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Loser RAW novel - Chapter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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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낸 능력치를 확인한 주리 리는 바로 태클을 걸어왔다.
“아, 아닌데?! 이게 정확한데?”
말을 더듬고 말았다. 목소리도 떨렸다. 젠장, 역시 난 거짓말을 하는데 소질이 없다. 거짓말하는 스킬이라도 사서 배워야 하나?
주리 리의 표정이 흔들렸다. 아주 잠깐, 미간에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미세한 주름이 생긴 것 같았다. 너무나도 명백히 거짓말을 하는 날 보고 화라도 난 거겠지. 분명 그렇겠지. 이걸 어떻게 수습하지?
그러나 곧 신색을 확인한 주리 리는 평소와 똑같은 말투로 내게 이렇게 말했다.
= 저는 농담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유망주님.
말투야 평탄했지만, 그 내용은 별로 그렇게 들리지 않았다. 주리 리는 아무래도 내가 자기를 놀리고 있다고 생각하나 보다.
= 갓 튜토리얼을 졸업한 플레이어의 평균 능력치는 12입니다. 아무리 높은 레벨로 졸업했다고 해도 능력치 하나가 50에 달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이조차도 보통 사람의 10배 이상의 능력치로 충분히 훌륭하고 대단합니다만.
그렇게 반론하면서도 표정과 목소리에 거의 변함이 없는 게 프로답게 보여 인상적이었다. 아니, 잠깐. 졸업 시 평균 능력치가 12라고? 그게 가능한 건가? 라고 생각하자마자 아, 그렇구나. 하는 깨달음도 같이 찾아왔다.
일반적으로 튜토리얼 커리큘럼은 아무리 늦어도 20레벨이면 졸업할 수 있을 정도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레벨당 성장하는 능력치는 20레벨까지는 레벨당 1씩. 5종류의 기본 능력치에 20의 능력치가 배분되면 그 평균은 기껏해야 9다.
= 모든 능력치가 50에 달한 채로 졸업하는 건 그 어떤 고유특성을 지닌 플레이어라 해도 불가능합니다.
즉, 결론은 이거였다.
“아, 내가 너무 높게 적었구나.”
꿈틀.
다시 한 번 주리 리의 표정이 잠깐 흔들렸다. 이번엔 이마에 핏줄도 살짝 돋았던 것 같다. 아주 잠깐. 그러나 금세 평소 상태로 돌아온 주리 리의 프로의식은 존경할 만한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럼 하는 수 없지. 어쨌든 전부 50인 상태라고 생각하고 답해줘.”
내 말에 주리 리는 검은 눈동자를 두 번 깜박였다.
= ······진심이십니까?
“다른 방법이 없잖아.”
= 그렇다면 일단 이것을 확인해주십시오.
레벨 업 마스터의 화면에 확인창이 떴다.
– 잘못된 능력치 기입으로 인해 상담 내용에 오류가 발생할 경우, 본 컨설턴트는 해당 오류로 인한 문제에 대해 책임을 질 수 없습니다.
나는 확인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주리 리는 짧게 한숨을 쉬었다.
= 알겠습니다.
*
전직 가능 직업 : [초무투가(Super Fighter)]
– 초무투가는 극한까지 육체를 단련한 끝에 깨달음을 얻은 자들입니다. 그 깨달음이란, 어떤 전설적인 무기들보다도 자신의 육체가 더 강인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자신의 육체 그 자체를 무기 삼아 싸우는 초무투가로 전직하기 위해서는 특별한 무기나 방어구, 아이템 같은 것은 필요 없습니다. 필요한 것은 단 하나. 극한까지 단련된 육체입니다.
– 필요 능력치 : 모든 기본 능력치 50 이상
초무투가라는 직업으로 뭘 할 수 있는지 보여주려는 건지, 주요스킬의 모습이 동영상으로 재생되고 있었다.
“와, 손에서 빔이 나가네.”
그냥 무투가가 아니라 초무투가라 그런지 손가락 끝에서 빔이 나가거나 손바닥 위에 원반을 띄워 던지거나 양손바닥을 펼쳐 두꺼운 빔포를 쏘거나 하고 있었다. 종국에는 온 몸에 기를 끌어올리더니 주변을 전부 폭발시켜버리는 호쾌한 기술도 보여주었다.
“끌리긴 하네.”
– 전직하시겠습니까?
시스템이 내게 물어왔다. 나는 곧장 고개를 저었다.
“아니.”
