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zy genius striker RAW novel - Chapter (87)
나태한 천재 스트라이커-87화(87/202)
< 086화 – 2파전 양상 >
“삑, 삐익, 삐이이익-!”
경기 종료 휘슬이 울렸다.
3대0, 잉글랜드의 완승으로 끝이 난 경기.
조 1위와 유로 2028 본선 직행을 확정 지은 잉글랜드 선수들은 신이 났고, 홈에서 완패를 당한 이탈리아 선수들은 고개를 숙였다.
“하아···”
카펠로도 한숨을 내쉬었다.
물론 고개를 숙이진 않았다.
카펠로는 패배했다고 해서 의기소침하거나 자책을 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다만 억울해할 뿐.
실제로 오늘 카펠로는 잘했으니 억울해도 인정이다.
“고생했어. 너, 확실히 좀 치더라.”
“···당연하지.”
“리그에서 만나면 살살해라.”
“그럴 리가.”
잉글랜드 선수들과 악수를 나누는 카펠로.
그리고,
카펠로는 마지막으로 요한과 악수했다.
“···너, 착각하면 안된다.”
“뭘요?”
“네가 이 몸을 이긴 게 아니야. 너희 팀이 우리 팀을 이겼을 뿐이지.”
“그게 그거 아니에요?”
“그게 어떻게 그거냐!”
기분이 좋아 보이는 요한의 모습에 발끈하는 카펠로.
“우리 팀 공격수들이 좀만 더 잘했으면 우리가 이겼을 거라고! 이 몸이 못해서 진 건 아냐!”
“그럼 스스로 골을··· 아. 아닙니다.”
“뭐라고?”
“어쨌든, 제가 잘해서 이긴 거니까 제가 이긴 건 맞잖아요?”
“이, 이게···. 하아···”
억울하지만, 또 할말은 없다.
맞는 말이니까.
결국 오늘 승부를 가른 건 요한의 3골이었다.
애초에 카펠로가 한 말이 스스로 인정하는 꼴이기도 했다.
이탈리아의 공격수들이 좀만 더 잘했으면 이겼을 거라는 건, 결국 요한이 그들보다 잘했다는 거니까.
“하하.”
부들부들 거리는 카펠로를 보며 웃는 요한.
사실 누굴 놀리는 걸 좋아하는 요한이 아니다.
하지만, 이상하게 카펠로만 보면 놀리고 싶은 생각이 든다.
다 팀 동료 형들을 보고 배운거지.
요한은 카펠로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그래도 이탈리아의 에이스는 형이 맞는 것 같아요.”
“흥. 당연하지. 너처럼 축구는 1도 모르는 애송이가 봐도 알 수 있을 만큼.”
“근데 그 이유가 뭔 줄 알아요?”
“이유?”
“제가 이탈리아 대표가 아니기 때문이에요.”
“···뭐라고?”
“제가 이탈리아 대표였으면, 형은 이탈리아의 에이스가 못됐겠죠. 우리 팀에서처럼.”
“너, 너 이 자식이···!”
카펠로는 얼굴이 시뻘개졌다.
운이 없었을 뿐이다! 내 탓도 아니고!
고작 한 경기로 승부가 끝일 거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란 말이다!
아직 누가 진짜 에이스인지 결정된 건 아니라고!
“그럼, 누가 더 평점 높을지 내기할래요?”
“펴, 평점? 그건 이 몸이 불리하잖아!”
“음. 그렇겠죠. 제가 더 잘한 게 사실이니까. 제가 더 높을 수밖에 없겠죠.”
“그, 그게 아니다! 기계식으로 메기는 평점은 오로지 결과만 보지. 진짜 축구의 아름다움은 숫자 따위로 판단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그런 것치고 평점 체크를 너무 열심히 하시던데요?”
요한의 말에 카펠로는 더 이상 대답할 수 없었다. 그저 얼굴이 터지려고 할 뿐.
치사하게 팩트로 공격하니 이길 수가 없다.
“으으···”
요한은 웃으며 라커룸으로 돌아갔고,
카펠로 역시 신경질적으로 잔디를 차며 라커룸으로 향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생각했다.
빨리 런던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돌아가서, 오늘의 복수를 해야겠다고 말이다.
