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Loser RAW novel - Chapter 235
“그것이 이것입니다.”
그냥 [1UP 코인]의 999회 버전이잖아? 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이 코인에는 특별한 장점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가격이었다. [1UP 코인]이 100카르마인데 비해, [999UP 코인]의 가격은 999카르마에 불과했으니까.
99% 세일이라니! 어맛, 이건 사야 해!
“줘요.”
“감사합니다.”
나는 코인을 받아 챙기고 눈치를 보다 아담에게 넌지시 물어봤다.
“어차피 구매 제한 걸려 있겠죠? 몇 개나 살 수 있어요?”
“별말씀을. 무제한적으로 구매 가능합니다.”
“······하나면 충분할 것 같네요.”
예전같이 픽픽 쓰러져 죽는 게 일이었던 시절이었다면 되는 만큼 샀겠지만, 요즘 들어선 가장 최근에 죽은 게 언제인지 잘 생각이 안 날 정도였다. 하나면 족하겠지. 누굴 줄 수 있으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999UP 코인]도 [1UP 코인]과 마찬가지로 거래 불가가 걸려 있었다.
“그럼 다음 상품을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아담은 딱히 강매할 생각은 없는지 순순히 카탈로그의 다음 장을 넘겼다.
“본점 한정으로 취급하는 [선물용 1UP 코인]입니다.”
뭐야, 여긴 코인밖에 안 파나? 라고 태클을 걸기엔 다소 신경 쓰이는 접두어가 붙어 있었다. 선물용? 설마······. 내 표정을 본 아담이 싱긋 웃어 보였다.
“생각하시는 게 맞습니다. 소중한 분께 선물하실 수 있도록 선물용 포장이 된 [1UP 코인]입니다.”
기존의 [1UP 코인]은 거래 불가의 획득귀속템이라 누구한테 나눠 주겠다는 생각을 못 했는데, 본점에서 이런 게 나올 줄이야!
“비록 한 사람 앞에 하나밖에 선물하지 못하고, 선물 받으시는 분이 네거티브 카르마 상태라면 효력을 잃는 조건이 붙어 있긴 하지만 카르마 마켓에서 살 수 있는 물건 중에서 이만한 선물을 찾기가 드물죠.”
아니, 그야 대외 불출인 물건들투성이니 그렇지.
“대신 선물 포장 비용이 발생하는 탓에 가격이 조금 합리적이지 못하다는 단점이 있습니다만, 본점에까지 당도하신 고객님께 그렇게까지 큰 부담은 아닐 거라 사료됩니다.”
그렇게 말하며 보여준 가격표는 1000카르마. 보통 [1UP 코인]의 10배인 데다, [999UP 코인]보다도 비싸다. 배보다 배꼽이 큰 가격이지만, 더 싸게 사자고 애들 데려다 범죄자를 죽이러 다니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마음 같아선 적당히 100개쯤 사 들고 가고 싶지만 그래 버리면 바로 10만 카르마. 이제 카탈로그 2장째 보고 있는데 가볍게 지르기엔 살짝 부담되기는 하다.
“일단 다음 보죠.”
내 걸 다 사고 남는 돈으로 선물을 사야지. 선물로 돈을 다 써버리고 자기 걸 못 사면 나중에 후회한다. 경험담이다.
***
본점은 역시 본점인지 상품의 베리에이션이 장난 아니었다. 내가 이제 코인은 됐다고 말할 때까지 코인류를 주르르르륵 보여줄 정도였으니 말이다.
코인 지옥이 끝나고 나자 이제는 씨앗 지옥이 시작되었다. 타인을 되살리는 [백년백련의 씨앗]의 상위 버전인 [천년백련의 씨앗]부터 시작해서 줄줄이 베리에이션이 나왔다.
“아니, 저 시간 없는데요. 조금 있으면 카르마 날아갈 거 같은데.”
“걱정하지 마십시오, 고객님. 그럴 일은 없습니다.”
내 항의에 아담은 가볍게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설명을 요구하듯 바라보자, 아담은 더 시간을 끌지 않고 바로 대답을 들려주었다.
“지점과 달리 본점에서는 시간이 멈춰진 상태에서 서비스가 제공되고 있으니까요. 설령 여기서 한 달간 숙박을 하셔도 바깥에서는 다른 이들이 고객님께서 카르마 마켓에 다녀온 것도 인지하지 못할 겁니다.”
그러고 보니 숙박 서비스에 대해서 말씀드리지 못했군요, 하며 아담은 무료 숙박 서비스가 일주일까지 제공됨을 알려주었다.
