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Loser RAW novel - Chapter 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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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로에는 함정이 몇 개 있었고 추가적인 보안설비가 들어서 있었다. 이렇게까지 꽁꽁 숨겨두다니, 대체 여기에 뭘 숨겨둔 건지 관심이 쏠린다.
마지막으로 열 발가락 전부의 지문을 요구하는 보안장치를 통과하고 나서야, 내가 쫓아온 슈퍼 포스 병사는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 목적지는 한 평도 안 되어 보이는 작고 좁은 비밀 공간이었는데, 천장도 낮아서 거북이 목을 해서야 겨우 들어갈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비밀 공간 안에는 손바닥만 한 크기의 터치 패널이 달린 통신기가 설치되어 있었다. 여기 있는 건 이게 전부였다.
“어우, 불편해.”
슈퍼 포스 병사가 비밀 공간에 들어오고 나서 다시 문을 닫으려고 들었기에, 나는 몸을 접어서 공간 안에 수납되어야 했다.
사람 둘이 들어오기엔 넘치는 공간이었지만 내 솜씨가 몇이냐. 나도 잘 모른다. 999+니 표시도 안 된다. 어쨌든 그 솜씨 능력치를 잘 살려서 슈퍼 포스 병사와 몸이 닿지 않게 잘 접어 넣었다.
“통신보안, 통신보안.”
문을 닫고서야 긴장이 풀린 듯 한숨을 내쉰 슈퍼 포스 병사는 통신기를 작동시켰다. 통신기는 금방 작동됐다. 상대의 얼굴이 통신기의 화면에 보였다. 그 얼굴은 어디서 본 것처럼 생겼다. 누구지?
= 그래, 통신보안. 337번이로군.
337번? 무슨 뜻이지?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질문을 들은 슈퍼 포스 병사는 미간을 찌푸렸다.
“나는 마라 파피야스다. 337번이라고 부르지 마.”
= 나도 알아. 나도 마라 파피야스니까.
“너는 326번이지.”
= 마라 파피야스라니까?
“누가 먼저 시작했지?
= 쓸데없는 입씨름은 그만두지.
이들은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말싸움을 시작했다가 멋대로 끝냈다.
그보다 마라 파피야스? 그게 누구지? 잠시 생각한 나는 곧 그 이름을 어디서 들었는지 떠올릴 수 있었다. 분명······, [마라 파피야스의 오금뼈]로 처음 들은 이름이다. 로제펠트 합트크누플을 처치하고 마구니 동맹으로부터 현상금조로 받은 아이템.
그런데 둘 다 마라 파피야스라고? 이건 또 무슨 소리지?
아, 그러고 보니. 나는 혼잣말을 입 밖에 낼 뻔했지만 간신히 그러지는 않을 수 있었다. 잭 제이콥스에게서 마구니 동맹의 리더가 마라 파피야스의 분신들이라고 한 적이 있는 것 같다.
그럼 이것들 둘 다 마라 파피야스의 분신인 건가? 분신이라서 둘 다 자신을 마라 파피야스라 여기고 있는 거고?
허참. 이상한 놈들이네.
내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도 두 마라 파피야스? 아니면 분신? 어쨌건 이것들의 대화는 이어지고 있었다.
“답보 상태였던 슈퍼 포스 플랜은 다시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강화액의 조합식에 마라 파피야스의 골수 농도를 높일수록 효과가 좋아지고 있어. 투약자들은 모두 종족 한계를 넘어 성장하고 있다.”
딴 생각하고 있던 나는 337번의 말을 듣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마라 파피야스의 골수를 투약하고 있다고? 이것들이 제 정신인가? [마라 파피야스의 오금뼈]. 그건 뼛가루로 갈아서 코 점막으로 흡수해 효과를 보는 마약성 물질이었다. 오금뼈가 그런데, 골수가 과연 멀쩡할까? 난 아니라고 본다. 그런 걸 슈퍼 포스들에게 투약하고 있는 건가?
당연히 녹음기는 켜놨다. [레벨 업 마스터]의 기능 중 하나였다. 이 음성데이터도 어디다 쓸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 아니, 분명 써먹을 수 있다.
= 투약자들이 제대로 마구니로 변태되어가고 있다는 증거로군.