물론 그 복수란, 저 건방진 애송이보다 뛰어난 활약을 해서 MOM을 받아내는 것이고.
오늘은 운이 안 좋았을 뿐이라는 걸 증명하는 것이다.
‘안되겠어.’
아무래도 이대론 잠을 잘 수 없을 것 같다.
카펠로는, 숙소로 복귀하는 대신 1시간이라도 경기장에 남아 훈련을 하고 돌아가야 직성이 풀릴 것 같았다.
ㆍㆍㆍ
“뭐 재밌는 거 보니?”
“네? 아. 아니에요.”
미소를 지으며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는 요한에게 반석호가 묻는다.
사실, 재밌는 걸 보고 있긴 했다.
카펠로에게 메시지 하나를 보냈는데, 뭐라고 보냈냐면, 경기가 끝난 뒤 나온 양 팀 선수들의 평점을 캡처해서 보내줬다.
no.9 Yohan Van 10.0
no.10 Daniele Capello 8.5
분명 메시지를 확인했다는 의미의 1은 사라져 있었다.
하지만 답장은 없었다.
이젠 대답할 거리도 없나 보다.
그런 카펠로의 침묵이 요한은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아, 이제 좀 귀찮게 안하려나.
훈련 때마다 프리킥 대결 다시 하자고 졸라대는 바람에 귀찮아 죽을 뻔 했는데.
“여기까지 와서 핸드폰 보지 말고, 눈앞에 도시 풍경 좀 봐. 얼마나 좋니.”
그나저나, 요한은 부모님과 함께 도시 외곽의 한 카페에 와 있었다.
산중턱에 위치해 있어, 도시 전체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곳.
솔직히 말하면 당연히 오기 싫었다.
그냥 숙소에서 잠이나 더 자고 싶었지.
그래서 컨디션 핑계라도 댈까 했는데, 라니스터 감독이 오히려 갔다 오라고 떠미는 바람에 그럴 수도 없었다.
어차피 스위스 전엔 뛰지 않을건데 무슨 상관이냐며.
뭐, 어쨌든 경치는 참 좋다.
여기까지 오는 게 귀찮을 뿐이지, 일단 자리를 잡고 앉아 한량처럼 시간을 보내니 몸과 마음이 편안해졌다.
정답게 이야기를 나누는 엄마와 아빠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재밌고.
“방금, 그 말 나한테 한 거야?”
“무슨 말?”
“핸드폰만 보지 말라는 거.”
“요한이한테 한 말인데? 왜? 찔려?”
“나 일하는 거거든? 요한이 인스타 관리! 이런 데 와서까지 일하고 있는데 도와주겠다고는 못할망정.”
“여기 카페 찾고, 운전해서 온 건 나야. 이거 왜 이래.”
···아니, 분명 방금 전까지만 해도 정말 정다우셨다.
뭐, 아무튼.
이탈리아와의 경기를 이긴 덕에, 부모님과 함께 뜻밖의 휴가를 보내게 된 요한이었다.
“로한이는 잘 있으려나. 같이 왔으면 좋았을텐데. 얘, 형한테 연락 좀 해봐봐.”
“형이요? 잘 있겠죠, 뭐.”
형도 휴가 아닌 휴가를 잘 보내고 있는 듯 하다. 어젯밤에 메시지가 왔는데, 친구들을 집에 불러서 축구 보고 게임 하는 사진을 보내줬다.
형은 빨리 다음 시즌이 되길 기다리고 있다.
그래야 게임 업데이트가 되는데, 빨리 이번 시즌의 웨스트 햄으로 플레이를 하고 싶다나.
지금 플레이할 수 있는 웨스트 햄은 지난 시즌의 웨스트 햄인데, 능력치가 너무 구리단다.
아무튼 뭐, 형은 여기 오는 것보다 훨씬 행복해 보였다.
쩝. 요한은 오히려 형이 부럽다.
“아무튼, 우리 막내 덕분에 이렇게 좋은 시간 보내네.”
“우리가 아들 하나는 잘 낳았어.”
“하나가 아니라 둘이지.”
“당신, 자꾸 꼬투리 잡을래? 관용구 몰라?”
“그게 관용구야?”
어쨌든, 좋다.
