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Loser RAW novel - Chapter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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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원 엘프들의 우호도가 100 상승했습니다.
– 퀘스트 완료 보상이 지급되었습니다. 인벤토리를 확인해보십시오.
– 퀘스트 완료 보상 : 금화 60개(+100%), 기여도 60(+100%)
“살았어!”
“이제 산 너머로 갈 수 있어!!”
영문을 모르겠지만, 황무지에서 구울들을 모조리 처치한 다음 드워프들을 만났을 때와 같은 반응이라고 이해하면 되겠지. 그 때보다 우호도 상승이 더 높긴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크게 다르진 않을 것이다.
그래도 내가 한 일에 이렇게 좋아해주니 좋네.
사실 금화를 벌어서 좋은 거지만.
나는 싱긋 웃었다.
“저희는 설원 엘프라 불리는 종족입니다. 이 고원의 주민이죠.”
어느 정도 환호성이 진정된 뒤에나, 리더처럼 보이는 설원 엘프가 나섰다.
시스템 메시지로 들어 이미 알고 있는 사항이었지만, 정식으로 소개를 받는 건 또 다르다.
“그리고 저는 엘르히라 합니다. 저희 부족, 겨울 토끼 부족의 레인저 부대 대장을 맡고 있습니다. 이들은 제 부하들입니다.”
레인저라. 한국어론 유격대였지. 유격대에 별로 좋은 기억은 없다. 이 레인저들이 한국군에서 말하는 유격대와 정확하게 같은 의미의 부대인 건 아닐 테지만.
“그래, 엘르히. 나는 이진혁이라 한다.”
지나치게 간소한 자기소개지만, 내 입장에서도 더 덧붙일 타이틀이 없었다. 이들에게 ‘인류연맹의 영웅’ 같은 소릴 할 수도 없고, 그걸 내 입으로 덧붙이는 것도 객쩍다.
“짜장면 값이라고 하긴 좀 뭐하지만, 이 지역에 대해 정보가 필요해.”
그러니 바로 본론부터 꺼냈다.
“저 지고의 음식은 짜장면이라고 하는군요. 이런 귀한 음식을 나눠주셔서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그렇게 말하는 새하얀 엘르히의 뺨이 붉게 물들었다. 짜장면의 맛을 되새기고 있는 것 같았다. 그나마 엘르히야 좀 침착한 태도를 보여주고 있었지만, 다른 엘프들은 짜장면, 짜장면하고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엘프들이 저러는 걸 보니 인류연맹 상점표 짜장면이 맛이 있긴 했던 모양이었다. 그야 먹으면서 울 정도니 맛없을 리는 없다. 나마저도 울었으니 말이다.
“더군다나 마법사님께서는 이 동굴의 식인거미들을 소탕해주셨으니, 이미 저희 부족의 은인이나 다름없습니다. 은인께 대가를 바라는 것도 아니 될 일이지요.”
나야 그냥 보상 바라고 한 짓이지만, 엘프들이 느끼기에는 또 다른 모양이었다. 그렇다고 굳이 내가 나서서 고개를 저을 필요는 없어보였기에, 나는 그냥 잠자코 엘르히의 이어질 말을 기다렸다.
“이 지역, 저희가 생활의 근거로 삼고 있는 눈 토끼 고원은 본래 안온하고 살기 좋은 곳이었습니다. 비록 겨울에 눈이 좀 많이 오고 산세가 험해 고립 되는 일이 잦긴 했습니다만······.”
역시 고원 지역인가. 하긴 동굴을 통과하며 한참 기어 올라오긴 했지. 이런 곳을 살기 좋은 것이라고 말하는 건 애향심의 발로인 걸까? 하지만 그것도 과거형의 표현이었다. 무슨 일이 일어나긴 한 모양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눈이 그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말문을 연 엘르히의 표정은 벌써부터 수심에 가득 차 있었다.
“겨울에 며칠씩 눈이 내리는 건 익숙한 일이었기에 저희 쪽에서는 사태를 파악하는 게 조금 늦었습니다만, ‘아랫동네’에선 벌써 난리가 났던 모양입니다.”
그 아랫동네란 건 드워프들 이야기인가? 아니면 다른 엘프들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이야기의 맥을 끊는 건 안 좋으니 나중에 물어보자.
엘르히는 어두운 표정으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계속해서 내리는 눈에 먹을 것도 떨어지고, 마실 물도 위험해졌습니다. 본래 깨끗하기로 유명했던 이 지방의 눈입니다만, 눈을 녹여서 마신 사람들이 역병에 걸려 죽어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저희가 원래 마실 물을 구하던 호수에도 눈이 녹아들어 더럽혀졌죠.”
