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Loser RAW novel - Chapter 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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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이나 만신전, 만마전 같은 대형 세력에 비하자면, 마구니 동맹은 사실 별로 큰 세력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인류연맹 정도로 작은 세력인 건 아니지만 아무래도 다른 주류 세력에 비하자면 급이 처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러나 그것은 마구니 동맹의 대외적으로 알려진 세력만을 계산에 넣었을 경우였다.
마구니 동맹의 진짜 힘은 다른 세력에 잠입시켜 둔 첩자와 마구니에 홀린 자들, 그리고 마라 파피야스의 살이나 뼈를 지나치게 취해 마구니가 되어버린 자들로부터 나왔으니까.
그것도 각 세력의 상류층을 주로 노린 터라, 만약의 경우 마구니 동맹이 각 세력에 발휘할 수 있는 영향력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그리고 마구니 동맹의 마수는 그들 세력보다 체급이 낮다고 평가되는 인류연맹이라도 예외 없이 뻗어나가 있었다.
정확히 하자면, 원래는 그랬다.
“본 동맹에서 작업을 쳐두었던 인류연맹의 차기 유력자들이 상당수 축출당했습니다.”
인류연맹을 담당하는 마구니 두령이 그렇게 보고해 왔을 때, 마구니 동맹의 수장, 마라 파피야스의 12,257번째 분신은 귀를 의심했다.
“인류연맹에게 본 동맹의 첩자를 솎아낼 정도의 실력은 없을 텐데?”
그런 마라 파피야스의 분신의 힐문에, 마구니 두령은 뚱하니 대답했다.
“우연의 일치였습니다.”
“우연의 일치로 그게 되나?”
“하지만 우연의 일치였습니다.”
마라 파피야스의 분신은 눈을 치켜뜨고 마구니 두령을 압박했다.
“너, 그냥 둘러대는 거 아니야?”
“아닙니다. 우연의 일치였습니다.”
마구니 두령의 끈질긴 대꾸에 질린 마라 파피야스의 분신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좋아, 들어주지. 설명해 봐.”
마구니 두령은 인류연맹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간단히 요약해서 설명했다. 그 설명을 들은 마라 파피야스의 분신은 무릎을 탁 치며 외쳤다.
“진짜 우연의 일치네?”
통칭 ‘오블리제’라는 비공개 모임에 속한 유력가문의 젊은이들이 이진혁의 논공행상 회의에 참가해 훼방을 놓았고, 그게 문제가 되어 그들 대부분이 축출당했는데 하필이면 그들이 마구니 동맹의 작업 대상이었다는 게 일의 진상이었다.
일을 주도한 건 유그드 하워드라는 인류연맹 3대 가문의 직계혈통이었는데, 그가 자신의 세력을 일구기 위해 이용했던 게 마구니 동맹에서 받은 [욕망의 독]과 [마라 파피야스의 뼛가루]였다.
“아니잖아, 멍청아! 네가 지원할 대상을 그런 머저리로 고른 게 잘못이지!”
마라 파피야스가 손바닥을 휙 뒤집으며 외쳤다. 그러자 마구니 두령도 소리를 빽 질렀다.
“아닙니다! 제 책임이 아닙니다!! 우연의 일치입니다!!”
“이런 대가리에 마구니 낀 놈 같으니라고!”
“칭찬 감사합니다!!”
와하하하핫, 하고 둘이 마주 앉아 웃어댔다. 그러나 그 웃음도 길게 이어지진 않았다.
“저 이제 어떻게 합니까?”
“어쩌긴, 인마.”
걱정에 가득 찬 마구니 두령의 얼굴을 내려다보며, 마라 파피야스의 분신은 혀를 쯧쯧 찼다.
“네 말대로 놈들이 잡힌 건 우연의 일치니, 인류연맹에서 우리 꼬리를 밟을 순 없을 거야. 당분간 작업을 멈추고 잠잠해질 때까지 기다리면 뭐라도 되겠지. 아, 혹시 놈들 중에 마구니가 된 놈은 있나?”
“없습니다.”
단호하기까지 한 마구니 두령의 대답에 마라 파피야스의 분신은 입을 쩝쩝 다셨다.
“거, 일 참 잘했네!”
“감사합니다.”
“지금 비꼰 거야, 멍청아! 어쨌든 전화위복이군. 마구니가 된 놈이 없다면 더더욱 들키지 않을 테니. 그럼 됐어. 묻어놔.”
마라 파피야스의 분신은 손을 내저으며 돌아누우려다, 뭔가 생각났다는 듯 다시 제대로 앉으며 마구니 두령에게 손가락질을 했다.
“너, 3개월 감봉.”
“으악!”
마구니 두령은 총에라도 맞은 듯 그 자리에 꺼꾸러졌다. 그런 놈을 보며, 마라 파피야스의 분신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야, 그런데 그 이진혁인지, 뭔지 하는 놈은 아직 [욕망의 독] 안 썼냐?”