아니, 자고 가는 걸 깔고 가는 거야? 내가 어이없어하며 아담을 봤더니, 아담은 내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매력적으로 윙크하며 이렇게 말했다.
“이제 느긋하게 상품 설명을 드려도 되겠군요.”
이 아저씨, 분명 즐기고 있다. 점주로서의 자기 일을, 그러니까 상품 설명을 즐기고 있음에 틀림이 없다.
“그래요, 뭐. 그럼 계속 듣죠.”
아담의 표정이 확 펴졌다. 얼굴에 윤기가 확 도는 듯했다.
“아, 이야기가 나와서 드리는 말씀입니다만. 본점의 숙박 플랜 중에는 프리미엄 룸도 있습니다. 물론 프리미엄인 만큼 소정의 금액을 받고 있습니다만 그 정도 가치는 있습니다. 여기 카탈로그가 있으니 보시죠. 무료 숙박 중에도 받으실 수 있는 유료 서비스도 추천드릴 만한데, 특히 안마 서비스가 일품이니 꼭 한번 경험해 보셨으면 합니다.”
첫인상으론 안 그랬는데, 아담이 점점 카자크와 비슷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
나는 후회했다.
“그냥 처음부터 추천 상품 위주로 알려달라고 할걸······.”
보통 쇼핑몰 등에서 제일 피해야 할 게 추천 상품이라고 하던데, 적어도 카르마 마켓에서는 들어맞지 않는 격언이었다.
수많은 베리에이션 상품 중에 카탈로그의 추천 마크가 커다랗게 붙은 물건을 사면 보통 그게 가장 괜찮은 게 맞았다. 아담의 긴 상품 설명을 다 듣고 나 혼자 끙끙대며 고심해 봐야 결론은 늘 같았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카르마 다 쓰고 가자는 생각으로 작심하고 카탈로그를 들여다봤는데, 그래서 결국 내가 산 물건들은 추천 상품들뿐이었다.
맨 처음 산 [999UP 코인]을 비롯해서, [선물용 1UP 코인]도 몇 개 샀고, 다 써버린 [백년백련의 씨앗]도 몇 개 보충했다. [백년백련의 씨앗] 광역 부활 판인 [천년흑백련의 씨앗]도 샀고······.
특이하게 [시대정신의 씨앗]이나 [시대정신의 나무 묘목] 같은 것도 팔고 있었지만 이건 스킵했다. [세계 혁명가]가 아니더라도 사다가 쓸 수 있는 거였나, 이거······.
하지만 혁명력을 벌어봐야 [세계를 혁명하는 힘] 스킬이 없으면 의미가 없지. 그냥 순수하게 혁명을 일으키는 용도인 것 같았다.
다른 것도 많았지만 아담이 이미 말했듯 카르마 마켓 외부로의 반출이 허용되는 아이템은 적었고, 그것 때문에 아쉽게 포기해야 하는 아이템도 많았다. 술 종류가 특히 그랬다. 아무리 [이진혁의 불]이 있다곤 해도 좋은 술은 아무리 쌓아놔도 부족하니까.
마지막으로 남은 카르마를 싹싹 긁어먹을 [혁명의 열매 넥타르]. 이건 전에 먹었던 [황금사과 넥타르]보다 좋은 거다. 잔여 카르마를 소모하는 만큼 신성과 영혼의 격을 높여줄 뿐 아니라, 혁명력까지 얻게 해주니까.
사실 다른 베리에이션도 있었다. 아니, 많았다. 내력을 같이 올려주거나 음양기를 올려주거나 마력을 올려주거나 하는. 이 중에서 선택하라면 나한테는 당연히 혁명력이 가장 좋았으니 선택의 여지는 없는 거나 다름없었다.
그렇게 해서 거의 일주일에 걸친 카르마 마켓 쇼핑이 끝났다. 그냥 추천 상품만 소개받았으면 하루는커녕 반나절이나 걸렸을까 싶은데, 아득바득 카탈로그의 모든 상품들을 전부 다 소개받다 보니 이렇게 걸린 거다.
이렇다 보니 당연히 숙박 서비스도 이용해야 했다. 뭐, 내 능력치면 일주일 정도 밤샘한다고 지치진 않지만 설명 듣다듣다 지쳐서 안 끊어갈 수가 없었다.
아, 그래도 아담이 추천해 준 안마 서비스는 진짜 좋았다. 만약 내가 2차 전직 정도 뚫은 상태인 초보 플레이어였다면 기연이라고 여길 만한 서비스였으니 말이다.
전신진기를 끌어 올려 아직 환골탈태를 거치지 않았다면 환골탈태까지 시켜주는 효능이 있다고 하던데, 이미 뚫을 거 다 뚫은 내 수준에선 그냥 내공 능력치를 조금 많이 올려주고 전신을 시원하게 해주는 안마에 그쳤다.
