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Loser RAW novel - Chapter 197
사실 약간은 예상도 했었다. 브뤼스만과 대적하게 된 입장에서 놈이 어떤 고유 특성을 지니고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생각을 안 할 수가 없기도 했고, 그동안 힌트가 없었던 것도 아니니까.
[레벨 업 쿠폰]이야 세계 퀘스트를 수행하면서 보상으로 얻을 수도 있지만, 다른 쿠폰들은 어디서 굴러 나오는지 힌트조차 없었다. 게다가 그 효과도 너무 기상천외하다. 숙련도를 채워주고 전직도 시켜주고 신성까지 얻게 해준다니.카자크가 그렇게 갑자기 강해져서 튀어나온 게 아니라면 브뤼스만 본인의 증언이었더라도 믿기 어려웠을 거다.
더군다나 이런 좋은 걸 브뤼스만 혼자 독점하고 있었다. 이건 거의 확실하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교단의 브뤼스만 일파가 브뤼스만에게 바쳤던 그 충성도는 설명이 안 된다. 만약 이런 쿠폰들을 다른 데서 구할 수 있었다면 그렇게까지 목 멜 필요는 없었을 테니 말이다.
결국 이 의문에 도달할 수밖에 없었다.
브뤼스만은 대체 어디서 이런 쿠폰들을 구했을까?
답은 이거다.
브뤼스만이 쿠폰을 발행할 수 있는 능력을 독점하고 있다. 고유스킬이건 뭐건.
하지만 [신산귀모]로 훑어본 결과, 브뤼스만이 소유한 스킬 중엔 그럴듯한 게 없었기 때문에 자연히 고유특성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 가설이 지금 사실로 밝혀졌다.
“끄헉! 허억! 흐윽! 흑, 흑흑······.”
고통에서 벗어난 건지 브뤼스만의 비명이 잦아들었고, 그것은 곧 비통한 흐느낌으로 변질되었다. 자신의 특성을 내게 빼앗겼다는 걸 인지한 모양이었다. 난 그런 그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조용한 목소리로 위로하듯 요구했다.
“레벨 업 쿠폰 좀 뽑자. 레벨 내놔.”
“조까.”
아니, 그렇게 심한 말을?
“[지배의 권능]!”
화가 난 나는 냅다 권능 스킬을 놈에게 처먹였다.
브뤼스만이 이렇게 다종다양한 쿠폰을 소지할 수 있었던 건 [지배의 권능] 덕이었을 것임을 난 짐작하고 있었다. 누가 자기 스킬 빼서 쿠폰 만들겠다는 데 동의를 하겠는가? 제정신이면 동의를 할 리가 없지.
반대로 말하면, 제정신이 아니게 만들면 된다.
[지배의 권능]의 발동 조건은 상실감과 패배감. 그리고 브뤼스만은 그 조건을 만족시킨 상태였다. 권능 스킬의 힘은 브뤼스만의 심장을 움켜쥐었고, 놈은 반항할 수단을 갖지 못했다.“자, 레벨 내놔!”
그리고 나는 조금 전의 요구를 다시 한번 했다. 이번에는 다른 대답을 기대하며 말이다.
“······알겠, 습니다. 주인, 님.”
브뤼스만은 이번에는 내 요구에 동의했다. [지배의 권능]에 걸려들어 어쩐지 말투가 로봇처럼 변하긴 했지만, 이건 카자크에게서도 이미 들었던 정보다. 완전히 지배의 힘이 안착되어 자연스럽게 내게 충성하게 되기까진 적어도 일주일 이상의 조련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그랬었지.
어쨌든 놈이 동의함과 동시에 내 [쿠폰 발행인] 특성이 발동하면서 그의 귀에서 익숙한 비주얼의 쿠폰이 지이잉 하는 소리와 함께 출력되었다.
다름 아닌 [레벨 업 쿠폰]이었다.
“······크큭! 좋았어!! 더 내놔라, 이놈아!”
“알, 겠, 슴미······, 다아······.”
지이잉······, 지이잉······, 지이잉······. 지이이이이잉······.
광란의 착취 파티다!
***
광란의 착취 파티가 끝났다.
“끅, 윽, 윽, 윽······.”
그렇게 내게 거의 모든 걸 착취당한 후유증 때문인지, 브뤼스만은 바닥을 나뒹굴며 간헐적인 신음소리를 내고 있었다.
사실 그럴 만도 했다. 현재 그의 능력치는 전부 1, 신성과 내공을 비롯한 추가능력치도 모조리 박탈당한 상태이며, 레벨도 무직 1레벨이었다.
