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Loser RAW novel - Chapter 274
사망했던 마라 파피야스가 부활했다. 순간적으로 자신이 어떤 상황에 놓였는지 파악하지 못하고 어리둥절해 있던 마라는 곧 자신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파악했다.
‘나는 죽었었어. ······죽었다고?’
이 사실도 믿기지 않았지만, 이건 나중에 따져도 될 일이다. 그 다음 마라의 사고는 자신이 어떻게 부활했는지에 대한 것으로 이동했다. 이 의문도 곧 밝혀졌다.
‘[부활 토큰]이······, 남아 있었군.’
[부활 토큰 생성] 스킬은 스킬명 그대로 [1UP 코인]과 비슷한 [부활 토큰]을 생성해 인벤토리에 넣어놓는 스킬로, 하나를 생성할 때마다 목숨 하나와 네거티브 카르마 100을 지불해야 하지만 [1UP 코인]과 거의 같은 효과를 내기 때문에 효율적이었다.불멸자가 된 뒤로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아 마라 파피야스도 존재 자체를 잊고 있던 스킬이었는데, 오랜만에 스킬 덕을 봤다.
‘남은 [토큰]은······, 11개인가.’
필요 없어진 보험치곤 생각보다 많지만, 막상 필요해진 상황이 오고 나니 이 정도도 아쉽다.
‘하지만······, 괜찮아.’
마라 파피야스는 마구니다. 적, 이진혁의 스킬이 무엇이든 맞다 보면 내성을 얻게 될 것이다. 목숨 10개를 소모하는 동안만 버티고 버텨서 내성만 얻으면 된다. 그러면 승리다. 이긴다. 이겨서 살아남는다.
‘살아남으리라!’
마라 파피야스는 자신의 마음속에서 격렬히 꿈틀거리는 생존 본능의 존재에 놀랐다.
숨쉬기도 귀찮은 나머지 죽음을 바라던 때도 있었는데, 막상 한번 죽어보니 살고 싶어 미치겠다. 갑작스레 솟아오른 삶의 열정이 당혹스럽긴 하지만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심심하고 지겹던 삶에 알싸한 조미료가 더해진 느낌이다.
그랬는데······.
“다행이다! 그냥 죽어버리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이진혁의 목소리가 모든 걸 망쳤다. 그 목소리에서는 진정어린 걱정과 안타까움이 묻어나오고 있었다. 만약 그 감정이 가족 같은 누군가의 목소리에서 묻어나온다면 참 감동적이었겠지만, 상대는 가족이 아니라 적이었다.
그냥 적도 아니고 불구대천의 이진혁.
더욱이 이진혁이 저런 감정을 느낀 이유가 이런 거라면 더더욱.
“설마 그거 한 방으로 죽어버릴지는 몰랐지. 이제 좀 살살 해줄까? 아, 살살 해주면 안 되지. 그럼 기분 나쁠 테니까. 나도 최선을 다해야 의미가 있지. 그렇지?”
아닌데? 미친놈아? 마라 파피야스는 그렇게 대답하고 싶었다. 그러나 대답할 시간이 없었다. 대답할 상대도 없었다. 무슨 짓을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진혁이 사라졌다.
직후, 기분 나쁜 이명이 들렸다.
삐-.
그리고 의식이 훅 꺼졌다. 이 현상이 뭔지, 마라 파피야스는 한 번 경험해서 알고 있었다.
죽음이다.
[죽음]이다.‘아니, 왜!’
그렇게 마라 파피야스는 죽었다. 의문을 마저 늘어놓을 새도 없이.
또.
***
마라 파피야스는 부활했다.
두 번째 부활이다. 이제 남은 [부활 토큰]의 숫자는 10개. 아직 많았다. 여유는 있었다.
‘큭!’
그러나 마라 파피야스의 마음에는 여유가 없었다.
‘이렇게 무력하게!’
마라 파피야스는 두 번 죽기 전에 죽음의 원인에 대해서 나중에 생각한다고 미뤘었다. 그러나 그 나중에 주어지지 않았다. 이진혁, 저 미친놈은 최소한도의 여유조차 주지 않고 마라를 죽였다. 두 번이나.
