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Loser RAW novel - Chapter 2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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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 님! 마라 님!!”
마구니 두령이 마라 파피야스의 첫 번째 분신을 숨넘어가는 목소리로 불렀다.
“뭐냐, 두령.”
“인류연맹을 향해 파견한 마구니 동맹의 총력이 모조리 증발했습니다! 소멸했습니다······!”
마라 파피야스의 첫 번째 분신은 마구니 두령이 이렇게까지 맹렬히 감정을 드러내는 것을 처음 보았다. 그걸 보며, 마라는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지금 재미있다고 생각하실 때가 아닙니다! 마구니 동맹의 9할 9푼 9리의 전력이 잘려 나갔습니다! 이래서야 동맹의 운명이 백척간두에······!”
하지만 잔뜩 흥분한 두령의 말이 길어지다 보니 좀 많이 시끄러웠다. 다 듣다 못한 마라가 손을 내저어 두령의 말을 끊었다.
“아, 진정해. 모든 건 다 계획대로니까.”
마라의 말을 들은 마구니 두령은 이제껏 떠들던 기세가 간 곳 없이 말을 뚝 그치고 무서운 기세로 마라를 노려보았다.
“계획대로······? 모든 동족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게 계획대로라고 말씀하신 겁니까?!”
“그래, 맞아.”
마라는 자랑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더없이 마라답지?”
“그건 그러네요!”
마구니 두령은 뒤늦게 납득한 듯 손뼉을 쳤다. 그리고는 조금 전과 달리 희망에 찬 표정으로 마라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계획대로라고 하셨지요? 그럼 방법이 있는 겁니까? 저희 마구니들이 살아남을 방법이!”
이놈도 마구니라고 죽은 동족들보단 자기 안위에 관심이 더 많은 것 같았다. 매우 바람직한 일이었기에 마라는 그를 타박하지 않았다.
“아, 그야 있지.”
마라는 흐뭇하게 고개를 주억거리며 두령의 질문에 대답해주었다.
“이미 성공했어.”
“네?! 성공하셨다고요?!”
마구니 두령의 얼굴이 활짝 피었다.
“그럼 이진혁을 처치할 방법이 생긴 겁니까?!”
“아니, 그게. 그렇지는 않아.”
“예?!”
마구니 두령의 목소리가 뒤집혔다. 그의 표정도 뒤집혔다. 그 변화가 매우 재미있다고 생각하면서, 마라는 손을 내저었다.
“그, 그럼······.”
“진정해. 계획은 이미 성공했다고 말했잖아.”
“그 계획이 뭔데요?!”
자신을 향해 달려들 듯 얼굴을 들이미는 마구니 두령의 머리를 밀어내며, 마라는 선언했다.
“계획의 이름은 ‘도약 계획’이다.”
“도약 계획! ······그게 무슨 계획입니까요?”
“골자만 대충 말해주자면······, 이진혁을 상위 세계로 도약시키는 계획이다.”
수많은 마라 파피야스의 분신들과 자투리 마구니들을 죽인 이진혁은 대량의 경험치와 신성, 그리고 카르마를 얻었으리라. 그 양은 ‘상위 세계로의 도약’ 퀘스트를 달성하고도 남으리라.
그걸 바탕으로 존재의 격을 성장시킨 이진혁이 도약 퀘스트를 완료하면 놈은 상위 세계로 도약해 사라질 테니, 그때부터 마구니 동맹은 이 세계에서 다시 평화와 번영을 구가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것이 첫번째 마라 파피야스의 분신이 세운 ‘도약 계획’의 골자였다.
“······그, 그걸 위해 동포들을 희생시킨 겁니까?! 마라 님!”
도약 계획의 진의를 알아챈 마구니 두령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그런 마구니 두령의 반응을 즐기며, 마라는 빙긋 웃었다.
“그래, 맞아. 마라답지?”
“마라답네요!”
역시 자기가 살아남는 게 더 중요했던지, 마구니 두령은 활짝 웃으며 마라에게 엄지까지 세워 보였다.
“크크큭, 그래. 너는 마구니답군.”
“감사합니다. 하핫!”
“크크크크······!”
둘은 서로를 마주 보며 웃었다. 그 마라에 그 두령, 부창부수란 말이 딱 어울렸다.
주인과 마주 웃던 마구니 두령은 문득 걱정이 생겨났는지, 갑작스레 미간을 팍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하지만 마라 님, 만약 이진혁이 상위 세계로 넘어가지 않으면 계획이 어떻게 되는 거죠?”
두령의 말에 마라도 웃음을 그쳤다.
“그럼······, 곤란하지.”
“예?!”
마구니 두령이 다시금 목소릴 뒤집었지만, 마라는 귀찮은 듯 손을 흔들어 그를 안심시켰다.
