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Loser RAW novel - Chapter 40
040
————– 40/169 ————–
– 도둑 코볼트들의 우호도가 255 상승했습니다.
뭐, 그래도 우호도가 오른 걸 보니 좋아하는 건 맞는 것 같았다. 그것도 단번에 255가.
하긴 개미들은 이들 코볼트들에게 매우 큰 위협이었을 테니까. 그야말로 일족의 존망을 위협하는 천적이었을 것이다. 그런 개미들을 내가 처치하고 여왕을 죽인 후 알까지 전부 훔쳐내 그것들의 미래까지 끊어놓았으니, 코볼트들로선 좋아할 수밖에 없는 일일 것이다.
그런데 이 녀석들, 도둑 코볼트였나. 하긴 드워프 도시에 숨어 사는 것도 그렇고 개미 알을 훔쳐다 먹는 것도 그렇고. 도둑질은 꽤나 했을 것 같긴 하다.
어쨌든 우호도 255를 찍으면서 우호도 퀘스트들이 주르륵 완료되었고, 나는 우호도 퀘스트 완료 버튼을 주르륵 누르고 인벤토리를 까 보상을 수령했다. 코볼트 무리와 접촉했을 때 이미 완료 판정이 뜬 접촉 퀘스트와 함께, 보상이 한꺼번에 굴러 들어왔다.
며칠 새에 내가 가지고 노는 금액이 커져서 이 정도는 약소해 보이지만, 그래도 적은 돈은 아니다. 다시 금화 2만 개를 모으기 위해 온몸 비틀기를 해야 하는 내 입장에서는 더더욱.
자, 그럼 우호도 255도 찍었겠다. 이제 정보를 거래해 볼까?
그런데 코볼트 족장의 상태가 이상했다.
“멍멍! 주인님! 우릴 이끌어주세요!!”
날 보면서 혀를 내밀고 헥헥대면서 초롱초롱한 눈으로 보고 있는 것도 부담스러운데, 꼬리까지 프로펠러 돌리듯이 파바바박 흔들고 있으니 그야말로 부담의 극치였다.
이런 반응은 처음 보는데······.
하긴 튜토리얼 세계에선 코볼트 상대로 우호도를 올릴 수 없었으니 처음 보는 게 당연하긴 하다.
“거절한다.”
이런 부류의 부탁은 처음부터 일언지하에 거절해야 후환이 없다.
그래서 나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끼잉끼잉.”
내 거절에 코볼트 족장은 귀를 접고 꼬리를 말았다.
어쨌든 우호도의 변화로 인해 태도가 매우 판이하게 달라진 코볼트 족장과의 대화는 조금 버겁긴 했지만 적어도 내게 불리하지는 않았다.
비로소 나는 산맥 너머로 가는 길에 대한 정보를 얻었으니까.
***
코볼트들이 영리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본래 드워프의 소유였던 이 지하 도시의 사용법까지 완벽하게 깨치고 이용할 수 있다는 건 놀라운 일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코볼트들이 위에는 드워프이터, 아래에선 거대 개미들이라는 위협적인 천적으로부터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였다.
드워프들이 설치해 둔 기관을 이용해, 원하는 대로 길을 막고 뚫을 수 있었기에 코볼트들은 거대 개미들을 따돌리고 드워프이터의 혀로부터도 도망칠 수 있었던 거다.
아니, 그 반대인가?
이걸 하지 못한 코볼트들은 다 죽고, 할 수 있게 된 코볼트들만이 살아남았다는 게 옳은 분석일지도 모르겠다.
“이쪽으로 가시면 됩니다, 주인님.”
“아니, 난 너희 주인이 아니라니까.”
길 안내를 해주는 코볼트 족장은 아직도 내게 미련을 못 버린 듯 질척거렸지만 적어도 내 앞길을 막지는 않았다.