‘젠장!’
분개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언제 또 이진혁이 세 번째 죽음을 가져다줄지 모르는 일이니. 지금 생각해야했다. 당장.
생각한다고 내성이 빨리 생기는 건 아니지만, 어쩌면 대책을 세울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뭐야, 또 한 방에 죽은 거야? 내성은 언제 생기는 거야? 뭐, 언젠간 생기겠지.”
그러나 무자비하게도 이진혁의 목소리가 들렸다. 마라 파피야스는 불구대천의 적에게 대답하려 했다. 대답 대신 저주의 말이 저절로 튀어나오려 했지만 상관없었다. 두 가지 이유로.
첫번째 이유는 무슨 말을 꺼내더라도 ‘생각할 시간을 번다’는 목적에는 부합한다는 것이었고, 두번째 이유는 어차피 대답할 시간은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진혁의 존재감이 훅 사라졌다. 이전처럼.
삐-.
똑같이.
***
마라 파피야스는 부활했다.
부활하자마자 외쳤다.
“그만!”
지긋지긋했다. 모든 게 다 싫었다.
뭐가 제일 싫으냐면 아무것도 못 하고 무기력하게 죽어나가는 거였다.
아니다.
실제로는 죽는 게 싫었다.
의식이 끊어지고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게 되는 것이 싫었다.
고작 세 번 죽었는데, 벌써 죽음이 지겨워졌다.
아니, 이것도 자기기만이다.
실제론 두려웠다.
두려워졌다.
죽음이.
“그만! 그만 죽여!!”
그래서 외쳤다. 분노에 차서 항의했다.
“하하하!”
이진혁으로부터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대신 웃음소리가 들렸다. 재미있다는 듯이.
아니, 조금 달랐다. 농담하지 말라는 것 같은 웃음소리이려나.
어느 쪽이건 마라가 상관할 일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다음 순간 웃음소리가 훅 하고 사라졌으므로.
마라 파피야스의 몸이 저절로 움찔하고 움츠러들지만, 이번에도 반응하지 못했다. 정확히 하자면 끝까지 움찔하지도 못했다. 실제로 움찔할 수 있었는지조차 의문이다. 마라는 몰랐다.
삐-.
죽었으므로.
***
마라 파피야스는 부활했다. 네번째의 부활이었다.
아니, 다섯번째인가? 어느 쪽이건 무슨 상관인가?
이 이상 죽고 싶지 않았다.
그렇기에 마라는 애원하듯 외쳤다.
“······그만······!”
이번에는 이진혁의 모습조차 볼 수 없었다.
눈을 뜨기도 전에 눈을 뜰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삐-.
한 마디로, 죽었다.
***
마라 파피야스는 이상했다.
‘왜 자꾸 죽는 거지?’
원래대로라면 이런 일은 일어나선 안 됐다.
마라 파피야스는 불멸자라 죽지 않는다. 설령 마라를 죽일 수 있는 즉사 스킬을 맞더라도 분신 하나를 박리해서 대신 죽게 만들 수 있었다. 그걸 수만 번 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마라 파피야스는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다.
그런데 이진혁을 상대로는 이 방법이 통하지 않았다.
분명 처음에는 통했다. 합체하고 있는 중에는 멀쩡하게 쓴 방법이다. 직감이 먼저 반응하고, 반사적으로 분신 하나를 박리해서 죽음을 대신 맞이하게······.
‘아.’
마라 파피야스는 그때와 지금의 차이를 깨달았다. 그것은 인지의 차이다. 아까부터 이진혁은 마라 파피야스가 인지하지 못한 순간 죽음을 내렸다. 아마도 시간을 멈춘 상태에서 죽였기 때문이리라. 그렇기에 인지조자 하지 못한 거리라.
반응하지 못하면 대처도 할 수 없다. 알고 보니 간단한 원리였다. 동시에 절망적이었다.
‘이진혁이 지금까지 몇 번 시간을 멈췄지?’
모른다. 그걸 알았다면 인지했을 것이고 반응했을 것이다. 그저 죽음의 숫자로 셀 수밖에 없었다. 다섯 번 죽었으니 시간 정지도 다섯 번 당했으리라고 추측할 수밖에 없다.
