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Loser RAW novel - Chapter 196
– 혁명!
– 구체제의 상징과 구체제의 배후를 모두 처치함으로써, 완전무결한 혁명을 성공시켰습니다. 이 세계에는 새로운 체제가 성립될 것입니다. 혁명력 +100
이건 악마 황제 알렉산드로스를 처치했을 때 본 시스템 메시지다. 별 생각 없이 시스템 메시지를 스크롤하다 보니 너무 많이 내려왔군.
알렉산드로스를 107번 죽였다는 건 단순히 브뤼스만을 위축시키기 위해 한 거짓말이 아니다. 그 악마 황제는 진짜 맛있었다. 107번 죽일 때까지 경험치를 줬으니 말이다.
더 이상 경험치를 얻을 수 없게 된 시점에서, 나는 울며불며 내게 살려달라고 비는 악마 황제의 몸을 갈라 코어를 꺼내 비토리야나에게 던져주었다.
“바짝 말린 건어물 맛이네요.”
악마 황제의 코어를 맛본 비토리야나의 감상은 단촐했다. 뭐, 그만큼 경험치를 빨린 시점에서 많은 마기를 흡수할 수 있을 것이라곤 기대도 안 했을 거다.
혁명 메시지는 그렇게 악마 황제를 완전히 소멸시킨 후에나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 혁명의 영향은 내게 혁명력 100을 더해준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만마전이라 불렸던 세계가 녹기 시작했다. 지옥의 악마가 코를 풀어낸 것처럼 싯누렇던 하늘은 파랗게 맑았고, 바짝 말라 비틀어졌던 토양에는 건강한 흙내가 나기 시작했다.
– 멸망했던 세계가 재건되었습니다.
– 당신은 세계의 구세주가 되었습니다.
– 새로운 세계의 이름을 지어주십시오.
이건 진짜 상상도 못했던 메시지였다. 난 그냥 혁명을 했을 뿐인데 세계가 재건되다니. 그리고 내가 마치 그 새 세계의 아버지인 양 명명권까지 떠맡게 되다니. 좀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블루 마블.”
고민 끝에, 나는 한때 지구의 별명 중 하나였던 단어를 입에 올렸다.
사실 뉴 테라 같은 것도 생각했지만, 그건 뉴욕 같아서 별로였다. 이 세계가 지구의 식민지도 아닌데 식민지 경영하던 제국주의자들처럼 이름을 지을 순 없지 않은가?
그리고 혁명군들이 창천이니 뭐니 소릴 지르면서 돌격해 싸우지 않았는가? 내 입장에선 그들의 의향도 존중한 작명법이었다.
– 당신은 [블루 마블] 세계의 구세주입니다. 세계가 고마워합니다.
– 구세주 레벨 :10
– 보상으로 당신에게 [세계의 힘 파편]이 999개 주어집니다.
이 메시지를 봤을 때, 나는 이런 표현을 했었다.
“와!”
[그랑 란츠]에선 온갖 고생······. 아니, 그걸 고생이라고 표현하긴 좀 그랬지만 아무튼 지루한 반복 작업과 노가다를 통해 찍었던 구세주 레벨 10이었다. 그런데 이걸 처음부터 주고 [세계의 힘 파편]도 거의 몰아주다시피 하다니.이래서야 책임감이 생겨 버리잖아. 이 [세계의 힘 파편]을 그냥 먹튀하면 안 될 것 같다. 적어도 여기서 반 이상을 쓰고 가야 양심이 덜 아플 것 같았다.
그리고 이건 좀 억울했던 건데, 이 세계가 만마전이 되어버린 후에 태어난 현대 악마들이 진화해 ‘청마인(Blue Demonic Human)’이라는 인류종으로 바뀌어 버렸다. 악마들을 잡아 배를 불릴 수 있었던 나도 기회를 잃어 억울하지만, 가장 억울해했던 건 당연히 비토리야나였다.
“나도 아직 악만데! 저 버러지들이 왜 먼저! 으아아아아!!”
당연한 건지 어떤 건지는 모르겠지만, 고대 악마종인 비토리야나는 혁명의 효과를 받지 못했다. 타천사인 루시피엘라는 말할 것도 없고 말이다.
“아마도 현대 악마라 불리던 종은 만마전이 정상적인 세계였다면 정상적으로 태어났어야 할 영혼들이겠죠. 하지만 마계와 마기의 영향을 진하게 받은 탓에 현대 악마라는 혼종으로 태어난 것일 테고요.”
“현대 악마라는 종 자체가 혼종이었단 가설인가······. 하긴 그렇겠네. 악마 또한 신의 사도일 텐데, 우리를 만들어낸 신이 존재하지 않음에도 악마로 태어났으니. 사실 그걸 악마라 불러야 할지도 의문이긴 했지.”
