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Loser RAW novel - Chapter 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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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 수가,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나!”
상급 신 지엠은 이를 악물고 부들부들 떨었다. 방심했다고 간단히 치워 버리기엔 그 피해가 너무나도 극심했다.
어쩌면 역사상 처음일지 모르는 만신전의 총력전, 그 역사적인 전쟁의 선두에 섰음을 지엠은 자랑스러워했었다. 이 선두의 위치를 따내기 위해 온갖 로비와 물밑 협상, 때로는 더러운 술수까지도 동원했다. 그만큼 이 자리를 탐낸 라이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야 그렇다. 역사에 이름을 남길 명예로운 업적이다. 더욱이 그 난이도가 어려운 것도 아니다. 그냥 차원문 너머로 진군하여 발자국 하나만 남기면 그것으로 평생을 자랑할 만한 업적을 얻을 수 있다.
신들의 수명이 좀 긴가? 그냥 긴 수준이 아니다. 준신이 된 시점에서 이미 영생을 얻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 긴 생애 동안 자랑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은 얼마나 허무한 일인가?
반대로 존재가 지속되는 한 영원무궁토록 빛날 업적으로 자신을 치장할 수 있다는 유혹은 실로 강력했다.
그래서 지엠은 다른 이들이 알게 되면 손가락질할 것이 빤한 추잡한 짓까지 벌이며 지금의 이 자리를 손에 넣었다. 설령 다소의 오명을 뒤집어쓰더라도 앞으로 얻게 될 명성이 더 반짝이며 가려줄 것이라 믿으며.
그런데 이게 뭔가? 차원문을 열자마자 눈에 보이기는커녕 전함의 경보 장치에도 감지되지 않는 질량 병기가 아광속으로 날아들어 기함을 반 토막 내질 않나, 그런 끔찍한 공격을 선전포고도 없이 퍼부은 적의 모습은 찾아볼 수도 없질 않나.
지엠이 전함에 오르기 전에 상정한 적이라곤 먼저 낙원으로 파견되어 낙원을 독점하려고 협잡질을 하는 중급 신과 그 부하들뿐이었다. 그들이 강해봤자 얼마나 강하겠는가? 심지어 그들에겐 전함조차 지급되지 않았었다.
그렇기에 예봉을 맡았음에도 지엠은 별로 긴장하지 않았다. 함대전을 상정하지 않았기에 기함에 특별히 강력한 무장을 마련하지도 않았고, 보좌관들 또한 무력이나 전투력보다는 친분을 우선시해 뽑았다.
이것이 지엠 탓인가? 아니다! 적어도 지엠 본인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랑 란츠는 이전까지 알려지지 않은 인류종들이 모습을 드러낸 새로운 낙원이다. 만신전의 모든 신들에게 있어 축복이 되리라 했던 곳이다. 이런 곳을 가는데 왜 비싸고 강력한 무기와 자신의 라이벌이 될지도 모르는 강력한 무신을 옆에 두겠는가?
그런데 그 낙원, 그랑 란츠에 터무니없는 위협이 도사리고 있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위협이.
그러고 보니 먼저 그랑 란츠를 차지했다던 선발대 놈들, 본래 적으로 상정되었던 그 놈들은 대체 어딜 갔지?
“다 죽었겠지!!”
그 버러지 같은 것들이 자신조차 목숨의 위협을 느낄 정도로 강력한 미지의 적대세력을 극복할 수 있을 리 만무했다. 적어도 지엠은 그렇게 생각했다.
사실 그들은 이진혁에 의해 신성이 바닥날 때까지 착취당한 후 포로수용소에 갇혀있었으나, 지엠은 그 사실을 몰랐으므로 그가 그렇게 생각하게 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아니, 그들 사정이야 어떻게 되든 상관없는 일이다.
지엠은 이를 악물었다.
“크, 으으으······!”
그러자 신음성이 목을 타고 저절로 역류했다.
