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Loser RAW novel - Chapter 281
나는 곧장 [신] 탭을 열어 [강림]을 택했다. 그러자 내 앞의 시야가 파랗게 변했다. 이제 여기는 블루 마블이다. 차원 간 이동이 이렇게 쉬워도 될까 싶을 정도로 간단하게도 말이다.
“시, 신이시여!”
내게 기도를 한 청마인이 얼빠진 얼굴로 날 올려다보고 있었다. 마치 스스로가 기도하면서도 이 기도가 이뤄질 거라 내심 믿지 못했던 탓이겠지. 이거 자존심 상하는걸. 실제로 이제까진 이 기도가 들리지 않았으니, 청마인이 이러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만 말이다.
“그래, 내가 네 신이다.”
나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나를 불러낸 신도의 얼굴이 점차 환하게 밝아지는 모습이 실로 보기 좋았다.
그런데 그때였다.
쿵, 쿵! 쿵, 쿵!
묵직한 소리가 내 신도의 얼굴을 다시 굳게 만들었다. 문을 두들기는 소리였다.
“이단은 나와라! 나오지 않으면 문을 부수겠다!!”
뭐야, 이거.
“너, 이단이냐?”
“아닙니다!”
아니라는데 왜 이러지? 나는 문을 열었다. 내게 기도한 신도는 날 말리려 들었지만 내가 너무 빨랐다.
열어보고 알았지만 문은 기름 범벅이 되어 있었으며, 문 앞에 서 있던 청마인은 횃불을 들고 있었다.
건물째로 불이라도 지르려고 들었던 걸까?
“누, 누구냐!”
횃불을 든 자가 말했다. 상당히 당황한 얼굴이었다. 아무래도 날 알아본 것 같은데, 확신은 못 하고 있는 듯했다.
“내 이름은 이진혁이다.”
나는 대답했다.
“거짓말이다!”
횃불을 든 자가 말했다. 정말로 거짓말이라고 생각해서 그렇게 말한 게 아니라, 내 말이 거짓말이어야 하기에 그렇게 말한 것 같았다.
“설명하라. 내 앞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이 여자가 왜 이단인가?”
내게 기도해 날 강림시킨 청마인은 여자였다. 뭐, 여자인들 남자인들 무슨 상관이랴. 그래 봤자 청마인인데.
내 질문에 횃불을 든 자는 눈을 질끈 감더니, 이렇게 말했다.
“이단이다. 죽여라! 크헉!!”
횃불을 든 자가 마저 말하지 못하고 비명을 지른 이유는 물론 나 때문이다. [이진혁의 빛]이 확 퍼져 그의 눈을 멀게 만들었다.
“어억, 눈! 내 눈이······! 아악!”
놈은 횃불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바닥까지 기름으로 흥건했기에 횃불은 곧 불을 일으켰지만 그것이 오래 지속되지는 않았다. 그 불이 내 [이진혁의 불]의 제어하에 놓인 덕이다.
횃불을 들었던 자에게 명령받은 이들은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했다.
“나의 아이들아, 나의 세계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말하라.”
이들 또한 내 신도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냥 찍은 거지만, 내 직감은 믿을 만하다. 그리고 이번에도 믿을 만했다.
“시, 신이시여······!”
“위대한 이진혁 님이시여!!”
흉흉한 병장기를 들고 있던 이들이 일제히 무기를 거두며 내 앞에 무릎을 꿇고 엎드렸다.
***
이야기를 들어보니 상황이 아주 그냥 가관이었다.
“그러니까 이진혁교가 다섯 종파로 갈려서 서로를 이단이라 칭하며 정복 전쟁을 하고 있다고?”
“네······.”
“이상하다. 분명히 화합하라고 말했을 텐데······.”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혼잣말처럼 중얼거리자, 무릎 꿇고 앉은 애들이 움찔거렸다. 반응을 보아하니 모르고 있는 건 아닌 모양이었다.
하긴 지구에서도 그랬지. 네 이웃을 사랑하랬더니 자기 이웃을 찜쪄먹는 인간들만 그득했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청마인들도 훌륭한 인류인 셈이다.
“내참, 이거야 원.”
이걸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막막할 따름이다.
차라리 나쁜 놈이 쳐들어온 거라면 그 나쁜 놈만 처치하면 되지만, 이번 경우는 전원이 나쁜 놈이다. 그렇다고 이 나쁜 놈들을 전부 쳐 죽이면 내 신앙 산출의 상당량을 감당해 주는 청마인들을 잘라내는 셈이 된다. 난 그런 손해는 못 본다.
아니, 이게 아니라.
이들도 내 신도이자 내 백성인데 어떻게 내 손으로 처치하겠는가?
그러니 다른 해결 방법이 필요했다.
“일단 이 전쟁부터 막아놓고 생각해 보자.”
다섯 종파 전쟁은 점점 격렬해지고 있었고, 이미 하나의 종파가 거의 소멸당해 가고 있는 판국이었다. 갑자기 살려달라는 기도가 늘어난 것도 그 때문이었고 말이다.