비토리야나가 아직도 억울함으로 비롯된 눈물을 다 훔치지도 않은 채, 루시피엘라의 가설에 고개를 끄덕였다.
“청마인이라는 아예 새로운 종이 된 건, 글쎄요. 세계가 정상화됨에 따라 저들도 반쯤은 정상화가 된 결과물 아닐까요?”
“태생적인 한계도 그렇거니와, 몸에 남은 마기야 어쩔 수 없지.”
“그건 그렇고, 부럽기는 하네요.”
그나마 악마들과 종이 다른 루시피엘라는 별로 억울해하진 않았지만, 그녀도 청마인들을 부러워하는 건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된 이상, 이진혁 님께서 얼른 신위에 오르시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그게 가능은 한 일인가 싶긴 했지만, 난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런 대화를 나눴었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좋았던 일은 이번 혁명으로 새로 탄생하게 된 청마인들이 날 신앙의 대상으로 삼아 이진혁교에 입교시킬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었다. 그들도 이제 인류종이니 이제 종교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 시대정신이 자결주의에서 종교적 열정으로 바뀌었습니다.
– 세계의 구체제인 봉건제가 소멸하고, 신체제인 신정국가가 성립했습니다.
– 세계종교 : 이진혁교
아무리 그래도 이 정도가 되어버릴 줄은 몰랐지만 말이다.
브뤼스만이 주도한 ‘가나안 계획’에 의해 거의 멸종상태에 몰렸던 그랑 란츠의 인류 종족들과 달리, 청마인들은 우글거릴 정도로 번성하고 있었고 다 함께 혁명이라는 강렬한 체험을 한 상태라 이렇게 되어버린 것 같았다.
물론 세계가 인정한 세계종교로 떠오른 것도 영향이 있기는 하겠지. 내가 딱히 개입하지도 않았음에도, 이진혁교의 신도는 빠르게 늘어나고 있었다. 청마인들이 열정적으로 서로가 서로에게 전도하고 간증하는 덕이었다.
– 이진혁교로 인해, 매 7분마다 1씩의 신앙이 쌓입니다.
그리고 그 효과는 실로 강렬했다. 그랑 란츠에서도 이진혁교의 세가 꽤 커지긴 했지만, 매일 10 좀 넘게 신앙이 쌓이는 정도였다. 그런데 7분마다 1씩이면······, 얼마야? ······아무튼 하루 100은 넘을 거다!
악마를 죽여서 신앙을 1씩 쌓지 못하게 된 건 분명 아쉬운 일이지만, 청마인들이 지속적으로 생산하는 신앙의 양은 장기적으로 보면 더 많아질 터였다. 말하자면 수렵에서 농경으로 바뀐 것이나 다름없는 변화였다.
청마인들이 번성하고 그 종교적 열기가 더해갈수록 신앙이 더 빠른 속도로 쌓이고 내 격의 상승도 그만큼 이른 시기에 이뤄지리라.
“좋은 일이지.”
나는 혼잣말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죽여라.”
그때, 목소리가 들렸다. 그제야 난 시스템 메시지 로그를 끄고 목소리가 들린 쪽을 바라보았다. 목소리의 주인은 바로 브뤼스만이었다.
그랬다. 브뤼스만은 아직 살아 있었다. 내가 살려뒀다.
“더 이상 능욕하지 말고 깨끗하게 죽여줘······. 내 재산도 다 털었다면 이제 만족했을 것 아닌가! 죽여라!!”
브뤼스만은 발악하듯 외쳤다.
난 빙긋 웃으며 그를 쳐다보았다.
“내가 말했지.”
브뤼스만이 뭔가 섬뜩한 거라도 본 듯 입을 다물고 낯빛을 파랗게 물들였다.
“거래에 제대로 임했다면 깨끗하게 죽여줄 수도 있었어. 하지만 넌 정당한 거래에 임하지 않고 내게 거짓말을 하고 사기를 치려고 했지. 이제 내가 널 깨끗하게 죽여줄 이유가 없어.”
“그, 그럼 어쩌겠다는 건가?”
“적절한 대가를 치러야겠지.”
그래, 적절한 대가.
나는 방금 전에 브뤼스만의 인벤토리에서 훔쳐낸 스킬 쿠폰 네 개를 뜯어 스킬을 익혔다. [생명력 착취], [체력 착취], [마력 착취], [내력 착취]. 여기에 카자크에게서 뜯어내 지금까지 잘 쓴 [흡마신공]까지 합치면 스킬 승화가 가능해진다.
하지만 나는 스킬 승화로 만족할 생각이 없었다.
