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Loser RAW novel - Chapter 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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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자크의 [라면 먹고 갈래?]가 아무리 일반 특성이라지만, 남의 특성을 가져오면서 신성 5짜리 디버프 스킬 하나 걸어주는 걸로 퉁치는 건 내 도덕성이 용납을 안 했다. 설령 그 상대가 카자크라 하더라도 말이다.
“괜찮습니다. 아니, 주시더라도 받지 않겠습니다. [기아스]에는 그 정도 가치가 있으니까 말입니다.”
그러나 카자크는 딱 잘라 고개를 저었다.
“폐하께오선 [기아스] 스킬의 효과를 지나치게 낮게 보시는 것 같습니다. 고작 유니크급이라곤 하나, 유니크란 등급이 가리키는 바는 곧 그 스킬을 가진 이가 오직 폐하 단 한 분뿐이란 의미기도 합니다. 폐하께서 [기아스]를 독점하셨으니, 저로선 어쩔 수 없이 폐하께서 부르시는 값에 사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아니, 나도 알지. 그래서 아직 [기아스]를 안 갈고 잘 가지고 있으니까. 좋아, 그럼 독점의 폐해를 맛봐라.”
그렇다고 상대가 싫다는데 억지로 퍼다 안겨줄 정도로 내가 친절한 인간이지도 않다.
“대신이라고 하긴 뭐합니다만 폐하, 청컨대 부디 [기아스]의 내용은 제가 정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나는 그러마고 고개를 끄덕일 뻔했으나, 눈앞의 존재가 카자크라는 사실을 되새기고 마음을 바꿔먹었다. 이 남자라면 어떤 끔찍한 요구를 해와도 이상할 게 없으니, 부주의하게 고개를 끄덕여서는 안 됐다.
“들어보고.”
“알겠습니다.”
그리고 카자크는 요구 사항을 말했다.
“진심이야?”
들은 나는 귀를 의심해야 했다. 그리고 왜 이 딜을 받았는지 후회했다. 세상에 이런 인간이 존재한다는 걸 모르고 있는 게 내 정신 건강에 훨씬 좋았을 텐데. 그래도 마지막 희망이란 게 있었다. 내가 잘못 들었을 가능성이 바로 그것이었다.
“진심입니다.”
그러나 내 희망은 여지없이 꺾였다. 그야 그렇다. 상대는 카자크다. 헛된 희망을 품었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다시 한번 물었다.
“아니, 진짜로?”
아무리 카자크라도 내 반응이 마음에 걸리긴 한 건지 그는 진지한 표정으로 선언했다.
“물론입니다, 폐하. 다시 확인해 보실 필요도 없는, 흔들릴 일 없는 확고한 의지로 결정했습니다.”
그런 카자크의 반응에 나는 또다시 질문을 던져 보고픈 욕망에 휩싸였지만, 이런 내 속내를 아는지 모르는지 카자크는 곧장 이어 말했다.
“사실 예전부터 이러한 부탁을 드릴 기회가 없을까 노심초사했었죠. 그 기회를 이제야 잡은 겁니다.”
말이 길어지는 걸 보니 진심이긴 한 듯했다.
“아무리 그래도 너무 제정신이 아닌 요구인데······.”
“폐하께오서 이 천한 자의 걱정을 해주심에 황공함을 느끼옵니다. 그러나 폐하, 사람마다 바라는 행복의 형태는 다르옵고······.”
“알았으니까 그만해.”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하긴 내가 카자크의 걱정을 할 필요는 없다. 그럴 의리도 없고 말이다.
“좋다, 거래는 성립되었다.”
“황공하옵니다, 폐하.”
그렇게 양자 간에 거래가 성립되었음을 확인하고, 나는 즉시 [티켓 발행인]의 액티브 효과를 활성화해 카자크에게서 특성을 가져왔다.
[라면 먹고 갈래? 티켓]이것으로 카자크는 값을 치렀으니, 나는 그에게 약속한 서비스를 제공해야 했다.
“[기아스]!”
카자크는 눈을 감은 채 얌전히 치명적인 스킬의 힘이 자신을 휘감도록 몸을 내맡겼다.
다시 봐도 참 제정신 아닌 남자다. 내가 마음을 바꿔먹고 다른 기아스를 쓰거나 그냥 죽여 버리면 어쩌려고? 뭘 보고 날 믿는 거지?
나는 답을 알았다. 이 남자는 날 믿는 게 아니다. 그저 새로운 쾌락에 목 멘 나머지 신용을 도외시하고 일단 몸부터 내맡긴 거다. 진짜 제정신 아닌 놈 같으니라고.
뭐, 약속은 약속이다. 할 건 해야지.
어차피 내가 하급 신이 되면서 카자크와 내 사이의 격차는 더 벌어졌기 때문에, 글자 수가 남았으면 남았지 부족할 일은 없었다. 그게 이런 식으로 돌아올 줄 알았으면······. 아니, 미리 알았어도 바뀔 건 없었겠지. 고작 카자크 때문에 내 성장을 멈출쏘냐.
나는 카자크에게 명령을 내렸다.
“[라면 먹지 마라].”