“아니, 너무 걱정할 필요 없다. 우리가, 마구니 동맹이 이제까지 몇 번 고비를 넘어왔다고 생각하는 거야? 위대하고 강력한 존재들이 우리의 안위를 몇 번이고 위협했지.”
부처. 예수. 알라. 베다에 기록된 신들과 라그나뢰크를 버텨내고 살아남은 강력한 존재들. 마라 파피야스는 꿈을 꾸듯 그들의 존재를 회상했다.
“그러나 놈들은 모조리 상위 세계로 넘어갔고, 우리는 이 세계에서 살아남았다.”
그들 중 몇몇은 나중에 상위 세계로 도약할 후배들을 위해 마구니의 존재가 필요하다고 결론 내렸다. 그래서 마라는 살아남을 수 있었다.
개중에는 마구니와 마라의 분신을 볼 때마다 족족 없앤 이들도 있었지만 이 경우는 마라가 잘 숨어서 생존했다.
몇 번의 경험을 통해 교훈을 얻은 마라가 먼저 몸을 사려 마구니의 존재조차 모르고 도약한 이들도 있었다.
결과, 마라와 마구니는 생존했다. 태고로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 존속할 수 있었다.
“그러니 이번에도 살아남을 거야.”
이제까지 그래 왔으니,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귀납적 추론이다. 세상의 모든 진리가 이런 식으로 발견되었다. 그러니 충분히 설득력 있는 추론 방식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라의 말을 듣는 마구니 두령의 눈에는 두려움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그렇군. 이걸로 계획이 완전히 완성된 건 아니야. 이진혁에게 우리가 완전히 소멸했다고 믿게 만들 필요가 있어.”
마라는 잠깐 생각한 후 곧 다시 입을 열어 이렇게 말했다.
“두령, 이 시간을 기점으로 우리 마구니 동맹의 마구니 전원은 모든 활동을 중지하고 모든 흔적을 철저히 지운 후 일체의 외부 활동을 금지하고 은거에 들어간다.”
“일체의 외부 활동이라면······, 식량 확보까지 말입니까?”
“당연하지.”
마라의 대답에 두령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러면 굶어 죽어버리고 말 겁니다요!”
마라는 신격이다. 굶어 죽지는 않는다.
그러나 마라 또한 마구니다. 마구니는 특수한 존재로, 오랫동안 누군가를 유혹하지 않으면 존재 의의를 잃고 소멸해 버리고 만다.
누군가를 유혹해서 마구니의 숫자를 늘린다. 이 행위는 마구니에게 있어 식사와 번식을 양립시키는 의미를 갖고 있었다.
물론 신격을 지닌 존재를 직접 먹어 소화시키는 것도 가능하지만, 이것은 마구니에게 있어 음주나 끽연 같은 기호를 만족시키는 행위에 불과했다.
‘식사’를 하지 않으면 소멸하는 것은 마구니들의 왕이자 최고 지도자인 마라도 마찬가지였다.
다른 생명체와 달리 마구니 각 개체가 각자 ‘식사’를 할 필요는 없다. 어떤 마구니든 누군가를 유혹해 마구니의 숫자를 늘리기만 하면 마구니의 존재의의는 유지된다.
달리 말하면, 마라의 지시대로 모든 마구니가 ‘식사’를 하지 않으면 모든 마구니가 존재의 위기에 처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라는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문제없어. 밥 따위 안 먹어도 천 년 정도는 버티잖아?”
“그건 그렇습니다만······.”
“내가 예언하지. 이진혁은 천 년 안에 승천할 거야. 그러니 딱 천 년만 은거한다.”
그런 마라의 보증에 겨우 두령이 두려움을 떨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러고 보니 마라 님께선 예언 능력을 지니셨죠. 제가 실언을 했습니다. 당장 마구니들에게 명령을 전파하겠습니다.”
“그래.”
마구니 두령은 헐레벌떡 떠나갔다. 그 등을 바라보던 마라는 한숨을 푹 쉬었다.
방금 전에 두령을 향해 장담하며 한 예언은 거짓이었다.
무슨 일인지 언젠가부터 이진혁이 마라의 예언에 비치지 않게 되었다. 사실 그것도 꽤 된 일이다. 정확히는 이진혁이 지배급 스킬을 얻고 난 후부터 그랬다.
이진혁이라는 가장 큰 변수가 포함되지 않은 미래 예언은 아무짝에도 소용이 없었다. 그래서 마라도 이번만큼은 단순히 과거 통계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수만 개체의 분신이 합체한 마라 파피야스마저 이진혁을 상대로는 패배했다. 이제 겨우 99개체의 분신밖에 남지 않은 마라로는 이진혁을 상대로 전면전을 벌일 수 없다. 그 어떤 전투 방식을 택하더라도 그 결말은 죽음과 소멸뿐이리라.
그러니 천 년 후에는 이진혁이 상위 세계로 도약해 있으리라는 건 마라의 일방적인 소망이자 바람, 그리고 유일한 희망이었다.
