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Loser RAW novel - Chapter 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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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자크는 이런 말로 운을 떼었다.
“너도 지구인이니 엑소더스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으리라고 믿는다.”
모른다.
내가 아는 엑소더스라곤 기독교 성경 구약에 나오는 출애굽뿐이다. 카자크가 말하는 엑소더스는 이것과는 별개의 것이겠지. 그러니 내가 알 리 만무했다.
하지만 나는 그런 낌새는 내비치지 않은 채, 카자크의 이어질 말을 기다렸다.
“당시 교단에서는 지구인들을 대거 영입했지. 튜토리얼이 열린 시기가 다소 늦었다고는 하나, 강력한 플레이어가 많았던 지구의 인재를 영입할 수 있었던 건 교단에게는 상당한 호재였다.”
카자크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카르마 마켓에서 노인에게 들었던 지구인에 대한 이야기를 떠올렸다. 지구인이 나만 남기고 멸종해버린 에피소드에 대해서.
모든 지구인이 다른 종족으로 변경했기 때문이라고 노인은 말했는데, 나는 그게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인지에 대해 의구심을 품은 적이 있다. 왜냐하면 카르마 마켓에서 파는 종족 변경권은 매우 비쌌기 때문이다.
그러나 종족을 변경하는 것이 카르마 마켓에서만 가능한 일은 아니리라는 가설을 떠올렸는데, 아무래도 교단이 그 다른 방법을 제시한 단체 중 하나인 것 같았다. 지구인 플레이어를 대거 받아들였다는 말에서 그걸 유추해낼 수 있었다.
그렇게 많은 지구인 플레이어를 받아들였는데, 그들 중에 지구인으로 남은 플레이어가 단 한 명도 없다면 교단에서 뭔가 솔루션을 제공했을 거라고 보는 게 타당하겠지.
“실제로 지구 출신 플레이어들은 큰 도움이 되었지. 그들이야말로 열세를 면치 못했던 만신전과의 경쟁에서 우위에 설 수 있게 된 원동력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카자크의 말에 나는 약간 놀랐다.
그의 말에 따르면 마치 만신전과 교단이 별개의 단체 같지 않은가? 내가 크리스티나에게 듣기론 만신전과 교단은 같거나 밀접한 연관이 있는 세력이란 것 같았는데. 아무래도 그게 틀린 정보인 것 같았다.
크리스티나가 내게 거짓말을 했다고 보기보다는 인류연맹의 정보가 늦거나 틀렸다고 보는 게 옳을 것이다. 왜냐하면 크리스티나가 내게 그런 거짓말을 해서 얻을 게 별로 없으니까.
더욱이 교단이건 만신전이건 인류연맹의 적이라면, 그런 구분은 큰 의미가 없다고 보는 시각도 있을 수 있었다.
“상대적으로 세력이 약했던 교단이 만신전과의 지구인 영입 경쟁에서 이길 수 있었던 이유가 따로 있다. 교단이 건 바로 이 조건 때문이었다.”
새로운 별개의 의문은 카자크가 해소해주었다. 사실 지구인들은 좀 더 크고 강력한 세력에 영합하길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자크가 대놓고 ‘열세를 면치 못했다’고 표현할 정도로 약한 단체인 교단에 지구인들이 합류한 이유가 따로 있긴 할 것이다.
“교단은 지구인 출신 플레이어에게 제2의 지구가 될 신천지의 마련을 약속했어. 지구와 최대한 비슷한 조건에, 더욱 넓고 살기 좋은 곳이라는 조건이 붙었지.”
지구인들이 왜 지구가 아닌 제2의 신천지를 찾아야만 했을까? 카자크는 내게 말해주지 않았고, 나도 딱히 묻지 않았다.
카자크는 말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을 거고, 나는 알 필요를 못 느꼈으니까.
“당시의 지구인들에게 있어선 혹할 만한 조건이 아닐 수 없었을 거다. 하지만 달콤한 조건에는 항상 함정이 도사리고 있고, 이 경우도 예외는 아니었다. 지구인과 계약을 맺을 당시, 교단은 지구인에게 제시했던 조건을 만족하는 행성을 소유하고 있지 못했어.”
사기였군.
그야말로 제2의 맥마흔 선언이라고 봐도 될 사기극이다.
1차 세계대전 시기, 영국은 팔레스타인의 아랍인들에게 독립을 약속하며 오스만 제국에의 반란을 부추겼다. 그 약속이 맥마흔 선언이었다.
그런데 그 약속 자체가 이중 계약이자 사기였다. 영국은 유태인들과도 똑같은 약속을 했었다. 그것은 벨푸어 선언이었고, 이행된 건 벨푸어 선언 쪽이었다.
