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Loser RAW novel - Chapter 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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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감이 먼저 반응했다. 총탄이 날아드는 소리는 그다음에 들렸다.
“흥!”
나는 미리 저축해놓은 악마에 대한 증오심을 마기로 바꾸어내 전면에 흩뿌렸다. 진한 마기가 안개보다는 스모그에 더 가깝게, 찐득찐득하게 뭉쳐 벽을 이루었다.
위기감이 위장을 자글자글 태운다. 기분 좋은 자극이다. 그래, 아직 기분이 좋을 뿐이다. 이런 건 진짜 위기가 아니다. 통제된 위험은 즐거움에 지나지 않는다.
저것들이 완전히 접근하기 전까지, 내게 위험한 일이란 없다!
피융!
악마의 탄환 하나가 내 귀를 스치고 지나가 귓불을 날려 버렸지만 상관없다. 애초에 치명상을 입힐 만한 궤도에만 마기를 집중시켰으니까. 그 외의 궤도로 날아오는 탄환은 몸으로 받아도 큰 문제가 없다.
마기의 스모그를 펼침으로써 내 시야도 완전히 가려졌지만 그런 거야 아무래도 좋다.
“발사!”
발사된 직후, 열세 발의 포탄이 모두 정확히 적들을 향해 떨어졌음을 직감했다. 그랬다. 직감의 힘이다. 당연하다는 듯 발동된 [자동재장전]. 쉴 새 없이 쏴붙여야 한다.
발사, 발사.
콰콰콰콰쾅! 콰콰콰콰쾅! 불을 뿜는 천자총통이 요란하다. 귀가 멀어버릴 것 같으나 내 귀는 쉽게 상하지 않는다.
알고 있다. 우위를 점할 수 있는 건 오직 거리가 벌어져 있을 때뿐이다. 거리가 좁혀지면 그 뒤부터는 압도적인 불리함만이 남는다. 그 전까지 최대한 적의 수를 줄여야 한다.
사실을 말하자면, 상황은 절망적이었다. 발사.
콰콰콰콰쾅!
내 뒤에 선 크루세이더들의 숨결이 거칠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전투가 다가옴을 그들도 느끼고 있다. 근접전은 그들의 몫이다. 그리고 그들이 많이는 살아남을 수 없으리라.
피융! 또 한 발의 총탄이 내 왼팔 상박을 꿰뚫고 지나갔다. 이런 거 맞는다고 죽지 않는다. 그러나 마기의 스모그가 막아내는 총탄의 수가 줄어들고 있음은 확연했다. 발사.
발사!
차차차창! 크루세이더들이 칼을 뽑아 드는 소리가 등 뒤에서 들렸다. 야코프가 뭐라고 소리를 질렀고, 크루세이더들도 그에 답해 뭐라고 소리를 질렀다. 쿵쿵쿵! 방패를 땅에 구르는 소리. 이런 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있을 것이다. 적어도 조금이라도 덜 두려울 테니까.
죽음이. 발사!!
나도 진리의 검을 쥔 오른손에 힘을 주었다.
[필사즉생]그래, 상황은 이미 불리해져 있었다. 알고 있다.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내가 해야 할 일이 바뀌지는 않는다. 발사. 그리고 발사.
타앙!
“발, 카악!”
총탄이 목에 꽂혀 발음이 이상하게 나가고 말았다. 하핫, 스타일 다 구기는군. 물론 난 이 정도로 죽진 않는다.
“이진혀어어억!!”
야코프의 목소리가 들렸다. 사격을 멈추라는 신호다. 이 신호가 뜻하는 바는 매우 명백했다.
“하악.”
목을 꿰뚫은 총탄 때문에 발음이 샜다. 나는 손을 휘둘러 매캐한 포연을 치웠다. 어느새 적은 코앞이었다. 악마들이 몰려들어와 있었다. 거 참 반갑군.
백병전의 시작이다.
***
이진혁은 모르고 있다.
야코프는 그의 뒷모습을 보면서 이빨을 드러내어 보이며 웃었다. 턱에 힘을 주지 않으면 이가 따다닥 소릴 내며 부딪힐 것 같았기에, 그는 이를 악물 수밖에 없었다. 그 탓에 기껏 지은 미소가 부자연스럽게 되어버리고 말았다.
크게 신경 쓸 일은 아니다.
식은땀이 등을 흠뻑 적신다 한들, 손가락 끝이 달달 떨린다 한들 별로 큰일은 아니다. 더 정확히 하자면, 이제부터는 큰일이 아니게 되었다.
광휘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하핫.”
야코프는 상쾌한 웃음을 터트렸다. 절망적인 전투를 앞에 두고, 암울함과 긴장에 사로잡혀 있던 게 마치 10년 전의 일 같았다.
