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Loser RAW novel - Chapter 227
그리고 내게는 이러한 티켓들이 있었다.
[채음보양 티켓], [채양보양 티켓]······, 이뿐만이 아니다. 적어도 두 대신선들이 똑같이 갖고 있던 그 외 여러 대법 스킬들은 다 티켓으로 갖고 있었다.왜 이런 게 내게 남아 있느냐면 나는 이 대법 스킬들을 괴량에게서 [착취의 권능]을 통해 착취해 냈고, 따라서 괴월에게서 티켓화시켜 받아낸 걸 또다시 뜯을 필요가 없었다. 물론 겹친 스킬들은 강화되지만, 쓰지도 않을 스킬들을 고작 강화 한 번 하자고 뜯을 이유도 없었다.
더불어 [폭군의 정당한 권리행사]를 얻고자 합성 재료로 쓴 스킬들은 티켓으로도 다시 얻을 수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 티켓들은 내겐 정말 갈아서도 먹지 못할, 아무 쓸모없는 티켓인 셈이다.
추가적으로 대신선 직업 티켓도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주리 리에게 문의해 본 결과 대신선은 그래도 4차 전직 직업군인 모양이었다. 히든 전직이라도 뚫지 않는 한 꽤 강력한 직업이란 소리다. 물론 이미 히든 2차를 뚫은 나와는 별 관련이 없는 이야기지만.
그러니 내가 내 권속이자 천사인 이들에게 이것들을 나눠주는 걸 조금도 거리낄 필요가 없었다. 몸이 커져 못 입게 된 옷을 물려주는 느낌이리라.
내게 쓸모없는 걸 넘겨주는 건지라 나로선 어쩐지 좀 미안함마저 느껴졌지만, 이것들을 받은 케이와 테스카는 크리스마스 선물로 줄곧 원하던 물건이라도 받은 것처럼 기뻐했다. 얼굴이 빨개져서 좋아하는 그들의 모습에 나는 양심의 가책마저 느꼈다.
진작 더 잘해줄걸.
당연한 이야기지만 나는 이걸로 지원을 끝낼 생각이 없었다. 후방을 든든히 하자는 데 나 아깝다고 물자를 아끼겠는가?
괴량과 괴월의 인벤토리에 있던 신선 전용 아이템을 기적에 축복까지 걸어 지원해 줄 거고, 적어도 이들이 대신선 직업 20레벨을 달 때까지는 회식을 할 생각이었다.
“그렇지, 참.”
나는 교단에서 얻은 특성 두 장을 꺼냈다. 카자크의 범용 특성이었던 [라면 먹고 갈래?]와 이름 기억 안 나는 교단 여성의 고유 특성이었던 [사랑의 물방울]. 서로 부부인 이들 둘이 이 특성을 최고로 잘 살려줄 것이라 나는 믿어 의심치 않았다.
물론 테스카의 고유 특성으로 그 과실을 내게도 공유해 줄 것이고 말이다.
나 참, 이것도 결국 날 위한 거였다.
“오, 주여! 그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케이와 테스카는 매우 기뻐하며 각종 티켓을 받아 들어 내 죄책감을 아주 약간이나마 경감해 주었다.
***
한편, 도관법인 천계에서는 난리가 났다.
대신선 괴량과 괴월이 살해당했다는 소문이 파다한 가운데, 그 보복을 위해 이진혁과 그가 머물고 있는 그랑 란츠 세계를 정복하자는 선동이 거리를 뒤덮고 있었다.
물론 천계 입장에선 이 소식을 알 방법이 없었다. 변경 세계인 그랑 란츠에서 일어난 일을 천계에서 어떻게 알겠는가?
천계의 구성원들이 알 수 있는 일이란 건 괴량과 괴월이 비밀리에 그랑 란츠로 향했고, 그 뒤로 소식이 두절되었다는 것뿐이었다.
그럼에도 소문이 파다하고 선동이 날아다니는 것은 마구니 동맹 소속 공작원들의 소행 탓이었다.
사실은 마구니들조차 괴량과 괴월 형제가 살해당했으리라 확신은 못 하고 있었는데, 그냥 살해당했다고 소문을 퍼뜨리는 쪽이 그들에게 더 유리하기 때문에 그렇게 선동하고 있었다.
결국 여론에 떠밀린 나머지 천계 수뇌부에서도 이 일에 대해 다루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들은 곧장 행방불명된 두 대신선의 수색에 나서고 해당 사안에 대해 엄중한 조사 후에 행보를 결정하겠다는, 조금 보수적이긴 하지만 사실 꽤 이성적이고 온당한 판단을 내렸다.
그러나 그러한 발표는 불에 기름을 끼얹는 결과로 이어졌다.
천계의 대중은, 정확히는 마구니들에게 선동당한 대중은 팩트 체크를 원하지 않았다. 논리적이고 체계적인 결론은 마구니에겐 불리했고, 따라서 그들은 결론이 나기 전에 감정적으로 선동하길 선택했다.
