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Loser RAW novel - Chapter 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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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악마의 도주는 보기엔 꼴사나우나, 지금의 내게 있어 가장 치명적인 대응이었다. 놈을 놓쳐 마계로 들여보낸다면 지금 살짝 잡은 승기도 놓치게 되는 셈이니까!
“빠, 빨라!!”
게다가 악마사냥꾼의 스킬 덕에 내 공격이 잘 통한다지만, 악마의 능력을 제한할 수 있는 건 또 아니었다. 전력으로 도망치는 악마를 붙잡을 방법이 내겐 없다.
“에이이, 발사!!”
나는 천자총통의 포문을 악마의 등짝으로 돌렸다. 아무리 그래도 포탄보다 빠르랴!
쿠콰콰쾅!
악마의 등짝에 빛의 폭발이 여러 번 일었고, 그 타격은 그냥 보기에도 굉장히 효과적이었으나 악마의 발을 붙잡을 순 없었다.
“음? 발을 붙잡아?”
그 순간, 나는 잊고 있던 천자총통의 또 다른 추가 옵션에 대해 떠올렸다.
왜 이걸 이제까지 잊고 있었지?
“[울돌목]!!”
내 외침과 더불어 열두 문의 천자총통이 거친 소용돌이를 토해내었다. 그래, [울돌목]! 적을 밀쳐내고 이동불가 상태로 만든 후 위압 상태 이상을 거는, [필사즉생] 상태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추가 스킬!
하지만 과연 이 스킬이 악마 상대로 통할까? 하는 내 걱정을 무위로 돌리기라도 하듯, 소용돌이 형태의 마력은 악마의 거대한 발목을 제대로 묶어 그 자리에 쓰러뜨렸다.
“됐다!!”
[에이스의 곡예비행]과 갑옷의 추진력을 빌어, 나는 악마의 등 뒤를 향해 곧장 날아 [진리의 검]을 꽂았다. 내 신성을 꿀렁꿀렁 집어삼키며, [진리의 검]에서 타오르는 불길이 이 거대한 악마를 재로 만들어 버릴 듯 거세졌다.그때였다. 내 왼손에 들린 [바즈라다라의 바즈라]가 마치 자신도 악마의 등을 내리치고 싶다는 듯, 손에서 꿈틀대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나는 직감적으로 행동했다. 바즈라를 곧장 악마의 등에 꽂았다.
– [바즈라다라의 바즈라] 숨겨진 옵션 개방!
[항마의 칼날] – 활성화 시 [마]를 대상으로 300%의 추가 피해를 입히는 뇌전의 칼날을 뽑아낸다. 이 칼날로 [마]를 소멸시킬 때마다 근력, 강건, 신성이 영구적으로 1씩 상승한다.
그러자 숨겨진 옵션이 드러나며, 바즈라에서 마치 광선검과도 같은 뇌전의 칼날이 튀어나와 악마의 등을 깊숙하게 파고들었다.
“우아아아아!!”
신성한 뇌전이 고통스러웠는지, 악마는 한층 더 격렬히 몸부림을 치며 날 등에서 떼어내려고 했다. 묶인 것은 발일 뿐, 전신을 다 묶은 건 아니었기에 그 몸부림은 꽤 효율적이었다.
나는 [진리의 검]과 [바즈라다라의 바즈라]를 악마의 등에 꽂은 채 갑옷의 추진력과 [에이스의 곡예비행]을 활용해 필사적으로 매달렸다.
파앙!
그 와중에 악마는 손을 휘둘러 모기 잡듯 날 때려잡으려고 했기에, 때때로 떨어져 회피행동에 전력을 다해야 할 때도 있었다.
“발사!”
사이사이 천자총통 포격을 섞어 넣는 것을 잊지 않으며, 나는 [불꽃의 검]과 [항마의 칼날]로 악마의 피부를 난자했다. 악마의 등짝이 너덜너덜해지는 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는 않았다.
“끄아악! 살려줘!”
“너 같으면 살려주겠냐?! 에잇!!”
퍽퍽! 나는 이미 너덜너덜해져 훤히 드러난 악마의 속살까지 저밀 기세로 칼을 마구 휘둘러주었다. 그럴 때마다 악마는 꺽꺽거리며 비명을 토해내고 있었다.
“······흐흣!!”
대단한 쾌감이다! 분명 나보다 강력할 터인 존재, 그리고 눈으로 보기에도 나보다 훨씬 거대한 존재를 이토록 궁지에 몰 수 있을 줄이야!!
물론 이번 경우는 내 직업과 장비의 상성이 큰 영향을 미치고 있지만, 어쨌든 내가 이기고 있는 것만은 확실했다.
그런데 상황이 바뀌었다.
“너, 네놈! 떨어져라!!”
지금까지 멀거니 지켜보고만 있던 악마의 권속이 갑자기 전투에 끼어들었기 때문이다.
