는 잉글랜드. 사실 잉글랜드는 그렇게 급할 이유는 없죠?>
<맞습니다. 오늘 이긴다면 물론 베스트겠지만, 무승부만 거둬도 괜찮다는 생각일 겁니다. 남은 스위스와의 경기를 이기면 되니까요. 그 편이 훨씬 쉬울 거고요.>
잉글랜드는 꽤 여유가 있다.
이탈리아가 빗장을 걸어 잠근다고 해서 급한 모양새가 아니다.
아무래도, 이기면 좋은거지 꼭 이겨야만 하는 상황은 아니기 때문일 터.
다만, 이 역시도 요한이 있기 때문인 게 더 크다.
현재 필드에 나와 있는 잉글랜드 선수들은, 모두 요한과 상대를 해본 경험이 있는 선수들이었다.
때문에 모두가 알고 있었다.
요한에겐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는 걸.
요한이 있는 웨스트 햄과 상대할 때, 가장 스트레스를 받았던 건 경기 종료 1분 전까지도 집중력을 계속해서 유지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요한이라는 이 선수는, 89분 동안 경기장에서 보이지 않다가도, 그 1분 동안 갑자기 나타나 골을 쑤셔 넣는 선수기 때문이었다.
아니, 1분도 아니다.
불과 몇 초다.
몇 초 밖에 안되는 그 짧은 시간일지라도, 골을 넣는데 요한에겐 충분한 시간이었다.
그러니 급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물론, 이렇게 해외에 나와 처음 와보는 경기장에서 경기를 하고 있는 요한을 위한 배려도 어느 정도 있을 것이고.
이 이색적인 경기장의 분위기에 적응하라는 배려 말이다.
“cadere! ragazzi stupidi!”
“morire! morire!”
“Bastardi dell’isola puzzolente!”
사방에서 쏟아지는 홈 팬들의 야유.
이탈리아어를 알아들을 수 없어도 그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진 알 수 있다.
대충 자빠져라 멍청한 것들, 죽어, 냄새나는 섬 새끼들 따위의, 번역할 가치도 없는 저급한 단어들이겠지.
이탈리아어를 모르는 게 아마 다행일거다.
근데, 지금도 이런데 만약 실수라도 한 번 나오면 저들의 야유와 조롱은 더욱 거세지겠지.
그 야유를 받으면, 심리적으로 위축이 될 수도 있고.
물론, 요한이 어떤 녀석인진 동료들도 알고 있었다.
안필드에서도 쫄지 않던 녀석이다.
하지만 어쨌든, 굳이 안 당해도 될 걸 당할 필요까진 없으니까.
그러나, 형들은 모르고 있었다.
그런 배려가 요한에겐 오히려 답답했다는 걸.
“···!”
중원에서 공을 잡은 리버풀의 미드필더 셰인 머레이가 요한과 눈이 마주쳤다.
어서 공을 달라는 듯한 요한의 눈빛.
웨스트 햄의 유니폼을 입은 요한이 저런 눈빛을 보냈다면, 아마 등골이 오싹 했을거다.
하지만, 지금은 이렇게 믿음직스러울 수가 없다.
때문에, 좌우에서도 공을 달라는 소리가 들렸지만 셰인 머레이는 모두 무시한 뒤 뭐에 홀린 듯 요한에게 곧바로 공을 전달했다.
파아아앙-!
페널티 박스 근처.
골대를 등진 채 패스를 받는 요한.
그러자 곧바로 수비 하나가 등 뒤에서 달라 붙는다.
오늘 이탈리아의 쓰리백은, 지난번에 상대했던 바르첼리와 마르치오, 그 유벤투스 듀오에 한명이 더해졌다.
라치오에서 뛰고 있는 중앙 수비수 알레산드로 란초니.
란초니는 190센티미터의 키에, 90킬로그램에 육박하는 몸무게를 가진 거구의 파이터형 수비수였다.
사실 란초니는 대표팀에 여러번 승선한 경험은 있지만, 주전으로 기용되던 선수는 아니었다.
주전으로 기용하기엔 기량 면에서 애매한 부분이 많았으니.
그러나, 오늘 란초니가 선발로 나온 건 그에게 맡길 확실한 역할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 역할이란, 바로 요한과 싸움을 붙으라는 것이었다.
오늘, 란초니는 오로지 요한을 귀찮게 만들기 위해 경기에 출전한 것이다.
<붙어주는 란초니. 확실히 사이즈 싸움에서는 란초니가 전혀 밀리지 않습니다!>
물론 주먹다짐 따위의 진짜 싸움을 하라는 건 당연히 아니고.