일단 살려놓고 봐야지.
“전쟁을 멈춰라! 러브 앤 피스다!!”
나는 내게 살려달라는 기도를 하는 신도들의 앞에 나타나 일단 살육을 멈춰놓고 봤다.
당연하지만 소멸당해 가고 있는 종파가 옳거나 정의로운 건 또 아니다. 그냥 세력이 작아서 가장 먼저 코너에 몰린 것일 뿐일 터였다. 그리고 그 세력이 작은 이유는 이들이 가장 극단적인 방법론을 택했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어그로를 끌었다.
“쉬지 말고 일하라! 일하지 않는 너, 이단!!”
이게 그 멸절 위기에 놓인 종파의 가장 핵심적인 가르침이라더라. 아니, 이 또라이들이······. 처음 들었을 때는 괜히 살렸다 싶을 정도였다.
아무튼 이것들이 이런 말이나 하고 돌아다닌다는 소릴 듣고 난 결론을 내렸다. 바로 이놈들이 이 모든 사단의 원인 제공자라는 결론 말이다. 자기가 이단이란 소릴 듣고 발끈하지 않을 종교인은 없는데 무리수와 함께 그걸 던져대니 유혈 사태로 번지지.
게다가 내가 분명히 쉬라고 했을 텐데?
따지고 따져보니 역시 이단은 이놈들이었다!
***
어쨌든 내가 강림했다는 소문이 알음알음 퍼졌고, 다섯 종파의 지도자들의 귀에도 그 소식이 들어갔다. 일이 이렇게 되니 그것들도 내 앞에 호다닥 모여들었다.
나는 그렇게 나를 찾아 집합한 각 종파의 지도자들을 한곳에 모아 회합을 열도록 했다.
방금 전까지 칼과 칼로 대화를 나누던 사이인 이들이었지만, 내가 눈 시퍼렇게 뜨고 있는데 서로 칼부림을 하는 상황은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리 그래도 이들이 믿는 신인 내가 직접 강림했는데 전쟁이 이어질 리 없지.
다섯의 종파는 내 앞에서 겉으로나마 화합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게 내가 내린 가르침이니 당연히 해야 했다. 왜 내가 자릴 비운 후엔 안 따랐는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아무튼 이걸로 전쟁은 잠시 멈췄다.
그러나 이것들이 서로에 대한 악감정을 접었다고는 볼 수 없다. 흉흉히 살의 깃든 눈으로 서로를 보다가 내 눈치를 보고 고개를 숙이는 일이 허다했다.
아무리 봐도 이거 휴전 상태지? 내가 없어지면 바로 다시 서로 죽고 죽일 기세다.
그나마 이것도 내가 어마어마하게 강해서 가능한 일이었다. 아니었다면 아무리 나라도 강림한 첫날 횃불을 들고 습격한 놈들한테 잡혀 죽었을지도 모른다.
“신이 우릴 보우하사, 우리 종파가 옳음이 증명되었다!”
소멸 직전의 약소 종파 지도자가 가장 희희낙락하며 나댔다. 과로 예찬론자, 그놈이 바로 이놈이다. 역시 이 모든 사단의 원인이 이놈들이라는 내 생각이 한결 단단히 굳어지는 순간이었다.
“조용히 해라!”
나는 나댈 자리도 못 보고 나대는 그놈의 정수리에 꿀밤 한 방을 박아주었다.
“꽥!”
놈이 그 자리에 길게 뻗었다. 물론 힘 조절을 한 거다. 내가 성질대로 힘껏 쳤으면 조금 과장해서 블루 마블이 반으로 갈라졌을 거다. 나는 뻗은 놈을 보고 한숨을 푹 내쉬었다.
“하······. 이것들 그냥 다 죽이고 새로 만들까?”
내 혼잣말을 들은 청마인들이 움찔 굳었다. 이들은 내게 그럴 능력이 있음을 잘 알고 있었다. 내가 만마전을 평정하고 혁명하여 악마들을 청마인으로 만들었음을 이들은 직접 목격했고 몸으로 경험했으니.
“토,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내 시야 안에 있는 모든 청마인들이 바들바들 떨면서 내게 절을 했다. 하지만 이 경험을 한 세대가 수명이 되어 죽고 내 이야기가 한낱 옛이야기가 되어버리면 이런 반응도 안 보여주고 그냥 대들겠지?
역시 다 죽일까?
후······, 그만두자. 좋은 생각, 좋은 생각.
지구에서 있을 적, 내가 아는 종교들은 거의 다 종파가 갈려 서로 싸웠다. 그러니 블루 마블의 이진혁교도 교파가 갈리는 건 차라리 당연한 일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내전까지 벌인 건······, 좀 용납하기 힘들지만.
그런데 왜 블루 마블보다도 내가 더 오래 자리를 비웠던 그랑 란츠에선 교파가 갈리지 않았을까? 답은 명백하다.
“케이랑 테스카가 잘해서 그렇지.”