“쳇!”
스킬을 쓰지도 않고 스킬의 효과가 먹히지도 않는 저 권속은 주인일 터인 악마보다도 상대하기에 껄끄러운 면이 있었다. 나는 악마의 등에서 떨어져 권속을 물리칠 준비를 했다.
쿵쿵쿵쿵! 거대한 체구로 급하게 달려온 악마의 권속의 기세는 내게도 꽤나 위협적이었다. 그런데 그 때, 이변이 일어났다. 악마가 권속의 머리를 한 손으로 덥석 잡더니 그걸 그대로 휘둘러 나에 대한 방패이자 무기로 쓰기 시작한 것이 아닌가?
“으, 으어어! 왕이시여!!”
“시끄럽다! 넌 내 권속이니 날 위해 희생해라!!”
악마 대신 내 칼을 얻어맞아야 했던 권속은 고통의 비명을 질러댔지만, 악마는 가차 없었다. 내 공격을 막은 후에는 날 향해 권속을 붕붕 휘둘러댔다.
“저리 가, 저리 가라! 이 놈아!!”
“으아, 으아아아!”
보기에는 웃기지만 악마보다야 작다지만 18m는 되는 권속의 거체는 상대적으로 체구가 작은 내게는 충분히 위협적인 질량 병기의 역할을 해내고 있었다. 게다가 스킬이 안 통하는 방패이기도 하니 골치 아프기 그지없었다.
“젠장! 발사!!”
결국 가장 안전한 게 포격이다 보니, 나는 계속해서 포격을 날릴 수밖에 없었다.
쾅! 쾅! 쾅!
“커억!!”
한참이나 악마 대신 포격을 맞던 악마의 권속은 곧 기운을 잃고 축 늘어져 버렸다. 아무리 스킬 효과가 안 통한다 한들, 단순히 빛의 마력을 너무 많이 맞아 마기를 소진해 버린 탓인 듯했다.
– 레벨 업!
권속을 처치한 건 나로 체크된 건지, 레벨 업을 두 단계 정도 했다. 고작 권속 주제에 이렇게 많은 경험치를 주다니. 하긴 이놈 잡느라 고생한 걸 생각하면 이상한 일은 아니다. 꽤 소모가 심했던 생명력과 체력, 마나가 완전히 회복된 건 다행이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 죄 지은 자를 징벌하라!
그런 메시지와 함께, [징벌의 권능] 사용 조건이 채워지며 활성화된 것이 아닌가?
“!”
[징벌의 권능] – 등급 : 권능(Power)– 숙련도 : 연습 랭크
– 효과 : 죄를 저지른 자를 벌하라.
어이가 없긴 했다. 악마가 자신의 권속을 방패로 삼다가 죽여 버린 것을 죄로 치다니.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이득이다!”
나는 즉시 [징벌의 권능]을 사용했다. 꽈르릉! 한 줄기 벼락같은 권능의 힘이 악마의 대가리를 찍어 내렸다!
“어어어억!!”
악마의 거대한 뿔이 내 일격에 잘려 나갔다! 겨우 연습랭크인데 이 정도로 효과적이라니! 하긴 이 정도쯤은 되어야 로제펠트가 이 스킬 하나만 믿고 온갖 세력에 시비를 걸고 다니며 악행을 저질렀겠지.
아, 이럴 줄 알았으면 미리 [뇌신의 징벌]과 합성해 둘 걸 그랬나. 나는 아쉬움에 입맛을 다시며, 수련치가 채워진 [징벌의 권능]을 랭크 업 시키려고 했다. 그런데 F랭크로 올리는데 드는 스킬 포인트가······, 100?
S랭크까지 올릴 생각을 하자면 그냥 [뇌신의 징벌]과 합성하는 게 더 싸게 먹힐 것 같다. 이건 일단 그냥 두자.
“안 돼······, 안 돼······!”
악마는 울면서 땅바닥을 기어 다니고 있었다. 마계쪽으로 도망치려는 모양이다.
“그냥 둘 수 없지!”
나는 그런 악마의 등 뒤를 습격했다. [진리의 검]과 [바즈라다라의 바즈라]로 난도질해 댔다. 퍽퍽 소릴 내며 불꽃검과 뇌전검이 악마의 피부를 가르고 살을 토막냈다.
지속적으로 [강화 마법포탄 생성]과 [격마의 탄환] 콤보의 마법포탄 포격과 [울돌목]을 쏴댄 건 더 말할 것도 없고. 원래대로라면 내가 매달려 있는 상대에게 포탄세례를 먹이는 위험한 짓을 할 리 없지만, 악마의 체구가 워낙 큰지라 오폭이 나한테 작렬할 걱정은 안 해도 됐다.