그것과 비슷한 사기를 교단은 지구인 전체를 상대로 통 크게 쳐 먹은 모양이었다.
“발등에 떨어진 불은 끄고, 교단은 만신전과의 생존 경쟁에서 일단 승리했지만 그 뒤가 문제였다. 교단의 주력은 어디까지나 지구인들이었으니까. 이들을 잃으면 세력 간의 경합에서 다시 주도권을 내주고 제자리로 되돌아가게 될 상황이니 교단도 필사적이었다.”
다행히 지구인은 아랍인들처럼 내쳐지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나는 흥미진진하게 카자크의 이야기를 계속 들었다.
“그런 상황에서 교단 일부 세력에서 이런 계획안이 올라왔다. 간단히 말하면 ‘없으면 만들면 된다’는, 말은 쉬운 계획이었다.”
그것이 어떤 계획인지 대충 감은 잡혔지만, 나는 잠자코 카자크의 이어질 말을 기다렸다.
“그것이 바로 가나안 계획이다.”
카자크의 이어진 말은 내가 예상한 그대로였다.
성경에 등장하는 약속의 땅 가나안. 유태인들은 가나안에 도착한 후 토착 세력을 몰살시키고 그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을 손에 넣었다.
그리고 교단은 여기 이 땅에서 똑같은 짓을 행하고 있었다.
이 땅에 필드 보스와 괴물들을 배치해 토착 인류 종족들을 죽여 없애고 환경을 바꾸어 지구처럼 만드는 계획.
그것이 가나안 계획의 전모였으리라.
카자크가 나더러 가나안 계획에 대해 알고 있냐고 물어본 건 내가 지구인이라고 대답했기 때문이리라.
그리고 하나 더. 내가 인퀴지터들을 죽여 버린 것도 카자크의 의심을 사게 된 원인 중 하나였을 거고.
“가나안 계획은 교단에서도 극소수만 파악하고 있는 특급기밀사항이다. 파견된 관리자들이 범죄자, 살인마들로 구성된 것도 그들이 이 임무에 걸맞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살인멸구를 생각하고 있었군. 나로서도 쉬이 추측할 수 있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러한 가나안 계획의 전모를 파악하고, 별개의 보고 체계를 통해 폭로하기 위해 파견되었다.”
잠깐 망설이던 카자크는 그렇게 털어놓았다. 그리고는 긴 한숨을 토해내며 말했다.
“여기까지 파고드느라 고생했는데, 이런 식으로 임무가 종료될 줄은 몰랐군.”
이야기를 듣자하니 아무래도 카자크는 가나안 계획을 추진하는 파벌의 적대 세력에서 파견한 첩자인 것 같았다. 이 가나안 계획은 도덕적으로 충분히 지탄받을 만한 안건이고, 정치적으로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을 테니 첩자를 보내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리라.
흠.
카자크의 증언 전부를 신뢰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그가 순 거짓말만 했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카자크는 내가 뭘 알고 뭘 모르는지 모르니, 빤히 보일 거짓말로 위험을 자초할 가능성이 매우 높지는 않다고 생각할 뿐이다.
하지만 진실 두 개를 어떻게 배열하느냐에 따라 그것을 거짓으로 만드는 것도 가능하고 어떤 오해를 의도적으로 불러일으키는 것도 가능하다는 것을 잊어선 안 된다.
그리고 카자크는 내가 모르는 것이 뭔지, 딱 하나만은 확실하게 알고 있다.
그것은 바로 카자크 본인의 정체다.
카자크가 가나안 계획을 세운 파벌의 편인지, 아니면 그 반대편인지는 내가 알 방도가 없다. 일단 카자크는 내가 인퀴지터들을 죽인 걸 보고 반대 파벌 쪽을 골랐을 가능성이 있다. 그게 더 생존에 유리할 테니까.
스스로를 인스펙터라고 밝힌 건 뭐, 내가 본인을 제압하기 전에 밝힌 것이니 아마 사실이겠지. 아닐 수도 있지만 그럴 가능성은 낮아보였다.
자, 그럼 이제 어쩐다.
솔직히 말해 카자크를 살려두는 건 너무 위험했다. 지금까지는 운 좋게 인퀴지터를 한 명도 놓치지 않고 다 죽였으니 교단 상부에 내 존재가 밝혀지지 않을 수 있었다.
그건 말 그대로 운이 좋았던 거였다.
인퀴지터들은 모두 범죄자들이어서 포지티브 카르마를 쌓지 못했고, 그렇기에 카르마 마켓에도 출입하지 못했다. 네 명 모두 [1UP 코인]을 쓰지 못했다는 것이 그 증거다.
하지만 만약 상대가 카르마 마켓에 출입할 수 있다면?