기관을 움직여 산맥 너머로 가는 길을 일직선으로 뚫어주었으니, 이제 저 통로를 통해 걸어 나가기만 하면 되었다.
“···나는 이진혁이라고 한다.”
내가 떠나는 길을 배웅하며 꼬리를 추욱 늘어뜨린 코볼트 족장의 모습에, 나는 마음이 살짝 약해져 아직까지도 밝히지 않았던 내 이름을 뒤늦게나마 말해주었다.
“두프르프를 비롯한 방랑 드워프 일족, 저 고원의 엘르히가 이끄는 설원 엘프, 또 황무지의 라카차가 이끄는 황야 오크는 내게 은혜를 입었지. 만약 그들과 적대시할 일이 있다면 싸움을 일으키기 전에 내 이름부터 말해봐라. 적어도 손해는 보지 않을 테니.”
아니, 이것도 거래다. 우호도에만 의지해서 공짜로 정보를 뜯어내는 대신,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정보를 사들이는 거래. 물론 상호합의하에 이뤄진 거래는 아니지만, 내 마음 편하자고 하는 짓이니 너무 깊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그런데 내 이야기를 들은 코볼트 족장의 얼굴이 확 밝아졌다.
“두프르프 주인님! 엘르히 주인님! 기억하고 있습니다!! 두 주인님이 살아계시다니 놀라운 일이로군요! 그것도 이진혁 주인님께서 구해주셨다니!!”
– 도둑 코볼트들의 우호도가 100 상승했습니다.
“응? 아는 사이야?”
우호도까지 오르는 걸 보니 꽤 친근한 사이였던 것 같은데. 나는 순수한 호기심으로 그렇게 되물었다. 그러자 쉽게 믿기 힘든 대답이 돌아왔다.
“네! 저희 일족은 두 주인님들의 노예였거든요!!”
그렇게 말하며 코볼트 족장은 가슴을 폈다. 다 좋은데 왜 노예라고 하면서 자랑스러워하는 거냐. 나는 굳이 이해하려 들지는 않았다. 정확히는 별로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코볼트 족장에게 엘프와 드워프의 위치를 알려주었다. 족장과의 거래는 내게 지나치게 유리한 거래였기에 거스름돈을 거슬러 주는 개념으로 한 서비스다.
“감사합니다, 주인님! 아, 제 이름을 말씀드리지 않았네요! 저는 후루호이라 합니다! 이 일대의 코볼트들에겐 잘 알려진 이름이니, 만약 필요하시다면 후루호이의 주인이라 말씀하시면 전력을 다해 편의를 봐드릴 겁니다!!”
거의 다 죽긴 했지만요, 라고 작게 덧붙이며 꼬리를 내리긴 했지만 코볼트 족장 후루호이는 표정만은 밝게 웃어보였다.
***
통로를 통과해 바깥으로 나오자, 의외의 풍경이 나타났다.
“살아 있는 나무잖아?”
눈앞에는 침엽수림이 펼쳐져 있었다.
비록 날씨는 싸늘했으나, 푸른 잎새는 내 마음을 진정시켜주기에 충분했다.
“여기엔 교단의 마수가 뻗히지 않은 거려나?”
그저 나무가 살아 있다는 것만 보고서 이런 식으로 넘겨짚는 건 매우 위험한 사고방식이지만, 산을 넘어오자마자 풍경이 확 바뀌다 보니 저절로 긍정적인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이 지역이 교단의 관리하에 놓였든 말든 관계없이, 이제 더 이상 허겁지겁 도망칠 이유는 많이 사라졌다. 완전히 다른 지역으로 넘어왔으니, 새티스루카나 프랑시안을 죽인 건에 대해 추적당하더라도 꼬리를 밟히기까지는 시간이 많이 걸릴 터다.
시간을 충분히 벌면 능력치 부스터 앰플도 쓸 수 있게 되고, 진리활화의 재사용 대기시간도 지나갈 것이고, 인류 연맹에 의뢰해 놓은 마이스터급 방어구 세트도 도착한다. 그럼 적어도 최소한도의 승산은 확보하게 된다.