– 대신선이 죽어도 움직이지 않는 윗대가리가 일개 신선이 죽는다고 움직이겠느냐.
전후 사실관계는 다 덮어두고 감정만 앞세운 노골적인 선동이었으나 쓸데없이 잘 먹혔다. 특히나 희생자인 괴량 형제와 같은 요선들이 크게 반응했다. 괴량과 괴월 형제는 요선들 사이에서 별로 인기 있는 편인 건 아니었음에도 그들은 격렬하게 시위를 이어나갔다.
사실 요선들은 괴량과 괴월이 사람을 잡아먹으러 간 것이리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들은 평소부터 자신들의 취향을 꽤나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었으므로, 다른 이들에게는 비밀로 하고 자기들끼리 다른 세계로 향했다는 것에서 이미 어느 정도 그 의도가 드러나 있었다.
다른 요선들 또한 괴량이나 괴월처럼 노골적으로 나서진 않았으나, 내심 사람을 잡아먹고 싶어 했다. 그러나 인류종은 일반에는 멸종했다고 알려졌을 정도로 희귀해진 상황. 그들이 품은 금단의 욕구 또한 풀려나지 못한 채 오래 묵어 부풀대로 부풀어올라 있었다.
요선들은 딱히 근거도 없이 괴량 형제가 향한 그랑 란츠에는 인류종이 있을 거라고 확신했다. 그래서 그들은 그 변방 세계를 정복하고 사람을 사냥해 그 생간을 맛보고 싶어 했다.
물론 이 의도로 천계의 군대를 움직일 수는 없다. 사람을 잡아먹지 않은 채 신선이 된 이들도 많았고, 사람이었다가 신선이 된 이들도 있었으니. 상대적으로 보자면 요선들은 천계의 소수파였다.
그런 까닭에 요선들은 본심을 숨기고 여론을 감정적으로 선동하려 했다. 의도적으로 이 의제에서 침착함과 이성을 배제시키려 시도했다.
– 천계 수뇌부는 요선들을 차별하려 하는 것인가!
– 요선의 목숨도 소중하다!
요선들이 정계에서 소수파이긴 해도 상대적으로 그럴 뿐, 그 숫자는 적지 않았다. 아무리 천계가 수직적인 조직이라 해도 요선들이라는 결코 그 영향력이 작지 않은 계파의 여론을 완전히 무시한 채 움직일 수는 없었다.
더욱이 자국민의 죽음을 방관한다는 이미지가 덧씌워지기라도 하면 정치적으로 큰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으니, 요선이 아닌 파벌의 지도자들도 방관자적인 태도를 취하지 못했다.
그렇다 보니 천계 최고회의에서도 그랑 란츠에의 파병을 의제로 올리지 않을 수 없게 몰려 버리고 말았다.
“옥황상제께서도 천계의 여론이 반으로 나뉜 것에 대해 크게 우려하고 계시외다.”
최고회의를 주재하는 대라신선 계유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그는 인류출신 도사로서 수행을 쌓아 신선이 되어 천계에 오른 자였다.
그런 계유의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 대라신선 구호가 눈을 얇게 떴다. 그녀는 요선 출신으로 이 자리에는 요선들의 여론을 대리하여 왔다.
“그럼 갈려진 여론을 하나로 봉합하면 되겠군. 아주 쉬운 방법이 있는데······.”
구호는 거기까지 말하고, 입술 끝을 슬쩍 올렸다.
계유는 이 자리에 오기까지 많은 위기를 거쳤다. 그 위기의 태반이 자신을 보고 군침을 흘렸던 요선들에 의한 것이었기에 그들에 대해 잘 안다. 요선들은 기실 괴월 형제를 추모하고자 하는 생각은 거의 없고, 진짜 목적은 인간의 피와 살을 맛보고자 하는 것임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유는 그것을 굳이 지적하지 않았다. 그저 시선을 돌려, 이 자리의 남은 한 자리를 차지한 대라신선을 바라볼 뿐이었다.
“나는 어느 쪽이건 상관없어.”
천계 최고회의라는 자리의 무게는 아랑곳 않고 탁자 위에 양 다리를 겹쳐 올린 그녀의 이름은 천원. 인류출신인 계유나 짐승출신인 구호와 달리 처음부터 천계소속의 천신이었던 그녀는 정말 아무래도 좋다는 듯 내뱉었다.
“아랫것들의 마음을 달래자고 이런 자리에까지 불려나온 것도 마음에 안 드는데, 나더러 생각하고 판단까지 하라고?”
그 되물음을 듣고 잠시 입을 다문 채 있던 계유가 넌지시 입을 열어 이렇게 말했다.
“······상제께 그렇게 말씀하셨다 보고하면 됩니까?”
“아니.”
천원은 곧장 다리를 탁자 아래로 내렸다.
“천계의 동량들이 가족과도 같은 이를 잃은 슬픔에 잠겨 복수를 청하니, 그 청원을 도저히 외면할 수 없어 이 천원은 분연히 일어나 그들의 의로운 거사에 화답하고자 한다. ······고 전해드려.”