이게 카자크가 요구한 [기아스]의 내용이었다.
뭐······, 라면 좋아하나 보지. 그리고 [배신하지 마]라는 [기아스]를 받은 후, 놈은 뭔가를 참는 거에 자신이 쾌감을 느낀다는 사실을 스스로 깨달았나 보다.
내게 [라면 먹고 갈래?] 특성을 팔긴 했지만, 일반 특성이니만큼 조건과 확률을 뚫고 다시 얻는 것도 가능하기는 하다. 아무리 그렇다지만 이런 내용의 [기아스]를 자기 특성 팔아가면서 걸어달라고 하다니. 진짜 카자크 이놈은 갱생의 여지가 아예 없는 진성 변태다.
“감사합니다, 폐하.”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아는지 모르는지, 본인은 입꼬리가 귀에 걸렸다. 푹 빠진 게임의 후속작을 예약 구매 해놓은 상태에서 외출해 있다가 택배 도착 문자를 본 것 같은 표정이었다.
하긴 알고 있지 않았는가. 놈은 남이 뭐라 생각하든 자기 삶의 방식을 바꿀 정도로 연약한 변태가 아니다. ······영악한 변태지.
“이러려고 배운 [기아스]가 아닌데.”
그저 나 혼자만 일방적으로 내상을 입었을 뿐이다.
***
“폐하, 어디 계셨습니까? 찾았습니다.”
카자크와의 거래는 개인실을 빌려서 했기 때문에, 나는 잠깐 만찬장의 자리를 비웠었다. 분명 적당한 호위병에게 말하고 갔을 텐데 전달을 못 받은 모양이다.
하긴 상황이 그렇다. 갑작스레 성범죄자들과 노출증 환자들이 무더기로 나온 데다 외부 손님인 내게 무례까지 범하고 만찬장 분위기가 말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잭 제이콥스로선 정신이 없을 만도 하지. 내가 기분 나빠서 숙소로 돌아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할 법도 했다.
“갑자기 자릴 비워서 미안해. 만찬 중인데.”
“아뇨, 괜찮습니다. 이런 상황이었으니까요.”
사실 잭 제이콥스는 별로 잘못한 게 없다. 진짜 원인 제공자는 카자크······. 아니지. 테스카······, 를 여기 데려온 나지. 카자크라고 자기의 변태적인 특성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어서 공유한 건 아닐 터다. 그 특성을 공유시킨 건 결국 나니 내 책임이었다.
본의 아니게 민폐를 끼쳤으니, 이거 서비스 좀 해야겠다.
“일행분들과 함께 앉으실 수 있도록 자리를 재배정했습니다.”
“음, 고마워.”
잭 제이콥스의 배려로 내 양옆에 테스카와 루시피엘라가 앉게 되었다. 그렇게 두 천사를 양옆에 끼고 앉으니, 주변의 몇몇이 눈에 띄게 아쉬워하거나 풀이 죽은 모습을 보였다. 주로 방금 전에 나한테 와서 들이댔던 사람들이 그런 모습을 보였다.
테스카도 유부남치곤 미녀다. 내가 말해놓고도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내 말이 틀리진 않다. 아무튼 그런데 그녀보다 더 아름다운 루시피엘라가 나타나 내 오른쪽을 차지하니 별로 좋은 기분이 아니긴 하겠지.
뭐, 따지고 보면 저 사람들도 내가 데려온 테스카의 [즐거운 회식] 특성에 휘말린 거였지. 저들의 노골적인 들이댐이 불쾌하긴 했지만, 내가 불쾌해할 입장은 못 된다.
그런 의미에서, 그리고 약간 흐트러진 분위기를 쇄신하는 의미에서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크게 외쳤다.
“손님의 신분으로 요리를 대접하는 건 무례일지 모르나, 총통께서 허락해 주신다면 비장의 술과 요리를 대접하고 싶습니다!”
“거절할 이유가 없군요.”
잭 제이콥스는 곧장 대답했다. 그는 이미 내 요리 솜씨가 꽤 괜찮은 편이고 내가 [오병이어] 스킬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하지만 그도 모르는 게 있다. 난 이미 [오병이어]를 갈아먹었음을. 그리고 그 대신 나온 게 이것임을.
[이진혁의 불]나는 만찬회장에 뜨겁지 않은 불을 켰다. 잭 제이콥스의 동공이 조금 흔들렸지만 난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다른 말이 나오기 전에, 나는 즉시 인벤토리에서 고기 한 덩이를 꺼내 불 속에 던졌다. 그러자 그 고기가 훌륭한 스테이크 한 접시가 되었다. [이진혁의 불] 추가 효과로, 그 스테이크에 가장 잘 맞는 와인도 한 잔 뿅 튀어나온 건 말할 것도 없다.
[그랜드 마스터 셰프 이진혁이 구운 쇠고기 스테이크] – 분류 : 요리– 등급 : 미식(Gourmet)
– 설명 : 지구 출신 요리사인 이진혁이 가장 기본에 충실하게 구운 지구식의 쇠고기 스테이크. 지금 구할 수 있는 재료 중 가장 지구산에 가까운 인류연맹산 5성 블랙 앵거스의 안심 부위를 사용했고, 완벽한 조리로 인해 재료의 맛을 끌어내는 동시에 최고의 맛을 구현해 내는 것에 성공한 기적적인 한 접시다.