스킬란은 텅 비어 있을 것이며 특성란도 마찬가지. 종족란에도 대천사와 천사도 없는 그냥 쌩 지구인으로 되어 있었다. 내가 쓸 일은 없을 테지만 일단은 권능 스킬 슬롯도 빼앗아 버렸다.
물론 이 모든 것들은 전부 쿠폰이 되어 내 인벤토리에 차곡차곡 쌓였다.
“여기에 종족과 이름까지 착취하면, 아마도 넌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어버리고 말겠지.”
이건 브뤼스만 본인이 직접 증언한 내용이다. 최소한의 정체성을 유지해 주는 요소까지 모조리 쿠폰화시켜 빼앗아 버리면 그 존재는 그 자리에서 무너져 내려 아무것도 아니게 되어버리고 만다고.
이게 가설이 아니라 확고한 진실이라고 증명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근거가 쌓였을까? 예상컨대 놈은 적어도 수십 명, 혹은 더 많은 숫자의 인간을 상대로 착취를 자행하여 그런 상태로 만들어본 적이 있으리라.
그리고 사실 난 그 대답을 안다.
“자, 자비를······!”
나는 놈을 하인으로 부릴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브뤼스만에게 걸어놓았던 [지배의 권능]도 풀어놓은 상태였다. 애초에 [쿠폰 발행인] 특성의 요구조건이 동의가 아니었다면 놈에게 지배를 걸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 브뤼스만은 지금 제정신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놈은 바닥의 먼지를 씹으며 내게 자비를 구하고 있었다.
“이제까지 몇 명을 지금의 너처럼 만들었냐? 아니, 대답할 필요는 없어. 넌 이미 대답했거든.”
대답은 ‘지금까지 먹은 빵의 개수를 기억하고 있지 않음과 같습니다’였다. 수없이 많다는 소리겠지. [지배의 권능]에 걸린 상태가 아니라면 절대 대답하지 않았을 질문이었다. 하지만 놈은 대답했다. 높임말로 말이다.
“그걸 알면서도 자비를 베풀어달라고 하다니, 양심이 있는 거야?”
“······자비를······!”
내 비난에도 브뤼스만은 자비를 구하길 멈추지 않았다. 그 생애에 대한 집착은 높이 사야 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동시에 지금 당장 놈의 목을 쳐 죽여 버리고 싶다는 충동을 간신히 참아냈다.
비록 레벨도 능력치도 1로 돌아간 놈이지만, 그러니 죽여도 경험치도 안 나오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브뤼스만의 생명에는 아직도 남아 있는 가치가 있었다.
***
“오, 왔군.”
나는 차원문이 출현할 기미를 미리 느끼고 몇 발자국 떨어졌다. 아니나 다를까, 곧 차원문이 열렸다. 그리고 그 차원문에서 나온 사람은 놀랍게도 잭 제이콥스 본인이었다.
“잭 제이콥스, 교단의 임시총통이 직접 온 거야? 바쁠 텐데.”
“교단의 은인을 뵙는데 아무나 보낼 수는 없죠. 더군다나······.”
잭 제이콥스의 시선이 브뤼스만을 향했다.
“교단의 공적을 사로잡으셨다는 말에는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응, 그렇게 됐어.”
나는 싱글싱글 웃었다.
“보상은 기대해도 되겠지?”
“그야 물론이죠.”
그랬다. 브뤼스만에게 남은 가치란 건 바로 현상금이었다. DEAD OR ALIVE, 생사불문의 현상금이긴 했지만 당연히 살려서 데려오는 쪽이 보상이 더 좋을 것이라는 판단 하에, 나는 놈을 살리기로 결정했다.
“아, 이놈한테 사형이 언도되면 날 꼭 불러서 내가 처형하게 해줘. 이놈한텐 아직 뽑아먹을 카르마가 남았을 거라서.”
무직 레벨 1이라 죽여도 경험치는 받을 수 없겠지만, 놈의 네가티브 카르마는 아직 넘치도록 남아 있을 터였다. [착취의 권능]으로 확인해 봤으니 확실하다.
그러니 나는 보상의 일부로 놈의 처형권을 받아 놈에게 쌓여 있는 네가티브 카르마를 포지티브 카르마로 전환해서 받아먹을 생각이었다.
“알겠습니다. 판결 후에 처형일이 잡히면 반드시 연락드리겠습니다.”
임시총통이긴 하지만 잭 제이콥스는 엄연히 교단의 수장이다. 브뤼스만의 사형 언도도, 처형권이 내게 양도되는 것도 거의 확실시 되었다고 봐야지.
“아, 그렇지. 잠깐만.”
나는 브뤼스만을 향해 [기아스]를 사용했다.
“[자살하지 마].”