326번의 말도 흥미로웠다.
마구니로 변태? 사람을 마구니로 바꿀 수 있는 건가? 강화액을 주입하는 것만으로도?
나는 핵심 정보를 제대로 캐냈다는 기쁨보다 이게 함정이 아닐까 하는 걱정이 먼저 들었다. 너무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더니 의심부터 생긴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 진실을 이야기하고 있다. [폭군의 정당한 권리행사]의 옵션 중 하나인 [폭군의 추궁] 패시브 효과가 항시거짓간파를 발동하고 있기 때문에 거짓말을 들으면 바로 알 수 있다.
다른 경우의 수라면, 이들이 스스로가 하는 말을 진실이라고 믿고 있기만 한 경우를 들 수 있겠다. 사실은 거짓임에도 이들은 거짓임을 모르는 거지.
“응, 그렇지.”
= 지나치지 않게 조심해. 그러다 들키겠다.
내가 생각하는 중에도 대화는 이어진다.
“인류연맹의 정권을 잡게 되면 어느 정도는 도를 넘겨도 되겠지. 너희가 잘해줘야 해.”
= 그러니까 조심하라고. 공작을 완료하기까진 아직 시간이 좀 걸려. 의회를 설득해야 하거든. 만신전이나 천계처럼 계급사회면 작업이 간단한데. 쯧.
“만약의 경우 쿠데타군을 움직일 생각을 하자면 최대한 강화해 둬야 할 텐데.”
= 중요한 건 밸런스야. 아슬아슬하게 하라고.
이놈들, 쿠데타까지 생각하고 있었군. 하긴 쿠데타는 직업군인이 정치권력을 손에 넣기 위한 상투 수단이다. 이건 차라리 예상대로라고 봐도 될 정도다.
= 어쨌든 타이밍 조절이 중요하니 자주자주 연락하라고.
“그러기가 힘들다니까. 이 세계에서의 나는 너희 생각보다 유명해서 기자들이 따라붙는다고.”
슈퍼 포스가 유명인인가? 크리스티나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뭐, 유명하긴 한 것 같던데. 아무리 그래도 일개 병사에게 기자가 따라붙는다고 보기는 힘들다.
더욱이 조금 전의 대화. 337번은 본인이 다른 병사에게 마라 파피야스의 골수를 투여하는 것처럼 말하고 있었다. 거기다 쿠데타를 거론하기까지. 병사 계급이 이런 일을 주도하기는 힘들다. 정황상 내가 따라온 인물은 단순한 병사가 아닌 것 같았다.
이 정도면 내가 운이 좋았다고 해야겠지?
= 들킨 건 아니겠지?
“하, 들켰으면 이렇게 통신도 못하고 있었겠지. 오히려 이 통신 때문에 들킬 가능성이 생길 정도라니까?
= 그래도 자주자주 연락해. 필요한 일이다.
“알았다. 쯧, 이런 일에 마라 파피야스인 내가 직접 나서야 하다니.”
= 1번이 직접 내린 명령이니 어쩔 수 없지. 번호 낮은 게 죄다, 죄야.
둘은 사이가 나빠 보이더니 또 금세 의기투합했다. 상사 욕이라도 하는 건가?
내 추측이지만, 아마 번호가 높을수록 마구니들 사이에서 지위가 높은 것 같다. 337번과 326번 정도면 그래도 같은 계급에 군번이 차이가 좀 나는 정도 사이인 것 같고.
잡담을 몇 마디 나눈 후, 337번은 통신기를 껐다. 그리고 심호흡을 한 번 한 후, 비밀 공간에서 다시 나가려 들었다.
좋아, 때가 됐군. 중요한 정보도 어느 정도 손에 넣었고 나 자신도 충분히 즐기기도 했으니 이제 그만 놀아도 될 것 같다.
[폭군의 정당한 권리행사] – [폭군의 지배]나는 지배급 스킬의 지배 효과를 발동했다. 스킬은 성공적으로 들어갔다. 당연한 일이다. 고작 마구니 끄나풀 하나가 지배급 스킬에 저항할 수 있을 리가 없지.
