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zy genius striker RAW novel - Chapter (95)
나태한 천재 스트라이커-95화(95/202)
< 094화 – 승부 보자 >
<안녕하십니까. 런던,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인사드립니다. 맨체스터 시티와 웨스트 햄 유나이티드, 두 팀의 FA컵 결승전을 중계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벌써부터 웸블리는 뜨겁네요. 오늘, 웸블리는 당연히 매진입니다.>
영국 축구의 성지, 잉글랜드 최대의 경기장 웸블리 스타디움은 양 팀의 팬들로 가득 차 있었다.
9만여 명의 관중들이 내는 숨소리만 해도 웅장한 느낌이 들 정도의 분위기.
결승전이라는 경기가 갖는 의미는 남다를 수밖에 없다.
오늘은 특히 더 그랬다.
이미 리그 순위가 확정된 시점.
그 우승 팀과, 아쉽게 우승을 놓친 팀들 간의 대결.
말 그대로 결승에 맞붙을만한 팀들이 만났다.
오늘 웸블리의 분위기는, 마치 유럽 최고의 팀을 가리는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 같은 정도의 열기였다.
~Blue moon! You saw me standing alone!
~Without a dream in my heart!
~Without a love my own!
~Blue moon!
한쪽에선 맨시티의 대표 응원가 ‘Blue Moon’이 제창되고 있고,
~I’m forever blowing bubbles!
~Pretty bubbles in the air!
~They fly so high! Reach the sky!
~Then like my dreams they fade and die!
맞은 편에선 웨스트 햄의 응원가가 마주 제창되고 있었다.
서로에겐 반드시 이기고 싶어하는 양 팀 팬들의 열기가 뜨겁게 충돌한다.
“음···”
그 환상적인 분위기를 즐기며, 핸드폰을 확인하던 로한은 입술을 깨물었다.
“리샤드 선발로 나왔네··· 컨디션 좋은가봐요.”
“선발이야? 으으음. 예상은 했다만. 안 좋은 소식인데.”
방금 막 나온 양 팀의 선발 명단.
맨시티의 선발 명단엔, 사미르 리샤드의 이름이 올라와 있었다.
컨디션이 최고조인 모양이다.
“왜? 누구?”
“있어. 리샤드라고, 상대팀 에이스.”
“요한이보다 잘해?”
“글쎄··· 보면 알겠지.”
“보면 알 거라고? 그 정도야?”
반석호의 반응에 눈을 동그랗게 뜨는 김라희.
김라희에게, 세상에서 가장 축구를 잘 하는 사람은 둘째 아들 요한이다.
근데 남편이 저렇게 말할 정도면, 어느 정도길래 그래?
“올 시즌 리그 득점 2위예요. 공격 포인트도 2위고.”
“1위가 요한이잖아?”
“네. 압도적으로 1위죠. 근데, 리샤드는 풀 시즌을 소화하지 않았다는 거? 경기 수가 적어요. 그걸 감안하면, 솔직히 대단한 기록이긴 해요.”
사미르 리샤드는 올 시즌 총 29골 9어시스트를 기록했다.
리그에서 19골과 5도움, 챔피언스 리그에서 6골 3도움, 그리고 FA컵에서 4골 1도움을 기록했다.
물론 요한에 비한다면 꽤 차이가 많이 나는 기록이었다.
요한은 리그에서만 60골을 기록했다.
60골.
말이 안되는 기록이다.
이는 리오넬 메시가 기록했던 2011/12시즌 50골을 10골이나 넘어서는 대기록.
그러나 요한과 골 기록만으로 비교하기엔 가혹한 면이 있었다.
리샤드의 스탯만 따로 놓고 본다면, 이 역시 엄청난 수준.
무엇보다 부상으로 전반기를 날려 먹고도 그 기록이라는 게 괴물인 것이다.
올 시즌 리샤드가 출장한 경기 수는 25경기 밖에 되지 않았다.
맨시티가 소화한 전체 경기 수가 50경기를 훌쩍 넘으니, 그 절반도 소화하지 못한 셈.
그런데도 요한에 이어 개인 득점 순위 2위를 마크 했으니.
재능은 재능.
아니, 초재능이다.
하지만, 문제는 기록이 아니다.
“기록이 문제가 아니라니? 그게 무슨 소리야?”