죽은 후 마켓으로 가 [귀환의 돌]을 사용하면 내 추적을 피해 본진으로의 귀환이 가능해진다.
카자크가 바로 그 사례였다. 카르마 마켓에 대해 잘 알고, 출입도 가능한 자.
물론 카자크에게 [귀환의 돌]을 살 충분한 카르마가 없을 수도 있다. 내게 살해당한 후 바로 이곳에서의 부활을 선택한 이유가 그것일 가능성은 결코 낮지만은 않았다.
설령 그렇다고 해도, 나는 내 파멸을 스스로 불러들일 수도 있는 경우의 수를 쉽게 선택할 수는 없었다.
그러니 다른 방법을 택해야했다.
다른 방법을······.
“자, 시간이 다 되었군.”
내가 그렇게 고민을 하고 있으려니, 카자크가 문득 말했다.
“미리 말해두지만, 내가 그녀를 불러들인 것은 아니다. 그저 이쯤 되서 이쪽으로 오리라고 예측했을 뿐이지.”
그녀? 그렇게 되물을 필요는 없었다. 내 직감이 먼저 해답을 알려주었으니까.
무시무시한 존재가 동쪽 하늘에서부터 날아 들어오고 있었다. 그 존재의 실루엣은 어디까지나 인간이었으나, 나는 이미 이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건 사람 모습을 한 존재라는 사실을 경험으로 학습했다.
“네 동료인가?”
“후배지. 하지만 나보다 강하다. 나처럼 특성 하나에 얽매이지 않았거든.”
내 살의를 정면으로 받으면서도, 카자크는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나는 이만 퇴장하도록 하지.”
마치 날 도발하듯.
“날 죽여라.”
나는 혀를 찼다.
“이것 참, 보기 좋게 당했군.”
귀환을 택하지 않은 이유, 그리고 내게 목숨을 구걸한 이유. 내 질문에 순순히 대답하면서 시간을 끈 이유. 모두 저 여자가 오길 기다리기 위함이었군.
게다가 죽이라고 하는 걸 보니 [1UP 코인]을 하나 더 갖고 있음은 물론 [귀환의 돌]도 가지고 있는 모양이다. 만약 이 대담한 작전이 실패했다면 카자크는 그냥 죽고 귀환의 돌을 써서 도망쳤으리라.
이렇게 스스로를 위험에 빠뜨려서까지 날 함정에 몰아넣으려는 것을 보니, 내가 우려했던 것과 달리 카자크의 추적 능력은 별로 뛰어나지 않다는 것 또한 알 수 있었다. 한 번 귀환했다가 아군과 합류해서 돌아오면 날 놓칠 수 있다고 판단한 결과물이 이것일 테니까.
“하지만 네 판단은 틀렸다.”
내가 가장 두려워하던 경우의 수는 카자크가 내게 끈질기게 저항해 [명명백백]을 쓰게 만드는 것이었다. 신성을 전부 소모한 끝에 죽어나가는 것이 내게 있어서의 최악이었다.
그러나 카자크는 그 선택을 하지 않았고, 내겐 충분한 신성이 남아 있다.
그러니 이럴 수 있는 거다.
“[기아스].”
“뭣?!”
하지만 늦었다.
[기아스]의 시전시간은 1초. 미리 대비하고 있었다면 카자크 정도의 플레이어가 회피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나도 이제까지 섣불리 [기아스]를 쓸 수 없었던 거고.아니, 정확히는 ‘회피하는 것이 어렵지 않을 거라고 판단했다’고 보는 것이 맞다. 이제까지는 그랬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
지금의 난 [명명백백]을 쓸 수 있고, 카자크의 초월적인 스피드가 어떤 형식으로 빚어지는 건지 간파했다. 그저 [명명백백]을 켜고 있는 것만으로 그 스피드를 봉인할 수 있으니, 더 이상 [기아스]를 아낄 필요가 없어졌다.
더욱이 이번 공격은 기습이었다. 카자크는 일부러 내 손에 죽기 위해 무방비 상태였고 말이다. 결국 카자크는 [기아스]를 회피하는 데 실패했고, 기아스의 힘은 카자크에게 파고들어 그를 정지 상태에 빠지게 만들었다.
자, 그럼 이제 적절한 명령어를 골라야 한다.
지난번, 내가 처음 [기아스]를 썼을 때는 상황도 급박하고 해서 [힘의 말 : 죽어라!]와 별 다르지도 않은 식으로 사용하고 말았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세 글자에 불과한 기아스를 어떻게 활용할 건지에 대해 나는 충분히 고민하고 생각했다.
그 결과, 나는 이런 발상을 떠올렸다.
“[배신해]라.”
066 [여기까지 무료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