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Loser RAW novel - Chapter 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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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그드 하워드는 오전부터 기분이 좋았다.
오늘 아침 회의로 드디어 키르드와 그를 구했다고 하는 그 대영웅인지 뭐시깽인지에게 한 방 먹이는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는 이미 차원문 관리소장과 야합해 키르드를 비롯한 대영웅 일행의 인류연맹 귀환을 방해해 놨지만, 그거 하나만으로는 영 성이 안 찼다.
그러던 와중에 괜찮은 시기에 괜찮은 주제로 회의가 열렸다. 대영웅의 논공행상이라는, 주제만 보자면 그마저도 마음에 들지 않았으나 타이밍만 보자면 귀신 같은 의제였다.
그 결과 마음에 안 드는 대영웅인지 뭔지 하는 그 출신성분도 모를 것에게 비록 엿은 아니어도 날생선을 먹였으니 기분이 통쾌하고 시원하기 그지없었다.
“영웅인지 뭔지 모르겠지만, 천한 것들은 날생선이나 씹어 먹으라지. 하하핫!!”
크리스티나인지 뭔지 하는, 출신도 천한 여자 하나가 발악해 대며 유그드의 정당한 권리 행사를 방해했지만 소용없었다.
유그드를 비롯한 고귀한 태생의 후예들 모임인 ‘오블리제’가 그의 든든한 아군이 되어주었고, 적은 표 차라고는 하나 표결에서 승리를 거두어 그의 의견을 밀어붙이는데 성공했다.
단 하나, 마음에 걸렸던 건 스트로하임 가문의 머저리가 표결 때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기권표를 던진 것이었다.
뭐, 스트로하임이 하워드에 반대하는 건 이미 3대를 걸쳐온 전통이라 할 수 있을 정도라 이상한 일이 아니다. 문제는 그게 반대표가 아니라 기권표였다는 거다. 마치 자신은 이 일에 반대하지 않지만 엮이는 건 곤란하다는 것처럼.
그리고 표결이 종료된 후, 크리스티나의 그 피를 토하는 것 같았던 일갈.
= 후회하실 겁니다! 누군가는 책임을 지게 될 것입니다!!
통쾌한 와중에도, 왠지 껄끄러움이 남은 건 이 두 사건 때문이었다.
“얼굴도 반반한 년이······, 쯧.”
옛날 같았으면 눈도 못 마주치고 다녔을 년이.
그런 말을 직접 입 밖에 꺼내지는 않았다.
대외적으로 인류연맹은 공화제임을 주장하고 있었고, 모든 시민권자가 같은 권리를 지닌 평등한 존재로 법적으로 인정받고 있었다.
인류연맹의 국시가 이런데 차별적인 언사를 직접적으로 하게 되면 분란의 여지가 될 수 있음을 이제는 유그드도 잘 알고 있었다. 아무리 위대한 하워드 가문의 고귀한 적장자 혈통이라 하더라도 말이다.
유그드가 여론이란 걸 의식하기 되기 전까지 몇 번쯤 불벼락을 맞고 데어볼 필요가 있었지만, 사람은 원래 실수로부터 배우는 존재 아니던가.
“흥, 개돼지들. 정말로 모두가 평등하다고 믿는 건 아니겠지? 하기야 개돼지니 그 정도로 멍청할 순 있겠어.”
물론 유그드가 배운 건 속마음을 숨기는 법이었고, 그의 귀족주의적 가치관은 그대로였지만 말이다. 이상과 현실이 다른 것은 항상 있는 일 아니던가? 이상주의자가 뭐라고 떠들던 고귀한 가문의 혈통이 모든 것을 갖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자신들의 모임 이름도 ‘노블리스’라고 하지 않고 ‘오블리제’라고 에둘러 지었다. 누군가가 이 이름을 두고 시비를 걸어온다 한들, 아니라고 우기면 그만인 딱 좋은 이름이다.
“뭐, 됐어.”
이보다 더 통쾌할 수가 없을 터였던 이번 일의 미묘한 뒷맛을 애써 잊으려 하며, 유그드는 오블리제의 비밀 회합을 기획했다.
“오늘은 우리 오블리제의 회원들에게 귀한 선물이라도 돌려야겠군.”
유그드는 마구니 동맹에서 은밀히 넘겨받은 [욕망의 독]과 [마라 파피야스의 뼛가루]로 간만에 시름을 잊을 생각이었다.
사실 외부 세력인 마구니 동맹에서 이런 물건을 받아오고 취급하는 건 연맹법상 범죄지만 뭐 어떤가? 파티 장소는 저택의 비밀 회합장이고, 연맹 수사관은 감히 하워드 가문의 저택을 뒤질 생각조차 하지 못할 텐데.
[마라 파피야스의 뼛가루]를 코 점막으로 흡수한 후 [욕망의 독]으로 은밀한 욕망을 실현시켜줄 마구니를 불러내면 이 세상의 것이 아닌 쾌락을 맛볼 수 있게 된다. 그야말로 중독적인 쾌락. 그 쾌락을 맛볼 생각에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그러나 유그드의 그 콧노래는 곧 멈췄다.