혹시나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 아까운 포지티브 카르마가 허공에 증발할 테니, 당연한 조처였다. 잭 제이콥스도 흡족히 고개를 끄덕였다.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뭘, 나 좋으라고 하는 건데.”
난 웃으며 겸양했다.
“놈! 네놈! 이놈!!”
지금까지 멍하니 있다가 이제야 상황을 받아들인 브뤼스만이 소릴 지르기 시작했다. 아직도 저럴 체력이 남아 있었다니 놀라운 일이다. 놈의 체력은 1일 텐데.
“이걸로 끝이라고 생각지 마라! 내가 끝이 아니야! 내가 끝이 아니라고! 이 대가는 반드시 치러야 할 거다! 반드시······, 반드시! 끄흐흐흑······!!”
자기가 생각해도 말이 안 될 것 같은지, 브뤼스만은 저주를 퍼붓다가 결국 못 버티고 눈물을 쏟고 말았다.
“여기가 만마전이라니 정말 믿기지 않는군요.”
그런 브뤼스만의 울음소리를 들은 체 만 체하며, 잭 제이콥스는 이제는 만마전이 아닌 세계의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렇지? 나도 아직도 가끔 그런 생각해.”
오늘도 하늘은 맑았다. 새싹이 가득 난 벌판에 상쾌한 바람이 불었다. 정말 좋은 날씨였다.
“만마전과의 전쟁을 이런 식으로 끝내시다니······. 대체 무슨 수를 쓰신 겁니까?”
나는 잭 제이콥스를 보며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그리고 이렇게 대답했다.
“잘.”
문득 브뤼스만의 울음소리가 그쳤다. 혼절한 모양이었다.
***
굳이 그럴 필요 없다는 데도, 잭 제이콥스는 만마전과의 전쟁에서 사용된 전비를 보상해 주고 추가적으로 교단의 적을 무찌른 것에 대한 감사패와 훈장을 전달하겠다고 말했다.
나도 강하게 거절하지는 않았고, 미처 거절하진 못하겠다는 태도를 견지했다. 본심과는 다르게 말이다.
본심? 당연히 받아야지. 그러나 나도 어느 정도 사회성이란 걸 기른 몸이다. 그렇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어느 정도 내숭 비슷한 거라도 떤 것에 불과하다.
뭐, 여하간.
잭 제이콥스는 울다 지쳐 혼절한 브뤼스만을 연행해 교단으로 돌아갔다. 연행보단 짐짝처럼 짊어지고 갔다는 표현이 더 어울리는 광경이었다.
아직 재판이 남아 있고 처형을 해야 하긴 할 테지만, 브뤼스만과의 인연은 이걸로 끝이라고 정리해도 될 것 같은 분위기였다.
“그건 그렇고, 나는 이제 어쩌지?”
나는 새로운 고민에 휩싸였다.
본의 아니게 만마전을 정리해 버리면서 새롭게 레벨 업을 할 사냥터를 찾아내야 할 처지가 되었다. 하긴 어차피 만마전을 그대로 뒀어도 어지간한 악마 상대론 경험치를 쌓지도 못할 정도로 커버렸으니 이걸 후회하는 건 말이 안 된다.
“알렉산드로스를 너무 많이 죽였어······.”
그랬다. 나는 지나치게 강해져 버리고 말았다. 나보다 강한 놈을 찾아간다는 수준이 아니다. 나한테 경험치라도 줄 놈이 있을까 걱정해야 할 처지가 됐다.
사실 히든 2차 전직 만렙이면 한계돌파를 지니지 않은 다른 플레이어들 입장에선 완전히 성장을 끝마치고도 남는 거나 마찬가지지만, 세계 혁명가로서도 20레벨로 정상적인 만렙을 찍은 거나 마찬가지지만.
그래도 나는 레벨 업을 더 하고 싶었다.
세계혁명가 50레벨은 달아봐야지!
“에이, 설마 사냥터가 없겠어?”
가슴 한구석에 차가운 불안함이 스쳐지나갔지만, 나는 애써 외면했다. 그럴 리가 없다. 그래서는 안 된다. 안 그래도 히든 전직 직업은 [레벨 업 쿠폰]으로도 레벨 업을 못하는데.
“······일단 정보를 좀 모아봐야겠군.”
브뤼스만이 남긴 의미심장한 마지막 통곡. 그것만이 희망이었다.
– “이걸로 끝이라고 생각지 마라! 내가 끝이 아니야! 내가 끝이 아니라고! 이 대가는 반드시 치러야 할 거다! 반드시······, 반드시! 끄흐흐흑······!!”
“제발 그 말이 헛소리가 아니길!”
그게 내 간절한 바람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