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zy genius striker RAW novel - Chapter (91)
나태한 천재 스트라이커-91화(91/202)
< 090화 – 2파전 양상 >
사실, 모두 긴장할 수 밖에 없는 경기였다.
리버풀 선수들도 그렇고, 웨스트 햄 선수들이야 말할 것도 없다.
처음 해보는 경쟁이다.
우승을 향한 경쟁.
이맘때쯤엔, 10위 권 안에 드냐 마냐 경쟁해보기나 했지.
우승권 경쟁이 가당키나 하나.
유로파권 경쟁에 꼽사리 끼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했던 선수들이었다.
때문에, 분명 순위 자체도 우위에 있고.
경기도 초반부터 주도권을 쥔 채 흘러가고 있긴 해도.
웨스트 햄 선수들은 상당한 긴장 상태에서 경기에 임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가운데 요한 만큼은 카펠로와의 내기나 먼저 생각하고 있었으니.
이걸 담이 크다고 해야할지.
아님 뭐라고 해야할지.
“···쟤가 왜 저랬을까요?”
“음.”
“헛바람이 들었나. 아니, 또 성공할 뻔한 게 웃기네. 카펠로한테 이상한 물이 들었나? 역시 쟤가 문제인거죠?”
레인보우 플릭을 시도한 요한 때문에 웨스트 햄 벤치는 헛웃음을 터뜨렸다.
훈련 때도 안하던 걸, 왜 지금 이 순간에.
이렇게 중요한 순간에, 훈련장에서 몸을 풀 때도 안하는 걸 하고 있느냔 말이다.
마치, 리버풀 선수들이 고작 연습 상대라도 되는 것처럼.
관중들 사이에서도 웃음이 흘러 나왔다.
“이야, 멘탈 공격을 노리는 건가?”
“너넨 나한테 중학생 정도 수준밖에 안된다, 이거지.”
“쟤가 저런 걸 할 줄도 아는구나. 못하는 게 아니라 안하는 거였어.”
“그래! 맘껏 한 번 놀아봐!”
“요한이 하고 싶은 거 다 해!”
그걸 듣는 데 클라잉은 열이 받을 수밖에 없었다.
‘지랄하네. 제대로 하면 막을 수 있다니까. 방금 못 봤나.’
물론 데 클라잉도 코웃음을 쳤다.
첫 실점은 운이 안 좋았을 뿐이었다.
첫 맞대결이면 솔직히 공격수가 유리하잖아.
두 번째엔 막아냈다.
슈팅까지 허용하긴 했어도, 어쨌든 방해를 했다고.
그니까 슈팅이 살짝 떴지.
아마 다음엔 완벽하게 막아낼 수 있을거다.
두 번째만에 슈팅 방해까지 갔으니까.
저 녀석도, 뭔가 후달리는 게 있으니 갑자기 이상한 짓을 한 거 아니겠어?
데 클라잉은 다시 한번 코웃음을 쳤다.
어쨌든, 요한의 기상천외한 행동 덕에 필드 위의 선수들도 약간은 긴장이 누그러지는 듯 했다.
허나,
이번엔 또 요한이 반대다.
다들 긴장이 누그러지니, 이번엔 요한의 눈에 불길이 타올랐다.
“카펠로.”
“?”
“방금은 인간미.”
“인간미···?”
“이제부터는 인간미 없이 갈게요.”
“핑계도 좋구나.”
방금의 레인보우 플릭은, 골로 연결되지 않았으니 실패다.
근데, 상대의 반응을 보니 이거 꽤 괜찮은 스킬이 아닌가 싶다.
이걸 당한 것만으로 무슨 얼굴에 침을 맞은 것처럼 성을 내니, 더 해주고 싶다.
‘제대로 해줄게.’
이로서 데 클라잉은 세 번째가 되었다.
첫 번째가 웨스트 햄 입단 테스트 장에 있던 이름 모를 꼬맹이들.
두 번째가 맨시티의 잭 프라이스.
세 번째가 데 클라잉.
요한이 진심 버튼을 누른 업적을 달성한 이들 말이었다.
*
알랭 누네스 감독이 말했듯 데 클라잉은 프로 선수로서 적합한 멘탈을 가진 선수였다.
언제나 이기길 원하고, 패배에 굴하지 않고 개의치 않는 강철 멘탈.