“보면 알 거라는 게, 진짜 봐야 알 거든요. 녀석의 영향력은 엄청나요. 녀석이 공을 잡는 것만으로 공기가 바뀌니까.”
“공기가 바뀐다니, 넌 항상 알아듣기 어렵게 설명하더라.”
“하지만 사실인걸요. 지금은 이렇게밖에 설명 못하겠어요. 보면 알 거예요.”
유럽 최고, 아니 전 세계 최고의 재능들이 모인 팀이 맨체스터 시티다.
그리고, 그 맨체스터 시티에서 에이스를 담당하고 있다는 건, 더 설명이 필요 없다.
사미르 리샤드.
그가 오늘 경기 선발 출장을 한다는 건 확실히 웨스트 햄 입장에선 상당히 까다로운 일이었다.
그러나, 재밌게도.
경기가 시작되길 기다리는 로한과 반석호의 표정에선 불안감보단, 오히려 기대감이 더 크게 읽히고 있었다.
리샤드.
물론 대단한 재능이다.
하지만, 이쪽엔 요한이가 있다.
그것도, 상당히 열 받은 요한이가.
“으으, 빨리 시작했으면.”
“나도 못 기다리겠어. 어제, 요한이 표정 보니까 어우. 살벌하더라고.”
“저 같아도 열 받죠. 한 끗 차로 재수하게 생겼는데.”
“아무리 맨시티라도 안될 거야. 그런 요한이 한테는.”
“뭐야. 방금까진 라샤드인지 리샤드인지, 걔가 그렇게 대단하다더니.”
김라희의 말에 로한과 반석호가 미소를 지었다.
“맞아요. 걔 엄청 대단한 선수예요. 근데, 요한이는 요한이잖아요.”
토너먼트는 리그보다 변수가 훨씬 많다.
특히나, 결승전은 단판.
어떤 결과가 일어난다고 해도 이상할 것이 없다.
이런 경기에선, 한 명의 에이스가 게임의 판도를 바꾸는 경우가 많다.
그날, 누가 제일 미쳤느냐가 우승팀을 가릴 수 있다는 이야기.
그런 면에서, 오늘은 양 팀 에이스 간의 무력 대결이 될 것으로 보였다.
사미르 리샤드.
그리고 요한.
누가 팀을 우승으로 이끌 것인가.
“아, 나온다.”
“요한아!”
“막내야! 다치지 말고, 이겨어엇!”
선수 입장과 함께 경기가 시작 되었다.
*
경기를 앞두고 고민이 많았던 슈미트 감독이긴 하지만, 어쨌든 현재의 웨스트 햄이 맨시티를 상대로 할 수 있는 건 많지 않았다.
라인을 올려 그들과 맞불을 놓는다는 건, 솔직히 어려운 일이고.
결국 지난 8라운드 때 그랬던 것처럼 수비를 견고히 갖추며 역습을 노리는 게 베스트로 보였다.
<천천히 공을 돌리는 맨시티. 웨스트 햄은 압박을 가져가기보단, 마찬가지로 천천히 위치를 지키고 있는 모습입니다.>
<함부로 압박을 하진 못할 겁니다. 맨시티를 상대로요. 괜히 그랬다간, 체력만 고갈되는 수가 있거든요.>
맨시티도 시작부터 맹공을 펼치진 않는다.
다만,
그 느낌이 함부로 들어가지 못하는 느낌이라기보단, 굉장히 여유가 있다는 느낌이다.
가볍게, 가볍게.
선수들 모두가 공을 한 번씩 만져보기 위함이었다는 듯 패스가 한 바퀴 돈 뒤.
마지막으로 공이 향한 건 사미르 리샤드에게였다.
<오늘, 웨스트 햄이 리샤드를 어떻게 막을지가 궁금한데요. 과연, 어떤 답을 가지고 나왔을까요. 슈미트 감독.>
<포메이션을 보면, 어쨌든 수비 숫자를 많이 가져가며 리샤드의 활동 반경을 최대한 좁히려는 것으로 보입니다. 사실 그것 외엔 딱히 방법이 없죠.>
<전담 마크를 붙이는 방법도 있지 않습니까?>
<음, 지금 같은 장면을 보면 그게 좋은 방법이 아니란 걸 알 수 있으실 겁니다.>
마치 인사를 하듯, 가볍게 드리블을 시작한 리샤드에게 웨스트 햄의 미드필더들이 슥슥 벗겨진다.