계유는 놀라 눈을 크게 떴다. 옥황상제의 이름을 꺼내자 갑자기 천원의 지능이 올라간 것처럼 보였던 것은 별로 놀랍지 않았다. 항상 있어왔던 일이니까.
그보다는 천원이 너무 간단하게, 그리고 단호하게 요선들의 손을 들어준 거에 놀란 거였다.
‘아니, 괜히 놀랐군.’
계유는 곧 한숨을 내쉬었다. 일이 어떻게 된 건지 대충 짚었기 때문이다. 이 사태를 예상하기라도 한 듯 히죽거리고 있는 구호의 얼굴을 보면 모를 수가 없다.
‘뇌물이라도 집어먹였겠지.’
천원은 천신답지 않게 속물적이고 욕망에 솔직했다. 애초에 현 옥황상제의 조카인 천원을 제치고 인류 출신인 계유가 최고회의를 주재하게 된 것은 천원의 그러한 성향 탓이라고 해도 될 정도였으니.
오히려 천원이 이미 여러 번 부정을 저지르고도 여전히 최고회의의 한 자리를 꿰고 앉은 게 비정상적인 일이라고 탄핵해도 될 정도였으나, 계유도 거기까지 대쪽 같지는 않았다. 안 그래도 인류출신으로 배경이 약한 그다. 옥황상제와 척을 지어봤자 득 될 것이 없다.
한편, 구호는 보란 듯이 계유에게 승리의 미소를 지어보인 것과 달리 내심 놀라고 있었다.
‘저 년이 왜 내 편을 들어준 거지? 이번엔 아무 것도 대접 안 했는데.’
천계의 최고회의에서 구호는 이미 여러 번 자기 뜻대로 회의의 결과를 조작한 적이 있었다. 그건 아주 쉬운 일이었다. 천원만 구워삶으면 되는 일이었으니.
문제는 그 다음 일이었다. 결과를 내는 것 자체는 쉬운 일이었으나, 나중에 감사가 들어와 천원에게 뇌물을 먹였음을 들키는 게 연례행사였으니 말이다.
그래서 구호는 최고회의가 열릴 때마다 다른 부하를 써서 천원에게 뇌물을 먹여야했다. 천원과 달리 구호는 탄핵당하면 이 최고회의에서 바로 쫓겨날 테니 말이다.
매번 그럴 수는 없었다. 뇌물을 마련하는 것도 큰일이지만, 뇌물을 건네기 위해 희생할 부하를 구하는 게 더 큰일이었으므로. 실제로 이번에도 뇌물과 부하를 마련하지 못했다.
이미 뇌물에 맛 들린 천원은 뇌물이 자기 품 안에 들어올 때까지 최고회의를 질질 끌 터였고, 구호 또한 그걸 각오하고 있었다. 오히려 천원의 그러한 성향을 반대로 이용해, 여론이 끓어오르길 기다려 옥황상제가 직접 움직이게 만들 생각까지 했다.
그런데 천원이 이렇게 쉽게 동의를 해주다니? 구호로서도 의외의 일이었다.
‘다른 누가 천원에게 미리 뭘 먹여놓은 건가? 하지만 누가? 왜?’
천원이 별 생각 없이, 혹은 정말로 의분에 가득 차 파병에 찬성해줬을 가능성에 대해서는 아예 떠올리기조차 않았다.
구호는 자기도 모르게 천원을 바라보고 말았다. 그랬다간 천원과 눈이 마주칠 가능성이 높다는 것까지 깜박하고 말이다.
그런데 천원은 구호를 바라보고 있지 않았다. 그저 회의실 천장을 올려다보며 정말로 행복한 듯이 생글생글 웃고 있었다.
그런 천원의 표정에 구호는 문득 소름이 돋는 걸 느꼈다. 뭔가 자신이 큰 잘못을 한 것 같은 직감이 벼락같이 내리꽂혔다.
그때였다.
“알겠소이다. 최고회의의 만장일치로, 천계는 그랑 란츠에의 파병을 결의하는 바이외다!”
계유가 선언했다. 최고회의의 결정이 내려졌다.
계유 본인은 사실 파병을 별로 달갑게 여기지 않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만장일치라 하며 구호와 천원의 면을 세워주는 거였다.
‘이런······.’
구호는 혀를 찼다. 이미 결정은 내려졌고, 되돌릴 수 없게 되었다.
‘하긴, 어차피 나도 내 의견만 갖고 여기 앉아있는 건 아니니.’
구호도 자신의 지지자들을 생각하면 그리 쉽게 손바닥을 뒤집을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다. 어차피 회의는 이 결과로 끝났을 것이다. 그녀는 자신의 불안을 그렇게 녹여 없애려 들었다.
또 천원의 표정을 보았다가 불안을 되새김질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구호는 천원 쪽을 다시 보려 들지 않았다.
그래서 구호는 보지 못했다.
천원이 입을 귀 밑까지 찢어 웃고 있는 그 모습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