“이 마라가 만약에 기대야 하다니. 갈 데까지 갔군.”
마라는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그러나 이 방법 외에 마라를 비롯한 마구니 동맹이 살아남을 수 있는 경우의 수는 존재하지 않으니 그로서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
나는 인류연맹으로 개선했다.
개선식은 다소 즉흥적으로 이뤄졌으나 생각 외로 인류연맹 시민들의 반향이 대단했다.
“영웅이시여! 영웅왕이시여!”
“영웅왕 폐하 만세! 무궁토록 영광되소서!!”
인류연맹의 사람들은 내가 마구니 동맹과 싸우는 모습에 아주 큰 감명을 받은 건지, 지금도 실시간으로 이진혁교의 신도 수와 모이는 신앙의 양이 늘어나고 있었다.
“단순한 영웅이 아니다! 이진혁 님은 이미 신이시다!”
“오오, 우리의 신이시여!!”
늘어나는 신도 수가 단순한 숫자가 아님을 알리기라도 하듯, 일단의 무리가 군중 속에서 그런 소릴 지르며 나를 향해 절을 하고 있었다.
개선식을 마치고, 나는 크리스티나를 불러 물었다.
“뭐야, 인류연맹은 종교를 금기시하는 거 아니었어?”
애초에 인류연맹이라는 세력의 역사 자체가 만신전과 교단의 종교적 색채에서 벗어나고 인간은 신의 노예가 되지 않는다는 논리를 모토로 창설됐다고 한다.
그러니 따지고 보면 저렇게 대놓고 날 신이라 부르며 섬기는 건 곧 인류연맹의 근본을 부정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행위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내 신도 수는 급격히 늘어나고 있고 신앙도 잔뜩 모이고 있다. 그리고 이 증가분이 인류연맹 소속이리란 건 쉽게 유추할 수 있었다.
“결국 인간은 종교 없이는 살 수 없는 모양이네요.”
크리스티나는 해탈한 듯 말했다. 천계 소속도 아니면서. 아니, 그 이전에.
“너희 인간 아니잖아.”
인류연맹이라고 세력명 지어놓고 사람을 잔뜩 기대하게 해놓곤 사실 천사들의 세력이었다는 걸 알게 됐을 때의 배신감은······, 솔직히 별로 들지 않았지만 트집 잡기에는 좋았기에 나는 그냥 이렇게 말했다.
“뿌리가 인간이니까요.”
그렇게 변명하면 할 말이 없다. 사실 나도 아직 정체성은 지구인이니까.
지구에서 산 세월이 내 삶의 전체 비중으로 따지면 손톱만큼도 안 되는 수준이지만, 나도 사람이라 그런지 이상하게 뿌리를 부정하기가 힘들다.
“어쨌든 인류연맹 커뮤니티에서 폐하를 신으로 모시는 사이비 단체가 우후죽순 늘어나고 있어요. 아직까지는 진지한 레벨은 아니지만, 대놓고 헌금을 받으려는 놈들도 있어서 대책을 세우긴 세워야 하겠지만 폐하에 대한 여론이 워낙 좋은지라······.”
단순한 내 칭찬인 건 아니다. 어설프게 막았다간 반발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우려 쪽에 무게중심이 실려 있었다.
“······이렇게 된 이상 차라리 정식으로 [이진혁교]를 포교하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어요.”
크리스티나도 [이진혁교]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다. 확실히 괜히 사이비의 피해자를 늘리느니 시스템이 인증하는 질서에 편입되는 게 인류연맹으로서는 더 적은 리스크로 후환을 방지하는 방법이 될 수도 있겠다.
“그런데 그래도 되는 거야? 어쨌든 종교를 금기시한 건 너희 뿌리잖아.”
아까도 말했듯, 뿌리는 좀처럼 부정하기가 힘들다.
그런데 크리스티나는 담백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뭐 교단과 종전선언까지 했는데, 새로운 시대를 받아들일 때도 됐죠.”
그러고 보니 그렇긴 하다.
“폐하께서 허락해주신다면 빠른 시일 내에 해당 안건을 최고회의에 올려보도록 하겠습니다.”“응? 거기에 왜 내 허락이 필요해?”
군림은 하되 통치는 하지 않는다. 입헌군주의 기본이다. 그러니 법을 만들든 시행하든 내가 끼어들 여지는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크리스티나도 잠깐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변명처럼 이렇게 말했다.
“그야······, [이진혁교]의 이진혁님이시니까요?”
본인도 의문문을 쓸 정도라니. 별 생각 없이 내 허락부터 받고 시작하려고 한 건가. 내 명령을 들어야 한다는 자각조차 없다니.
하긴 나한테 나쁜 건 아니지. 나는 굳이 지적하지 않고 그냥 고개만 끄덕였다.
“그럼 그렇게 해.”
“허락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크리스티나는 내게 깊숙이 허리를 숙여 보이며 대답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