이렇게 여유롭게 휴가처럼 보내게 된 이번 A매치 주간은, 남은 시즌에 꽤나 도움이 될 것 같았다.
런던으로 돌아가면, 다시 리그에 집중해야겠지.
이제 진짜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ㆍㆍㆍ
-잉글랜드, 2대1로 스위스 꺾고 5승 1패로 토너먼트 진출··· 4강 토너먼트 상대는 포르투갈
-‘황금 세대’ 잉글랜드, 네이션스 리그 우승과 유로 2028 우승 노린다
-유로 2028, 그리고 2030 월드컵까지 노린다··· 잉글랜드 뉴 제너레이션, 그 중심은 요한 반!
-조 2위 이탈리아, 유로 직행은 좌절됐지만 희망 봤다··· 스페인 전 2대1 승리, 다니엘레 카펠로 MOM
네이션스 리그 조별 예선 마지막 일정.
잉글랜드는 주전 선수들이 대거 빠졌음에도 스위스를 꺾으며 유종의 미를 거두었다.
물론 주전이 빠졌대도 워낙 스쿼드 풀이 좋은 잉글랜드라 큰 영향은 없었다.
황금 세대를 부르짖는 언론들의 설레발이 설레발로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때문에, 팬들은 올 시즌이 끝난 뒤 있을 유로 본선에서의 좋은 결과를 기대했는데.
그렇게 기분이 좋은 잉글랜드 팬들 중에서도, 가장 기분이 좋은 건 웨스트 햄 팬들일 것이었다.
그들에게 이번 A매치 주간은 최상의 시나리오로 흘러갔다.
요한과 카펠로, 그 둘이 멋진 활약을 보여주며 웨스트 햄의 위상을 한층 높여 주었고.
요한이 스위스 전에 나서지 않으며 한 주를 푹 쉬었으니까.
웨스트 햄 팬들은 하루 빨리 리그가 재개되기만을 기다렸다.
푹 쉬고 돌아온 요한을 얼른 보고 싶었으니.
물론 리그 재개를 기다린 건 팬들 뿐만이 아니었다.
스페인 전에서 MOM을 받으며 분풀이를 하긴 했지만, 잉글랜드 전에서 답답해 죽을 뻔 했던 카펠로 역시도 그랬다.
카펠로는 잉글랜드 전 이후 쉬는 날도 없이 훈련에 매진하며 명예 회복을 노렸고, 빨리 리그가 재개되길 기다렸다.
다만, 딱 한 팀의 팬들만이 리그 재개일이 오지 않길 바라고 있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팬들이었다.
왜냐면, 리그 재개일인 2월 15일.
웨스트 햄의 상대가 맨유였기 때문이었다.
ㆍㆍㆍ
이번 시즌의 맨유는 여러모로 운수가 사나운 느낌이었다.
90분 이후 내준 실점으로 잃은 승점만 10점 가까이 된다든가, 거액을 주고 영입해 온 선수가 1달 만에 부상으로 눕는다든가.
이상하게 이번 시즌, 뭔가 안 풀리는 느낌.
이번에도 그랬다.
하필 웨스트 햄과의 경기를 앞두고, 비보 하나가 울렸다.
맨유의 주전 센터백, 주드 해리슨이 부상으로 경기에 나서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는 소식이었다.
기사에 따르면, 해리슨은 이탈리아 전과 스위스 전을 모두 뛰고 돌아온 뒤, 햄스트링 쪽 통증을 호소해 훈련을 하지 못했다고 한다.
비록 심한 수준은 아니라, 일단 벤치에 앉긴 할 터이나 선발로 나서진 못할 것이라고.
이 소식에 맨유의 감독 제임스 히들스톤이 크게 격노한 건 당연한 일이었다.
히들스톤은 얼마나 격분했는지, 라니스터 감독을 공개적으로 비판하기까지 했다.
다른 팀들의 주력 선수들은 스위스 전에 휴식을 부여 했으면서, 해리슨만 경기를 뛰게 했다며 말이다.
공평한 처사가 아니라는 이야기였다.
특히나, 히들스톤 감독은 요한을 콕 찝어 거론하기도 했다.