뭐, 다음에는 이렇게 오래 걸릴 일 없을 테니 다행이라고 위안 삼자. 카탈로그 내용도 외워놨고 또 오면 뭘 사야 할지도 대강 감이 잡혔으니 말이다.
“자, 그럼 이걸로 쇼핑을 마치신 거죠?”
아담이 내게 말했다. 그 목소리와 표정에 아쉬움이 가득 묻어나는 걸 보니 좀 소름이 돋았다. 그렇게 설명해 주고도 그것도 모자라다고 느낀 거려나.
“네.”
하지만 나는 애써 미소 지으며 딱 잘라 끊었다.
“그럼 넥타르가 효과를 완전히 마친 후에 오신 곳으로 되돌려 드리겠습니다. [VIP 입장권]으로 원할 때 언제든 본점에 다시 오실 수 있음을 잊지 마시고, 다시 뵐 수 있는 그날을 기다리겠습니다.”
아담이 그렇게 허리를 숙여 인사하자, 옆에 서 있던 제우스도 자연스럽게 같이 허리를 숙였다.
“고마워요, 아담. 제우스도 고생 많았어요.”
그리고 나는 넥타르를 마셨다.
***
“와아아아아아아!!”
나는 내 신도, 내 백성들이 환호성을 지르는 현장으로 되돌아왔다.
아, 그렇지. 카르마 마켓 본점에서 일주일이나 시간을 보내는 바람에 깜박했지만, 실제 시간은 하나도 흐르지 않는다고 했었지. 아담이 첫날 말해줬었다.
그러니 이 사람들이 일주일 동안 계속 소리를 지르고 있었던 건 아니다. 오히려 기세를 타서 환호성의 음량이 한층 더 높아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환호성이 향하는 곳은, 사람은 바로 나다. 그것도 단순한 환호가 아니라 실질적인 신앙이 담긴 경배로써 말이다.
“내가 이겼다!!”
나는 내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다. 그런데 그 행동의 결과는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큰 변화를 이끌어내었다.
존재의 격이 오르고 신성이 내 몸을 재조립하는 것은 이미 한 번 겪어본 바 있었다. 잡신에서 하급 신으로 올라올 때 말이다.
겪어본 바 있었기에 나는 더욱 놀랐다.
아니, 이렇게 빨리?
그렇다. 나는 중급 신에 오르는 과정을 거치고 있는 거였다.
놀라긴 했지만 의외의 일은 아닌 것이, 카르마 마켓을 나설 때 나는 이미 [혁명의 열매 넥타르]를 마셨다. 그 덕에 내 신성과 영혼의 격은 이미 높아져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마지막 한 계단을 오르게 해준 것이 내 신도들의 환호성이라는 건 내게 있어서 특별한 의미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신성이 발하는 빛이 걷히고, 모든 변화가 완료되자 나는 상태창을 열어보았다.
신격 : 중급 신.
상태창이 나의 변화를 인증해주었다. 스스로 이미 중급 신이 되었다고 여겼으나, 객관적인 기준을 얻는 건 다른 문제다.
상태창을 닫고 나는 내 몸의 상태를 점검했다. 비록 막 불멸자가 되었을 때처럼 파격적인 변화를 느낀 것은 아니었으나, 조금 더 완전한 존재가 되었음을 스스로 느낄 수 있었다.
잡신 때는 피조물의 육신에 불멸자의 영혼을 지닌 거였고, 하급 신 때는 불멸자의 육신마저 손에 넣었다면, 중급 신에 이르러선 불멸자의 육신이 조금 더 나의 것이 되었다는 느낌이다.
무슨 의미냐면, 하급 신에게 있어서 신도들의 신앙은 일용할 양식이자 없어지면 죽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 정도의 생필품이었지만 중급 신이 되고 보니 조금 달라졌다.
그렇다고 기호품까지 떨어져 내린 것은 아니지만, 항상 매일 먹어야 하는 것이란 느낌은 아니다.
말하자면······, 고기? 같은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조금 다른가?
나의 존재감이 보다 거대해진 것을 내 신도들도 느낀 건지 환호성이 더 커졌다. 나는 그 환호성을 기쁘게 받아들였다.
어찌 됐든 내게 신앙은 여전히 필요하고 필수적이다.
그리고 달콤하다.
“내가 너희의 왕이니 찬양하라!!”
내 외침이 만방에 울려 퍼졌고, 내 신도들의 환호성 또한 울려 퍼졌다.
좋은 날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