물론 리샤드가 종적인 움직임, 즉 골대 방향을 향한 드리블을 시도한 게 아니라, 횡적으로 움직이며 경기장을 훑는 느낌이었기에, 어느 정도는 놔둔다는 느낌이 있었지만.
확실히 리샤드의 드리블은 경쾌했다.
<한 명의 전담 마크론 소용이 없겠군요.>
<그것도 그렇고, 포메이션 상으로 리샤드는 왼쪽 윙 포워드지만 실제로 왼쪽에 머무는 시간은 적습니다. 이번 시즌 리샤드의 히트맵을 보면, 하프라인을 넘긴 위치 어디에든 그의 발자국이 찍혀 있죠. 그러니, 전담 마크를 붙여봐야 소용이 없는 거지요.>
리샤드에게 전담 마크를 붙이는 멍청한 짓을 하는 팀은 없다.
전담 마크가 필요 없기 때문이 아니라, 통하지 않기 때문이다.
웨스트 햄도 마찬가지.
개인 역량으로 리샤드를 봉쇄할 수 있는 선수는 없었다.
조너선 네이슨이나 제이콥 버클리를 붙인다면 귀찮게 할 순 있겠지만, 그 둘을 전담 마크로 소모하기엔 잃는 게 더 많을 수밖에 없다.
어쨌든 리샤드가 후방 자원인 것도 아니니까.
파아앙-
파아앙-!
동료들과 원투를 주고 받으며 넓게 움직이는 리샤드는 어느새 오른쪽 사이드 라인까지 도달해 있었다.
그리고,
오늘 웨스트 햄의 수비 전략이 어떤 것인지 확인 끝났다는 듯.
리샤드는 본격적으로 파고들기 시작했다.
타타탓-!
횡에서 종으로.
순간적으로 기어를 올리는 리샤드.
리샤드의 드리블에 네이슨이 쉽게 벗겨졌다.
웬만한 풀백 급의 수비력을 갖춘 네이슨이지만, 리샤드 앞에선 거의 허수아비.
이는 페트로비치 역시 마찬가지였다.
<순식간에 둘을 제쳐내고, 깊게 파고 듭니다! 어느새 위험 지역!>
둘 정도 제쳐내는 건, 리샤드에게 식은 죽 먹기로 보였다.
솔직히 말해, 웨스트 햄의 수비력이 현재 리그 순위에 걸맞는다고 보긴 어려웠다.
리버풀이나 첼시, 심지어 아스날보다도 실점이 많은 웨스트 햄이다.
그런데 그들조차 리샤드를 완벽히 막아내지 못했으니, 웨스트 햄의 수비가 리샤드 하나에 흔들리기 시작한 건 이상하지 않은 일.
<수비를 끌고 다닙니다! 좁은 공간에서! 아, 중앙으로 연결! 공간이 많습니다!>
<잭 프라이스, 그대로 슈웃-!>
<아아, 골대를 살짝 비껴갑니다! 날카로운 슈팅! 오늘 경기 첫 번째 슈팅이 프라이스에게서 나왔습니다.>
<첫 공격부터 위협적이었는데요. 리샤드의 볼 운반이 너무 쉽게 이루어졌습니다.>
<웨스트 햄 선수들이 끝까지 붙어주긴 했습니다만, 결국엔 찬스를 만들어내는 패스를 방해하지 못했습니다.>
슈팅이 벗어나긴 했으나, 맨시티 팬들은 박수를 쳤고 웨스트 햄 팬들은 입술을 깨물었다.
역시, 리샤드였다.
가벼운 드리블만으로 수비 모두의 시선을 집중시킨 뒤, 프리한 동료에게 슈팅 찬스를 만들어주는 패스.
너무 쉬워 보였다.
언제든 득점을 만들어낼 수 있겠다 싶을 정도로.
때문에, 맨시티 관중석 쪽의 분위기는 한껏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저 녀석들, 경기 준비 안 해왔냐?”
“리그도 빼앗긴 주제에, 여기에 목숨을 걸었어야지! 준비 시간도 많았는데 뭘 한거야?”
“야, 야. 준비한다고 막을 수 있겠냐?”