그게 빠른 성장의 원동력이었고, 어린 나이에 거액의 이적료를 기록하며 리버풀에 입성한 것으로 모자라 주전 자리까지 꿰찬 이유였다.
그래서 첫 골을 허용한 뒤에도, 한 번 더 기회를 주기로 했다.
사실 어차피 주중 챔피언스 리그 경기 때문에 선수들의 체력이 떨어져 있는 상태라, 다른 선택지를 고르기도 힘든 상황이긴 했다만.
어쨌든 녀석의 성장을 위해, 요한과 맞부딪힐 수밖에 없는 구도를 바꿔주지 않았다.
하지만, 누네스 감독은 그 선택을 후회하기 시작했다.
근육은 운동으로 상처를 입히면, 회복하는 과정에서 더욱 성장하게 된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적당한 정도의 상처를 입혔을 때이다.
근육이 파열될 정도로, 아물 수도 없을 정도로 찢어 버리면 당연히 성장은커녕 회복하기도 어렵다.
요한은 데 클라잉을 찢어 버리고 있었다.
<어엇! 또다시 돌파 됐습니다! 슈우웃-! 고오오올-! 요한! 오늘 경기 두 번째 골!>
<녹아 내렸습니다! 데 클라잉을 또 한 번 녹여 냈어요!>
요한의 두 번째 골은 전반 16분에 나왔다.
이번에도 첫 번째 골과 구도가 똑같았다.
데 클라잉과 요한의 1대1.
똑바로 하라길래, 똑바로 해줬다.
카펠로와의 내기는 잠시 제쳐두고, 원래의 스타일대로.
단순한 속도만으로 데 클라잉을 꼼짝도 못하게 만든 뒤, 그대로 골.
“···”
데 클라잉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골이었다.
분명 대비를 하고 있었다.
요한의 스피드에 대해서.
첫 번째 실점을 생각해, 그 속도에 맞춰 한 발 더 빠르게 움직이리라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데,
요한은 두 발을 더 빠르게 움직였다.
한 번도 써본 적 없는 개인기를 섞느라 느려졌던 속도를, 데 클라잉이 진짜 스피드라 착각 했을 뿐.
이게 요한의 ‘진짜’ 스피드였다.
<데 클라잉으론 안될 것 같은데요.>
<다른 곳에 구멍이 생기더라도 협력 수비를 들어가야 합니다. 혼자선 못 막아요.>
그 골로 데 클라잉이 받은 정신적 충격은 상당한 듯 보였다.
이게 진짜 스피드였다면, 아까와 방금은 무엇이었나.
그저 몸풀기였던 건가?
자신을 가지고 놀았다는 거야?
이게 무슨 굴욕인가.
카르발류에게 털렸을 때 느껴졌던 벽과는 차원이 달랐다.
카르발류는, 그래도 그 벽의 꼭대기가 보이는 수준이었다.
그리고 그 벽을 타고 오를 수 있는 요철들이 보였다. 여길 밟고, 저길 잡고 올라가면 되겠다는 코스가 보였단 말이다.
한데, 이건 그 벽의 끝이 보이지도 않을뿐더러, 어떻게 올라가야 할지도 보이지가 않았다.
그저 막막하고, 화가 날 뿐.
완전히 농락을 당했는데, 그걸 되갚아줄 방법이 없다는 게 데 클라잉을 무력하게 만들었다.
괜히 건드렸다.
그냥 가만히 있을걸.
말 그대로 낭패였다.
<전반전이 이렇게 종료 됩니다. 생각보다는 훨씬 리버풀이 무기력했던 경기인데요.>
<아무래도 챔스 경기의 여파가 있어 보이네요. 에너지 레벨이 문제입니다. 확연히 떨어져 있어요.>
<그 탓인지, 요한을 막는 것도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고요.>
<사실, 그건 체력 탓이라고만 볼 순 없을 것 같지만요.>
때문에 전반이 2대0으로 종료 되었을 때.
고개를 푹 숙인 채 라커룸으로 향하는 데 클라잉의 모습은, 이미 멘탈이 많이 망가진 듯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야속하게도.
아직 경기는 45분이 더 남아 있었다.