이 세계는 어딜 가든 물 부족으로 고생하는군. 아니면 교단이 ‘살균’을 위해 식수부터 끊는 걸 원칙으로 삼는 탓일지도 모르겠다. 이 멈추지 않는 폭설의 원인이 교단이라면 말이지만. 아직 확실하지 않은 이야기다.
“저희는 더 이상 이 눈 토끼 고원에서 살아갈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더 늦기 전에 다른 곳으로의 이주를 결정했죠. 일족의 노인들이 반발하긴 했습니다만······.”
식량과 물이 없는데 어쩌겠는가. 다른 선택은 없었을 테지.
“본래 저희가 피난하려고 했던 ‘아랫동네’는 이미 텅 비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주변에 정체를 알 수 없는 거대한 괴수가 방황하고 있다는 소식을 선발대가 전해왔습니다. 그 괴수는 흉포하기 그지없어서 사람의 모양을 한 것은 무엇이든 쫓아와 잡아 죽인다고 했습니다.”
그 거대한 괴수가 무엇인지 나는 감을 잡았다. 그것은 매우 높은 확률로 필드보스일 터였다.
이 시점에서 이미 중요한 정보를 얻은 셈이었다. 그 필드보스가 내 다음 목표였는데, 대략적이나마 그 위치를 알았으니.
문제는 그 필드보스가 교단의 살균병기일 가능성이 결코 낮지 않다는 점이었다. 만약 그렇다면, 그걸 처치한 시점에서 바로 인퀴지터가 날아오겠지.
그러니 필드보스를 처리하고 나서 바로 달아날 수 있도록 계획을 잘 짜야할 것 같았다. 적어도 이 지역에서 얻을 건 다 얻고 마지막에 필드보스를 노리는 게 좋을 터였다.
뭐, 그냥 소속 없는 떠돌이 괴수일 가능성도 완전히 없진 않지만 말이다. 아무래도 정보를 더 얻어 보는 게 좋을 것 같다.
“살아남은 선발대는 단 한 명이었습니다. 나머지는 그 괴수가 이 고원으로 따라오는 걸 막기 위해 흩어져 달아났다고 하더군요. 다른 선발대원들의 고결한 희생 덕에 저희 부족은 괴수로부터 무사할 수 있었습니다.”
고결한 희생. 엘르히의 표현이 아깝지 않다.
“살아남은 선발대원은 지금도 살아있나?”
“아뇨, 죄책감과 공포에 미쳐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습니다.”
“안타까운 일이군······.”
물론 고결한 이의 죽음은 그 자체로도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나 내 입장에선 그 선발대원이 갖고 있었을 괴수에 대한 정보가 더 아쉬웠다. 좀 쓰레기 같은 사고방식이긴 하지만 내게 있어선 그만큼 시급하고 중요한 정보였다.
“괴수의 위협으로부터 안전해진 건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여전히 ‘더러운 눈’이 내리고 저희 부족원들의 목숨은 여전히 위험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랫동네로의 피난이 불가능해진 터라 어찌 할 바를 모른 채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맞서 싸울 생각은 못 해봤냐고 묻지는 않았다. 오크들은 필드보스 중에서는 가장 약한 축에 속한다는 지옥 멧돼지를 상대로도 거의 멸종위기까지 몰렸다. 이 엘프들이 얼마나 강한지는 모르겠지만, 그 도전이 무모한 도전일 가능성은 꽤나 높았다.
“그렇게 의미 없는 나날을 보내던 중 어느 날, 한 무리의 아랫동네 사람들이 이 고원으로 피난을 왔습니다. 그 사람들은 드워프라는 종족이었는데, 굴을 파고 쇠를 녹여 두들기는데 일가견이 있는 자들이었습니다.”
아, 두프르프와 그 일당들이겠군. 아랫동네의 주민이 드워프일지도 모르겠다는 내 추측은 틀리지 않은 것 같았다. 그렇다면 혹시 몰라 두프르프에게 들어둔 괴수에 대한 정보도 쓸모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들은 용케도 괴수의 추적에서 벗어나 여기까지 도망치는데 성공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일족의 노인들은 외부인들을 아주 싫어해 드워프들을 내쫓으려 했습니다. 혹시나 괴수가 그들의 자취를 따라 마을로 들어올 수도 있다고 두려워한 까닭도 있을 겁니다.”
이기적이고 자기보신적인 태도였지만, 이해가 안 가는 반응은 아니다. 누구나 자기 목숨이 소중한 법이니까. 그러니 자기 목숨을 미끼로 던지고 마을을 구한 선발대원들의 행동을 고결하다 평가할 수 있는 것이고.