“그건 그래. 하하! 어차피 못 막는데, 나 같아도 자포자기 하겠다!”
“그래도 성의는 좀 보이라고! 경기가 재미없어지잖아!”
“결승에 처음 와봐서 잘 모르는 모양이야! 이해해줄게!”
웃음이 터져 나오는 맨시티 관중석.
준비 부족이라고밖에 느껴지지 않는 웨스트 햄의 수비였다.
리샤드를 막기 위해 특단의 대책을 가져 왔어도 어려울 판에, 저렇게 밍숭맹숭한 대처라니.
경험 부족이다 싶었다.
선수들도 그렇고, 감독부터가 중위권 팀만 맡아 왔던 사람이니까.
결승전 경험이 없다시피 한 거다.
그러니,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감이 없었겠지.
“트레블! 우리는 트레블로 간다!”
“3개의 트로피 중, 오늘이 제일 쉽게 트로피를 들어 올리는 날이 되겠구만!”
웨스트 햄이 골킥을 준비하는 동안, 제멋대로 떠들어대는 맨시티 팬들.
그런데,
뻐어어어어엉-!
웨스트 햄의 골킥으로 경기가 재개되는 순간.
그 웃음소리와 외침들이 조금씩 잦아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슈우우우우웅-
그 골킥이 연결되었을 때.
맨시티 팬들은 하나둘씩 긴장하는 얼굴들로 바뀌어 갔다.
요한이 공을 잡았기 때문이었다.
파아앙-!
깊게 날아온 휴리첼의 골킥.
그걸 중앙에서 요한이 머리로 받아 컨트롤 했다.
곧바로 좁혀오는 맨시티의 포위망.
웨스트 햄과 달리, 맨시티는 압박의 강도를 높일 생각인 듯 하다.
그들 입장에선 수비 시간을 길게 가져갈 생각이 없으니까.
맨시티는 어떤 팀을 만나든, 그런 식으로 경기를 풀어 왔었다.
그런데,
그거야말로 준비 소홀이 아니었을까?
맨시티도 알고 있었을 텐데.
오늘 요한은 동기 부여가 강하게 되어 있는 상태일 거라는 거.
인생의 목표가 자신들 때문에 좌절되었다.
그렇다면, 평소와는 다른 대책을 준비해와야 했던 것 아닐까?
타타타탓-!
요한은 리샤드처럼 탐색전을 펼치지 않았다.
공을 잡는 순간, 그래도 돌아서 골대를 향해 직진하기 시작했다.
분노가 보이는 듯한 돌진.
그러나, 그 와중에도 유려함이 보였다.
상대 미드필더 셋 사이에서 빠져나오는 그 턴 동작은, 리샤드의 경쾌한 드리블보다도 산뜻했다.
‘개자식들···’
눈앞을 가로막는 이놈들.
이 녀석들이 은퇴를 가로 막았다.
이 녀석들만 없었으면, 지금쯤 집에서 편히 쉬고 있었을 텐데.
그럼 대가를 치러야지.
니들이 여기로 불렀으니, 불러낸 대가를 치르란 말이다.
타타탓-!
빠르게 치고 달리던 요한이 페널티 박스를 앞두고 잔스텝을 밟기 시작했다.
장전이었다.
물론 오래 걸리진 않았다.
요한은 그대로 오른발 발등에 공을 얹었다.
뻐어어어어어어엉-!
분노가 담긴 슈팅.
공이 터지는 것 아닌가 걱정이 될 정도의 굉음이 웸블리에 울려 퍼졌다.
9만여 명이 운집한 그 시끄러운 웸블리인데도, 요한의 슈팅 소리는 모두의 귀에 선명히 들릴 정도였다.
슈우우우우우우웅-
맨시티의 키퍼, 에두아르도는 날아드는 슈팅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다행이다, 라고.
슈팅은 사각지대로 향하고 있었다.
골키퍼가 반응할 수 없는 사각지대 말이다.
근데 그게 뭐가 다행이냐고?
저게 정면으로 날아왔으면, 피했을 것 같거든.
그랬다면 있는 욕 없는 욕 다 처먹었겠지.
근데, 이건 반응을 못해도 무죄다.
그게 차라리 다행이었다.
철써어억-!
공식, 그리고 비공식을 포함해.
올 시즌 가장 빠른 슈팅이, 요한의 발에서 쏘아진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