이놈을 지배해서 마라 파피야스가 뭐고 분신이 뭐며 이것들이 쓰는 숫자, 그리고 사람을 마구니로 바꾸는 게 뭔지 물어봐야겠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펑.
“어?”
337번이 없어졌다. 그야말로 바닥으로 꺼졌나 하늘로 솟았나, 완전히 모습을 감췄다.
당황하지 않을 수가 없다. 아니, 지배급 스킬에 저항해서 탈출한 거야? 그게 말이 돼?
나는 반사적으로 [퀵 로드]로 시점을 되감을 준비를 하며 주변을 돌아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내 직감도 다른 반응이 없이 조용했다. 337번을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랬다. 놈이 내게 조금도 위협이 안 되는 상대란 걸 반대로 알려주고 있었는데······.
내 직감마저 속일 정도로 강력한 존재란 건가? 그런데 그게 가능한 건가?
“······그런 류의 스킬인가?”
이것이 스킬의 효과라면, 337번은 지배급 혹은 그보다도 높은 등급의 스킬을 소유하고 사용한 셈이 된다.
즉, 적은 나보다 강할 수도 있다.
소름이 쫙 돋았다. 긴장으로 식은땀이 맺혔다.
이럴 수가.
“이런 일이!”
위험하다! 직감은 여전히 조용했지만 지금은 그게 더 위협적으로 느껴진다.
“당장 여기서 벗어나야 해!”
만약 적이 나보다 강하다면, 이런 좁은 통로 안에 머무는 건 자살행위다. 통로째로 싸 먹힐 수 있다. 나는 즉시 [폭군의 대역]으로 내 대역을 통로 바깥에 생성한 후, 통로 안에 있는 나를 소멸시켰다. 이로써 나는 통로 바깥으로 빠져나온 셈이 된다.
“음? 이상한데.”
나는 그 자리에 머문 채 위화감을 곱씹었다. 적은 내 탈출 시도를 방해하지 않았다. 아직 공격하지도 않았고. 나를 죽일 절호의 찬스였음에도 적은 나를 내버려 두었다.
왜?
“내가 뭔가 착각한 건가?”
확인해 봐야겠다.
[1UP 코인]은 아직 넉넉하다. 지난 전쟁으로 카르마도 벌어두었다. 나는 목숨 하나쯤은 써도 괜찮으리라는 결론을 내렸다.“흠.”
나는 그 자리에 그대로 주저앉았다. 1분. 5분. 10분. 적의 공격은 닥쳐오지 않았다. 날 방심시킨 후에 잡아먹으려는 시도일 수도 있으나, 그 가능성은 낮아 보였다.
가설이 몇 개 떠오른다. 적은 내 [지배]에만 저항했을 뿐, 여전히 날 탐지 못 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아니, 높다. 아니라면 날 비밀 공간에 끌어들이고 일부러 통신 내용을 들려줄 이유가 없다. 비밀 공간으로 이어지는 통로째로 날 잡아먹을 생각이 아니었다면 말이다.
직감이 조용한 이유는 내 직감 능력치를 넘어서는 능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실제로 위험하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다.
아니, 이 가능성은 지워두자. 내게 너무 유리한 해석이다. 게다가 여기서 방심하기엔 이르다. 적이 내 지배에 저항했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폭군의 대역]나는 다시 한번 스킬을 사용해 슈퍼 포스 하이브에서 빠져나왔다. 미행이 붙는 기색은 없다. 역시 날 탐지 못 한 건가.
“확실하게 해야겠어.”
일부러 나서지 않는 거라면 반드시 나서야 하는 상황을 만들어주고야 말겠다. 나는 그렇게 다짐하며 121번 콜로니에서 빠져나왔다.
***
나는 [진홍 혜성]을 타고 인류연맹 본성으로 향했다.
“크리스티나.”
연락을 할지 말지 잠깐 망설였지만, 크리스티나 말고 내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상대가 없다. 혹시나 도청이 있을까 조금은 걱정됐지만, 어차피 달리 방법이 없으니 감수하자.
= 네, 폐하.
나는 잠깐 침묵했다. 이야기를 어떻게 꺼내야 할지 헤맨 탓이었다. 그러나 나는 곧 생각을 정리하고 입을 열었다.
