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Loser RAW novel - Chapter 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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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나 자신의 스킬을 가다듬고, 일행들의 전력을 가다듬고, 전함에 충분한 보급물자를 싣고, 이런저런 준비를 다 마치기까지 약 한 달.
= 전황은 만마전 쪽에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어요. 아직까지는 교단도 승리를 확신하는 수준은 아니지만요.
크리스티나가 내게 보고를 올렸다. 물론 레벨 업 마스터를 통해서다. 그 내용을 전달받고도 내 표정은 시큰둥할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뭐야, 전에 물어봤을 때랑 똑같잖아?”
= 그야 전쟁은 주식 같은 게 아닌 걸요?
인류연맹의 주식도 지구에서의 주식처럼 스펙터클한가 보지? 나는 그렇게 묻지는 않았다. 하긴 그렇다. 전면전으로 모든 화력을 쏟아붓는 그 타이밍 전까지 전세에 큰 변화가 생길 리는 없었다.
시큰둥하게 대답하긴 했지만, 내겐 좋은 신호다. 그러므로 나는 크리스티나에게 선언했다.
“그럼 출격한다.”
= 네. 이미 하원은 물론이고 상원에서의 허가도 받아뒀어요. 물론 단독작전권을 이양받으신 대영웅님께서 출전하신다면 허가의 여부는 그리 중요하지는 않은 일이지만······.
“그래도 할 건 제대로 해둬야지.”
사실 이건 살짝 공작을 걸어둔 거였다.
인류연맹 내부에 교단의 첩자가 있을 게 빤하다시피 한 상황이니만큼, 내 출전 시기를 연맹에 흘림으로써 그로 인한 이득을 보려는 것이다. 원래 있는 것을 없다고 하는 것보다 그거랑 다른 게 있다고 하는 것이 속는 입장에서는 더 믿기 쉬운 법이니까.
이게 얼마나 큰 효과를 거둘 건지는 솔직히 모르겠다. 내 직감에도 별 신호가 없고. 하지만 안 하는 거보다야 낫겠지.
자, 이걸로 모든 준비가 끝났다. 이제 진짜 출정이다!
***
“우주다!”
우주였다. 내가 기억하는 바로 그 우주였다. 아니, 정확히는 내가 교육받은 우주라고 해야겠구나. 지구 시절에도 우주에 대한 건 교과서에서나 봤지, 실제로 우주에 나가본 건 아니니 말이다. 물론 인터넷으로도 좀 보긴 했지만 그런 건 봤다고 할 수 없지.
아무튼 우주였다.
새까맸다. 무한한 어둠이 벽처럼 버티고 선 가운데 별들이 빛나고 있었고, 바로 뒤에는 우리가 방금 떠나온 그랑 란츠가 지구처럼 커다랗고 둥글고 달처럼 빛나고 있었다. 우리가 우주에 나왔으니, 달처럼 태양 빛을 받아 빛나고 있는 모습을 볼 수도 있게 된 거였다.
“이거 꽤 흥분되는데?”
지구에 있을 적에 우주는 인류에게 있어 미답의 영역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주요 선진국들이 위성을 띄우고 우주정거장을 만들어 오고 가기도 하고 달에도 발자국을 내봤다지만, 솔직히 말해 대다수의 인류에게는 별로 피부에 와 닿지 않는 이야기일 뿐이었다.
그런데 지금 내가 우주에 있다.
이 고양감은 꽤 대단했다. 존재로서 무언가를 초월해 버린 감각이라고 해야 하나? 마력을 얻고 신성을 얻고 이미 평범한 인간에서 꽤 멀어진 존재이지만, 그래도 나는 여전히 나이기에 별 실감이 없었는데. 정작 우주에 나와 보니 내가 초월자가 된 것 같은 기분이 확 들었다.
비록 그랑 란츠가 지구는 아니지만, 지금까지 내가 숨 쉬고 존재하던 세계를 발밑에 두고 바라본다는 건 대단한 경험이었다.
“선배는 이 공간을 우주라 부르는군요.”
안젤라가 말했다.
“응? 그럼 너희는 뭐라고 불러?”
“그냥 공간이라고 불러요. 검은 공간이라고도 하고, 빈 처라고도 부르죠.”
“그렇구나.”
명칭이야 어찌 됐건 상관없다.
나는 지금 우주에 있었다!
그러고 보니 대기권 돌파 같은 건 옛날 SF 만화에 나오는 것처럼 자극적이진 않았다. 뭔가 안전벨트를 매고 쿠구구구 하는 진동을 견딘다거나 그런 일은 없었다. 그냥 악마 전함의 고도를 올리면 됐다. 로망 같은 거 없는 스킬의 세계가 빚어낸 참극이었다.