끌리긴 하지만 내 스타일은 아니다. 더 괜찮은 클래스가 더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적어도 지금 당장 결단을 내릴 필요는 없어보였다.
휴대폰을 사더라도 한 달은 고민하는 게 내 성미다. 앞으로 내 인생을 좌우할지도 모르는 직업 선택인데, 하나만 보고 곧장 전직을 선택할 수 있을 리는 없다.
그렇다고 전직을 휴대폰 고르듯 한 달 동안이나 고민할 생각은 없지만 말이다. 최대한 빨리 전직해서 다시 레벨 업을 재개하고 싶은 마음도 굴뚝같다.
그렇다면 중도를 걷는다. 일단 오늘 내로 결정을 하긴 할 생각이고, 그 전까지는 생각 좀 해봐야겠다.
= ·········.
그래서 다른 직업에 대해 물어보려고 다시 레벨 업 마스터를 보니, 주리 리가 놀란 토끼 눈을 뜨고 날 보고 있었다.
= 갓 유망주로 올라선 연맹원이 초무투가로 전직이 가능하다니······. 컨설턴트 생활이 긴 편은 아니지만 처음 목격했습니다. 무례를 저지른 것에 대해 사죄드립니다. 유망주님.
주리 리가 그 자리에서 내게 엎드려 절하며 사죄를 구했다.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는데.”
나는 대충 넘기려 들었지만, 주리 리는 쉽게 고개를 들지 못했다.
= 아닙니다. 제가 연맹의 유망주님을 너무 얕봤습니다. 특별 등급 이상의 고유 특성을 지니고 무리난제급의 고유 퀘스트를 해결하신 분을······. 50이 아니라 그 이상이라도 이상하지 않을지도 모르겠군요. 제가 지나치게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아니, 그 고정관념 크게 틀린 건 아닌데. 누가 튜토리얼 세계에서 00레벨 찍고 나오는 미친 짓을 또 하겠어? 이건 고유 특성이나 고유 퀘스트의 영역을 떠난 문제다.
그러나 튜토리얼 정규 커리큘럼을 졸업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밝히기 싫었던 나는 실상을 주리 리에게 설명할 마음은 없었다. 그보단 빨리 이 화제를 넘겨야겠다는 생각이 먼저 드네.
“됐어, 됐어. 난 괜찮으니까. 그보다 내게 어울리는 직업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
= ······사죄를 받아주셔서 감사합니다.
그제야 주리 리는 고개를 들었다. 아직 그 아름다운 얼굴에는 핏기가 가셔 있어 그녀가 완전히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 직업 선택에 대한 상담은 일반적으로 희망하는 직업을 듣기보다는 적성을 기준으로 적절한 직업을 추천하는 방식으로 진행하는 경우가 많습니다만, 유망주님의 경우에는 희망 쪽으로 무게 추를 둬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목소리만큼은 평소대로였다. 아니, 오히려 평소보다 힘을 준 목소리로 주리 리는 내게 이렇게 발언했다.
= 유망주님께서는 뭐든지 하실 수 있으니까요.
뭐든지라.
여기에서 ‘뭐든지’는 ‘어떤 1차 직업이든’이라는 의미겠지만, 뭐 어쨌든 들어서 기분 나쁜 소리는 아니다.
나는 씨익 웃었다.
*
내가 직업을 고르기까지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다.
주리 리로부터 세 자릿수에 달하는 직업에 관한 설명을 듣고 비교 판단했으니까. 혹시나 몰라서 초무투가보다도 요구능력치가 더 높은 직업이 있는지 주리 리에게 물어봤더니, 그녀의 대답은 심플했다.
= 말씀드렸잖습니까? 유망주님께서는 뭐든지 하실 수 있습니다.
1차 직업 중 내 능력치로 전직이 불가능한 직업 따위는 없었기에, 결국 나는 모든 1차 직업의 설명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그 중에서 뭐가 더 내게 맞는지 고민을 거듭한 결과, 내가 고른 직업은 바로 이것이었다.
[반격가(Counter Striker)] – 반격가는 자신을 향한 적대적 행위에 대해 정당한 응보를 가하는 것이야말로 정의라고 생각하는 이들입니다. 반격가의 반격 대상은 물리적 공격뿐만이 아니라 마법, 저주, 그 외의 초능력과 초상능력도 포함됩니다. 반격가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후의 선(後의 先)]으로, 적의 공격이 시작되기도 전에 반격으로 제압하는 것을 뜻합니다. 당연하게도 그 궁극은 초월적 영역에 놓인 것으로, 차라리 예지에 가깝다고도 일컬어집니다. 반격가로 전직하기 위해서는 초월자 급의 직감을 필요로 합니다.– 필요 능력치 : 직감 50 이상
반격가의 소개 영상으로 스킬 몇 개를 보여줬는데, 자기보다 덩치가 큰 오우거나 와이번의 공격을 막고 던지는 거야 그렇다 치지만 저격수의 흉탄이나 마법사의 화염폭발을 반격해 되돌려주는 게 너무나도 인상적이었다.
