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zy genius striker RAW novel - Chapter (89)
나태한 천재 스트라이커-89화(89/202)
< 088화 – 2파전 양상 >
절호의 기회.
혹은 마지막 기회.
리버풀에게 있어 이번 31라운드 경기는 그렇게 표현될 수 있을 듯 했다.
보통 직접 경쟁 관계 있는 팀과의 맞대결을 승점 6점이 걸린 경기라 표현한다.
내가 얻는 승점 3점 뿐만 아니라, 상대팀이 얻지 못한 3점까지 포함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번 경기가 딱 그랬다.
심지어 이기는 팀이 2위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양 팀의 승점 차가 고작 2점 뿐이니까.
따라서, 오늘 경기는 무승부도 만족스럽지 못할, 반드시 이겨야 하는 경기가 될 것이었다.
게다가, 리버풀에겐 오늘 경기가 중요한 이유가 하나 더 있기도 했다.
“지난번, 안필드에서 2대3으로 패배하셨습니다. 그때, 패배의 원인이 뭐였다고 생각 하시나요? 그리고, 이번 경기에선 그 원인이 개선될 거라고 생각 하시나요?”
경기가 시작되기 전.
프레스 센터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기자의 질문을 받은 리버풀의 알랭 누네스 감독은 헛웃음을 터뜨렸다.
그때의 기억은 솔직히 아직까지도 치유가 되지 않고 있는, 아픈 기억이었다.
벌써 리버풀의 지휘봉을 잡은 지 4년이 되어가는 누네스 감독이었다.
그 4년 동안 팀을 착실하게 만들어, 팬들의 신뢰도 무한히 얻고 있던 상태였고.
허나, 안필드에서의 그 패배 한 번 때문에 경질설이 돌기까지 했었다.
물론 감정적인 반응들이었고, 얼마 가지 않아 식어버리긴 했다만.
단 한 번의 패배로 경질설이 돌 정도였으니, 그 패배의 충격이 얼마나 컸는지는 상상할 수 있을 터.
“패배의 원인이야, 굳이 제 입으로 이야기 하지 않아도 다들 알고 계시겠습니다만···”
충격이 컸던 건 누네스 감독 역시 마찬가지였고, 때문에 그 경기를 수십 번이나 반복해서 돌려 봤던 그였다.
그러나, 아무리 돌려보고 또 돌려 봐도.
나오는 결론은 매번 하나 뿐.
요한을 막을 선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축구에서 감독의 역할은 매우 크다.
한 팀에 11명이라는, 많은 선수가 뛰는 축구.
선수가 많다보니, 오히려 그 많은 선수들을 지휘하는 한 명의 지휘자가 큰 영향력을 가진다.
그러나, 결국은 감독의 역할에도 한계가 있다.
어디까지나 직접 공을 차고, 경기장을 뛰는 건 선수들이니까.
모 팀이 매년 감독을 갈아 치워도 성적이 그대로인 건, 그래도 선수의 역량이 더 중요할 수밖에 없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쉬울 거라곤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지금의 우리에겐 그때 없었던 무기가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결국 준비해 온 방책 역시도 다른 전술이 아닌, 선수였다.
지난 겨울 이적 시장 때.
그때의 주인공이 된 건 웨스트 햄이었지만, 사실 가장 많은 투자를 한 건 리버풀이었다.
무려, 1,200억.
1천억이 넘는 이적료를 주고 대형 유망주 하나를 데려 왔다.
이름은 데릭 데 클라잉.
포지션은 센터백.
국적은 네덜란드.
원 소속팀은 아약스.
딱 여기까지만 보더라도, 이미 뭔가 믿음이 가지 않는가.
아약스 산 유망주는 믿고 쓴다는 말이 있을 정도니까 말이다.
심지어 데 클라잉은, 아약스가 지난 시즌 챔피언스 리그 8강까지 진출하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 핵심 선수였으니.
수 많은 팀들의 구애를 받고 있는 가운데 리버풀이 쟁탈에 성공한 선수였다.
물론 그래도 오버 페이 논란이 있었던 건 사실이었다.
사실 1천억이 그렇게 놀랍지 않은 시대가 된 것은 사실이나.
어쨌든 엄청난 금액인 것도 맞으니.
이 정도면 전성기에 접어든 선수를 데려오기도 충분한 금액인데, 아직 많은 검증이 되지 않은 유망주를 데려 왔으니 많은 이들이 고개를 갸웃인 것은 당연했다.
“저는 그가 분명 보여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데 클라잉은 빠르게 리그에 적응했다.
