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Loser RAW novel - Chapter 195
나는 브뤼스만과의 백문백답을 끝냈다.
브뤼스만은 세상이 끝난 것 같은 표정으로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런 놈의 표정을 보고 난 문득 유쾌해져 웃었다.
“하핫!”
“크흑······!”
브뤼스만은 살려고 노력했다. 인벤토리에 그래도 쿠폰 몇 개를 남기려고 내게 거짓말을 했으며, 자기가 숨겨둔 보물창고가 있다는 둥, 이대로 날 죽이면 후회할 거라는 둥, 악당이 남길 만한 유언은 모조리 했다.
물론 그것들 중 소용이 있는 건 없었다.
[거짓간파의 권능]잭 제이콥스가 내게 물려준 이 권능이 빛을 발했으니.
물론 잭 제이콥스는 내가 자신에게 이 권능을 물려줬음을 모를 테지만, 그리고 그는 여전히 이 권능을 소유하고 있겠지만 그건 별로 중요한 사항이 아니다. 중요한 건 내가 이 권능을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 하나지.
결과적으로 브뤼스만은 내게 거짓말을 함으로써 놈이 숨겨둔 보물창고가 없으며 후회할 거리는 전혀 없다는 걸 확실히 알려줬을 뿐이다.
브뤼스만의 인벤토리 속 쿠폰? 그건 억지로 꺼냈다. 꺼낼 방법이 원래는 없었지만, 방금 전에 생겼다. 이것도 다 브뤼스만 덕이다.
이름 : 이진혁
직업 : 괴도
이게 뭐냐고? 내 새 직업이다.
지금으로부터 몇 분 전, 나는 [레벨 업 마스터]를 켜 직업소개소를 열었다. 히든 전직 직업을 육성하느라 주리 리와 상담하는 건 꽤나 오랜만이었다.
= 오래간만에 뵙습니다, 국가영웅님.
“그래, 간만이네. 미안하군, 자주 불러내지 못해서.”
= 저는 제 자리에서 역할을 다할 뿐입니다. 그래도 이진혁 님의 보탬이 될 일이 생겼다는 건 기쁘네요. 무슨 일로 부르셨는지요?
그런 주리 리의 질문에 나는 후, 하고 짧게 웃었다. 옆에서 브뤼스만이 내 목소릴 듣고 있었다. 물론 들으라고 방치하고 있는 거였다.
“혹시 다른 사람의 인벤토리를 소매치기할 수 있는 직업이 있을까?”
내 질문을 들은 브뤼스만의 표정이 굳었다. 호흡까지도 멈춘 것 같은 놈의 반응에 나는 웃음을 참느라 고생해야 했다.
= 일반적으론 범죄입니다만, 가능은 합니다. 인류연맹을 포함한 여러 세력에서 이 직업을 가진 상태인 것만으로도 입국이 거부되는 경우가 있으니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물론 인류연맹은 국가영웅님께서 어떤 직업을 갖고 계시든 항상 환영합니다만.
“알았어. 어떤 직업이야?”
그렇게 해서 주리 리에게 안내받은 직업이 바로 괴도였다.
사실 미리 이 수단을 확보해 뒀으면 일이 더 스무스하게 흘러갔겠지만, 굳이 브뤼스만과 백문백답까지 진행한 후인 지금에야 이런 단계를 밟는 이유는 두 가지가 있었다.
첫 번째 이유는 그 전에 전직해 봐야 어차피 잡을 적이나 몬스터가 없어서 레벨 업이 곤란했고, 두 번째 이유는 내 의도를 드러냄으로써 브뤼스만의 반응을 즐기기 위해서였다.
두 번째 이유는 말할 것도 없고, 첫 번째 이유도 방금 전에 충족되었다. 브뤼스만에게서 뜯어낸 [레벨 업 티켓]이 바로 그 해결 수단이다. 비록 히든 전직 직업에는 소용이 없다는 치명적인 단점은 있으나, 일반 직업의 빠르고 쉬운 레벨 업에 이보다 더 좋은 수단이 없다.
그래서······, 올렸다.
도적 – 20레벨
의적 – 20레벨
괴도 – 20레벨
이게 괴도의 테크트리였다. 그랬다. 괴도는 3차 직업이었다. 주리 리는 무려 3차 직업의 만렙을 찍으라고 조언한 거였다. 뭐, 내가 요구한 사항이긴 하지만 말이다.
“하긴 그렇지. 다른 사람 인벤토리 열어보는 게 쉬우면······, 아무튼 안 되지.”
납득한 나는 차례차례 [레벨 업 쿠폰]을 찢기 시작했다. 결국 괴도까지 올리느라 쿠폰을 34장이나 소모해야 했다. 아무리 브뤼스만이 내게 질문의 답 값으로 지불한 쿠폰을 사용해 올린 거라지만 아깝지 않을 수는 없다.
만약 이렇게 해서 얻은 스킬이 쓸모가 없었다면 그랬겠다는 소리였지만 말이다.
