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Loser RAW novel - Chapter 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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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 여왕 비토리야나는 악마 함대를 이끌고 변경 차원 그랑 란츠의 외곽에까지 도달해 있었다.
브뤼스만과 사전에 약속한 대로 차원결계는 열려 있었다. 그렇다고 문제가 없었던 건 아니었는데, 열린 개구멍은 너무 작았다. 딱 백작급 셋만 통과시키면 아슬아슬하게 닫힐 것 같은 크기였다.
당연하게도 비토리야나는 이런 상황을 미리 예견하고 있었고, 그래서 대처법도 준비해 놓은 상태였다.
“이걸 사용하면 브뤼스만과의 관계는 끝장이지.”
비토리야나는 고혹적으로 웃었다.
애초에 교단과 만마전의 협정 때문에 악마 전함의 건조는 엄격히 금지되어 있었다. 비토리야나는 그것을 자신의 왕국에서 은밀히 만들었고, 그 숫자는 어느새 함대를 이룰 정도가 되어 있었다. 브뤼스만을 비롯한 그의 계파가 눈감아준 덕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 교단의 영역인 그랑 란츠에 함대를 끌고 와버렸으니, 이게 들키면 브뤼스만은 꽤나 곤란한 상황에 처할지도 모른다.
“바라던 바야.”
비토리야나는 차갑게 내뱉었다. 이진혁은 자신의 먹잇감이었다. 누구를 상대로라도 터럭 하나 내놓고 싶지 않은 극상의 제물. 그것이 설령 브뤼스만이라 하더라도 그녀는 조금도 양보할 마음이 없었다.
아니, 애초에 그 인면독사를 여왕은 줄곧 증오해왔다. 그런데 그런 놈에게 곤란한 상황을 안겨줄 수 있다니. 바라마지 않던 일이 아닌가?
비토리야나는 정면을 향해 팔을 쭉 뻗었다. 일제사격 신호였다.
함대에 소속된 모든 악마 전함의 주포 포구가 일제히 같은 곳을 가리켰다. 포격할 위치와 타이밍은 이미 악마 여왕의 정신파로 전달된 바였다.
크르르르르!
마치 짐승이 울부짖는 것 같은 소리와 함께, 모든 주포가 막대한 마기로 이뤄진 에너지 응집체를 동시에 쏟아내었다.
쿠구구구궁······!
그 위력에 세계가 비명을 질렀다. 그야 그럴 법도 하다. 악마 전함의 주포인 마기 입자포는 본래 이러한 목적을 위해 만들어진 마기 병기니까.
침략! 정복! 약탈!
교단이 두각을 드러내기 전, 만신전과 함께 가장 그 세력이 강성했던 두 거탑 중 하나였던 만마전으로 하여금 광활한 영토를 확보할 수 있게 된 원천이 바로 악마 전함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랑 란츠를 뒤덮고 있던 차원결계가 깨어져 허물어지고 더 이상 악마 함대의 진격을 멈출 수 있는 건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돌입하라.”
그날이 바로 비토리야나의 악마 함대가 그랑 란츠의 하늘을 점거하는 날이었다.
***
“와, 씨. 저게 뭐지?”
아침부터 직감이 찌릿찌릿 시끄럽다 했더니만 생각지도 못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가장 먼저 반응한 건 당연히 내 직감이었지만, 그다음에 반응한 건 세계의 울부짖음이었다. 그리고 하늘이 찢겨져 나가고, 저것들이 하늘을 메웠다.
저것들. 저게 뭔지 모르겠다. 모양만 보면 하늘을 나는 배처럼 보이는데, 재질은 철도 나무도 플라스틱도 아니다. 마치 어떤 생물체의 위장을 억지로 끄집어내 겉과 속이 반대로 되도록 뒤집어놓은 것 같이 보이는 불결하고 혐오스러운 외견을 취하고 있었다.
“악마 전함이로군.”
야코프가 얼굴 표정을 잔뜩 굳힌 채 말했다.
“악마 전함이라고?”
아니, 악마가 전함을? 나는 그런 의미로 한 말이었지만, 야코프는 한 술 더 떴다.
“그래, 저 정도면 함대 규모겠지. 악마 함대야.”
야코프가 익숙하게 말하는 걸 보니 교단에게 있어선 악마가 전함을, 그것도 동시에 다수 운용하는 건 별로 이상한 일은 아닌 것 같았다.
“만마전의 악마 전함은 교단과의 조약으로 건조가 금지된 걸로 아는데······. 세상에, 함대를 이룰 정도로 잔뜩 만들다니. 교단의 감찰관은 대체 뭘 한 거지?”
아니, 내 착각이었다. 이미 전쟁에서 꺼내서 썼고 져서 군축까지 당한 모양이었다. 그리고 야코프의 의문은 그 스스로가 직접 해결했다.