‘오라다.’
이진혁에게서 촉발된 황금빛 오라는 어느새 군단 전체를 뒤덮고 있었다.
이진혁에게 이런 능력이 있을 줄은 몰랐다. 아마 이진혁 본인도 모르거나 잊고 있거나 할 터다. 그러나 그가 지닌 힘은 분명 크루세이더 군단 전원에게 전달되고 있었다.
[충무] 오라 : 전투력과 사기가 상승하고, 즉사를 무효화한다.이진혁의 [천자총통]의 필사즉생이 발동하면서, 그가 주변에 흩뿌린 버프의 효과가 이것이었다. 상태창의 짧은 한 줄이지만, 그 효과는 극적이었다.
군단장인 야코프는 휘하 병력의 변화를 일목요연하게 캐치할 수 있었다. 칼을 빼어 들고 방패를 땅에 구르던 병사들의 움직임이 멈췄다.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용기를 가장할 필요가 없다.
진짜 용기가 샘솟으니까!
“이진혀어어어어어어억!!”
야코프는 목이 터져라 외쳤다. 사전에 조율해 둔 신호였으나, 조금 더 크게 내었다. 그러지 않으면 저 끊임없는 포성에 자신의 목소리가 묻혀 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진혁이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나 그것도 일순에 지나지 않았다.
포격이 멈췄다. 신호는 전달되었다.
백병전의 시간, 크루세이더의 시간이다.
“돌! 겨어어어어어억!!”
와아아아아아아!! 고막을 터트려 버릴 것 같은 노호성이 전장을 뒤덮었다. 황금빛 오라에 뒤덮인 정의의 군대가 악마의 무리를 향해, 터럭만큼의 공포조차도 드러내지 않고 나아갔다.
콰가가가가각!!
칼과 뿔이 부딪히는 소리가 파괴적으로 울려 퍼졌다.
“아아아아!”
그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다름 아닌 이진혁이었다. 그동안 그렇게 열심히 포를 쐈으면 이제 좀 뒤로 물러날 만한데도, 놈은 군단의 선봉장이 되어 불꽃의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이진혁의 머리 위의 [진은 헤일로]는 신성한 빛을 찬란하게 내뿜고 있었다. 마치 전설 속의 대천사장, 우리엘과도 같은 모습이었다.
“하핫.”
교단의 적이라고 브리핑해 온 존재가 교단의 전설적인 존재처럼 보이다니. 이것도 아이러니한 일이다.
“우리도 지고만 있을 순 없지.”
야코프는 씨익 웃었다. 숨을 크게 한 번 빨아들인 후, 그는 큰 소리로 호령했다.
“전군! 힘을 하나로 모아! 악적을 베는 검이 되리니!!”
그 호령으로 군단 스킬이 발동했다.
[군단의 검] – 등급 : 군단, 유일(Corps, Unique)– 숙련도 : A랭크
– 효과 : 사기를 소모한다. [군단의 검]을 생성한다. 소모한 사기와 군단의 훈련도, 레벨 총합에 따라 효과가 달라진다.
크루세이더 12군단의 모든 구성원은 모두 크루세이더 직업 최고레벨을 달성한 상태였다. 좀처럼 사기가 떨어지는 일도 없었고, 훈련도도 최상의 상태를 유지했다. 그렇기에 야코프가 [군단의 검]을 사용할 때마다 그 검의 크기와 위력은 일정한 편이었다.
그러나 이번에 생성된 [군단의 검]은 그 어느 때보다도 거대했고, 강대했고, 찬란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이진혁이 주재한 회식에서 레벨 상한을 돌파했고, [충무] 오라의 효과로 그 어느 때보다 사기가 높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 검을 휘두를 자는 정해져 있었다.
“이진혀어어어어어억!!”
야코프는 그의 이름을 외쳤다.
“베어라아아아아아앗!!”
검을 벨 자의 이름을.
***
나는 오른손에 든 진리의 검에 태어나서 처음 보는 거대한 기운이 맺히는 것을 느꼈다.
[군단의 검]내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는 간파만 켜도 알 수 있는 일이었다. 그리고 이제부터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직감적으로 깨달을 수 있었다. 그것은 대단히 직관적이고 당연한 행위였다.
“벤다!”
나는 거대한 군단의 검을 휘저었다. 군단의 검이 닿은 곳마다 악마들이 폭발하듯 터져 나가고 있었다. 마치 풍선을 베는 것처럼. 본래 베는 목적의 검일 터인데, 깃들어 있는 파괴력이 너무 세다 보니 칼날이 악마들의 살갗을 파고들기도 전에 터트려 버리는 탓이었다.
– 레벨 업!