[플레이어의 것은 플레이어에게] – 등급 : 전설(Legend)– 숙련도 : 연습 랭크
– 효과 : 대상 플레이어의 인벤토리에 있는 아이템을 하나 훔친다. 지정한 아이템을 훔치는 경우, 아이템의 등급에 따라 성공률이 달라진다. 훔칠 아이템을 지정하지 않을 경우 랜덤한 하나를 훔친다. 스킬 사용자의 솜씨, 직감, 행운 능력치 합계와 대상의 행운, 직감, 솜씨 능력치 합계의 차이에 따라 성공률이 달라진다. 대상에게 인벤토리를 방어하는 스킬이 있을 경우 실패할 수 있다.
그리고 티켓을 그만큼 쓴 보람은 있었다.
한 번에 하나씩만 훔칠 수 있는 게 단점으로 보이지만, 사실 이건 도적의 1레벨 스킬 패시브로 훔치는 개수를 늘릴 수 있기 때문에 큰 단점이 안 된다. 능력치 차이 때문에 아예 못 쓰는 경우도 생긴다지만, 적용되는 세 능력치가 전부 999+인 내게는 해당되지 않는 단점이다.
게다가 뭐 급한 일이 있는 것도 아닌데 지금 내가 쿨 같은 걸 신경 쓰게 생겼는가? 쿨이 와도 기다렸다 다시 쓰면 그만이다.
그래서 나는 실제로 그렇게 했다.
[플레이어의 것은 플레이어에게] – 등급 : 전설(Legend)– 숙련도 : S랭크
– S랭크 보너스 : 확률적으로 인벤토리 방어 효과/스킬/특성 등의 효과를 완전히 무시한다.
스킬을 S랭크로 찍을 때까지 말이다.
“와, 고객님. 많이도 들고 계셨네요.”
그 결과, 나는 사용한 것보다 더 많은 양의 레벨 업 쿠폰을 돌려받을 수 있었다. 100장이 넘어가니 단순계산으로도 세 배 이상으로 불린 거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브뤼스만이 쟁여둔 ‘진짜’는 레벨 업 쿠폰을 ‘따위’라고 말할 정도였다.
[스킬 쿠폰], [랭크 업 쿠폰], [히든 직업 전직 쿠폰], [신성 부여 쿠폰]······. 찢는 것만으로 스킬을 얻고 숙련도 랭크 업도 스킬 포인트 없이 무료로 해줄 뿐만 아니라, 특정 히든 직업에 전직 퀘스트도 없이 전직시켜 주고 신성까지 쿠폰으로 다 얻을 수 있다니.왜 이제까지 브뤼스만이 교단에서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는지 알 수 있었다. 어지간한 플레이어는 이 쿠폰 하나만 얻을 수 있다면 말로라도 충성을 맹세할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지배의 권능]까지 갖고 있었으니, 진짜 대단하긴 했겠다. 그렇지?”
물론 다 과거의 일일 뿐이다. 지금의 브뤼스만에겐 권능 스킬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다. 이젠 다 내 꺼니 말이다. 비단 권능 스킬만일까? 내가 [플레이어의 것은 플레이어에게]로 빼먹은 게 쿠폰뿐일 리 만무하지 않은가?
나는 브뤼스만에게서 팬티 한 장 남기지 않고 탈탈 털어먹었다. 지금 놈의 몸을 가리고 있는 건 놈을 꽁꽁 묶은 밧줄뿐이다.
즉, 브뤼스만은 현재 인벤토리 안에 땡전 한 푼 없는 알거지다.
“에비.”
사실 브뤼스만이 입고 있는 팬티도 전설급 골동품이었다. 말이 골동품이지 괜히 전설급이 아닌지라 이것저것 효과가 붙어 있었고, 앤티크 취급을 받아 가격도 상당히 비싸 보였다.
나는 그 골동품을 불 속에 던져 태웠다.
아무리 전설급 유물이라도 이 아저씨랑 팬티를 공유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괜히 전설급은 아니라서 내구도가 높아 보통 불엔 불붙기는커녕 연기도 피해갈 터였지만, 팬티를 태우는 불도 보통 불은 아니었다. 스킬 [이진혁]으로 일으킨 불이니 말이다.
팬티는 화르륵 하는 소릴 내며 단번에 한 줌 재가 되었다.
“큭, 크흑······.”
그렇게 자신의 팬티가 불타는 광경을 본 브뤼스만은 결국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비록 [봉인의 권능]에 당해 스킬창을 열지는 못하겠지만, 놈도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자신의 권능이 모두 나에게 와 있다는 걸. 거기에 인벤토리까지 다 털려 재기의 기반을 모조리 잃었으니, 좌절할 만도 했다.
팬티가 불타는 광경은 브뤼스만에게 있어 꽤나 상징적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나, 이거 알아.”
나는 일부러 천진한 말투로 말했다.