<이, 이게 뭔가요! 눈이 따라가기도 힘든 스텝 오버로 데 클라잉을 완벽하게 녹여 버린 요한! 그대로 득점을 성공 시킵니다!>
<이 선수, 뭐죠? 공격수에게 필요한 모든 것들을 가진 선수인 건 알았습니다만, 이렇게 화려한 기교를 부리던 선수는 아니었는데요!>
<오늘만큼은 마치 브라질리언 같습니다! 축구를 즐기고 있는 것 같아요!>
<그거 끔찍한 소리네요. 리버풀과 다른 팀들의 팬들에겐 말이죠. 그나마 이 정도인 게, 요한 선수가 축구를 귀찮은 것으로 여기기 때문 아니겠습니까? 근데, 즐긴다구요?>
후반 시작과 동시에 한 골이 더 터졌다.
이번에도 요한이 데 클라잉을 가지고 놀았다.
진심을 다한 한 골로 여유가 생겼으니, 다시 카펠로와의 내기에 집중했다.
이번엔 레인보우 플릭이 아닌 스텝 오버.
그것도 헛다리만 5번 이상을 휘젓는, 정신 사나운 스텝 오버였다.
요한 입장에선 말 그대로 정신 사나운, 이걸 왜 다섯 번이나 휘젓고 있어야 하는지 모르겠는 쓸모 없는 개인기였지만.
어쨌든 카펠로가 내건 조건이 ‘다섯 번 이상’ 이었으니 하는 수 없었다.
그러나, 요한의 생각과는 달리 어쨌든 효과는 엄청난 듯 했다.
고속으로 휘저어지는 헛다리에, 마치 빙글빙글 돌아가는 손가락에 홀려버린 잠자리처럼.
데 클라잉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이리저리 휘둘리다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으니까.
대굴욕.
데 클라잉은 요한에게 완전히 농락당해 버렸고, 알랭 누네스 감독의 고개를 숙여지게 만들었다.
“설마, ‘성장’ 한거냐, 저 녀석?”
“더 스텝업이 가능하다고?”
“지금까지 우리가 봐왔던 요한이가, 프로토 타입이었을 뿐이란 거냐?”
“이봐요들. 저 친구 올 시즌이 첫 풀타임 시즌인 녀석이에요.”
“···그랬었지.”
축제 분위기의 런던 스타디움.
팬들도 혀를 내둘렀다.
오늘, 완전히 다른 선수처럼 보이는 요한이었다.
마치 나 같은 천재가 이 세상에 있었냐는 듯, 기량을 한껏 과시하는 모습.
그 모습이 싫지 않았다.
오히려 반가웠다.
“···”
“씨발. 왜 오늘 경기를 기대 했던거지?”
“때려쳐라. 챔스에나 집중하자.”
“어차피 잘 됐어. 리그 2위가 중요하냐? 빅이어가 중요하지.”
반면 리버풀 팬들은 당연히 침울했다.
안필드에서조차 패배했기에, 쉬운 경기가 될 거라곤 당연히 예상하지 않았었다.
다만, 이렇게 일방적으로 얻어맞을 줄은 몰랐지. 데 클라잉이 저렇게 굴욕적으로 털릴 줄도 몰랐고.
“가자고.”
“개자식들아. 맘껏 비웃어라. 우린 빅이어를 들어올릴 거니까.”
“퍽 유!”
“헤이, 폴리스! 우리 나갈 거니까 길 좀 만들어 줘요!”
경기 시간이 아직 남아 있는데, 일찌감치 자리를 뜨기 시작하는 리버풀 팬들.
사방에서 웨스트 햄 팬들의 비웃음이 날아오니 견디기가 힘들다.
리그 2위, 그리고 맨시티와 우승 트로피를 놓고 경쟁할 수 있는 지위가 걸려 있던 오늘 경기.
때문에 후반기 최고의 빅 매치라고 기대를 모았던 경기는, 생각보다 싱겁게 한 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
후반 24분, 누네스 감독은 데 클라잉을 벤치로 불러 들였다.
그러나, 데 클라잉은 벤치에 앉지 않고 라커룸으로 향했다.
누네스 감독도 굳이 그를 잡진 않았고.
쓰라린 기억이 될 오늘이었다.
과연 회생이 가능할까 싶을 정도로 난도질을 당하긴 했으나, 어쨌든 데 클라잉은 단단한 녀석이니.
잘 회복해 더욱 성장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되길 바라야지, 뭐.
“하아.”
그나저나.
데 클라잉을 찢어발겨 놓은 가해자는, 아무것도 모르고 또 저러고 있네.