마구니 동맹에도 이진혁에 관한 정보는 전해져 있었다. 인류연맹에 잠입해 있던 첩자와 그 협력자들에게서 얻어낸 정보였다.
이진혁이 로제펠트를 처치하고 그 현상금을 받아갔을 때, 마라 파피야스의 분신 중 몇 명이 이진혁에게 관심을 가지고 정보를 요구한 덕에 꽤 상세한 정보가 들어와 있었다. 물론 잠입한 첩자들이 솎아내진 지금은 그것도 어제까지의 이야기가 되겠지만 말이다.
지금 마구니 동맹이 이진혁에 관해 알 수 있는 건, 그의 [욕망의 독] 사용 여부 정도였다.
“잠시만 기다려주십쇼. 지금 검색을······.”
“아, 미리 좀 알아놓으면 안 돼?”
대답이 즉시 나오지 않는 것이 불만인지, 마라 파피야스의 분신은 두령에게 쓴소릴 했다.
“알아놓긴 했는데 혹시나 해서 그랬습니다. 그리고 혹시나가 역시나군요.”
마구니 두령이 개떡같이 말하긴 했지만, 마라 파피야스의 분신은 찰떡같이 알아들었다.
“안 썼다, 이거군. 거참. 그놈 플레이어 맞냐? 강건 높으면 성욕도 올라갈 텐데, 그걸 안 써? ······그럼 내 뼈도 안 썼겠네?”
“정확히 하자면 분신님의 뼈는 아니죠.”
그렇다고 마라 파피야스 본신의 뼈인 것도 아니다. 마구니 공장에서 성형되어 양산된 물건일 가능성이 높았다. 마구니 두령도 자세히는 몰랐지만, 일단 그렇게 내뱉고 봤다.
“아, 아무튼.”
“네, 안 썼습니다.”
마구니 두령의 딱 부러진 대답을 듣곤 마라 파피야스의 분신은 아쉬운 듯 무릎을 쳤다.
그가 생각하기에 이진혁은 참 탐나는 인재였다. 꼭 마구니로 만들고 싶은, 그게 아니라면 홀려라도 두고 싶은 인재였는데. 오금뼈는 고사하고 [욕망의 독]조차 한 번도 안 쓸 줄이야. 이빨도 안 박힌 셈 아닌가?
“······뭐, 언젠간 쓰겠지. 다음에 또 걔한테 뭐 줄 일 있으면 술이나 잔뜩 갖다 줘라.”
“술이요?”
그 비싼 술을 왜? 라고 묻는 것 같은 표정이었다. 마라 파피야스의 분신이 보기에 참 배알 꼴리는 표정이기도 했다. 뒤통수를 확 내려칠까? 하는 욕망을 애써 참으며, 마라 파피야스의 분신은 입을 열었다.
“술에 취하면 인마. 판단력이 떨어져서 말이야. 어? 인마. 알아들았지?”
“예산만 배정해주신다면야 뭐, 어쨌든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이거 참 골 때리는 놈이네.”
그래도 기본적으로 쾌락주의자에 방탕한 마구니들 중에선 이 마구니 두령이 일을 잘하는 편이라는 걸 알고 있는 마라 파피야스의 분신은 더 이상 그의 월급을 감봉시키진 못하고 혀를 끌끌 찰뿐이었다.
***
술은 참 좋은 거다.
어떤 면에서 좋냐고 묻는다면 리스트를 작성해야 할 정도로 좋은 점이 많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가장 좋은 점만 꼽으라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맛있다는 점.
물론 맛없는 술도 있고 취하는 것이 목적인 술도 있다. 그러나 내 인벤토리에 선물로 들어온 술들은 모조리 5성이고, 어떤 종류건 다 맛있었다.
각 술이 독특한 풍취를 가져 차별화되는 것도 재미있었고, 그러면서도 다 맛있다는 건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나는 맛있는 걸 먹으면 경험치를 얻는 고유 특성의 소유자라는 점이다.
– 레벨 업!
또 레벨이 올랐다.
“후······.”
나는 만족스러운 한숨을 내쉬었다. 내 숨결은 뜨거웠다.
“취한다.”
그랬다. 내 입김에선 틀림없이 취한 자의 오묘한 열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5성 술이라 그런가? 취한다는 상태 이상의 원인은 보통 알콜이지만, 이 술들은 경우가 좀 다른 것 같았다. 알콜 정도의 독소는 인지하지도 못할 정도의 짧은 시간에 해독해 버리는 내 몸에도 반응이 오는 걸 보니 말이다.
“선배!”
안젤라가 발작하듯 외쳤다.
“선배는 왜 나한테 안 반해요?! 이렇게 예쁜데!!”