“뭐, 그렇다고 이런 데 주저앉아 있을 수는 없지.”
일단 이동한다. 멀리 이동할수록 그만큼 시간을 벌어들일 수 있는 셈이니, 눈에 띄지 않는 선에서 서두르는 편이 내게 유리했다.
나는 침엽수림 안쪽으로 발을 옮겼다. 침엽수 특유의 내음이 절로 코를 벌름거리게 만들었다. 본의 아니게 삼림욕을 하게 된 셈이다.
하지만 기분이 좋았던 것도 오래가지는 않았다.
직감이 반응했다.
“쳇.”
그거야 그렇다. 사실 예상을 좀 하긴 했다. 왜 코볼트들은 이 숲을 놔두고 드워프의 도시에 틀어박혀 있었을까? 그리고 지금 내 직감에 걸려든 게 바로 그 이유이자 원인 제공자였다.
나무가 움직이고 있었다. 그것도 건물만 한 거목이.
높이만 해도 5층짜리 아파트 정도는 되어 보이는 데다, 나무줄기도 코끼리를 연상케 할 정도로 두꺼웠다.
[돌발 퀘스트] – 의뢰인 : –– 분류 : 토벌
– 난이도 : 보통
– 임무 내용 : 흡혈 나무를 토벌하라!
– 보상 : 금화 200개(+100%), 기여도 200(+100%)
“오, 너 꽤 센 모양이구나.”
나는 나를 주시하는 것처럼 보이는 흡혈 나무를 보고 여유롭게 말을 걸었다. 굳이 퀘스트 보상 내용으로 추론할 필요도 없었다. 직감으로 이미 느끼고 있으니까.
이런 괴물이 돌아다니는데, 코볼트들이 숲에 나올 수 있을 리 없지.
나는 혀를 쯧쯧 찼다.
“그럼 [죽어라].”
나는 [힘의 말 : 죽어라!]를 사용했다. 효과는 굉장했다. 꾸물대며 움직이던 흡혈 나무의 뿌리와 가지들이 축 늘어졌고, 푸르던 잎들도 단번에 시들었으니까.
“흐음.”
죽은 나무를 올려다보며, 나는 혼자 읊조렸다.
“쓰다 보니 마음에 드는 스킬이긴 한데······.”
당연히 [힘의 말 : 죽어라!]를 가리키고 한 혼잣말이다. 마력 소모가 좀 많고 한 번에 한 놈만 보낼 수 있다는 점이 걸리긴 하지만 그 단점들을 덮는 장점들이 있다. 물론 다른 어떤 장점들보다도 크게 두드러진 장점은 멋있다는 점이었다.
말 한 마디로 상대를 즉사시키는 스킬. 이런 스킬을 내가 얼마나 원했던지.
특히 내가 중학생이었을 때 이 스킬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면 영혼이라도 팔았을 것이다. 아니, 그땐 딱히 대가를 받지 않고도 영혼을 팔았을 수도 있다. 영혼을 판다는 행위 그 자체에 로망을 느끼던 때였으니까. 왜 그런 생각을 했을까? 나도 모르겠다.
“뭐, 그래도 융합은 시켜야지.”
그래도 또 다른 전설급 스킬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그냥 멋 부리자고 포기할 순 없다.
나는 입맛을 다셨다.
***
죽은 흡혈 나무는 그 자체로 그럭저럭 괜찮은 은신처가 되어주었다. 동물을 잡아 피를 빨아먹고 살아서 그런지 주변의 침엽수들과 달리 잎도 울창하고. 비록 죽어서 다 갈색으로 바싹 마르긴 했지만, 잎이 아직 떨어지지는 않았다.
그럼 여기쯤에서 해볼까?