“지금 인류연맹의 장이 누구지?”
= 국무총리죠. 하지만 실권은 별로 없어요. 사실상 인류연맹 최고회의가 대부분의 의결권을 지니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죠. 총리도 최고회의의 일원이구요.
그런가. 인류연맹은 내각제였던 건가. 하지만 내가 아는 내각제랑은 좀 다른 것 같다.
“그래? 그럼 그 최고회의란 데를 가야겠군.”
= 폐하?!
내가 꺼낸 말에 크리스티나의 목소리가 뒤집어졌다. 그럴 만도 했다. 밀입국으로 인류연맹의 수도에 잠입한 걸 내 입으로 밝힌다는 소리니.
그리고 크리스티나도 이 일의 여파를 받게 될 거다. 그녀가 내게 인류연맹의 위치 좌표를 알려주었으니. 설령 이 사실을 숨긴다고 하더라도 어쨌든 내 담당은 그녀니 어떤 방식으로든 책임을 져야 하게 될 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래야 할 이유가 있었다.
물론 내 지배급 스킬에 저항하고 아직까지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마구니를 끌어내기 위함인 것도 있었다. 그러나 이건 내가 나설 이유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슈퍼 포스들의 쿠데타 모의를 들었어. 배후는 마구니다.”
= 폐, 폐하······! 그, 그건 어떻게······.
크리스티나가 경악했지만 나올 질문을 이미 예측한 나는 그녀의 말을 자르고 대꾸해 줬다.
“어떻게 알았냐니. 네가 내게 슈퍼 포스 하이브의 위치를 알려줬잖아.”
= 이렇게 빨리요? 제가 언제 알려 드렸는데요!
음? 그러고 보니 언제지?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크리스티나가 답답한 듯 외쳤다.
= 한 시간도 안 됐어요. 게다가 하이브는 지금 인류연맹 최고 수준의 보안을 자랑하는 시설인데······!
“어쨌든 알게 됐어. 증거도 찾았지. 지금 데이터를 복사해서 보내줄게.”
나는 [레벨 업 마스터]로 녹음한 데이터를 크리스티나에게 바로 발송해 줬다. 크리스티나가 그걸 틀어서 들어보더니 눈을 크게 떴다.
= 슈퍼 포스 캡틴인 로터스 스트로하임 씨 목소리잖아요?
“응. 명찰에 이름 써 있더라.”
나는 모르는 사람이라 그냥 인지도 안 하고 넘어갔지만 말이다. 그보다는 337번이라는 번호가 더욱 진하게 남아 있기도 하고.
= 로터스 스트로하임이 마라 파피야스의 분신이었다니······. 솔직히 믿어지지 않는군요.
“로터스란 놈이 그렇게 유명한 놈이야?”
크리스티나는 한 번 한숨을 내쉰 후에나 이어 설명했다.
= 네. 이 사람은 최고회의의 의원이자 3대 가문의 일원인데, 그럴 필요가 없음에도 슈퍼 포스 플랜에 자원해서 노블레스오블리주를 실천하신 분이에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거물이었군.
= 아니, 이제 높여서 부르면 안 되겠군요. 그 자식이라고 해야······, 겠네요.
크리스티나는 이를 갈며 로터스에 대한 호칭을 고쳤다.
= 하지만 좋지 않네요. 너무 거물이라 저 혼자 힘으로는 어떻게 해도 안 될 거예요.
크리스티나의 말을 듣고 나는 조금 놀랐다. 본인의 육성 데이터가 있는 데도 이빨이 안 박힌단 말인가?
= 그래도 방법은 있어요. 슈퍼 포스를 공격하는 형식으로 둘러 가면 어떻게든······.
337번, 로터스 스트로하임은 그냥 내버려두고 팔다리만 자르겠다는 건가? 그게 되나? 말하는 크리스티나의 표정에서도 별로 자신감이라는 걸 찾아볼 수가 없었다.
이거 안 되겠군.
“크리스티나.”
잠깐 생각한 후, 나는 크리스티나의 이름을 불렀다.
= 네, 폐하.
“내가 직접 나서면 조금이라도 가능성이 생기나?”
나는 결심을 굳혔다.
아무래도 직접 개입해야겠다, 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