“너 그 소리 23번째다.”
“흐흐흥. 선배애.”
내 지적에 기분이 좋아진 건지, 안젤라는 내 어깨에다 대고 뺨을 부벼댔다.
그랬다. 안젤라도 취했다. 취해서 개처럼 굴고 있다. 본래부터 무지 개 같다고 생각했었는데, 오늘은 한층 더 개에 가까워져 있었다. 지금 그녀는 거의 개인간, 아니, 개천사였다.
“이거 맛있네요! 정말 맛있어요!!”
케이도 일견 보기에 안 취한 것처럼 보이지만, 아까부터 저 소리만 반복하고 있었다. 분명 취한 거겠지.
“크흑······. 인생은 게임이야······.”
테스카는 확실히 취했다. 그보다 인생게임에서 진 게 그렇게 분했나? 술주정으로까지 저러고 있다니.
아, 5성 술은 그저 맛있고 강건 높은 자도 취하게 만드는 것에서 그 효과가 그치는 건 아니었다. 그 진정한 효과는 바로 소모한 신성의 회복을 빠르게 만들어주는 것이었다.
케이와 테스카의 증언으로 확실해졌다. 이미 신성을 잃고 영락해 버린 그들의 신성마저 미약하나마 되돌려주고 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이것이 내가 왜 이 두 전직 신들에게 취할 때까지 술을 퍼 먹이고 있는가, 라는 질문에 대한 해답이었다.
이 둘이 신화급 스킬을 어느 정도 쓸 수 있을 정도로 신성을 회복시키면, 나는 그 신화급 스킬을 [간파]해서 뜯어올 수 있을 테니까.
게다가 신성을 회복시켜야 하는 건 나도 마찬가지다. [정저조천]으로 신성을 어느 정도 회복하긴 했어도, 말 그대로 어느 정도에 불과했다. 나도 마셔야 한다. 더 마셔야 한다.
“붓는다! 마셔!!”
[오병이어]나는 취한 와중에도 술을 나누는데 꼬박꼬박 오병이어를 쓰고 있었다. 이거 되게 신기하다. 내가 내 잔에 자작하면 다른 애들 잔에서 술이 꼴꼴꼴 차오른다. 와하하!
“으, 응?”
그런데 아까부터 키르드의 잔이 비어 있다. 보니까 키르드는 시체처럼 널브러져 움직이지 않게 되어 있었다. 이미 취해서 곯아떨어지고 만 것이다.
아, 미성년? 미성년한테 술 주면 안 된다고? 그런데 미성년이 뭐였더라?
와하하!
“크르릅, 쿠?.”
입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왔지만,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이렇게 취한 게 몇 년 만인지. 몇백 년 만인지. 잘 기억이 안 난다. 뭐 어때.
“적셔!”
나는 잔을 다시 채웠다.
***
“어······, 음.”
얼마나 마신 거지? 키르드 다음에는 안젤라가 기절했고, 서로 겨루던 케이와 테스카도 동시에 다운됐다. 결국 남은 건 나뿐인데.
“어······. 씨.”
나 혼자 마실 순 없잖아. 혼자 술을 마시는 버릇이 들면 알코올중독이 된다는 소릴 어디서 주워들은 것 같다. 그게 사실이든 아니든 관계없다. 그런 생각이 들어버렸다는 게 중요하다.
“으으······.”
나는 인벤토리를 뒤적거렸다. 뭐가 있을까 싶어서. 그리고 그게 있었다.
[욕망의 독]“어! 맞다!!”
희희낙락하며 인벤토리에서 [욕망의 독]을 꺼내다, 나는 즉시 문질렀다. 내 욕망을 100% 반영한 마구니를 소환하는 이 항아리라면! 내가 필요로 하는 마구니가 등장할 거야!
아니나 다를까, [욕망의 독]에서 마구니 한 마리가 기어 나왔다.
“조아써!!”
빠악!!
나는 기어 나오는 마구니의 머리통을 후려쳐 박살 냈다. 기습당한 마구니는 미처 항아리 밖으로 나오지도 못한 채 그 자리에 축 늘어졌고, 곧 환상처럼 흩어져 사라졌다. 그리고······.
– 레벨 업!!
레벨이 올랐다.
“바로 이거야!!”
내 욕망! 내가 바라는 것!!
“그건 역시 레벨 업이지!!”
나는 너무 기뻐서 춤을 덩실덩실 추다가, 또 [욕망의 독]을 문질렀다. 마구니가 한 마리 또 기어 나왔고, 나는 빠악!!
어, 와. 전투경험치 많이 주네! 맛있다, 맛있다!!
“후히히히, 후하하하하!!”
나는 항아리를 껴안았다. 이게 지금 내 마누라다. 어화둥둥 내 사랑아!
야, 또 뭐가 기어 나오네?
빠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