아니, 사실 적응이란 단어도 적절하지 않아 보였다.
데뷔전을 치른 그 주, 거의 모든 매체에서 금주의 팀에 뽑혔던 데 클라잉이었으니까.
그리고, 그의 활약은 꾸준하게 이어져 오고 있었다.
마치, 1,200억이라는 금액이 미래에 투자된 것이 아니라, 현재에 투자된 것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아마 여러모로 이번 경기가 좋은 기회가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번 시즌이든, 다음 시즌이든. 우리 팀에게든, 데 클라잉에게든 중요한 경기가 될 겁니다.”
데 클라잉은 대형 수비수가 될 준비가 되어 있어 보였다.
과거 리버풀의 부흥기를 이끌었던 네덜란드 선배, 버질 반 다이크처럼.
다만, 아직은 완벽히 증명한 것이 아니었다.
리버풀이 겨울에 그를 데려온 건, 오로지 오늘을 위해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즉, 데 클라잉은 이번 경기로 증명해내야 했다. 리버풀이 자신을 1,200억에 데려온 그 이유를.
그리고, 데 클라잉은 자신이 있었다.
그 이적료, 일시불로 긁을 자신이.
*
<작년 12월로부터 불과 2달 반 정도가 지났습니다. 하지만, 양 팀의 선발 명단엔 꽤 변화가 보이는데요.>
<겨울 이적 시장을 알차게 보낸 두 팀입니다. 시즌 중반에 데려온 선수들이 주전 자리를 꿰찼죠. 웨스트 햄은 다니엘레 카펠로가, 리버풀엔 데릭 데 클라잉이 그렇습니다.>
<알랭 누네스 감독은 데 클라잉이 오늘 경기의 포인트라고 밝혔는데요. 과연 이 대형 유망주가 웨스트 햄을 틀어 막을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이적료의 가치를 증명해야겠죠. 오늘 경기를 위해 이 선수를 데려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까요.>
<결국 오늘의 경기 포인트는 두 개겠네요. 오늘 경기가 끝났을 때 누가 2위일 것이냐. 그리고, 데 클라잉이 이적료의 가치를 증명할 수 있을 것이냐.>
휘슬이 울리기 전.
중계 카메라는 계속해서 데 클라잉을 원샷으로 잡아주고 있었다.
가볍게 몸을 털며 경기가 시작되길 기다리는 데 클라잉의 모습은, 어딘가 자신이 넘쳐 보인다.
물론 요한 반이라는 스트라이커.
명성은 익히 들었다. 그의 플레이를 몇 번이나 비디오로 돌려봤고.
대단한 재능이란 건 데 클라잉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할 만해.’
할 만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미 챔피언스 리그를 경험해 본 자신이다.
그것도 토너먼트까지.
그때 상대해 본 팀들이 조별 예선 땐 세비야, 토너먼트에선 파리 생제르맹과 레알 마드리드다.
그 세 팀 모두 훌륭한 공격수들을 보유한 팀들이었다.
그리고, 그 모두를 데 클라잉은 훌륭하게 막아냈었다.
사람들은 말하고 있었다.
과연 데 클라잉이 요한을 막아낼 수 있을까, 라고.
마치 자신이 도전자의 입장인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실은 그 반대라고 생각하는 데 클라잉이었다.
경험이 많은 쪽은 자신이다.
다만, 한 가지 걸리는 점이 있다면.
그건 훈련 때 카르발류에게 들었던 말일 것이다.
“음··· 중요한 경기인만큼, 최선을 다하면 좋은 결과가 있을지도.”
리버풀의 주포, 카르발류.
데 클라잉은 리버풀에 합류한 뒤 자신의 기량이 만개함을 느끼고 있었다.
그건, 프리미어 리그의 경기장에서 꾸준히 뛰었기 때문이 아니었다.
경기장이 아니라, 리버풀의 훈련장.
카르발류와 매일 함께 훈련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처음 카르발류와 1대1을 했을 때, 데 클라잉은 속절 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그렇게 털려 본 건 유스 때 이후로 처음.
과연, PL 최상위권 포워드는 다르구나라는 걸 그때 처음 느껴본 데 클라잉이었다.
그러나, 점점 함께 훈련한 시간이 길어지면서.
둘의 1대1에서 데 클라잉이 이기는 빈도가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다.
어린 선수의 장점.
데 클라잉은 스펀지처럼 쑥쑥 경험치를 빨아 들였고, 무섭게 성장했다.
나중엔 카르발류가 두 손을 들 정도였다.
처음엔 넘을 수 없는 벽처럼 느껴졌던 그 카르발류가.