나는 상태창의 세계탭을 열어 [세계의 힘 파편]을 지불해 미리 봐뒀던 월드 스킬 몇 개를 구매했다. [레벨 드레인], [소울 드레인], [에너지 드레인]. 괜히 만마전이었던 세계가 아닌지, 사악해 보이는 스킬들이 있었다. 물론 내겐 좋은 일이었다.
마지막으로 악마들을 상대할 때 [신산귀모]로 뜯어내 두었던 [흡혈] 스킬과 [흡정] 스킬. 두 스킬 모두 정리해고를 피해간 건 애초에 [흡마신공]의 융합 재료로 낙점해놨기 때문인데, 이게 이렇게 쓰이네. 많이도 뜯어낸 탓에 둘 다 +5 강화된 상태였다.
종족 조건이 맞지 않아 사용할 수 없다는 메시지가 떴지만 어차피 합성 재료로 쓸 거라 상관없었다.
자, 이걸로 조건은 만족되었다.
– 동일계열 스킬을 10개 이상 소유하고 있습니다.
– [스킬 초월]이 가능합니다. 실행하시겠습니까?
[주의!] 스킬 초월에 사용한 스킬은 다시 얻을 수 없습니다.
“스킬 초월은 오랜만이로군······.”
여전히 스킬 초월에는 다섯 자리에 달하는 막대한 스킬 포인트를 요구했지만, 내겐 지불능력이 있었다.
이것도 저것도 다 브뤼스만 덕이다. 나는 브뤼스만의 인벤토리에서 나온 [스킬 포인트 티켓]을 묵묵히 찢으며 생각했다.
아니지, 이게 왜 이놈 덕이야? 내가 유능한 거지.
잘 생각해보니 역시 브뤼스만 덕은 아니었다. 마침내 깨달음을 얻은 나는 마지막 티켓을 쫙 찢으며 호쾌하게 외쳤다.
“실행!”
열 개에 달하는 스킬들의 힘이 뒤섞이며 빛을 냈다. 물론 단순한 빛은 아니다. 빛은 그냥 현상일 뿐, 실제로는 스킬의 원자들이 부딪히며 새로운 힘을 창조해내는 위대한 광경이다. 몇 번을 봐도 아름답다. 뭐, 나도 스킬 초월은 서너 번밖에 안 해봤지만 말이다.
그리고 마침내 결과물이 나왔다.
[착취의 권능] +10– 등급 : 권능(Power)
– 숙련도 : 초월 랭크
– 효과 : 착취한다.
들어간 재료에 비해 상당히 심플한 권능 스킬이 튀어나왔다. 얼마나 심플한지 스킬 설명도 네 글자가 전부였다.
뭐, 당황할 일도 아니다. 이랬던 게 한두 번도 아닌데. 써보면 자연히 알게 되겠지.
나는 [착취의 권능]을 사용했다. 대상은 말할 것도 없이 당연히 브뤼스만이었다.
“끄아아아압!”
사용하자마자 브뤼스만의 비명이 귓전을 때렸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대신 나도 모르게 감탄사를 내지르고 말았다.
“오!”
브뤼스만을 대상으로 정하고 스킬을 사용하자마자 나는 이 새로운 권능 스킬의 진정한 활용법에 대해 알게 되었다.
“네 모든 게 보여, 브뤼스만.”
뭘 건드리면 뭐가 빨려 들어올 건지 즉각적으로 이해했다. 이 부분은 레벨이로군. 여길 건드리면 생명력이 빨 수 있을 거야. 단순히 물리적으로 피를 빨 수도 있지만, 스킬 초월의 재료 스킬에는 없었던 옵션인 능력치 흡수가 가능한 것도 매력적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매력적인 건 특성까지도 착취할 수 있다는 거였다. 사실 특성뿐만이 아니라 이름, 나이, 심지어 종족까지도 착취할 수 있었지만, 그런 건 내게 별로 매력적으로 여겨지지는 않았다.
사소한 문제점은 사용 조건인데, 상대를 완전히 제압하고 생사여탈권까지 쥘 것이 그 조건이었다. 그리고 대상에 대한 악감정이 깊을수록 더 많은 걸 착취할 수 있었는데, 나와 브뤼스만 사이의 악연은 이러한 사용조건과 착취제한을 아무것도 아닌 걸로 만들어놓았다.
그러니 결론은 심플해졌다.
“내놔!”
나는 즉시 브뤼스만의 고유 특성을 착취하기로 결정했다.
“끄, 끄아아아악!!”
브뤼스만의 비명과 함께 나타난 그의 고유 특성은 이러했다.
[쿠폰 발행인] – 등급 : 고유(Unique)– 랭크 : EX랭크
– 설명 : 자신, 혹은 다른 대상의 능력 일부를 쿠폰으로 만들 수 있다. 다른 대상에게 사용하기 위해서는 동의를 얻을 필요가 있다.
“이야, 이거 좋네!”
나는 탄성을 내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