“유그드, 가주께서 부르신다.”
자신을 잡으러 온, 가주 직속 비서실장의 엄한 표정을 마주하자마자.
“무, 무슨 일.”
“잔말 말고 따라와.”
가주 직속 비서실장은 엄한 목소리로 유그드에게 명령했다. 유그드는 그의 태도에 움찔 굳었으나, 곧 분노를 느꼈다. 비서실장은 하워드 가문의 방계출신이다. 자신은 적장자 혈통이고. 그런데 감히 방계 혈통 주제에 적장자 혈통에게 명령을 해?
“······가, 감히!”
“뭐?”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돌아서며 눈을 부라리는 비서실장의 모습에, 유그드는 그대로 쪼그라들 수밖에 없었다. 그래, 방계도 하워드지. 나보다 어른이고. 유그드는 재빨리 현실과 타협하며 자신의 자존심을 지켰다.
***
= 끝내 정의는 승리하는 법이에요!
레벨 업 마스터를 꺼내들자마자, 크리스티나가 뜬금없는 소릴 했다.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크리스티나.”
= 대영웅님께 드렸던 보상 말인데요. 변경이 좀 있었어요.
“엉?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다 어떤 가능성에 대해 떠올렸다.
오늘 오전에 잔뜩 받은 5성 요리 재료들. 이거 조리해서 먹겠다고 기껏 요리사로까지 전직했는데 설마······.
“설마 줬다 뺏는 건 아니겠지?”
= 아, 아니에요. 그럴 리 없잖아요. 추가 지급이에요.
크리스티나는 서둘러 손을 내저었다. 그 모습에서 난 직감적으로 느꼈다.
원랜 다시 가져가려고 했었구나.
하지만 그런 의도를 접어 넣었다는 건······. 그런 결정이 크리스티나의 독단에 의해 정해질 리는 없을 것 같았다.
“······무슨 일 있었어?”
= 이 추가 지급 건을 포함해서 이번 사건과 관련된 인물과 사건의 취급 수준은 비밀로 변경되었어요!
크리스티나는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뭔지는 몰라도 되게 통쾌한 일이라도 있었던 모양이다. 예를 들어, 회의에서 승리했다든가.
= 인류연맹은 대영웅님의 논공행상 논의에 참가한 의원들이 저지른 무례에 깊이 사죄드리며, 추가 포상을 드리기로 결정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크리스티나의 입에서 전모가 드러났다.
= 그랜드 리큐르 마스터가 직접 담근 5성급 보석담금주 1세트 12병입니다. 아, 이거 한 병당 가격이 금화 백만 개쯤 해요. 시중에선 못 구하고 마지막 경매가가 그랬던 거지만요. 되팔면 더 비싸게 파실 수 있으실 거예요. 세트로 경매에 붙이면 더 값이 나가겠죠.
금화 천이백만 개라. 나도 금화를 꽤 모으긴 했지만 그래도 놀라운 가격이다. 그리고 팔면 가격이 더 나간다니.
“이러다 내가 인류연맹의 기둥을 다 뽑아먹는 거 아니야?”
= 아하하, 무슨 말씀이세요? 이미 대영웅님이 인류연맹의 가장 두껍고 큰 기둥이에요!
우와, 부담돼.
내 속내를 아는 건지 모르는 건지, 아니, 분명 알고 있을 텐데 크리스티나는 활짝 핀 웃음을 그치지 않은 채 내게 이렇게 말했다.
= 부디 앞으로도 인류연맹을 잘 부탁드립니다!
사실 크리스티나의 이런 태도는 내게 크게 두 가지를 암시해 주고 있었다.
첫 번째는 그녀의 말대로 ‘정의가 승리’, 즉 인류연맹의 내게 우호적인 세력이 적대적인 세력으로부터 승리를 거둬들였다는 것. 그리고 두 번째는 내가 인류연맹을 떠나기로 결심했을 때, 적어도 교단처럼 ‘파문’ 같은 극단적인 방법을 쓸 수 없다는 것.
그냥 단순히 내가 넘겨짚은 것일 수도 있지만, 어쩐지 난 그렇게 느끼고 말았고 내 직감은 그리 틀린 적이 없다.
“어, 그래.”
그것과는 별개로, 나는 심드렁하니 크리스티나의 말에 대꾸해 줬다. 그렇다고 승리의 미소를 짓는다든지, ‘아, 물론이지. 나만 믿어’ 같은 소릴 하는 건 내 스타일이 아니니까.
= 아, 맞다. 그리고 추가 포상은 이게 전부가 아니에요!!
크리스티나는 뒤늦게 생각난 듯 그렇게 소리 질렀다.
***
결과.
인류연맹으로부터 받은 추가 포상은 담금주 12병에 더해 브랜디, 위스키, 소주에 청주에 럼에다 테킬라까지 술만 한 궤짝을 받았다. 물론이라고 해도 될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전부 5성이다.