‘이것도 이상하다.’
시간 정지를 다섯 번이나 당했으면 슬슬 내성이 생겨야 했다. 그러나 처음 당했을 때와 마지막으로 당했을 때의 차이를 모르겠다. 여전히 인지조차 못 한다.
‘시간 정지를······, 나한테 거는 게 아닌 건가?’
그 가설에 이른 순간 마라 파피야스는 사고가 얼어붙었다.
그런 게 가능할 리 없다.
[시간 정지]라는 ‘상태 이상’을 어떤 대상에게 거는 건 간단하다. 물론 말만큼 간단하지는 않지만 마라 파피야스 정도의 격을 지닌 존재라면 이론상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그냥 그런 스킬을 하나 획득하면 될 일이다.그러나 이 세계 전체의 시간을 멈추고 이진혁 혼자만 움직이는 건 차원이 다르다. 문자 그대로 이진혁 혼자 다른 차원에서 움직이는 셈이다. 이진혁만이 움직일 수 있는 새 차원을 만들어내 이 세계의 시간 선에 억지로 끼워 넣는다고 표현할 수 있겠다.
이런 게 가능한가?
‘불가능해!’
마라 파피야스마저 이것이 가능한 수준의 일이 아니다. 아마도 이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존재일 터인, 그 누구도 목숨을 위협하지 못하는 마라조차 해내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누구도 그러지 못해야 정상이다.
그런데 이게 아니라면 마라 파피야스가 [시간 정지]에 대한 내성을 아직까지도 획득하지 못한 것에 대한 설명이 안 된다.
‘그냥 가설이야!’
마라 파피야스는 입에서 새어 나오려는 비명을 억지로 씹어 삼켰다.
그렇다. 이건 그냥 지금 머릿속에 우연처럼 떠오른 가설 중 하나에 불과하다. 하지만 마라 파피야스는 다른 가설을 생각해 낼 수 없었고, 이 가설에는 뒷받침되는 근거도 있다.
그러나 만약 이 가설이 참이라면, 이진혁이 이 원래 불가능한 일을 가능으로 바꾸어놓았다면 마라 파피야스는 이대로 일방적으로 죽어나갈 수밖에 없다.
아무런 희망 없이.
계속.
그때였다.
“하하, 죽은 척하고 있는 거야?”
이진혁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랬다. 마라 파피야스는 죽은 척을 하고 있었다. 되살아나자마자 소릴 질렀더니 그때마다 죽이길래, 이번엔 되살아나도 숨도 안 쉬고 가만히 있어보았다.
그 결과, 마라 파피야스는 아주 약간이지만 생각할 시간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바뀐 건 없었다.
“우리 마라, 이제 죽을 시간이야.”
이진혁의 존재감이 훅 하고 사라졌다. 언제나처럼. 마라 파피야스는 그의 존재를 인지할 수 없게 되었다. 이제까지처럼.
그리고 결말 또한 같았다.
삐-.
***
마라 파피야스는 부활했다.
삐-.
그리고 죽었다.
***
마라 파피야스는 죽었다. 내가 죽였다. 또.
죽은 마라 파피야스의 시체를 바라보며 나는 한숨처럼 말했다.
“이거, 이거. 일이 너무 쉬워지는데?”
전투양상이 내가 기대했던 것과는 전혀 다르다. 합체한 마라 파피야스와의 혈투를 기대하고 고대했는데, 마라는 하루살이처럼 맥없이 픽픽 죽어나가고 있었다.
[폭군의 정당한 권리행사]를 음 스위치에 놓아 모습을 숨기고 [세계를 혁명하는 힘]으로 시간을 멈춘 상태에서 마라 파피야스의 배후를 잡아 [이진혁의 천벌]로 양념한 후 [폭군의 즉결 처형 – 음]으로 처치한다.이 전술이 톱니바퀴처럼 딱딱 맞아 들어가, 이제 마라는 단말마도 남기지 못하고 사망과 부활을 오가고 있었다.
결과는 간단하지만 이 전술을 성립시키는 데 드는 비용은 결코 저렴하지 않다.