“넌 반드시 최고가 될 거야. 데 클라잉.”
항상 칭찬을 마지 않던 카르발류였다.
넌 분명히 세계 최고 레벨이 될 거라면서.
그런데, 그런 카르발류가 이번 경기를 앞두고 살짝 망설인 거다.
그는 언제나처럼 네가 이길 거라며 낙관하지 못했다.
카르발류가 그럴 정도라면, 확실히 이유는 있을 것이다.
뭐, 아니면 그저 너무 교만하지 말라는 뜻으로 한 말일 수도 있고.
“삐이이익-!”
<웨스트 햄과 리버풀의 시즌 31라운드! 경기 시작 됐습니다!>
경기가 시작 되었다.
*
경기는 시작부터 확실히 지난 경기와는 분위기가 달랐다.
안필드는 분명 홈팬들의 열광적인 분위기로 유명한 곳이다.
하지만, 런던 스타디움도 만만한 곳은 아니었다.
애초에 해머스도 열정으론 어디 가서 꿇리지 않는 팬덤이니까.
아니, 솔직히 말하면 꽤 사건 사고도 많이 일으키는 터프한 팬덤이다.
안필드의 원정석에 가서도 제 목소리를 다낼 수 있는 팬들을 많지 않은데, 그 중 하나가 해머스였다.
때문에, 경기장을 가득 메운 홈팬들은 귀가 먹먹할 정도로 큰 함성을 지르며 웨스트 햄 선수들의 사기를 높였다.
<카펠로, 천천히 공을 배급하며 템포를 조절합니다. 급하게 경기를 풀어가지 않는 웨스트 햄.>
<양 팀 모두 신중한 느낌입니다. 무조건 이겨야 하지만, 져서도 안되는 경기기 때문이겠죠. 양 쪽 모두 빠른 역습이 가능한 팀들이다 보니, 쉽게 공격을 시도하기도 힘들 겁니다.>
주도권을 쥐고 시작한 쪽은 웨스트 햄.
리버풀은 의외로 거칠게 나오지 않았다.
안필드에선 강하게 전방 압박을 가하고, 선수들을 정신 없게 만들며 시작부터 몰아쳤던 리버풀인데.
안필드의 분위기를 업고도 제대로 마무리를 하지 못했던 게 패인이었다는 걸 복기하고 나온 듯한 모양새.
그런 리버풀의 태도에서, 웨스트 햄이 얼마나 강한 팀이 되었는지를 실감할 수 있다.
“좋아. 천천히 하자고.”
“나쁠 거 없지. 조용히 흘러가도 좋아. 우린, 1분이면 충분하거든.”
“쥐새끼들, 기죽은 모양인데? 완전 방구석 여포였잖아?”
그런 리버풀의 모습이 흡족한 듯한 해머스.
어찌 되었건, 리버풀의 공격력은 무섭다.
리버풀에게 클린 시트 경기를 한 게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항상 많은 실점을 내줬을 정도니까.
그런 리버풀이 먼저 수비적인 모습으로 나오니, 한 편으론 다행이다 싶은 거다.
또한, 그런 리버풀을 상대로 천천히 공을 점유하며 경기를 풀어가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그래. 급할 것 없다.
일단은 무승부만 거둬도 순위는 유지가 된다.
이 순위를 유지하고, 다른 팀들에게 모두 승리를 거두면 리버풀은 자력으로 순위를 뒤집는 게 불가능.
나쁘지 않은 생각이었다.
하지만.
슈미트 감독과 웨스트 햄 선수들의 생각은 조금 다른 듯 했다.
천천히 출발할 것 같던 모습과 달리, 웨스트 햄이 템포를 끌어 올리기 시작한 건 생각보다 이른 시간부터였다.
<카펠로, 반대편으로 열어 줍니다! 의외로 빠르게 올라가는 웨스트 햄!>
<음, 어쩌면 이게 리버풀이 바라는 것일지도 모르는데요.>
상대 진영으로 공을 투입하는 카펠로.
사실, 위화감이 드는 장면이다.
리버풀이 주도권을 포기하고 뒤에서 기다린다는 게.
원래의 리버풀이라면, 얼마든지 중원 싸움을 걸며 주도권을 쥐고 경기를 풀어갈 수 있을 것이었다.
한데, 그걸 포기했다는 건.
다른 꿍꿍이가 있다는 것일 터.
그게 무엇일지 생각해 보는 건 사실 어렵지 않다.
끌어 들이려는 거다. 자신들의 진영으로.
마치 물 속에서 입을 벌리고 기다리는 악어처럼, 먹잇감을 자신들의 스페이스로 끌어들인 뒤.