내가 피해를 입힐 때마다 움찔움찔거리며 고통스러워하는 건 별개로, 악마는 완전히 도망치는 데만 역량을 집중하기로 한 듯 필사적으로 마계를 향해 기고 있었다.
사실 [울돌목]을 연속적으로 맞아서 이동불가 상태이상이 지속적으로 부여되고 있는지라, 그 효과가 가끔 끊길 때마다 겨우 한 걸음씩 기어가는 정도에 그치긴 했지만 말이다.
그러나 그것도 이걸로 마지막이었다.
[필생즉사] [천자총통]의 마지막 옵션, 도망치는 적을 향한 필살의 공격이 악마를 향해 날아들었다.***
악마군주, 뤼펠은 왜 자신이 이런 일을 당해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그저, 맛있는 게 먹고 싶었을 뿐인데······!”
지금 와서 다시 생각해 보자면, 문제를 쉽게 푸는 방법은 실로 간단했다.
지금 자신을 향해 공격을 퍼붓고 있는 저 지구인은 자신의 권속 하나도 제대로 제압하지 못했다. 그러니 같은 권속 하나만 더 보냈으면 될 일이었다. 하나도 압도 못하는데, 둘을 상대로 이길 수 있을 리 없으니까.
만약 그랬다면 쉽게 저 지구인을 제압하고 마계로 끌고 들어와서 편하게 요리할 수 있었다.
그러나 뤼펠은 그러지 않았다. 그저 당장 저 지구인의 육신을 자신의 손으로 직접 쥐어뜯어 튀어나온 혼을 비틀어 짜 풍부한 즙을 직접 맛보고 싶다는 충동을 못 이겨, 스스로 마계에서 나오고 말았다.
어리석은 짓이었다.
“저 지구인이 날 속인 게 잘못이야!”
그러나 뤼펠은 어디까지나 악마, 자신의 잘못이나 어리석음을 인정할 리 없었다.
“다음에는, 다음에는 반드시······!”
뤼펠은 서럽게 이를 갈았다.
“네 목을 뜯어 그 피로 목을 축이겠다!!”
그것이 뤼펠의 유언이었다.
***
“어따, 생명력 높기도 하지.”
악마를 죽이는 데는 시간이 굉장히 많이 걸렸다.
도망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은 악마는 악에 받쳐 내게 반격을 가해왔지만, 이미 마기 소모가 심각했던 터라 굉장히 위협적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오히려 내겐 악마의 스킬을 얻을 수 있는 보너스 타임에 가까웠다.
아니, 이건 너무 지나치게 허세를 부린 건가. 그 정돈 아니었지. 불꽃과 뇌전을 주변에 마구 흩뿌려대던 최후의 발악은 꽤 위협적이긴 했으니까.
그러나 발악은 발악일 뿐이었고, 결국 악마는 죽었다.
그 대가로 내가 받은 건 대량의 경험치, 그리고 악마가 남기고 간 왼쪽 뿔이었다. 이 뿔은 재료 아이템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모양이었다.
이게 끝이 아니다. 만마전도 인류연맹과는 적대 관계라고 했으니, 연맹에서도 보상을 받을 수 있을 테지.
그런 점에서 보자면 내게 있어서 굉장히 기꺼운 일전이었다.
그런데······.
“왜 마계가 아직 안 없어졌지?”
마계의 주인인 악마가 죽으면 마계는 자연히 없어진다. 크리스티나로부터 그렇게 들었다. 나는 방금 악마를 죽였다. 경험치도 들어왔고, 뿔도 남기고 갔다. 아이템 루팅까지 끝났다.
그런데 왜? 어째서 오히려 악마가 죽기 전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마계가 세계를 침식하고 있는 걸까?
“설마······.”
마계로부터 느껴지는 저 불길한 마기. 그리고 직감.
마지막으로 악마의 유언.
‘다음에는, 다음에는 반드시!’
생각해 보면 그건 유언이 아니었던 셈이다.
“아, 하긴 그렇지.”
나는 입에서 나오려는 욕설을 억지로 씹어 삼키곤, 웃으려고 노력했다.
“플레이어도 코인만 있으면 살아나는데, 악마라고 그러지 말라는 법은 없지.”
그것은 최악의 예상이었으나, 동시에 가장 가능성이 높은 가설이기도 했다. 아니, 가설이라고 하는 것 자체가 정신 승리에 가깝다.
“이 정도면 확실하다고 봐야지.”
결국 난 웃을 수 없었다.
악마는 완전히 죽지 않았다. 저 마계의 악마성에서 되살아났다. 확실했다. 내겐 그 기운이 느껴졌다. 게다가 악마는 더욱 강해져서 되살아난 게 틀림없었다.
마계 안에 자리 잡은 악마로부터 느껴지는 기운은 방금 전에 때려잡았던 때의 악마와는 비견조차 불가능할 정도였으므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