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Loser RAW novel - Chapter 16
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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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진혁님! 대체 무슨 업적을 쌓으신 거예요?!
레벨 업 마스터를 켰더니, 크리스티나까지 흥분해서 소릴 질러댔다.
“완료한 퀘스트를 보면 알잖아.”
나는 변명하듯 대답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크리스티나한테는 분명 안 한다고 말을 했었으니까. 아니나 다를까, 크리스티나가 소릴 빽 질렀다.
= 네! 필드 보스 토벌이요! ······그냥 보기만 하신다면서요!
“가까이 가서 보려다 들켰어. 어쩔 수 없이 맞붙어서 처치했지.”
= 말도 안 돼요! 비겁한 변명이에요!
음, 나도 말도 안 되는 변명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굳이 더 다른 말을 보태진 않겠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크리스티나는 별로 화가 난 것 같지는 않았다. 오히려 재빨리 자신의 말을 정정했다.
= 아, 죄송해요. 제가 너무 흥분해서 그만.
“아냐, 괜찮아.”
내가 잘못했는걸, 이라고 이어주기도 전에 크리스티나가 먼저 흥분을 가라앉히며 애를 썼지만 결국 불가능했던지 진하게 흥분의 색이 묻어나는 목소리로 내게 이렇게 고지했다.
= 그보다 이진혁님, 기여도 2000을 달성하셔서 중요 연맹원으로 진급하시게 되었어요. 축하드립니다!
“아, 그렇게 됐나?”
드워프와 오크들한테서 퀘스트 보상을 뜯어낸 것에 이어 필드 보스까지 잡음으로써 어느새 2000이라는 숫자를 채운 모양이었다. 모으기 시작했을 땐 이걸 언제 모으냐고 생각했건만, 만 하루 만에 모아버렸다. 하핫.
유망주 다음은 중요 연맹원인가. 유망주와 달리 확실히 주목받는 느낌이 드는 칭호다.
= 졸업한지 사흘 만에 두 개 인류 집단과 확고한 동맹을 맺고 필드 보스까지 쓰러뜨려서 중요 연맹원의 지위까지 거머쥐다니! 전례가 없는 일이에요! 적어도 제가 알기론 그래요!!
그렇게 말하는 크리스티나의 목소리는 어째선지 좀 들뜬 기색이었다.
졸업한지 사흘? 그러고 보니 튜토리얼 세계에서 나온 지 오늘이 사흘째인가. 사실 난 졸업 같은 건 한 적이 없지만.
하긴 다른 튜토리얼 졸업생들은 나처럼 99레벨도 넘겨서 오버플로우 될 정도로 성장한 상태가 아닐 테니. 내가 이례적인 것도 어떻게 보면 당연하다고 할 수 있었다.
뭐, 그거야 아무래도 좋을 일이다.
“필드 보스란 것들이 다른 지역에도 있나 보지?”
내게 있어서 중요한 건, 오늘 느낀 고양감을 다시 느낄 수 있느냐의 여부였다.
= 네, 그렇죠.
크리스티나의 대답에, 내 입 꼬리가 주체할 수없이 올라갔다.
“그리고 필드 보스를 잡을 때마다 오늘 같은 보상이 나오고?”
= 잡을 수만······, 있다면요?
금화와 기여도는 둘째문제다. 지나치게 강해져버린 내가 전투 경험치를 얻을 수 있는 구석이라고는 필드 보스뿐이다. 그런데 퀘스트로 추가 경험치까지 받을 수 있다니!
가슴이 뛴다.
“아마도 그 방법이 내가 가장 빠르게 강해지는 방법이겠지?”
답은 필드 보스 파밍이다!
내 혼잣말을 듣더니, 조금 전까지 들떠 있던 크리스티나의 목소리가 갑자기 가라앉았다.
= 설마 이진혁님······.
“아마 네 예상이 맞을 거야.”
나는 크리스티나의 말을 끊어놓고서 웃었다.
= 무모해요!
크리스티나의 항의에, 나는 표정을 진지하게 짓고선 무겁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 네 예상이 틀렸을지도 모르겠다.”
= 그럼 다른 필드 보스를 잡으러 가실 건 아니죠?
주저주저, 크리스티나는 확인하듯 물었다. 나는 시원하게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어, 그건 맞아.”
= 무모해요!
아까와 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하긴 그렇다. 오늘 지옥 멧돼지를 잡아내긴 했지만, 위험한 순간이 한 번도 없었던 건 아니다. 그래, 내게도 부족한 면은 있다. 인정한다.