일검에 벤 악마들이 워낙 많다 보니 바로 레벨 업을 해버리고 말았다. 물론 지금의 나는 크루세이더들과 경험치 보상을 공유하고 있었지만, 저들은 레벨한계에 도달했기 때문에 내게 모든 경험치가 몰리는 것 같았다.
약간 잃은 생명력과 체력, 그리고 포를 쏘느라 대량으로 소모한 마력이 다시 완전히 차올랐다. 조금 더 대담하게 움직여도 될 듯했다.
“이야아아아압!”
나는 앞으로 크게 치고나가며 칼을 옆으로 휘둘렀다. 원래대로라면 주변의 크루세이더들 때문에 이런 큰 동작은 무리가 있었으나 전면에 크게 나섰기에 가능해졌다. 더 많은 악마들이 터져 나갔다.
카앙!
그런데 검이 막혔다. 검을 막아낸 악마가 날 노려보며 외쳤다.
“네놈! 이 악마 군주······.”
“시끄럽다!”
뭐라고 자기소개를 하려던 것 같아서 끝까지 들어주지 않고 그냥 놈을 향해 [바즈라다라의 바즈라]를 집어 던졌다. 놈은 바즈라를 입으로 받고선 비명도 없이 그대로 펑 터져 버렸다.
[항마의 칼날] 풀 스택에 [항마의 뇌명]을 정통으로 얻어맞았으니, 막았다곤 해도 이미 [군주의 검]을 받아내느라 마기를 소모한 남작급이 버텨낼 재간이 없었다.– 레벨 업!
“제길······!”
남작급을 베어내고 레벨 업을 했지만, 나는 순수하게 기뻐할 순 없었다.
남작급을 [군단의 검] 일검으로 처리하지 못했다는 건 이 싸움이 그만큼 쉽게 풀리지 않으리라는 전조와도 같았기 때문이다. 적진에는 남작급만 해도 우글거리는 데다, 곧 자작급도 전장에 합류할 것이다.
바즈라가 다시 내 손으로 돌아왔다. 나는 바즈라에도 신성을 잔뜩 불어넣어 [항마의 칼날]을 길게 뽑아내었다. 이런 식의 활용은 신성 소모가 심해 피하고 싶었지만 일이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다.
“끄아아아아압!!”
나는 뱃심을 꽉 주고 두 자루의 칼을 휘둘러 대었다. 그러자 이제 남작급들도 감히 내 검을 받아낼 생각을 못하고 물러나기 시작했다.
좋아, 적의 예봉을 꺾고 진출을 막았다.
“와아아아아아!!”
크루세이더들도 내 활약에 힘입어 사기가 오른 듯, 함정을 질러대었다. 그러자 [군단의 검]이 더 커지고 예리해지는 게 아닌가!
“아아아아압!”
기회다! 나는 앞으로 나서서 다시 한번 군단의 검을 크게 휘둘러 악마 남작 앞을 막아서는 악마기사들의 투구를 깨부수고 그 갑옷을 헤집어 죽여 버렸다.
“아아아악!”
“으아악, 괴물이다!”
적들의 비명, 단말마, 기겁한 외침은 내 머리를 뜨겁게 달궜다.
“괴물은 너희들이겠지!”
나는 크게 소리 지르며 악마 군주들의 권속들을 쉴 새 없이 베고 찌르고 죽였다. 자신들이 도망치기 위해 권속들을 앞으로 내밀고, 권속들은 주인의 명령을 거부하지 못하고 내 칼에 목을 내밀 수밖에 없었다.
권속들을 아무리 죽여봐야 악마가 죽진 않지만, 그 마기를 줄이고 힘을 쇠하게 하는 데는 효과가 있다.
게다가 전투 경험치! 인류연맹의 퀘스트 보상으로 추가 경험치! 이제 와선 덤인 느낌이 강하긴 하지만 그래도 사람을 홀리듯 반짝이는 금화!
설령 이게 적들의 술수라 한들 내가 거부할 이유는 없었다.
“하아아아압!”
나는 마력을 끌어 올려 빛 속성을 덮어씌우고 전신으로 발출했다. 그러자 나 자신이 휘황찬란하게 빛났다.
악마 군주 본인이라면 모를까, 고작 권속들이 이 빛을 받고도 무사할 리는 없었다.
“갸아아아악!!”
놈들의 눈, 혹은 눈에 해당하는 부위가 불타오른다! 그렇게 빈틈을 노출해서야 썰어달라는 말이나 다름없다.
“썰어 죽인다!”
나는 순간적이나마 무방비해진 놈들을 향해 요리 재료를 채 써는 요리사처럼 두 자루의 칼을 휘둘러 대었다.
맛있다! 경험치!
덤으로 금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