= 이런 말씀을 드리는 건 생색내는 것 같아서 조금 저어됩니다만, 꼭 전해달라고 해서 저도 어쩔 수 없이 전해드리는 건데요.
내게 모든 추가 보상을 넘겨준 후, 크리스티나는 이런 말을 덧붙였다.
= 사실 인류연맹에서 술은 환금성이 대단히 높은 편이에요.
“되게 비싸단 소리네?”
= 그렇게도 표현하죠. 특히나 브랜디나 위스키를 비롯한 증류주는 더욱 그래요. 그 중에서도 5성 술은 같은 무게의 다이아몬드보다 비싸죠. 아니, 고작 다이아몬드랑 비교하면 안 되는구나. 인류연맹 내에서 거래되는 진은과 비교를 해야겠네요.
“······그렇게까지?!”
진은은 인류연맹의 적성세력인 교단에서만 산출되기 때문에 인류연맹에선 특히 더 비싼 재화다. 그런데 술이 그거랑 비견되다니. 좀 납득이 안 되는데?
= 그야 그렇죠. 술은 인벤토리에 방치해놓는다고 자동으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거든요. 숙성 조건을 엄격히 지켜야 하기 때문에 돈도 시간도 노력도 많이 드는 궁극의 재화 중 하나예요.
하긴 요리도 인벤토리에 넣어놨다가 꺼내놓으면 언제든지 갓 만든 상태로 눈앞에 차려낼 수 있는 세상에서, 숙성과 발효란 건 의외로 사치스러운 것일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 링링에게서 김치 가격을 물어봤을 때 금화 2개를 불렀었지. 이런 제반사정을 감안하면 그 김치 가격도 의외로 경제적인 가격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 그런 의미에서 술 선물은 적어도 인류연맹에서는 가장 높은 그레이드의 선물이에요. 모르기는 몰라도 5성급 술은 가주 급은 되시는 분들이 직접 꺼내놓은 걸 거예요. 아, 그리고 각 술은 연맹의 가문에서 자발적으로 내놓은 거라고 꼭 말씀드리라고 하더군요.
어째 술 종류가 천차만별이다 했더니 그런 사정이 있었군. 그건 그렇다 치고.
“거참, 되게 생색내네.”
이런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 그 정도 가치가 있는 선물이니까요. 그리고······, 그만큼 이전에 연맹이 저지른 무례를 사죄드리고 싶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크리스티나는 허리를 굽혀가며 그렇게 덧붙였다. 그런 크리스티나의 덧붙임으로 인해, 나는 이 일을 가문의 일부 세력이 독단적으로 저질렀다가 윗선에서 그 사실을 뒤늦게 알고 뒷수습에 나선 것일 터라는 추리를 해낼 수 있었다.
이게 진실인지 어떤지는 모르고, 확실하게 확인해 볼 생각도 별로 없지만 말이다.
“알았어. 누군지는 모르지만 고맙다고 전해드려. 아, 누가 선물해준 건지 알 수 있을까?”
= 아뇨, 그건 금지되어 있어요.
“아, 그래? 뭐가 그렇게 깐깐해?”
= 이미 말씀드렸다고 생각하지만요, 그만큼 연맹에서 대영웅님의 위상이 크고 대단한 거라구요. 특정 가문이 대영웅님의 호의를 사는 걸 두려워할 정도로 말이죠.
“그러냐.”
= 네.
뭐, 그렇다고 쳐두자. 이렇게 좋은 술을 이만큼이나 내놨는데 나도 더 뒤집어 까볼 마음은 들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는 그들 가문의 ‘뒷수습’은 성공한 셈이 되려나.
“그럼 ‘사죄’를 받아들였다고 해두자.”
= 그러시면 될 것 같아요.
그러면서 안도의 웃음을 흘리는 걸 보니, 사죄하는 가문들보단 크리스티나가 더 안도하는 것처럼도 보였다. 사이에 껴서 고생하네.
“고생했어.”
= 별 말씀을요!
이전까지의 심로는 다 날려버린 듯 상쾌한 표정의 크리스티나였다.
그렇게 크리스티나를 돌려보내고 레벨 업 마스터를 인벤토리에 넣은 나는 인벤토리의 술들을 손가락으로 건드려보며 실실 웃었다.
이게 얼마만의 술이냐. 그러고 보니 수백 년만의 술이로군. 가슴이 뛴다.
이게 그렇게 비싸다니 금화로 바꿔먹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지만, 이제는 인류연맹의 상점에서살만한 것들은 대충 내 수중에 있는 금화로 해결된다. 전설급 스킬을 하나 사는 것보다는 스킬 포인트를 모으는 게 먼저가 되다 보니 아무래도 금화는 남아돌거든.
“그렇게 비싼 술을 내가 돈 주고 사긴 좀 그렇지만, 받은 술은 마실 수 있지.”
그러니 한 병쯤은······, 하는 마음이 드는 것도 어쩔 수 없다. 누가 날 비난하겠는가?
“오늘은 술판이다!”
에라이, 마시고 죽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