일단 [세계를 혁명하는 힘]으로 시간을 멈출 때마다 혁명력이 계속 든다. 게다가 [즉결 처형 – 음]은 단순히 적을 죽이는 게 아니라 대상에게 [극도 사망]이라는 상태 이상을 입혀서 목숨을 끊기 때문인지 [즉결 처형 – 양]보다 더 많이 신성을 요구한다.
매우 높은 확률로, 아니 틀림없이 불멸자일 터인 마라 파피야스가 죽어나가는 게 이것 때문이다. 불멸자는 [죽음]에만 내성이 있을 뿐, [극도 사망]에는 내성이 없으니까. 말장난 같지만 접두어 하나로 효과가 확 달라지는 게 스킬과 시스템이다 보니 그러려니 해야 한다.
“이게 무슨 최종보스전이야?”
나는 투덜거렸다.
물론 이 전술을 쓰기 전까지는 아주 살짝 고생하긴 했다.
혹시 마라가 시간정지에 대한 내성을 얻을까봐 다른 마구니들을 몽땅 다 잡아야 했으니 말이다. 그리고 [즉결 처형 – 양]에는 반응해서 무효화한다는 시행착오가 있었기에 [기습준비태세]로 숨어서 시간정지 후에 [즉결 처형 – 음]을 쓴다는 전술을 생각해낼 수 있었다.
그러나 한 번 전술이 성립하고 나니 마라는 패턴이 파악된 대전격투액션게임 보스처럼 내게 공략당하고 있었다.
“하지만 뭐, 이것도 시간문제겠지만······.”
마구니들에게 같은 공격을 반복하면 곧 내성을 획득해서 저항해 버린다는 사실을 나는 이미 학습한 바 있다. 마구니들이 [천벌]에 내성을 획득했듯, 마라 파피야스도 언젠가는 [극도 사망]에 내성을 갖게 되리라라는 예상은 쉽게 할 수 있었다.
그럼 그때 또 다른 방법을 생각해 내야겠지.
“그 전까지 실컷 죽여놔야겠다.”
즐길 수 있을 때 즐겨야지.
그건 그렇다 치고, 합체한 마라 파피야스는 경험치를 정말 많이 준다. 한 번 죽일 때마다 경험치가 쭉쭉 들어온다. 악마와 달리 죽일 때마다 들어오는 경험치량이 줄어드는 것도 아니라, 정말 막대한 양의 경험치가 쌓이고 있었다.
아쉽게도 지금의 내게는 별로 쓸 데가 없는 게 경험치지만 말이다. 아무리 [한계돌파]가 있다지만 시스템이 인정한 최종 레벨에 도달한지라 이 막대한 양의 경험치는 레벨에 반영되는 일 없이 그냥 쌓이고만 있었다.
뭐, 나중에라도 쓸 데가 있겠지. 경험치 쿠폰을 발행해서 다른 전직 레벨 업에 쓸 수도 있고 다른 사람한테 나눠 줄 수라도 있으니.
신성은 다른 마구니들을 죽일 때와 마찬가지로 +2밖에 안 준다. 마라 파피야스의 합체가 완벽하다는 또 다른 방증이었다. 시스템이 이놈을 단일 개체로 판정한다는 소리니까 말이다.
그렇게 다른 생각을 하고 있으려니, 마라 파피야스의 시체에 변화가 생겼다.
“오, 이제 슬슬 부활하겠군.”
이제는 마라 파피야스가 죽은 후 몇 초가 지나야 부활하는지, 그리고 언제 [즉결 처형]을 꽂아야 되살아나자마자 죽는지 싹 다 꿰고 있다. 이미 몇 번이나 반복해서 한 작업이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다.
다른 잡마구니들은 이미 다 [천벌]과 [번개], 혹은 [불꽃]으로 처리해 놓은 터라 달리 할 일이 없었던 탓도 있었다. 상황이 이러니 마라 파피야스에게만 집중하게 된다.
나는 [폭군의 정당한 권리행사]의 스위치를 음에 놓았다.
이번에도 되살아나자마자 죽여 버릴 셈이다.
3, 2, 1.
제로.
푸악.
[극도 사망]의 기운이 마라 파피야스를 사로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