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Loser RAW novel - Chapter 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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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다 보니, 나는 내 성장에만 집중하지 않고 내 다른 일행에게도 신경을 써줄 여유를 얻게 되었다.
우선 나는 케이와 테스카를 내 권속으로 임명했다.
아직 내가 정식으로 신이 된 게 아니라 내 하위 신으로 받아들일 수는 없었지만, 그나마 준신급이 되어 권속 정도는 삼을 수 있게 되었다. 이진혁교의 성장과 내 신성, 영혼의 격의 상승이 맞물려 가능해진 일이다.
내 권속이 된 두 옛 신은 내 신도들로 인해 생성되는 신성과 내 권능의 일부를 나눠 쓰는 대신 이진혁교의 양적인, 그리고 질적인 성장에 공헌하게 된다.
말하자면 이건 사업이다. 케이와 테스카에게 어느 정도 투자를 해서, 그들이 얻는 수익금을 내가 얻어가는 형식이다. 아니, 내가 고용주라고 하는 게 더 나은 비유겠군. 두 권속을 바지사장으로 두고 사업체를 굴려가는 형식이랄까. 이것도 조금 다른가.
뭐, 아무튼 그렇다.
가능하면 안젤라와 키르드도 권속으로 두고 싶었지만, 이 둘에게는 권속이 될 자격이 없었다. 가진 신성이 없으니 어쩔 수 없지. 대신 사도로 임명하는 건 가능했는데, 이러면 내 신성을 나눠 받아서 신화급 스킬을 쓰는 게 가능해진다.
사도의 경우는 권속과 달리 용병 같은 존재다. 황금을 지불하는 대신 신성을 지불하고 전력으로 삼는 거지. 언제든 계약이 끊기는 용병과 달리 계속해서 내 곁에 있고 성장도 하는 걸 생각하면 용병보단 기사에 가깝겠지만, 가족 같은 느낌이다 보니 그거하고도 좀 다르긴 하다.
루시피엘라와 비토리야나 같은 경우는 내가 정식으로 신이 된 다음에나 이들을 거둬들일 수 있게 될 것이다. 정식으로 신이 된 다음이라니, 너무 먼 이야기기도 하군. 가능이나 할지조차 모르겠고.
이 둘의 숙원은 타천사와 악마의 숙명에서 벗어나는 것이지만, 딱히 내가 그 숙원을 들어줄 의무 같은 건 없다. 그래도 당장 전력이 되니 그냥 동행하기로 했다.
그리고 이진혁교를 이 세계, 그랑 란츠가 후원해 주기로 했다.
이진혁교를 믿는 것만으로 이 세계에서의 생활이 조금 더 유리해지고, 더불어 세계의 은혜를 입는 이진혁교 교도가 생성하는 신앙의 질과 양도 높아지고 많아지게 된다.
물론 이 후원이란 걸 받기 위해 나는 꽤 많은 [세계의 힘 파편]을 지불해야 했지만, 이 세계에서나 쓸모 있는 파편을 써서 더 많은 신성을 얻을 수 있다면 이득이라고 생각하고 내린 결정이다.
그렇다고 후원받는 데에만 파편을 다 쓰지는 않았다. 아니, 오히려 비중으로 따지자면 후원받느라 쓴 파편의 양은 가벼운 축에 속한다.
애초에 내가 세계 퀘스트를 열심히 수행하게 된 계기가 월드 스킬이었다. 구세주 레벨 10을 찍고 벼르던 월드 스킬을 얻은 후, 그 스킬의 수련에 파편을 모조리 쏟아 부었다.
그 결과가 이거였다.
[대지의 힘(Force of Earth)] – 등급 : 세계 상위(World Elite)– 숙련도 : S랭크
– 효과 : 대지의 힘을 다룰 수 있다.
스킬 포인트 대신 파편만 소모해 숙련도를 올릴 수 있는 월드 스킬. 그중에서도 상위 스킬이다. 스킬 설명이 상당히 부실한 편이지만 이제까지도 그랬듯 써보면 다 답이 나온다.
그 답은 놀랍다. 땅을 파는 것도 가능하고 융기시키는 것도 가능하며, 야트막한 언덕부터 나아가서는 산을 세우는 것도 가능하고, 땅을 갈라 크레바스를 만드는 것도 가능하다. 그렇게 해서 용천수를 뿜어내게 만드는 것도 용암이 분출되게 하는 것도 가능하다.
물론 연습 랭크에선 내가 이런 걸 얻었냐며 절망할 정도로 약한 스킬이었지만, 꾸준히 수련한 결과 나는 완전히 망가져 버렸던 킬리만자로 비슷한 산을 다시 세우는 데도 성공했다.