솔직하게 다소 충동적으로 고른 면이 없지 않았다. 사실 나는 마법사 계열을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1:1 공격기술로는 이미 [초절강타]를 갖고 있었지만 전술적으로는 광역공격기가 부족했기에 그렇게 생각했던 건데······.
직감 : 99+
내 직감이 반격가에 꽂혀버린 이상 어쩔 수 없다. 직감을 무시했다가 당하는 건 튜토리얼에 혼자 남겨지는 것으로 족하다.
– 정말로 반격가로 전직하시겠습니까?
다행히 반격가로 전직하는 데는 별 다른 무장이나 아이템, 퀘스트 조건이 필요하지는 않았다. 마법사 계열은 대부분 값비싼 지팡이나 수정구, 마법서 따위를 요구했으니.
물론 레어 장비 대여권이 있으니 그걸 쓰면 해결되는 문제긴 했지만 공짜도 아닌 대여권을 당장 전직하자고 소모해버리는 것도 꺼려졌다.
나는 왼쪽 눈을 깜박여 전직을 확정했다.
– 반격가로 전직하셨습니다.
직업 : 반격가
레벨 :1
경험치 : 0%
상태창에 새로운 창이 새로 생기고 반격가로서 얻은 새로운 스킬들이 떴다.
[간파 Penetration][패시브] – 등급 : 희귀(Rare)– 숙련도 : 연습 랭크
– 효과 : 적의 공격을 간파한다. 직감 능력치에 따라 확률이 증감한다. [막고 던지기 Counter Slam] – 등급 : 희귀(Rare)
– 숙련도 : 연습 랭크
– 효과 : 적의 공격을 막고 던진다.
스킬 포인트가 남아도니 바로바로 랭크를 올리고 싶지만, 그러려면 일단 숙련치를 쌓아야 한다. 문제는 스킬들이 다 반격기라 숙련치를 올리려면 적의 공격이 필요하다는 점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구울들 몇 마리는 남겨둘걸 그랬나.”
혼잣말을 하면서도 헛소린 걸 알았다. 애초에 구울들을 다 잡았기에 공적치 500에 도달했고 레벨 업 마스터의 전직 기능을 열 수 있었던 거니까.
한숨을 푹 내쉰 후, 나는 주머니에 레벨 업 마스터를 쑤셔 넣었다. 이러면 자동으로 인벤토리에 수납된다.
어느새 뉘엿뉘엿 해가 지고 있었다. 전직하는데 시간을 꽤 낭비한 모양이었다.
“그런데 이것들은 왜 이렇게 늦어?”
해가 떨어지고 있는데 드워프들은 아직도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내가 드워프들을 걱정해줄 의리는 없지만, 약속된 보상에 대한 욕망은 있었다.
갑작스럽게 퀘스트가 뜬 것도 그 때였다.
[돌발 퀘스트] – 의뢰인 : 크리스티나– 종류 : 구출
– 난이도 : ?
– 임무 내용 : 위기에 빠진 방랑 드워프들을 구출하라!
– 보상 : 무사히 구출한 드워프 한 명당 금화 10개(+100%), 기여도 10(+100%)
“잉? 뭐야, 이거?”
왜 이렇게 늦는가 싶었더니 위기라고? 나는 깜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섰다.
미니맵을 보니 퀘스트 대상으로 지정된 드워프들이 녹색 점으로 표기되어 있었고, 붉은 점들이 그들과 대치하고 있었다. 붉은 점으로 표시된 적들이 꽤 위협적인지, 녹색 점들은 꾸물거리며 물러나고 있다.
“서둘러야겠군.”
드워프들을 구해줄 의리는 없지만, 퀘스트의 보상이 나를 움직였다. 그 뿐만이 아니다. 저 빨간 점들의 정체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적이라면 스킬 숙련도를 쌓을 기회다. 더군다나 두프르프를 살려야 그들에게서도 뜯어낼 걸 뜯어낼 수 있지 않은가?
나는 즉시 S랭크의 질주를 발동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