신들이 죽어간다. 영생과 불멸을 손에 넣은 신들이. 선발대 놈들, 그 버러지들과 마찬가지로.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이 지엠의 책임이 될 터였다.
“에르메스! 에르메스!”
지엠은 이를 득득 갈며 한 상급 신의 이름을 외쳤다.
“에르메스에게 속았어!!”
결국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한 지엠은 이 모든 것을 에르메스 탓으로 돌리기로 했다. 그리고 그건 사실 그리 틀리지 않았다.
분명 에르메스는 만신전의 왕에게 나아가 그랑 란츠에 대해 손만 뻗으면 닿을 것 같은 낙원으로 묘사했다. 그러나 그건 거짓말이었다. 낙원이 다 무어냔 말인가.
여긴 지옥이다!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요, 대장! 이대로 있으면 다 죽소!!”
부관으로 데려온 로레알이 소리를 빽 질렀다. 평소에 형 동생 하는 사이라 데려왔더니만 못 하는 소리가 없다.
네가 답을 내야지, 부관이니까! 이렇게 되받아치려다 이런 감정싸움이 생존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죽을 가능성만 높아지게 만든다는 걸 깨달은 지엠은 꾹 눌러 참았다.
“놈들의 위치부터 파악해! 대강이라도 상관없으니까!!”
“알았소!”
로레알이 레이더를 들여다보았다. 그러나 그 레이더에는 아무것도 비치지 않는다는 것을 지엠은 잘 알고 있었다. 이미 봤으니까. 갑갑해서 소리나 왁 질러볼까 할 때, 누군가의 정신파가 광역으로 울려 퍼졌다.
= 저기다!
= 저쪽에 적이 있다!
정신파이기 때문에 ‘저쪽’이 어느 쪽인지에 대한 정보도 담겨 있었다. 그것을 알아차린 지엠은 입술을 한 번 핥고 통신기를 들었다.
“좋아.”
훅, 하고 크게 한 번 숨을 내쉰 후 지엠은 통신기를 통해 명령했다.
“공간 이동이 취소된 전함은 좌표를 새로 짜! 놈의 뒤를 노려라!! 공간 이동을 마친 후 대강의 위치라도 상관없으니 대충 쏴재껴! 프렌들리 파이어만 주의해라!!”
반론 같은 건 듣지 않을 요량으로, 지엠은 통신기를 거칠게 내려놓았다. 이 명령으로 말미암아 적어도 이쪽을 향한 포격은 줄어들 것이다. 저걸 포격이라 불러야 될지 의문이긴 하지만.
“저, 대장. 프렌들리 파이어가 뭐요?”
그 와중에 로레알은 지엠에게 이런 거나 묻고 앉았다. 아무리 능력보다 친분으로 뽑았다지만 이런 걸 부관이라고······. 몰려오는 두통을 참으며 지엠은 그 질문에 대답해 주었다.
“아군 오사.”
“아, 그럼 그렇게 말을 하지. 왜······.”
듣다 보니 맞는 말이었기에, 지엠은 그냥 로레알의 툴툴거림을 무시했다.
어쨌든 지엠의 전술은 통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쪽을 향해 날아오던 질량 병기가 잠시 날아오는 걸 멈췄고, 대신 지정한 좌표를 향해 날아가는 듯 보였다. 우주 공간을 가르고 날아오는 빛과 충격파가 그걸 증명했다.
“좋아, 지금이다. 우리는 이제 도망치자고. 후진시켜.”
“알았소, 대장!”
자기 살자고 하는 행동엔 이보다 더 잽쌀 수가 없다. 로레알은 호다닥 일어나 전함의 계기판에 가 앉았다.
적이 모습을 드러낸 것은 그때였다. 섬광이 일었고, 충격파가 번져 나갔다. 그저 모습을 드러낼 뿐인데 이런 폭발과 섬전이라니!