“이게 무모한 짓이라면, 앞으로는 무모한 짓이 아니게 만들어야지.”
내겐 아직 성장의 여지가 남아있다. 내가 여기서 더 강해진다면 제 아무리 상대가 필드 보스라 한들 ‘무모하다’는 말은 안 나오게 될 것이다.
“그만큼 충분히 강해지면 되는 문제야.”
= 애초에 필드 보스를 혼자 상대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문제예요! 그런 건 불가능하다고요!!
크리스티나의 말은 조금 의외였다.
“혼자서 상대하는 게 불가능하다고?”
= 네! 필드 보스는 세력 단위로 모여 토벌하는 게 기본이에요. 아무리 적어도 10명, 많을 땐 세 자릿수에 달하는 연맹원이 토벌 퀘스트에 참전해요.
그건 좀 이상한데?
“그럼 나한테 준 퀘스트는 뭔데?”
= 혼자 상대하시라고 드린 퀘스트는 아니었어요. 주변의 다른 세력에 도움을 청할 생각이었다고요.
어째 시간을 끌더라니, 크리스티나는 그녀 나름대로 흉계를 꾸미고 있었던 모양이다. 아, 어쨌든 날 도우려 한 거니 흉계라고 하는 건 좀 너무한가?
“다른 자들이 퀘스트에 동참하게 되면 보상이 깎이나?”
내 되물음에 크리스티나의 말문이 잠깐 막혔다.
= ······다소는요? 그야 퀘스트 난이도가 조금은 내려갈 테니······.
“그러면 안 되지.”
나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크리스티나는 처연히 내게 외쳤다.
= 죽는 것보단 낫잖아요!
“나 안 죽고 혼자 잘 해결했잖아.”
또 크리스티나의 말문이 막혔다. 이거 재밌다.
= ······헬리펀트, 지옥 멧돼지는 필드 보스들 중에서도 약한 축이에요!
그 말을 듣자 가슴이 저절로 뛴다. 살아있다는 실감이 든다.
“그럼 더 강한 놈들이 우글거린다, 그거야?”
= 네!
“그것 참 기대되는군.”
나는 더 강해질 것이다. 강해질 방법을 손에 넣었다.
그리고 더 강한 놈에게 도전할 것이다. 그 더 강한 놈이 실존한다.
“그거면 됐어.”
= 네?
“고마워, 크리스티나.”
나는 진심으로 그녀에게 감사했다.
= 벼, 별 말씀을······. 요?
그녀는 내가 왜 감사인사를 했는지 모르는 눈치였다. 나는 굳이 인사의 이유를 설명하려 들지는 않았다. 그저 유쾌한 마음에, 한 번 크게 웃었다.
살아있다는 건 좋은 거다!
*
지옥 멧돼지를 죽임으로써 내가 얻은 건 퀘스트 보상뿐만이 아니었다.
멧돼지와의 싸움으로 [홈런왕의 나무 배트]를 해먹는 바람에 대체할 무기가 필요했는데, 마침 괜찮은 무기가 발견되었다.
그것은 바로 지옥 멧돼지의 뿔이었다.
[헬리펀트의 뿔] – 분류 : 무기– 등급 : 전리품(Loot)
– 내구도 :100/100
– 옵션 : 공격력 +12
– 설명 : 성체가 된 헬리펀트에게서 채취할 수 있는 뿔. 격노한 상태의 헬리펀트에게서만 얻을 수 있어 매우 희귀하다.
프랑스 군용 대검 모양의 그 뿔은 매우 크고 무거웠으나, 내 근력이라면 이쑤시개처럼 다룰 수 있다. 무엇보다 튼튼한 게 마음에 들었다. 단지 손잡이가 없는 것만이 약간 걸릴 뿐이다.
= 헬리펀트의 뿔을 구하셨군요.
뿔을 들고 이리저리 휘둘러보는데, 갑자기 링링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 날을 가다듬고 적절한 가공처리를 하면 더 강력하고 튼튼한 [헬리펀트의 뿔 대검]으로 사용하실 수 있는데······.
“뭐야, 광고하러 나온 거야?”
= 그게 제 일이니까요.
링링은 당당했다.
= 그나저나 이렇게까지 빨리 중요 연맹원이 되실 거라곤 생각 못했어요. 아무리 그래도 하루에 한 단계씩 진급하시는 건 말이 안 되잖아요?
“그렇다더군.”
이미 크리스티나에게 들은 사실이라 나는 그냥 고개를 끄덕여주고 말았다.