더욱이 이 스킬에 드는 소모값은 없다. 신성이나 마력은 물론이고 체력조차 쓰지 않는다! 게다가 쿨 타임도 없다. 아니, 정확하게 따지면 있긴 있는데······. 내가 대지의 힘을 끌어낸 해당 지역의 지력을 소모하고, 그 지력이 다시 채워지는 데 시간이 들긴 한다. 말하자면 세계가 소모값을 대신 내준다고나 할까.
아무튼 [대지의 힘] A랭크를 찍고 나서야 나는 이 스킬이 과연 세계 상위 급의 스킬이 맞다는 것을 실감했고, S랭크를 찍고 나선 이 스킬이 세상을 갈아엎을 희대의 스킬이었음을 절감했다. 문자 그대로, 괜히 월드 스킬이 아닌 셈이다.
그런데 이걸로 끝이 아니다. 처음 얻었던 [대지의 힘]이 별로라고 생각했으면서도 그 후로도 열심히 수련한 이유는 또 따로 있었다.
– 동일계열 스킬을 2개 이상 소유하고 있습니다.
– [대지의 힘], [농업의 대가]
– 동일계열 스킬은 서로 합성시킬 수 있습니다. 합성하시겠습니까?
[주의!] 합성에 사용한 스킬은 다시 얻을 수 없습니다.
맨 처음 대지의 힘을 얻자마자, 내가 본 시스템 메시지가 이거였다. 당시에는 농부 레벨만 40을 찍어서 [농업의 대가]만 확보한 상태였었고, 심마니는 아직 40레벨이 아니었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나는 심마니 쪽을 열심히 파서 이쪽도 40레벨을 찍었다.
그 결과, 이렇게 되었다.
– 동일계열 스킬을 3개 이상 소유하고 있습니다.
– [대지의 힘], [농업의 대가], [약초채집의 대가]
– 동일계열 스킬은 서로 융합시킬 수 있습니다. 융합하시겠습니까?
[주의!] 융합에 사용한 스킬은 다시 얻을 수 없습니다.
두근거리지 않는가? 대체 이것들을 융합시키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나는 두근거린다. 그래서 스킬 융합의 결과를 최대한 끌어올리기 위해 [대지의 힘] 수련에 힘을 쏟아 S랭크까지 찍은 거였다.
나는 손가락을 튕겨 행운 반지에 공명을 일으켰다. 그리고 바로 융합에 돌입했다. 융합시킨 결과 값은 이렇게 나왔다.
– 스킬 융합에 성공했습니다.
– 세 스킬이 융합되었지만, 하나로 합쳐지는 대신 둘로 나눠집니다.
– 스킬 분할에 성공했습니다.
– 숙련도 : S랭크
– 효과 : 풍요로운 대지의 힘을 다룰 수 있다.
세계 상위급의 스킬이 세계 정상급으로 올라섰다. 그러면서 ‘풍요로운’이라는 접두어가 붙었는데, 뭐가 바뀐 거지? 나는 즉시 스킬을 활성화시켰다. 그러자 이 스킬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나는 금방 알 수 있게 되었다.
일단 스킬 사용에 필요한 지력이 극적으로 줄어서 같은 곳의 땅을 대상으로도 세 번까지나 스킬을 쓸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갈아엎은 흙을 보니 마른 땅이 기름져져 있었다. 혹시나 싶어서 콩을 심어보니 바로 싹이 나왔다.
이건 마치 생명 속성의 마력을 퍼부은 것 같잖아? 이걸 노 코스트로 해결하다니!
– 숙련도 : S랭크
– 효과 : 뿌린 대로 거둔다는 말이 있지만, 이 신은 자신이 뿌리지 않은 것도 거둔다.
아무래도 세계 상위급의 스킬은 신화급을 초월한 무언가인 모양이다. 대가급의 스킬을 하나로 묶어 신화급으로 올려준 걸 보니 말이다. [반환의 권능]이 [반격의 대가]와 합성해서 스킬 진화가 일어났을 때와 비슷한 결과물이다.
[수확의 신]이야 [반격의 신]처럼 그냥 직업 스킬들을 한데 묶어놓은 거겠지, 라고 생각했지만 그게 아니었다.별 생각 없이 방금 전에 [풍요로운 대지의 힘]을 사용했던 땅에 심었던 콩을 잡아 뽑자, 원래 풋콩이었던 콩들이 완전히 여물어 버렸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수확의 신] 스킬은 기존의 농부 스킬과 심마니 스킬을 모아놓은 것으로 끝난 게 아니라, ‘수확’이라는 행위 자체에도 영향을 미치는 새로운 스킬이 된 것 같았다.