“젠장, 브뤼스만이 수를 썼군! 적에게 힘을 실어주다니, 놈은 대체 무슨 생각이지?”
그런 야코프의 혼잣말에 나는 헛웃음을 터트리지 않을 수 없었다.
“아군을 죽이려고 변경 차원에 던져놓고 통신과 보급을 끊는 놈한테 지금 와서 그런 소릴?”
“······그러고 보니 그랬지. 그 빌어먹을 인면독사 놈!!”
내 말에 퍼뜩 정신을 차린 듯, 야코프는 이를 한 차례 갈고는 즉시 외쳤다.
“전군! 전투준비!!”
야코프의 벼락과도 같은 외침과 동시에 주둔지 전역에 경보음이 울려 퍼졌다. 나를 도와 밭을 일구던 병사들이 나는 듯 뛰어다니며 병장기를 챙겨 장비하고 도열했다.
나라고 멍하니 앉아 있을 순 없지. 아니, 나보다 먼저 저들의 습격을 알아차린 사람은 없다. 나는 이미 준비를 끝내놓은 상태다. 12문의 천자총통이 이미 방열되어 발사 명령만을 기다리고 있고, 항마력 위주로 미리 세팅해 둔 모든 무장을 착용 완료해 둔 상태였다.
“거참, 이 장비들을 또 쓸까 싶었는데 결국 쓰게 되네.”
나와 야코프는 그 동안 술 먹고 놀기만 한 게 아니었다. 서로 간에 교환해야 할 정보는 어느 정도 교환해 둔 상태였다.
그리고 브뤼스만이 만마전과의 연결 고리를 갖고 있는 게 거의 확실하며, 그렇기에 다음 습격에 악마들을 동원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에는 의견을 함께했다.
그래서 나와 우리 일행, 그리고 크루세이더 군단은 이미 악마를 상대로 싸울 준비를 어느 정도 갖춰놓았다.
어느 정도는.
“그런데 저렇게까지 많이 올 줄은 몰랐지.”
야코프도 마찬가지 생각인 모양인지 혀를 찼다.
“솔직히 말해 승산은 별로 높진 않아 보이네.”
“그렇다고 도망갈 수 있나?”
“없지. 각개격파당할 뿐.”
그렇다면야 선택지는 하나뿐이다.
***
악마 여왕 비토리야나는 지상의 시야에 비친 크루세이더 주둔지를 보며 싱그럽게 웃었다.
“후······, 크루세이더 놈들인가. 저놈들도 오래간만에 보는군. 놈들의 손에 얼마나 많은 악마들이 죽어나갔던지.”
그 혼잣말을 곁에서 들으며, 타천사는 오들오들 떨었다. 왜냐하면 비토리야나의 이어진 말에는 한 터럭의 분노도 묻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악마 숫자를 그렇게 줄여주다니, 참으로 선하고 정의로운 놈들 아닌가. 그땐 신세를 많이 졌지. 아하하핫!”
그 웃음소리는 천사의 그것을 연상케 했다. 그러나 정작 그 웃음소릴 듣는 타천사는 가슴이 서늘해지는 느낌밖에 들지 않았다. 그것은 악마 여왕이 이렇게 웃은 후 내릴 명령에 대해 미리 알고 있기 때문일 터였다.
“크루세이더들은 모두 죽여라. 그리고 그 영혼을 수확해 와라!”
달콤한 목소리로 내려진 말살 명령은 별로 크게 울리지도 않았고 멀리 퍼지지도 않았다. 왜냐하면 그 명령은 요식행위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단, 이진혁에게는 상처 하나 입히지 마라.”
정신감응을 통해 여왕의 명령을 받은 악마 군주들이 악마 전함으로부터 출격했다. 휘하의 기사들을 잔뜩 거느린 백작급이 10개체. 그 뒤를 자작급과 남작급이 따랐다. 그 규모는 적어도 10개 군단. 그러나 이조차 악마 함대의 전체 전력의 절반도 채 되지 않는다.
패배할 요소가 없다.
비토리야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쿠콰콰콰쾅!
그녀가 생각하던 것보다 한 타이밍 빠르게 포격음이 들리기 전까진.
***
“이야, 하늘을 다 덮었네. 그냥 막 쏴도 다 맞겠다! 발사!!”
쿠콰콰콰쾅!
내 발사 호령에 맞춰 12문의 천자총통이 불을 뿜었다. 그 사거리는 종래의 무려 2배.
[선수필승][패시브] – 등급 : 희귀(Rare)– 숙련도 : S랭크
– 효과 : 포격시 100%만큼 사거리가 길어진다. 사거리로 인한 피해 감소를 50%만큼 경감한다. 이 포격으로 적이 피해를 입었고, 반격하지 못하는 상태라면 다음 포격으로 인한 피해를 100% 추가로 받는다. 이 효과는 중첩될 수 있다.