= 어쨌든 보세요.
링링은 그 자리에서 한 바퀴 돌아보였다. 나는 쟤가 왜 저러나 하고 멀뚱히 바라보고 있다가, 문득 물었다.
“머리 잘랐어?”
= 아니에요! 제가 아니라 이 방을 보시라고요!
“방? 상점?”
= 네!
잘은 모르겠지만, 전보다 주변에 놓인 상품들이 반딱반딱해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 중요 연맹원 담당 전속 상점이랍니다! 업그레이드 됐어요!
“오오!”
나는 손뼉을 짝짝짝 쳐주었다. 사실 차이점은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링링이 좋아하는 걸 보니 칭찬을 해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 에헤헤. 고마워요. 이게 다 고객님 덕분이에요.
“그렇군. 그럼 뭐 살 수 있는 게 더 늘긴 한 건가?”
= 그것도 그렇지만요. 오늘 소개해드릴 서비스는 다른 거예요.
새로 제공할 수 있다는 그 서비스란 게 꽤나 자랑스러운 듯, 링링은 한참이나 뜸을 들이더니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내게 이렇게 제의했다.
= 장인을 섭외해드릴까요?
“뭐? 섭외?”
= 네. 고객님이 중요 연맹원으로 진급하시면서 새로 이용하실 수 있게 된 서비스예요. 모험을 하시다가 얻은 소재를 장인에게 맡겨서 상점에는 없는 맞춤형 장비를 제작하실 수 있죠.
그건 분명 매력적인 제안이었다. 헬리펀트의 뿔은 그 자체로도 훌륭한 무기지만, 영 다루기 불편한 점이 분명 있으니까.
= 대신 비싸고 시간이 걸리죠. 가치 있는 것은 그냥 얻을 수 없답니다!
“얼마나?”
= 그건 이제부터 알아봐야 해요.
이 여자 묘하게 허당이라니까. 아니, 묘하게도 아니고 대놓고지.
검색을 한다던 링링은 굉장히 오래되어 보이는, 청나라 때나 썼을 법한 골동품 전화기를 조작하는 모션을 취했다. 크리스티나는 그래도 디지털 패드 같은 거였는데. 묘하게 시대에 뒤떨어져 보여 재밌었다.
그런 그녀에게 나는 이렇게 덧붙였다.
“내가 원하는 건 대검이 아니야, 링링. 반격가용 무기로 가공해줬으면 좋겠어. 가능할까?”
= 미리 말씀해주셔서 감사해요. 다시 돌려볼게요!
링링은 한참 다이얼을 돌리더니, 다시 내 쪽을 보며 말했다.
= 됐어요! 반격가용 무기를 만들 줄 아는 뿔 가공 장인을 찾아냈어요! 인류연합에 등록된 수많은 장인들 중에 단 한 명! 존재해요.
왜 단 한 명이라는 말을 강조하지?
“좋아, 그럼 가격과 작업에 걸리는 시간을 알아봐.”
= 네!
링링이 대답하기도 전에 레벨 업 마스터의 화면에 아이콘과 함께 설명이 떴다. 나무껍질 같은 피부에 사슴뿔 같은 뿔이 돋아난 기괴한 인간의 얼굴이 좌측에, 우측에는 내가 원하던 가격과 시간 정보가 기록되어 있었다.
– 오로토, 뿔 가공 장인
– [헬리펀트의 뿔]을 [헬리펀트 뿔 라켓]으로 가공 가능
– 제시가격 : 금화 2천개
– 소요시간 : 약 1개월
“금화 2천개?!”
나는 급히 내 금화 보유량을 체크해보았다. 최근 꽤 많이 벌어들이긴 했지만, 그래도 2000개는 안 된다. 얼른 주변을 돌아 지도퀘를 깨고 30개 정도만 더 벌면 될 것도 같은데… 아니, 가능하다는 게 중요한 건 아니다. 그 전에 이 명제에 대해 고민해보지 않으면 안 된다.
과연 [헬리펀트 뿔 라켓]에 내 전 재산을 밀어 넣을 가치가 있을까? 게다가 제작에 한 달이나 걸린다는데, 그 시간을 기다릴 가치가 있을까?
그것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일단 [헬리펀트 뿔 라켓]이 어떤 물건인지 알아야 할 필요가 있었다.
다행히 레벨 업 마스터는 내게 아이템의 세부사항을 열람할 수 있는 권한을 내게 부여해주었다. 나는 사양하지 않고 그 권한을 사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