“크!”
그러나 지엠은 견뎌냈다.
“으, 으아아악!”
그런데 로레알은 그렇지 못했다.
로레알이 비명을 질렀고, 그의 오조작으로 인해 전함이 크게 흔들렸다.
“뭐야?! 왜 그래?!”
뒤늦게 지엠은 자신이 견뎌냈던 것을 로레알은 견뎌내지 못했음을 깨달았다.
“주, 죽여 버릴 거야! 죽여 버리겠어!”
그 말이 자신을 향한 것이었음 또한 지엠은 지나치게 늦게 알았다. 날카로운 칼날이 지엠을 향해 번뜩였다. 극도 혼란이라는 상태 이상에 걸린 탓이다. 지엠은 한숨처럼 생각했다.
“하찮고, 하찮군.”
지엠은 쉽게 로레알을 제압했다. 이럴 땐 친분을 능력보다 우선시한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하나? 아니,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능력 위주로 부관을 발탁했다면 애초에 극도 혼란에 걸려 광증을 일으키진 않았을 테니. 그냥 저항했을 것이다. 자신처럼 말이다.
그리고 자신이 탄, 이미 반 토막 난 기함이 다른 아군 전함을 향해 돌격하는 꼴도 안 봐도 됐을 터였다.
“아주 그냥, ······어휴.”
빛과 섬광, 충격파가 다시금 지엠을 덮쳤다. 이번에는 소리가 들렸는데, 폭발이 그의 몸을 매질로 해 고막을 진동시켰기 때문이다.
콰아아앙!
***
나는 멍하니 눈앞의 광경을 바라보았다.
“오, 오오······.”
[폭군의 정당한 권리행사]의 양 스위치 효과는 절륜했다. 스위치를 넣으면 [기습 준비 태세]가 꺼지는 대신 [폭군의 오라]가 켜지는데, 그 오라에 노출된 적들은 [극도 혼란], [극도 공포], [극도 충격] 등의 상태 이상에 걸린다.이미 스킬 설명으로 알고 있었던 사실이다. 그리고 이미 몇 번 써먹은 스킬 효과이기도 했고.
그런데 함대전에서 이 효과를 써먹으니 아주 난리도 아니었다. 멍하니 멈춘 놈이 나오는 건 기본이고, 아군 전함에 포격을 가하는 놈이 나오질 않나, 심지어 자기네 기함에 돌진을 하는 놈까지 나와 버렸다. 여기서 ‘놈’이란 전부 전함 단위다.
“오라만 터뜨렸는데 이런 전과라니······.”
그 이유는 말할 것도 없이 [진홍 혜성] 덕이다. [하이퍼 이진혁 모드]의 [진홍 혜성]이 갑옷 취급이라, 양 스위치를 올려 얻는 효과인 [폭군의 오라] 또한 [진홍 혜성] 전체를 덮는 형태로 나타난 덕이었다.
이 현상 자체는 이미 [푸른 유성]일 때도 경험한 것이지만, 그때보다도 더 강렬한 효과를 발휘한 건 당연히 [진홍 혜성]이 합체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단순 계산으로도 [진홍 혜성]이 [푸른 유성]보다 13배 크다. 그만큼 [폭군의 오라]도 거대해졌다.
질량과 부피의 폭력이다!
아니, 질량은 아닌가? ······뭐 어때! 내가 지금 신나는데!
“좋았어!”
사실 벌써 좋아하고 있을 때는 아니다. 지금 이 공역에 나타난 적들은 만신전의 전력 중 극히 일부에 불과할 테니까. 이것들은 그냥 선발대다. 이것들도 섬멸을 못 시키면 아예 전쟁 자체가 성립이 안 될 정도다.
나는 [폭군의 오라]에 노출되어 굳어버린 적들을 향해 [로켓 라이트 펀치]를 비롯한 전함 펀치를 날려 부쉈다.