요리의 정보를 읽어본 사람들은 납득 못 할지도 모른다. 그야 그렇다. 저들도 내가 뭘 했는지 다 봤다. 한 거라곤 그냥 불 속에 생 쇠고기를 한 덩어리 집어 던진 것에 불과하다. 그런데 완벽한 조리니 기적적인 한 접시니 뭐니 수식어가 너무 거창했다.
그렇다고 내가 변명하는 것도 이상했다. [이진혁의 불]이 구워준 것이긴 하지만, 이것도 어디까지나 내가 조리한 거 맞긴 하니 말이다.
“그, 그랜드 마스터 셰프! 실존했던 건가!?”
“영웅왕 폐하께서! 직접 구워주신!!”
“미식급의 5성 요리라니! 처음 봐!!”
그런데 사람들의 반응이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달랐다. 이상하게 여기리라는 건 어디까지나 나의 기우에 불과했던 모양이다.
그저 태어나서 처음 보는 5성 요리에 감탄하고 군침을 삼키기 바빴다.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은 다들 교단에서 한 끗발 날리는 사람들임에도 불구하고!
역시 미식이나 예술 같은 건 인류연맹이 교단보다 한 수준 더 앞서는 게 맞았다. 내가 지금보다 훨씬 낮은 지위였을 때도 인류연맹은 내게 5성 요리를 펑펑 쏴줬었으니 말이다. 적어도 5성 요리가 교단보단 흔한 게 틀림없다.
어쨌든 분위기가 이렇다 보니 굳이 내가 뭘 설명하려고 할 필요가 없었다.
난 그저 이렇게 말하기만 하면 됐다.
“자, 드시죠!”
***
교단의 모든 이들이 이진혁의 방문을 환영한 것은 아니었다.
교단은 이미 브뤼스만 일파와 그 협력자들을 뿌리 뽑았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실제로 거의 성공했다. 교단은 그리 호락호락한 세력이 아니었다. 더욱이 잭 제이콥스의 [거짓간파의 권능] 덕에 권능급 미만의 기만용 스킬이 거의 먹히지 않은 게 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단의 시도는 ‘거의 성공’ 정도에 머물러 있었다. 왜냐하면 브뤼스만과 직접적인 연결고리가 아예 존재하지 않고 정치적으로도 완전히 떨어져 있었으나, 교단의 입장에선 절대 알 수 없는 단 하나의 조건으로 그와 연결되어 있던 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이름은 오르토만. 교단에서 의회의 경비원 일을 하고 있는 남자였다.
오르토만에게는 비밀이 하나 있었는데, 실은 그의 정체가 마구니였다는 것이 그것이었다.
그도 원래부터 마구니였던 건 아니었다. 그저 젊은 시절에 교단의 다소 갑갑한 청교도적 분위기에 반발해 약간의 일탈행동을 한 게 그 원인이었다. 그러나 그 작은 일탈은 그를 근본부터 바꿔버렸다.
[마라 파피야스의 뼛가루]. 이 마약성 아이템을 지나치게 사용해 버린 탓에 몸도 마음도 영혼도 마구니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미리 알았던 것도 아니고 의도한 것도 아니거니와 합의된 사항도 아니었지만 애초에 마구니들은 공정한 계약 같은 걸 추구하는 놈들이 아니다.그렇게 마구니가 된 오르토만은 자연히 마구니 동맹을 지지하고 마라 파피야스와 그 분신들에게 충성을 바치게 되었다. 마라 파피야스의 분신 넘버링을 지닌 브뤼스만을 지지하게 된 것도 그 이유였다.
그러나 교단은 마구니가 활동하기엔 지나치게 가혹한 환경이었다. 그나마 브뤼스만이 실권을 갖고 있던 시기라면 그저 그의 휘하에서 명령대로 움직이기만 하면 되었으나, 지금은 그런 시절이 아니었다.
좋은 시절은 다 지나갔다. 브뤼스만은 처형일만을 기다리며 감금되어 있는 처지였고, 그의 일파 또한 교단 내의 세력 기반을 잃고 추락한지 오래였다.
다행히 오르토만은 자신이 마구니라는 걸 그 누구에게도 밝히지 않은 채 브뤼스만을 따랐고, 별다른 권력도 능력도 없었기에 경비원직을 잃지 않을 수 있었다.
그렇다고 일개 경비원인 오르토만이 브뤼스만을 구출해 낸다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대신 오르토만는 그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기로 했다.
“이진혁의 위치를 알아냈습니다.”
그건 바로 마구니 동맹의 정보원이었다.
작가의말
죄송합니다, 여러분. 218화의 [라면 먹고 갈래?] 특성이 카자크의 고유 특성이라는 서술은 버그였습니다. 따라서 일반 특성으로 수정되었습니다. 혼란을 드리게 된 점에 대해 다시 한번 사죄의 말씀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