거대한 피지컬을 이용해 위치에 상관없이 거칠게 전담 마크를 붙어 괴롭히라는 거다.
아주 찰거머리처럼, 녀석이 학을 떼도록.
‘귀찮은 게 제일 싫다고 했지? 그럼, 뛰는 내내 귀찮게 만들어주마.’
요한을 저지하라는 특명을 받은 뒤, 개인적으로도 요한에 대해 찾아봤던 란초니다.
특이한 캐릭터였다.
귀찮은 게 제일 싫다던 게으른 천재.
필드 위에서의 1원칙은 상대가 제일 싫어하는 것을 하는 것이다.
마음껏 귀찮게 해줄 생각이었다.
그게 자신이 제일 잘하는 것이기도 했다.
란초니는 자신을 등진 채 공을 잡고 있는 요한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런데.
쿠웅-!
“···헙!?”
거칠게 달려들었던 란초니의 미간의 찌푸려졌다.
동시에 숨이 턱 막힌다.
란초니는 처음 느껴보는, 돌처럼 단단한 등이었다.
아예 파울 같은 건 상관하지 않고 밀어 버리려 했던 란초니였다.
그러나 요한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이, 이 자식이?’
오히려 밀고 들어온다.
등으로 란초니를 뒤로 밀기 시작하는 요한.
물론 란초니도 이를 악물고 밀고 있었다.
그런데, 계속해서 밀리는 건 란초니다.
세리에에 이런 공격수는 없었다.
란초니와 힘으로 정면 대결을 하려는 공격수 말이다.
때문에 란초니는 당황하고 말았다.
마치, 도망가지 않고 자신을 도리어 공격해오는 코뿔소를 마주한 사자처럼.
“밀어! 밀어내!”
“파울해도 괜찮아, 란초니!”
반칙을 두려워하지 말고 밀어내라는 동료의 외침에 어금니를 깨무는 란초니.
젠장! 안 그래도 이미 온 힘을 다해 밀고 있단 말이다!
퍼어억-!
천천히 란초니를 밀어내던 요한이, 갑자기 힘을 응집시켜 란초니를 크게 밀쳐냈다.
그러자 두 발자국 정도 뒤로 밀려나는 란초니.
그 틈에,
타탓-
빠르게 돌아선 요한은 곧바로 골문을 노렸다.
뻐어어어어엉-!
란초니가 수습할 시간도 없었다.
제자리에서 스텝도 밟지 않고 때린 슈팅.
박스 라인 선상에서 때린 슈팅이었다.
그러니까, 골대와 아주 가까운 거리는 아닌 셈. 하지만, 그럼에도 요한이 슈팅을 때리는데까지는 많은 준비 동작이 필요치 않았다.
슈우우우우웅-
까아아아앙-!
<으아아, 골대! 요한의 첫 슈팅이 골 포스트를 강타합니다!>
<이탈리아 관중들의 피가 차가워지는 소리네요!>
요한의 묵직한 슈팅은 골대를 강타했다.
깻잎 한 장 차이.
조금만 안쪽으로 향했다면, 골대를 맞고 안으로 들어 갔을텐데, 공은 골대 바깥으로 튕겨 나갔다.
이탈리아의 골킥.
그러나,
아무도 수비에 성공했다고 생각할 순 없는 장면이었다.
“···”
“···”
일순 조용해지는 알리안츠 스타디움.
요한이 뭐 하나 실수하기만을 바라고 있던 관중들이다.
아니, 실수를 하지 않아도 꼬투리를 잡아 야유와 조롱을 퍼부을 준비가 끝나 있던 관중들이란 말이다.
하지만, 그런 그들조차 지금은 입을 다물었다.
“란초니가··· 밀리네.”
“시발, 저 새끼 왜 저렇게 얼타?”
“적당히 막을 생각 하지마! 힘을 아끼지 말라고!”
대신 터져 나오는 란초니를 향한 질책.
알리안츠 스타디움을 찾은 관중들은 아직 모르고 있었다.
고작 이 정도로 입을 다물기엔, 아직 요한은 시작도 하지 않았다는 것을 말이었다.
*
“헤이!”
요한의 첫 슈팅 이후, 경기의 템포는 갑자기 빨라지기 시작했다.
그런 템포 변화의 중심에 있는 건 다니엘레 카펠로였다.