<기어코 성공을 시킵니다! 오늘 런던 스타디움은, 요한의 놀이터입니다!>
<이야, 완벽하게 성공했는데요. 저걸 꼭 해보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정말 10대 소년 답네요. 잘했다고 칭찬해주고 싶게끔 웃고 있습니다.>
요한은 기어이 레인보우 플릭까지 성공 시키면서, 4골 째를 리버풀의 골대에 처박았다.
그리곤, 희희낙락 웃었다.
자기 때문에 한 선수의 자존감이 완전히 박살났는데도.
근데, 알게 뭐야.
죄가 있다면 그저 재능을 타고났을 뿐인데.
“카펠로. 약속 지켜야 돼요.”
“응? 무슨 약속?”
“와, 모르는 척 하는 거예요?”
“알겠어. 근데 너무 그렇게 웃진 마라. 짜증나니까.”
요한은 그저, 내기에 이겼으니 앞으로 카펠로가 귀찮게 굴지 않겠구나 하는 생각에 기쁠 뿐이었다.
다만.
‘헤헤. 바보 녀석. 약속은 깨라고 있는 거라고. 덕분에 어시 4개 챙겼네. 어디까지나 이 몸이 네 놈을 철저히 이용 한거다.’
카펠로 역시 웃고 있을 뿐이었다.
*
“오늘, 완전히 다른 선수처럼 보이셨는데요. 그 동안 개인기를 연습하고 계셨던 건가요?”
경기가 4대1, 웨스트 햄의 승리로 끝이 난 뒤,
요한의 MOM 인터뷰.
기자의 질문에 요한은 고개를 저었다.
“아뇨.”
“연습하지 않으셨다고요?”
“네.”
“아, 하긴···”
머리를 긁적이는 기자.
자기가 해놓고도 멍청한 질문을 했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요한에게 연습 한 거냐고 묻다니.
그럴 리가 없잖아.
“근데, 어떻게 그렇게 완벽하게 구사할 수 있었던 거죠?”
“음··· 어려운 건 아니니까요.”
“그럼, 갑자기 그런 기술들을 구사할 생각은 왜 드셨나요? 혹시, 상대에게 악감정이라도···”
“네? 아뇨. 카펠로 선수랑 내기한 게 있어서.”
“내기요? 무슨 내기죠?”
“오늘 쓴 거, 다 성공시키면 귀찮게 안하기로 약속했거든요. 앞으론 안해요. 이것도 되게 귀찮은 일이라.”
기자는 요한의 대답을 들으면서도 어이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오늘 같이 중요한 경기에서, 그런 생각으로 경기에 임했다고?
그러면서 4골을 넣었고? 무려 리버풀을 상대로?
이 기사가 나가면 팬들의 반응이 어떨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요한 반, 내기에서 이기기 위해 리버풀 상대로 처음 써보는 개인기 구사. 그리고 4골.’
기자는 푸우우, 하는 소리와 함께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무튼, 오늘 승리로 우승 경쟁을 맨시티와 웨스트 햄의 2파전 양상으로 굳히셨습니다. 또한, 이 2파전 양상은 FA컵에서도 이어질 것 같은데요. 현재 대진표 상, 맨시티와 웨스트 햄이 모두 상위 라운드로 진출한다면 결승에서 맞붙게 됩니다. 이에 대한 각오가 있다면요?”
“음··· 잘 모르겠는데요. 그 쪽은 케인 형이 자기 선에서 정리해주겠다고 해서.”
오늘 승리로 리버풀과의 승점 차를 5점으로 벌린 웨스트 햄.
7경기만을 남겨둔 상황에서 리버풀은 맨시티와 8점 차까지 벌어졌으니, 사실상 우승 경쟁에선 멀어졌다.
이젠 맨시티와 웨스트 햄.
두 팀의 2파전이 된 셈.
그런데, 리그 뿐만이 아니다.
FA컵에서도 그 2파전이 이어질 가능성이 있었다.
양 팀 모두 16강에 진출해 있었고, 이변이 없다면 두 팀은 결승에서 만나게 된다.
때문에, 맨시티는 몰라도 웨스트 햄은 전의를 불태우고 있었다.
FA컵 결승에 오르는 것만이 맨시티를 만날 수 있는, 올 시즌 유일한 기회니까.
웨스트 햄의 다음 일정은 FA컵 16강 전으로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