포격피해 증가를 중첩시키다니! 이거라면 상대가 아무리 강력한 악마라 하더라도 그 뿔에 금이나마 가게 할 수 있을 것이다.
당연히 발사하는 건 [강화마법포탄 생성]으로 만들어낸 빛 속성 포탄. 여기에 [예의 살]을 겹친다. 원래 [예의 살]은 투사체에 신살의 힘을 담는 능력밖에 없어서 악마를 상대하는 데는 별 도움이 안 될 것 같지만······, 보라!
[예의 살(Missile of Sundowners)] – 등급 : 전설(Legend)– 숙련도 : S랭크
– 효과 : 다음에 발사하는 투사체에 신살의 힘을 담는다. [예의 살]은 스킬에 막히지 않는다.
S랭크를 달고 새로 생긴 옵션이 이거다. 스킬방어무시! 지금 당장 보기엔 신살의 힘보다 이게 더 군침 나오는 옵션이다. 스친 상처라도 입었다면 추가 피해를 입힐 수 있는 [선수필승]과의 시너지가 빛을 발한다!
당연하다는 듯이 [자동재장전]이 발동했고, 바로 다음 포격을 행했다.
“발사!”
쿠콰콰콰쾅! 쿠콰콰콰쾅! 퍼퍼퍼퍼펑!!
[격마의 탄환] – [완전수] 축성을 받은 탄환을 3번 적중시킬 때마다 최대 3배의 추가 피해를 입힐 수 있다. 이 효과는 단일 적을 집중적으로 타격할 때 극대화된다. [선수필승]의 중첩 피해와 [완전수] 효과가 합쳐져, 첫번째와 두 번째 포격보다 훨씬 화려한 폭발이 하늘 저편을 수놓았다. 악마들이 죽어나간다! 약한 놈들부터 터져 나간다!– 레벨 업!
이윽고 그것들은 모두 경험치가 되어, 나를 더욱 강하게 해주었다. 내게 보탬이 되어주었다.
“좋아, 좋아! 하하하핫!!”
포탄 처먹어라! 처먹고 떨어져라! 떨어져서 죽어라! 죽어서 내게 경험치를 바쳐라!!
“발사! 발사, 발사!!”
쿠콰콰콰쾅! 쿠콰콰콰쾅! 쿠콰콰콰쾅! 퍼퍼퍼퍼펑!!
***
“흐흐흣, 크흐흐흐흣!”
비토리야나는 몸을 떨며 기뻐하고 있었다. 그녀에게 이 세상의 것이 아닌 기쁨을 선사하고 있는 것은 그녀와 정신파로 연결된 악마들의 단말마였다. 동족들이 죽어나가는 것을 느낄 때마다, 비토리야나는 극상의 쾌락에 몸부림쳤다.
“역시 나의 사랑! 아니, 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어!!”
단순한 하수인이나 권속뿐만 아니라, 기사 작위를 얻은 악마들도 이진혁의 포격에 의해 죽어나가고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포격에 의한 타격은 커져갔고, 그 가속도는 걷잡을 수 없어 피해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가고 있었다.
“이진혁을 상처 입히지 말라는 명령은 철회한다! 저격마들을 배치해! 응사하라!! 방패마, 앞으로! 스킬이 아니라 마기로 방어막을 쳐라!! 예비대! 출격하라! 잃은 병력의 틈을 메워!!”
여기서 쾌락에 젖어 정신을 놓아버릴 악마였다면, 비토리야나 에르제베트는 여왕의 자리에 오르지 못했을 것이다. 그녀는 빠르게 반성하고 적절한 대책을 내어놓았다.
“거리를 좁히는 데 집착하지 말고 되도록 피해를 적게 입도록 유념하여 전진하라!”
정신파에서 느껴지는 부하들의 신뢰에 비토리야나는 아름다운 미간을 찌푸렸다. 불쾌한 감각이었다. 그러나 전쟁에는 필요한 것이기도 하기에, 비토리야나는 정신파를 끊어버리지는 않았다.
“쏴라!!”
타타타탕! 수만 마리의 저격마들이 동시에 악마탄을 쏴 갈기는 소리가 경쾌하게 들렸다. 이진혁을 노리는 악마탄의 궤적이 하늘에 수를 놓았다.
“고작 이런 걸로 돌아가시진 않을 거라 믿어요, 달링.”
비토리야나가 이진혁을 노려보며 중얼거렸다. 물론 이 말이 휘하에 전달되지 않도록 정신파를 살짝 끊어놓는 건 잊지 않고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