집어 삼킬 생각이겠지.
그걸 생각해 본다면, 스스로 상대 진영에 들어가는 건 위험한 일이다.
굳이 들어가 줄 필요가 없다.
자신들의 계획이 통하지 않는다면, 리버풀은 알아서 전술을 바꿀 것이었다.
그때까지 기다리면 될 일이었다.
하지만, 슈미트 감독의 생각은 달랐다.
슈미트 감독은 리버풀을 떨궈낼 생각이었다.
같이 갈 생각이 없었다.
그들의 추격을 받더라도, 조금이나마 한 단계 위에 있다는 사실에 만족할 생각이 없었다.
여기서 녀석들을 떨궈내고, 오로지 맨시티와 경쟁할 생각이다.
슈미트 감독은 리버풀을 상대로, 크게 이길 생각이었다.
<조너선 네이슨, 다시 뒤로. 돌파를 시도하지는 않습니다.>
<빼앗기면 최악이니까요. 쉽게 도전을 할 수는 없을 겁니다.>
위험하다는 건 안다.
공이 상대 진영에서 돌 때가, 우리 진영에서 돌 때보다 더 위험하다.
리버풀의 진영이 바로 악어의 입 속이니까.
하지만,
악어의 목을 찌르기 위해선 어쨌든 입 안으로 들어가야 하는 법.
안전 장치는 있다.
악어의 입 안에서도 안전할 수 있는, 안전 장치.
그건, 요한이다.
리버풀의 센터백, 데 클라잉은 도전적인 수비를 선호하는 스타일이었다.
기다리는 수비보단, 패스가 오면 한발 먼저 나가 끊어낸다거나, 적극적인 태클로 먼저 덤벼드는 스타일.
때문에 수비 범위도 넓고, 영향력도 클 수밖에 없는 스타일이다.
데 클라잉 근처에서 뭔가를 시도하는 것은 위험했다.
다만, 한 가지.
녀석이 요한을 마크하고 있을 때.
그땐 안전하다.
반대인 것이다.
데 클라잉이 요한을 막는 게 아니라, 요한이 데 클라잉을 묶어두는 거다.
이게 무슨 의미인지는, 보면 알 것이었다.
<카펠로, 요한에게 찔러 줍니다!>
<데 클라잉이 바로 붙어 옵니다!>
요한에게 공이 향하자, 기다렸다는 듯 달려 나오는 데 클라잉.
카펠로의 패스는 빨랐고, 정확했기에 데 클라잉이 커트를 시도하진 못했다.
덕분에,
파아앙-!
자리를 잡고 공을 받는데 성공하는 요한.
퍼어억-!
그런 요한의 등 뒤로 데 클라잉이 강하게 부딪혀 들어온다.
마치 요한의 힘이 어느 정도인지 파악하고 싶은 듯.
그러나, 요한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오히려,
타탓-!
빠르게 돌아서 데 클라잉을 마주보는 요한.
그리고,
마법이 펼쳐졌다.
타타타탓-!
데 클라잉 입장에선 눈 깜짝할 새였다.
아니, 사실은 모두에게 그랬다.
경기에 집중하고 있던 관중들조차도 순간 놓칠 만큼, 요한은 빠르게 공을 몰고 박스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 순간 데 클라잉은 느꼈다.
카르발류에게 탈탈 털렸을 때, 그때 느꼈던 감정. 아니, 그보다 훨씬 큰 감정을.
‘다르다.’
어느새 데 클라잉은 다시 요한의 등 뒤를 바라보고 있었다.
물론, 그 등 너머엔 골대가 있었고.
뻐어어어어엉-!
데 클라잉을 제쳐낸 요한은 지체 없이 오른발을 당겼고,
슈우우우우웅-
철썩-!
리버풀의 골망을 흔들었다.
그리고, 그 순간.
데 클라잉은 어안이 벙벙한 표정이 되었다.
뭐가 지나간 거지.
뭐가 이렇게 허무한거지?
이래도 되나 싶을 만큼, 허무하게 뚫려 버렸다.
그 순간 데 클라잉은 깨달았다.
이번 경기를 앞두고, 항상 낙관적이고 자신감을 심어줬던 카르발류의 태도가 바뀐 게 아니었다는 걸.
그는 이번에도 긍정적으로 얘기해줬던 것이다.
최선을 다하면, 좋은 결과가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거.
그게, 카르발류에겐 최대한의 긍정이었던 거다.
요한과 잠깐 마주하고 난 뒤.
데 클라잉은 그제야 그걸 깨닫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