누가 관리하고 안 하고 차이가 참 크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인류연맹의 이진혁교는 안전하다고 볼 수 있다. 키르드가 잘할 테니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블루 마블에도 이진혁교의 관리인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전문 용어로는 블루 마블 교구의 주교가 될 인물이 필요하다.
내가 여기 천년만년 머무를 거라면 상관없겠지만, 나도 바쁜 몸이다. 실은 은퇴한 지 몇 달 되지도 않아 한가하긴 했지만 아무튼 바쁜 몸이다.
그런데 블루 마블 청마인들의 상황상 이것들 중 하나를 주교로 임명하면 인정 못 하느니 하면서 날뛰겠지. 그리고 또 내전으로 이어질 테고.
결국 외부인 중 내가 신임할 수 있는 인물, 덤으로 청마인들이 떼로 몰려와도 혼자 제압할 수 있는 인물이 필요하다.
“그게 딱 한 명 있네.”
악마여왕 비토리야나.
아, 이젠 악마가 아니라 내 천사지만.
비토리야나는 처음 내 일행에 합류할 때부터 나 다음으로 강한 존재였던 데다, 일전에 나한테 기적과 축복과 신비를 얻어 훨씬 강해졌다. 그녀라면 청마인 전체가 연합하고 쳐들어와도 혼자 능히 제압하겠지. 만마전 출신이라는 점도 플러스다.
그렇게 결정을 내린 나는 비토리야나를 소환했다.
“주여! 주께 쓰임 받는 것을 기쁘게 여기나이다!”
비토리야나는 소환되어 나오자마자 내게 부복하며 경의를 표했다. 그러고 보니 비토리야나도 첫인상과는 상당히 달라졌다. 하긴, 첫인상은 별로 좋지 않았다. 나한테 [유혹의 권능]부터 날렸지. 그걸 생각하면 달라진 게 다행이다 싶다.
나는 비토리야나에게 대강 일의 전말을 알려주었다. 그러자 비토리야나가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이놈들, 이 배은망덕한 놈들! 이것들이 얼마나 큰 은혜를 입었는지 모르나?! 아직 악마로 산 지 일만 년도 안 돼서 그런가? 그래서 그렇네! 틀림없네! 내 이것들을 그냥······!”
“죄, 죄송합니다! 여왕님!”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비토리야나의 분노에 찬 일갈에, 안 그래도 파란 얼굴이 더욱 새파랗게 질린 청마인들은 그 자리에서 꿇어 엎드리며 용서를 빌었다. 악마에서 인류종이 되었다 한들, 그들 사이에 악마여왕 비토리야나의 위명은 아직 살아 있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비토리야나는 그들의 용서를 받아주지 않았다.
빠악!
두개골이 쪼개지는 소리가 선연히 들렸다. 보통 저 정도 일격을 맞으면 그 자리에서 죽는다. 치료를 받지 않으면 그렇다는 소리다. 비토리야나의 손에서 찬란한 황금빛이 번뜩이자, 갈라졌던 두개골이 도로 붙었다. 치유 스킬이다.
“일어서! 이것들, 오늘 여기서 못 죽는다!”
죽인다고도 안 하고 안 죽인다고도 안 하고 못 죽는다고 한다. 거참, 솔직하기도 하지. 딱 사실만 말하네.
“주여! 살려주시옵소서! 주여!!”
같은 내용이긴 해도 며칠 전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의 기도가 쏟아졌다.
그러나 그들의 현실은 변하지 않았다.
“안 죽는다잖아.”
나는 비토리야나를 말리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은 맞았다. 하염없이 맞았다. 반항해도 맞았고, 가만히 있어도 맞았으며, 죽은 척해도 맞았다. 그러다 보니 그들의 기도 내용이 바뀌었다.
“주여, 차라리 죽여주시옵소서!”
“못 죽는다잖아.”
그제야 청마인들은 자신들이 당하고 있는 게 내리 갈굼이라는 걸 깨달았는지 표정이 멍해졌다. 그리고 그 뒤통수가 빠악, 하는 소리와 함께 빠개졌다.
물론 그 일격으로도 청마인들은 죽지 못했다.
“이것들이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어! 이 버러지 같은 것들! 아니지? 이 버러지들! 일어나서 덤벼라! 제대로 교육해 주마!!”
와, 터프하다. 반하······지는 않지만.
그렇게 비토리야나의 교육은 사흘 밤낮 동안 이어졌고, 몇 명은 몇 번 죽었다 되살아났다. 그녀가 너무나도 분노에 차 힘 조절에 실패한 까닭에 죽여 버린 게 그 원인이었다.
그리고 사흘째 되는 날.
“죄, 죄송합니다! 주여! 저희가 잘못했나이다!”
“저희가 틀렸나이다! 바로잡을 기회를 주시옵소서!!”
그 대답이 나오고서야 비로소 비토리야나의 폭력이 멈췄다.
“하니까 되잖니.”
비토리야나는 화사하게 웃었다.
온몸에 청마인들의 파란 피를 묻힌 채.
······그 모습은 내가 봐도 좀 무서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