“공짜다, 공짜!”
그렇게 한창 공짜 경험치와 공짜 전과를 챙기고 있으려니, 상태 이상에서 벗어났는지 허둥대면서도 움직이는 적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내 쪽을 향해 포격을 가하는 적도 나타났고 말이다.
“흥!”
나는 [폭군의 정당한 권리행사]의 스위치를 음으로 놓았다. [투명화]와 [기척차단]이 동시에 제공되는 [기습 준비 태세]가 내게 걸렸다. 이로써 적들은 다시 내 위치를 놓치게 될 터였다.
그래도 방금 전까지 내가 있었던 곳을 향해 포격이 날아들고 있었다. 하긴 적들도 바보는 아니지. 나는 재빨리 각부의 슬러스터로 추진제를 내뿜어 고속 이동을 하면서 전함 펀치로 날려 보냈던 전함들을 제어해 돌아오도록 해 합체시켰다.
후루호이가 대체 무슨 수를 썼는지는 모르겠지만, 모든 전함은 호환성이 있었다. 발 부위를 구성하던 전함으로 팔꿈치를 대신하는 것도 가능했다. 심지어 기함을 날려 보내더라도 다른 전함을 기함으로 대신하고 가슴 부위에 위치시킬 수 있을 것이다.
뒤이어 돌아온 네 척의 전함으로 팔다리를 구성한 나는 다시금 완전해진 합체 형태의 모습을 되찾았다.
합체 시퀀스의 빈틈을 [기습 준비 태세]로 메운 후, 나는 곧장 다음 공격을 퍼부었다.
“[이진혁의 빛]!”
[진홍 혜성], [하이퍼 이진혁 모드]의 13척 합체 상태의 내 오른손 검지 끝에서 한 줄기의 빛이 뿜어져 나갔다. 뻗어 나가는 빛줄기의 두께와 광량을 보자니 필살 이진혁 빔이라 외쳐도 될 것 같았다. 사실 따지고 보면 빔보다는 레이저에 가깝겠지만 그게 뭐 중요하겠는가? 내 맘인데! [초월 이진혁]으로 새로이 추가된 지배급의 스킬 효과인 [이진혁의 빛]은 평소에는 그랑 란츠의 인류에게 자애로운 신비의 축복을 내리는 용도로 쓰였지만, 지금의 빛은 완전히 그 속성이 달랐다. 파괴와 살상의 힘을 담은 패도적인 빛이다.적들은 생각지도 못한 방향에서 뻗어져 나온 [이진혁의 빛]에 속수무책이었다. 일단 차원문을 통과한 전함들은 다 잘라냈고, 차원문을 통과하고 있는 전함들도 토막을 내주었다. 이 정도면 엄청나게 긴 빛의 칼이라 해도 되겠다.
주변이 조용한 가운데 폭발이 눈으로만 보이는 광경은 일견 신비했다. 저 폭발이 하나 일어날 때마다 적지 않은 생명이 녹아나가는 게 시스템 메시지로 보이지 않는다면 로맨틱하게 즐길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걸로 싸움이 끝난 건 아니었다. 아직 육신에 묶인 잡신들은 죽어나가고 있었으나, 하급 신 이상은 이야기가 다르다. 완전히 불멸자가 된 신들은 호흡을 필요치 않고, 상급 신의 경우에는 육신이 죽더라도 완전히 소멸당하지 않는다.
실제로 폭발하는 전함에서 탈출한 신들의 모습이 보였다. 무중력 상태에 쉽게 적응하고 신성을 흩뿌려 가며 움직여 집결하는 모습도. 기왕이면 모조리 사로잡아 포로수용소에 처넣고 진득하게 착취하고 싶지만 글쎄, 상황이 그렇게 여유롭지는 않을 것 같았다.
= 폐하, 지상에서 천계의 병력과 조우했습니다.
잭 제이콥스의 통신이 들어왔다.
올 게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