나는 죽은 흡혈 나무 아래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내가 하려는 것은 [진리대마공]의 [진리대주천]이다. 그저 앉아서 스킬을 활성화하는 것만으로 마력 능력치가 축적되는 효과를 가졌다. 그동안은 바쁘게 움직이느라 해볼 기회가 없었는데, 이번 기회에 진득하게 마력 좀 쌓아볼 생각이다.
포격 스킬로는 프랑시안에게 거의 피해를 입히지 못한 것도 마음에 걸리고. 내 마력은 50을 넘겨서 낮은 편은 아니지만, 이 정도론 인퀴지터 급에겐 이빨도 박히지 않았다는 점이 내겐 나름 충격적이었다. 역시 마력을 더 올릴 필요가 있긴 하다.
물론 좋은 점만 있는 건 아니다. [진리대주천]을 돌리며 집중하는 건 큰 빈틈을 노출하는 행위니까. 말하자면 수면에 준하는 행위다. 더군다나 [진리대주천]을 돌리는 도중에 공격받으면 [주화입마]에 빠질 수도 있다고 한다.
그래서 안전한 곳을 찾아서 해야 했는데, 그나마 이곳이 좀 안전한 곳이라 판단했다.
코볼트들의 은신처에서 돌리는 것도 생각은 해봤는데, 코볼트들의 태도가 좀 부담스러워서······.
게다가 그것뿐이라면 별문제가 안 되지만, 어쩌면 코볼트들을 노리고 인퀴지터가 찾아올 수도 있으니까.
[진리활화]의 쿨도 덜 돌았는데 지금 인퀴지터와 만나면 즉사를 강제로 보증당할 가능성이 너무나도 높았다. [진리대주천]을 돌리면 [진리활화]의 쿨도 줄어든다고 하니까, 빨리 돌려서 [진리활화]를 활성화시키는 것이 오히려 더 안전하다고 판단했다.뭐, 잠깐 돌려보고 위험하면 그만두든지 하면 되니까.
자, 그럼 어디 한번 돌려보실까?
“후!”
심호흡을 한 번 한 후, 나는 스킬을 활성화했다.
오, 오오.
나는 나도 모르게 소릴 낼 뻔했다.
스킬을 활성화하자마자 전신에 흩어져 있던 마력이 방향성을 가지고 온몸 구석구석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내가 아는 마력이란 건 그냥 능력치다. 마법을 쓰는데 필요한 자본이자 마법을 강력하게 해주는 도구. 그게 마력에 대한 이해의 전부였다.
그러나 이 [진리대주천]의 경험은 내 그러한 이해의 근본부터 갈아엎었다.
‘마력은··· 힘이다.’
그거야 당연한 거 아닌가. 그러나 아는 것과 깨닫는 것은 다르다. 단순한 지식은 경험으로 인해 진리로 탈바꿈한다. 강력한 힘은 힘을 끌어모은다. 마치 행성 규모의 질량에 자연히 중력이 발생하는 것처럼.
‘마력이 쌓이고 있어.’
전신을 휘몰아치는 마력은 원래 있던 것보다 더 커지기 시작했다. 나는 그것을 느꼈다. 실감했다.
– 축적된 마력 :1
시스템보다도 빨리, 더 민감하게!
– 축적된 마력 :2
나는 마력을 회전시키는 데만 모든 신경을 쏟았다. 스킬은 멋대로 움직이지만, 나는 내 의지로 그 회전력을 더욱 높였다.
– 축적된 마력 :3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나는 모른다. 이미 무아지경에 놓였기에.
시스템 메시지는 지속적으로 출력되고 있었지만, 나는 그것을 읽을 수도 인지할 수도 없었다. 그저 굶주린 아귀처럼 정신없이 마력을 끌어모을 뿐이었다.
그래, 지금의 나는 마치 블랙홀과 같았다!
– 축적된 마력 :22
– 숨겨진 요소가 개방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