<중원에서 활발한 움직임을 가져가는 카펠로. 패스를 주고 받으며 빈공간을 찾습니다.>
<슬슬 이탈리아도 템포를 끌어 올리는 것 같습니다. 마냥 지키고만 있어서는 안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 거겠죠. 방금 요한의 슈팅을 보고 나서요.>
볼 터치 회수를 늘려가며 슬슬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하는 카펠로.
방금의 슈팅에 자극을 받은 카펠로다.
녀석이 하나 보여줬어? 그럼 내 차례지.
이런 생각으로, 카펠로는 동료와 잘게 패스를 이어가며 이탈리아 진영에서 자신의 테크닉을 유감없이 보여주기 시작했다.
<좋은 드리블입니다! 확실히 테크닉이 좋은 카펠로에요!>
<좀 더 거칠게 막아야 합니다. 자유롭게 공을 차도록 둬선 안돼요!>
확실히 카펠로는 자유롭게 놔둬선 안되는 선수다.
워낙 테크닉과 패스가 좋아, 마음대로 공을 갖고 있게 놔두면 언제 후방이 위험해질지 모른다.
따라서, 강하게 압박을 들어가야 하는 선수.
그러나, 잉글랜드는 강한 전방 압박을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전방 압박 따윈 하지 않는 요한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잉글랜드 대표팀엔 조너선 네이슨이나 제이콥 버클리 같은 헌신적인 스타일의 선수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덕분에,
카펠로는 꽤나 자유롭게 공을 소유하며 이탈리아의 점유율을 높여가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슬슬 몸이 다 풀렸다는 듯.
카펠로는 공을 몰고 전진하기 시작했다.
“들어가!”
동료들에게 전진을 지시하며 하프라인을 넘어가는 카펠로.
그런 카펠로의 지시에 양쪽 윙백들을 포함해 모든 이탈리아 선수들이 상대 진영을 향해 빠르게 침투해 들어가기 시작한다.
‘똑똑히 봐두라고.’
날카로운 눈으로 패스 길을 찾으며 생각하는 카펠로.
잘 봐라, 요한.
누가 진짜 에이스였는지!
뻐어어어어엉-!
<한 번에 찔러 줬습니다! 몬탈리노에게 연결되는 스루 패스!>
<뒷공간을 놓쳤어요!>
단번에 수비 사이로 찔러 넣는 스루 패스.
그 패스의 세기나 경로가 절묘하다.
잉글랜드 수비들의 발을 교묘히 지나쳐, 뒤로 침투하던 이탈리아의 포워드 루카 몬탈리노에게 정확히 닿는 패스.
‘훗.’
카펠로는 씨익 웃었다.
이게, 천재의 패스고.
이게, 웨스트 햄의 에이스라고.
그러나.
뻐어어어어엉-!
잠시 후 카펠로의 웃음기가 싹 가셨다.
<아아! 이걸 놓치는 몬탈리노! 공을 허공으로 날려 보냅니다!>
<이건 넣어 줬어야죠! 절호의 찬스를 놓치는 몬탈리노! 그리고 이탈리아입니다!>
몬탈리노의 슈팅이 홈런을 때렸다.
“···.”
허망한 눈으로 그런 몬탈리노를 바라보는 카펠로.
허나, 그런 카펠로의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몬탈리노는 팔자 좋은 얼굴로 엄지를 치켜세워 보였다.
뭐가 엄지야, 이놈아?
뭐가 엄지냐고!
“씨···”
잔디를 걷어차며 돌아서는 카펠로.
그런 카펠로의 눈에, 이번엔 요한이 들어왔다.
순간 카펠로에게 드는 생각.
‘저 녀석이었으면 넣었을 거라고.’
요한이었으면 넣었을텐데.
저 녀석이었다면 놓쳤을 리가 없었을텐데.
‘응? 지금 무슨 생각을.’
아차하며 고개를 젓는 카펠로.
뭐야. 지금, 저 녀석을 그리워한 건가.
웃기는 소리. 누가 누굴 그리워해?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다는 게 부끄러웠던 카펠로는, 괜히 요한의 근처까지 걸어가 말했다.
“어떠냐? 이제 알겠지? 넌 이 몸이 필요한 녀석이라는 걸.”
“···”
허나 대꾸는커녕 시선조차 주지 않는 요한.
와, 그래도 팀 동료인데 너무하네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하지만, 꼭 그런 건 아니었다.
요한의 시선은 하늘을 향해 있었고, 그곳엔 잉글랜드의 골킥이 날아오고 있었다.
잡담이나 하고 있을 시간은 없었다.
오늘만큼은, 서로를 죽여야 하는 적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