“부족 노인들의 냉대에 드워프들도 이 지역에 오래 머물지 않고 굴을 파서 산 너머로 도망치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렇게 파낸 굴이 어딘지 짐작하는 건 별로 어렵지 않았다.
“그리고 그 굴이 이 동굴이겠군.”
“맞습니다.”
내 말에 엘르히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히 앞뒤가 다 맞았다. 내게 이 동굴의 위치를 알려준 것도 두프르프였으니, 아랫동네를 배회하는 괴수도 두프르프가 말한 그 괴수가 맞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에게서 들은 정보도 쓸모가 있다는 소리다.
“드워프들은 저희에게 알리지 않고 조용히 사라졌습니다. 하긴, 물 한 방울 콩 한 조각조차 나누지 않았는데 미리 떠날 것을 알릴 의리 따위는 없었겠습니다만.”
정말로 물 한 방울도 안 준 건가. 하긴 자기들 살기도 버거운데 물을 나누라고 하는 것 자체가 오만한 요구일지도 모르지. 나는 좀 더 냉정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그러나 그들이 어디로 향했는지는 금방 알 수 있었습니다. 전까지는 없었던 이 동굴이 새로 생겨 있었으니까요. 이전까지 이주를 주장하던 사람들은 당연히 이 동굴을 이용하자고 말했지만, 일족의 노인들은 결사반대했습니다. 이주파의 사람들도 노인들을 설득해야 한다는 파벌과 그냥 두고 떠나자는 파벌이 갈려 지리멸렬해졌습니다.”
이 엘르히는 어느 파벌이었을까? 노인들에 대한 답답함을 표시하는 걸 보니 이주파였던 건 확실해 보이는데.
뭐, 알아서 유쾌할 것 없는 정보긴 하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갔습니다.”
엘르히의 아름다운 얼굴에 수심이 가득했다.
“텅 비어 있던 동굴에 식인 거미들은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났습니다. 드워프들이 판 굴과 자연동굴의 연결지점에서 거미들이 쳐들어온 걸지도 모르고, 어쩌면 거미들이 직접 굴을 파 나온 것일지도 모르지만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내가 알기론 둘 다 아니다. 거미를 한 마리라도 놓칠세라 동굴 곳곳을 샅샅이 뒤져본 나는 알고 있다. 이 동굴은, 적어도 통로는 일방통행이다. 갈림길은 모조리 막다른 길이거나 방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럼 대체 거미들은 어디서 나타난 걸까?
‘교단인가?’
뭐든지 다 교단 탓으로 생각하는 게 좋은 버릇은 아닐 테지만, 가지고 있는 정보가 한정되다보니 사고패턴이 그쪽으로 흐르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보다 엘르히의 이야기가 아직 이어지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죠. 거미들은 이 동굴 밖으로 나오지도 않았고, 저희도 동굴 쪽으로 접근하지만 않으면 위험할 일 자체가 없었으니까요. 노인들은 오히려 좋아하기도 했습니다. 이주파의 목소리가 수그러들었으니.”
거 노인네들 갑갑하기도 하지.
“어쩌면 예상이 가능한 일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거미들이 계속해서 번식해서 동굴이 넘쳐나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사실 미리 내다볼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저희는 일족 내부의 갈등을 봉합하는데 바빴고, 위험을 대비하는 것을 소홀히 했습니다. 그리고 그 대가를 치르게 되고 말았습니다.”
엘르히의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스트레스가 극단에 이르렀다.
“갑자기 식인 거미들이 동굴 밖으로 나와 사람들을 잡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일족의 수호자들은 용감히 싸웠으나 오랫동안 식량부족과 물 부족에 시달려왔던지라 허약해져 있었고, 결국 저희는 패배했습니다. 그 후로부터 식인거미들은 매일 밤 저희 부족을 침략하고 약탈했습니다. 이미 수호자들 대부분이 죽어버리고 만 터라 부끄럽지만 저희로선 도망치는 것 외에 방도가 없었습니다. 노인들이 그렇게 지키고자 했던 고향 마을을 버리고 산간으로 도주해야 했지요. 그 와중에 새로운 소식이 전해져 왔습니다. 아랫동네에 머물러 있던 거대괴수가 고원을 향해 이동하고 있다는 것이 그것이었습니다. 앞뒤가 모두 꽉 막혀, 남은 것이라고는 거미의 먹이가 되느냐 괴수의 먹이가 되느냐를 선택하는 것뿐인 상황이었습니다.”
그 진퇴양난의 상황을 이야기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엘르히의 얼굴빛이 밝아졌다.
“그렇게 저희 일족, 겨울 토끼 부족이 최대의 위기에 봉착해 있을 때 바로 마법사님께서 나타나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