요한은 끔찍이 관리해 주면서, 왜 맨유 선수들만 관리를 해주지 않느냐면서.
그 탓에 부상자가 나온 거 아니냐며 말이다.
물론 히들스톤이 억울할만 했다는 건 사실이었다.
그러나, 민심은 그의 편을 들어주지 않았다.
어차피 두 경기 모두를 뛴 건 해리슨 뿐만이 아니었고, 16살 밖에 안된 요한을 관리해 주는거야 당연한 일이었으니까.
심지어 맨유 팬들조차 한숨을 내쉬었다.
팀이 6위에서 더 올라가지 못하고 있는 상황인지라, 히들스톤에 대한 신뢰는 이미 땅에 떨어져 있는 상태.
게다가 주드 해리슨 역시 몸값도 PL 수비수 중 탑인 선수가 허구헌 날 부상이어서 비판을 피해가지 못했다.
그런데 재밌는 건, 그 당사자인 주드 해리슨조차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괜히 그런 말을 하셔 가지고···’
런던 스타디움.
맨유 쪽 벤치에 앉아 경기가 시작되길 기다리고 있는 해리슨은, 원정석 쪽 팬들이 성난 목소리를 내는 것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가만히 있어도 욕 먹을 판인데, 감독님이 괜히 어그로를 끌어서 안 먹어도 될 욕까지 먹게 생겼다.
사실, 구단엔 꽤 통증이 심해 경기에 나서지 못할 것 같다고 이야기를 하긴 했지만.
솔직히 말하면 통증은 그리 심하지 않았다.
경기에 충분히 뛸 수 있을 정도.
하지만, 해리슨은 두려웠다.
이번 이탈리아 원정에서 요한과 한 팀으로 뛰며, 생각이 복잡했던 해리슨이었다.
하필 리그 재개 첫 경기 상대가 웨스트 햄.
저 괴물을 상대해야 한다는 게 너무 무서웠으니까.
뿐만 아니라 직접 상대해 본 이탈리아의 카펠로도 보통 녀석이 아니었다.
이미 홈에서 웨스트 햄에게 1대5로 완패를 당한 기억이 있는데, 그들의 홈에선 어떠할까.
심지어 요한은 푹 쉬다가 나오기까지 한다.
안봐도 비디오였다.
이탈리아의 그 벽 같은 수비수 놈들도 개같이 털렸는데, 자신이라고 다를까.
때문에 소집 해제 날, 해리슨은 요한에게 장난스럽지만 진심을 담아 말했었다.
오늘 경기, 좀 살살 해달라고.
그러나 그때, 요한은 웃으며 대답했었다.
“다른 건 다 돼도, 맨유는 안돼요.”
그 대답을 들은 해리슨은 경미하게 느껴지는 햄스트링의 통증이 반가울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시작된 경기를 벤치에서 쥐 죽은 듯이 지켜보며 생각했다.
고맙다고.
스위스 전까지 뛰게 해준 라니스터 감독과, 통증이 느껴지는 허벅지에게 고맙다고 말이다.
<맨유의 수비진! 정신을 못 차립니다!>
<전혀 중심이 안잡혀 있는 모습입니다! 해리슨의 공백이 느껴지는데요!>
<아아, 지금도 패스가 빠집니다!>
경기는 시작부터 웨스트 햄이 크게 압도하는 모양새였다.
어딘가 상당히 의욕적으로 보이는 카펠로와, 푹 쉬고 와서 컨디션이 좋아 보이는 요한.
그 둘만으로도 맨유는 상당히 벅차 보였다.
그리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맨유의 팬들도 그런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해리슨이 부상으로 빠진 게, 차라리 잘된 일인지도 모르겠다고.
핑계라도 생긴 거니까 말이다.
해리슨이 있었다면 몰랐을텐데, 해리슨이 빠져서 졌다는 핑계.
“그니까 다들 해리슨의 햄스트링한테 고마워 하자고.”
“젠장! 아파줘서 고맙다, 햄스트링아!”
“넌 참 적절할 때 잘 다치는구나! 고맙다! 아주 고마워!”
팀이 크게 밀리고 있는데, 낄낄 웃으며 자조적인 농담을 하는 맨유의 팬들은 어딘가 정신이 나간 듯한 모습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