“너, 보물 고블린이지?”
브뤼스만의 울음소리가 조금 더 커졌다. 그 울음소리에 분노와 억울함이 섞인 것 같은 건 내 착각만은 아니리라.
***
솔직하게 말해 인류연맹이 창고를 털어주는 보상보다도 브뤼스만 하나 털어서 얻은 게 더 많았다. 인벤토리를 털기 전에도 브뤼스만이 준 게 많긴 했지만 말이다.
물론 새로 얻은 권능 스킬들도 그렇지만, 다른 것들도 많다.
나는 시스템 메시지 창을 쭉쭉 올려 내가 얻은 것들을 되새김질해 봤다.
– 레벨 업!
– 레벨 업!
– 구체제의 진정한 배후를 처치하셨습니다! 혁명력 +100
– 이진혁님께 포지티브 카르마가 부여됩니다 : 204점.
음, 이렇게 보니 별로 많이 얻진 않았네. 하지만 경험치 창을 열어보면 브뤼스만이 준 경험치가 실로 막대하다는 걸 알 수 있다. 그야 그렇다. 2차 히든 전직의 후반 레벨을 두 개나 올려줄 정도면 어지간한 악마왕, 악마대왕보다도 경험치를 많이 줬단 소리니.
브뤼스만이 준 포지티브 카르마가 생각보다 낮았던 건 뭐, 예상이 됐다. 이놈 일하는 스타일이 그랬다. 부하를 굴렸으면 굴렸지, 본인은 좀처럼 안 나서는 타입이었으니 말이다. 본인의 손을 더럽힌 적은 별로 없었으리라.
무엇보다 막대했던 보상은 역시 혁명력이었다. 악마왕을 하나 죽여야 겨우 1이 오르는 혁명력이 이놈 한 번 죽였다고 100이 올랐다. 구체제의 진정한 배후라는 거창한 타이틀까지 붙은 덕이겠지. 이건 놈을 여기서 또 한 번 죽인다고 다시 얻을 수 있는 보상은 아니라는 게 아쉽다.
혁명력이 어째서 막대한 보상이냐고? 그건 이 스킬 덕이다.
[세계를 혁명하는 힘] – 등급 : 세계 정상(World Top)– 숙련도 : F랭크
– 효과 : 세계를 혁명하는 힘, 혁명력을 다룰 수 있게 된다.
세계혁명가 20레벨을 찍어야 비로소 등장한 이 스킬은 이제껏 혁명력을 모으는 데에만 집중되었던 여타 혁명가 스킬들과는 차원을 달리한다. 등급부터가 그렇다. 그것들은 세계 상위급의 스킬이었지만, 이 스킬은 세계 정상급이었으니.
스킬 설명은 또 추상적이기 그지없으나, 스킬 효과는 실로 혁명적이었다. 딱 한 번 써보고 나는 곧장 스킬 포인트를 투자해 숙련도를 올리는 것을 주저할 수 없었다.
혁명력을 사용하면 구체제의 질서를 무시할 수 있다.
이렇게만 하면 별것 아닌 것처럼 느껴질 것이나, 그 질서라는 것의 범위가 터무니없이 넓다는 게 이 스킬의 대단한 점이었다.
일단 내가 연습 랭크에서 이 스킬을 사용했을 때 처음으로 무시한 구체제의 질서가 뭐였냐면, 그것은 바로 시간의 흐름이었다.
시간의 흐름을 무시했다. 이것을 주관적으로 받아들이자면, 이렇게 표현할 수 있다.
“내가 시간을 멈췄다.”
말이야 간단하지만 내가 이제껏 얻은 시간이나 시점 관련 스킬들 중 가장 훌륭하다고 해도 절대 과언이 아니다. [퀵 세이브] – [퀵 로드]로 시간을 되돌려 봤자 능력의 한계는 뛰어넘을 수 없다. 절대적인 전투력의 차이는 극복할 수 없다는 뜻이다.
그러나 시간 정지는 차원이 달랐다.
세계의 모든 것이 멈췄고, 그 속에선 나만 움직일 수 있다. 멈춰진 시간을 인지하는 것도 나뿐이고, 멈춰진 시간 속에서 생각할 수 있는 것도 나뿐이다.
나보다 훨씬 강한 상대라도 정지된 시간 속에선 무방비해질 수밖에 없다. 내 쪽은 상대의 반격을 걱정할 것 없이 일방적으로 공격을 퍼부을 수 있다.
즉, 상대가 시간 정지에 대항할 수단이 없는 한, 거의 무적에 가까운 능력이라 해도 된다.
훌륭하다!
이 스킬의 무궁무진한 활용범위에 비하면 조잡하기 그지없으나, 딱 이 활용법만 감안하더라도 혁명력을 ‘막대한 보상’이라 일컫는 데 나는 조금도 망설일 수 없다.
그리고 어째서 세계혁명가가 선멸자에 이은 2차 히든 전직인지도 납득했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