“서방님, 이제 어디로 가실 건가요?”
자연스럽게 악마 함대의 조타수를 맡게 된 비토리야나가 내게 물었다. 그 질문에, 나는 한 번 씨익 웃어 보였다.
“우리는 만마전으로 간다.”
“네! 흐읍!”
이제는 익숙해졌을 때도 됐을 텐데, 비토리야나는 여전히 내 명령을 들을 때마다 저런 요상한 신음소릴 낸다. 그녀에겐 역치란 게 없는 걸까? 뭐 아무렴 어때.
“만마전이요?”
그렇게 질문한 건 안젤라였다. 이제까지 그녀도 내가 인류연맹과 연락하는 걸 보았다. 그때만 해도 나는 전함을 몰고 전선에 바로 돌입할 것처럼 이야기를 했었더랬지. 그때와는 달리 갑자기 만마전 이야기를 꺼내니, 그녀로서도 고개를 갸웃거릴 만도 했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인류연맹에 숨어든 교단과 만마전의 끄나풀을 속이기 위한 조치였다. 적을 속이려면 아군부터 속이라는 지구의 격언이 있다. 나는 그 격언을 이번에 실천했다. 그래서 나는 우주에 나와서야 일행에게 진실을 털어놓았다.
“우리는 이제부터 빈집털이를 하러 갈 거야.”
“빈집털이요?”
“그래.”
나는 내 사고의 흐름을 재연해 주었다.
“교단이 만마전보다 세잖아?”
“그쵸?”
“그러니까 만마전이 교단과 대결하려면 전력을 다해야겠지?”
“그렇죠?”
“그럼 전선에 거의 대부분의 전력을 집결시킬 수밖에 없잖아?”
“그렇지요?”
“그럼 본진이 텅텅 비어 있겠지?”
안젤라는 이번에는 대꾸를 하지 않았다. 그 대신 날 멀거니 보고 있었다. 나는 그런 안젤라에게 이렇게 선언했다.
“그 텅 빈 본진에 남은 악마들을 우리가 쓸어 먹을 거야.”
잘 먹겠습니다.
“역시 서방님이세요!”
자기 동족들을 쓸어 먹겠다고 하는데, 비토리야나는 박수까지 치며 좋아했다. 하긴 악마들이야 서로 먹고 먹히는 거에 익숙하니 당연한 반응이라고 할 수 있겠지.
“그, 그럼 교단은요?”
“응?”
“지금의 세력구도로 볼 땐 우리가 만마전에 힘을 실어줘야 균형이 맞는 거 아니었어요?”
“맞아, 그렇지.”
나는 그걸 부정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우린 너무 약해. 세력도 적고. 만마전에 힘을 실어준다고 하더라도 별 의미가 없을 정도지. 균형을 맞추려면 우리가 좀 더 강할 필요가 있어. 그래서 생각해 봤는데······.”
“네.”
“먼저 그림자 용병을 왕창 고용하는 방법이 있어. 일전에 기여도를 잔뜩 끌어왔으니, 그걸 써서 그림자 용병을 한 만 명쯤 고용할까 생각 중이야.”
만 명 정도 고용하겠다는 건 허세 같은 게 아니다. 비토리야나가 끌고 온 악마들을 잔뜩 죽이고 얻은 퀘스트 보상은 실로 막대해서, 그 정도쯤은 하고도 남았다. 괜히 인류연맹이 내 보상 주느라 허리 부러지겠다며 징징거리는 게 아니다.
“하지만 그 정도론 부족해.”
알고 있다. 그림자 용병은 큰 도움은 안 된다. 자의적인 판단도 못할뿐더러 기록된 패턴으로밖에 움직이지 못한다. 패턴을 파해 당하면 그걸로 끝이다. 그래도 수가 모이면 좀 달라지겠지, 라고 생각하는 것도 지나치게 긍정적인 생각이다.
“그 정도 갖고는 만마전에 붙어도 교단은 못 이겨. 만마전과 함께 쓰러질 뿐이야.”
더군다나 상대는 악마들이다. 그들은 협력을 자청한 우리의 혼을 탐하려 들어도 이상하지 않다. 등을 보여도 되는 상대가 아니다.
신경을 곤두세운 채 악마들을 견제하며 그것들과 같이 교단을 상대하는 건 말만 쉽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악마들을 침으로써 내가 얻을 수 있는 게 있잖아.”