“이거야 원, 풋콩을 안주로 삼으려고 했는데 이래서야.”
나는 방금 전에 잡아 뽑은 콩을 내려다보며 혼잣말을 했다. 하지만 생각과 다른 일이 일어났음에도 나는 혀를 찰 수는 없었다. 어떤 가설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풍요로운 대지의 힘]과 [수확의 신], 이 두 스킬이 함께 힘을 발휘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내가 미친 생각을 하는 걸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인벤토리 한 구석에 오래 묻어놓았던 장비 한 벌을 꺼내 들었다.
이 장비의 이름은 [헬리펀트의 뿔 라켓]. [천자총통]을 얻은 뒤에 쓸 일이 없었던 반격가 전용 무기다. 내구도도 거의 다 닳아 상태는 엉망이었지만, 이것도 추억이다 싶어 인벤토리 한 구석에 그냥 처박아두었던 옛 장비.
이걸 지금 꺼내 든 건 내가 방금 떠올린 미친 가설을 증명하기 위해서였다.
나는 [헬리펀트의 뿔 라켓]을 땅에 파묻었다. 그리고 라켓이 묻힌 땅에 [풍요로운 대지의 힘]을 퍼부었다. 뿌득뿌득, 하고 대지의 힘이 모여드는 것이 느껴졌다.
잠시 기다린 후, 이윽고 나는 흙 속에 손을 푹 파묻었다. 그리고 마치 칡뿌리를 캐듯 묻힌 라켓을 뽑아 올렸다.
[수확의 신] 스킬을 써서 말이다.그렇다, 이 또한 ‘수확’이다. 그러니 안 통할 리가 없지 않은가?
[축복받은 헬리펀트 뿔 라켓] – 분류 : 무기– 등급 : 고유(Unique)
– 내구도 :1500/1500
– 옵션 : 공격력 +110, 위엄 +20, 매력 +20
– 설명 : 헬리펀트 뿔을 재료로 만든 매우 아름답고 멋진 라켓을 풍요로운 땅에서 수확의 신이 직접 수확해 낸 결과물.
“통했다!”
안 통할 리가 없다는 건 거짓말이다. 그냥 혹시나 해서 해본 거였는데, 진짜 되다니!
“와하하하하하!!”
난 길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야 그럴 만도 했다. ‘축복받은’이라는 접두어가 붙으며 원래 슈퍼 레어급이었던 무기가 유니크급으로 오르고, 내구도와 옵션이 모두 10배로 늘어났다. 더군다나 바닥에 가깝게 떨어져 있던 내구도도 완전히 회복되어 있었다.
이럴 때 안 웃으면 대체 언제 웃으란 거야? 지금 웃어야 했다.
“와하하하하하!!”
***
그렇게 해서 나는 아이템 강화 능력을 손에 넣었다.
정확히는 ‘축복받은’이라는 접두어를 붙이는 능력이었다. 신기하게도 ‘축복받은’이라는 접두어를 붙이는 것만으로 아이템의 등급이 오르고 옵션도 강화되었다.
하지만 이 능력도 한계가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한계가 아닌가. 한계였다면 [한계돌파]로 뚫어버릴 수 있을 텐데, 그런 게 아니었으니.
높은 등급의 아이템을 강화하는 데는 낮은 등급의 아이템을 강화할 때보다 더 많은 지력을 소모하고, 더 많은 시간이 걸리고, 옵션의 강화 정도가 더 낮았다.
희귀 등급인 [헬리펀트 뿔 라켓]은 그냥 적당한 흙에 파묻고 바로 꺼내도 10배의 옵션 강화가 이뤄졌지만, 더 높은 등급의 아이템은 흙을 갈아가며 지력을 추가해 줘야 했다. 진짜 농사짓듯이 말이다.
더불어 이미 ‘축복받은’ 접두어가 붙은 아이템을 한 번 더 파묻고 수확해도 ‘축복받은’을 하나 더 추가로 붙일 수 없다는 것도 아쉬운 점······, 이라고 하면 내가 너무 양심 없는 것처럼 보이겠지? 하지만 아쉬운 건 아쉬운 거다. 아쉬운 점 맞다!
그렇다곤 해도 내가 월드 스킬 합성 하나로 대박을 터트린 것 하나만큼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원래대로라면 슬슬 퇴역을 고려해야 될 아이템들을 대거 강화해서 내 전력상승을 이룩할 수 있었으니까.
그런데 내가 얻은 건 이게 전부가 아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