[축복받은 진리의 검]과 [축복받은 바즈라다라의 바즈라]에도 악마 처치 시 신성회복과 신성축적의 옵션이 붙어 있다. 그리고 악마들은 강력한 적들이니, 많은 경험치와 강적 수련치의 상승을 기대할 수 있다.후방에 남은 악마들을 쓸어 먹으며 레벨 업도 하고 새로 얻은 스킬들의 수련치도 올리고 신성도 챙기는 게 낫다.
“소수정예를 노리시는 건가요? 하지만 그 정도로는······.”
“맞아, 이걸로도 교단 전체를 적으로 돌려 살아남기는 불가능에 가깝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교단 전체를 적으로 돌리지 않아도 되잖아?”
나는 야코프 체렌코프가 이끄는 크루세이더 군단과 접촉하게 되면서 알게 되었다. 교단의 모든 이들이 나를 적대하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그리고 신 가나안 계획을 부끄럽게 여기는 이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애초에 이 전쟁을 획책한 브뤼스만은 그것을 위해 크루세이더 군단 하나를 희생시켜야 했다. 반대로 받아들이자면, 그 정도의 희생 없이는 교단을 전쟁으로 몰아넣을 수 없다는 소리이기도 했다.
인류연맹도 한 덩어리로 뭉친 집단이 아니듯이, 교단도 마찬가지다. 브뤼스만의 행동에 반대하는 여론도 분명 존재하리라. 그러나 그들도 교단이고, 내가 교단의 적인 한 절대 내 편이 되어주지는 않으리라.
그들을 우리 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교단을 상대로 전쟁을 일으킨다는 단순한 결정을 내려서는 안 된다. 교단 전체가 나를 적대시하는 결과로 이어질 테니까.
내가 상대해야 하는 건 교단 전체가 아니라 브뤼스만 일파다. 신 가나안 작전을 기획하고, 군단 하나를 희생해 교단 전체를 전쟁의 소용돌이로 밀어 넣으려 획책하는 집단. 그들을 교단으로부터 분리해 낼 수만 있다면 승리 가능성이 제로로 떨어지지는 않으리라.
아니, 다른 그 어떤 것보다도 내가 이런 판단을 내리게 만든 가장 결정적인 요인은 이거였다.
내가 이대로 교단의 적이 되는 건 브뤼스만이 원하는 바다. 놈이 노리는 바는 생각보다 명백했는데, 내게 악마들을 던져줘 키운 후 위협적인 대상이 된 나를 교단의 대적자로 만들어 올리고 교단으로 하여금 군비확충과 확전을 위한 명분으로 이용하는 게 목적일 터였다.
카자크에게서 얻은 정보를 기반으로 얻어낸 추론이었지만, 별로 틀릴 것 같지는 않았다.
나는 놈이 원하는 대로 굴지는 않을 것이다.
야코프 체렌코프의 죽음을 야기한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한 건 물론 악마 대공 오로블주다. 그를 죽임으로써 일단의 복수를 달성하기는 했지만, 그 배후에 도사리고 있는 건 브뤼스만이다. 그 브뤼스만의 보탬이 될 만한 일은 티클만큼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 반항심 비슷한 것이 가장 근본적인 이유였다.
하지만 이걸 안젤라를 비롯한 동행인들에게 밝히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왠지 부끄러우니까. 이유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가능성이 높은 작전은 아니네요. 복잡하고, 조건도 많이 따르고.”
“하지만 가능성이 제로인 건 아니지?”
“그건 그렇지만요.”
“그럼 됐어.”
가능성이 있기만 하면 된다. 실패하면 다시 도전하면 된다. [선험] 스킬이 그걸 가능하게 한다. [선험] 스킬의 재사용 대기 시간이 발목을 잡기는 하지만, S랭크를 달성하면서 그것도 꽤나 짧아졌기 때문에 어떻게든 상황을 해쳐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선멸자 레벨을 올리며 새로운 스킬을 얻게 되면 더 좋을 테고 말이다. 빠르게 선멸자의 레벨을 올리는 데 강력한 적은 필수불가결하다. 그러니 역시 악마들을 쳐 죽여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직감은 조용했다. 어느 쪽을 선택해도 완전한 정답은 아니라는 것일 테지. 심지어 그랑 란츠에 머무른 채 조용히 힘을 키우는 것마저도 정답은 아닐 터였다.
그렇다면 내가 결정해야 했다. 언제까지고 직감에만 기대고 있을 수는 없으니 말이다.
“만마전을 치고, 교단 세력에 접근한다. 브뤼스만을 교단과 유리시키고 그놈과 그 끄나풀 세력만을 칠 방법을 생각해 본다. 말만 해도 복잡하지만, 불가능하지만 않다면 우린 언젠가 성공에 이를 거야.”
그러므로 나는 그렇게 결정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