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Loser RAW novel - Chapter 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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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력 강화를 할 수단을 많이 얻었다 보니 굳이 정글 한구석에 은거할 필요는 많이 줄어들었다. 이제 여길 뜨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은거 생활을 접기 전에 소화해야 할 건 다 소화해야겠지만. 이 보상들을 소화시키고 내 진짜 힘으로 바꾸기 전까지는 방심해선 안 된다.
그러니 당장 해야겠지.
따악!
나는 손가락을 퉁겼다. 그러자 다섯 개의 행운 반지에서 [공명]이 일어나, 내 행운을 끌어 올려주기 시작했다. 그 소릴 들은 안젤라가 내게 다가와서 물었다.
“왜 부르셨어요?”
“······너 부른 거 아니거든?”
내가 아무리 안젤라를 개처럼 생각한다고 해도 진짜 개 부르듯 손가락 퉁겨서 부르겠냐만. 안젤라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듯 내 앞에서 커다란 눈을 깜박거리고 있었다.
“진짜 아냐.”
아무튼.
나는 능력치 주사위를 굴렸다. 20면체.
– 내공 +20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주사위 굴려.”
따악!
나는 다시 한번 손가락을 퉁겼다. 그리고 주사위를 굴리길 반복했다. 안젤라는 아예 의자까지 끌어다 앉아 내가 하는 양을 멀뚱멀뚱 지켜보았다.
“신기할 정도로 높은 수만 나오네요.”
“행운을 올렸거든.”
“행운을요?”
그보다 더 의외인 말을 들은 적이 없다는 듯, 안젤라의 목소리가 뒤집어졌다.
“아니······, 어떻게 그럴 수가 있죠?”
어차피 다른 능력치가 다 99+라 달리 잔여 미배분 능력치를 투자할 곳이 없었거든, 이라고 진실을 말해주기는 귀찮았다. 그래서 난 입을 다물고 계속해서 주사위를 굴렸다. 안젤라도 딱히 캐물을 생각은 아니었던 듯, 내가 하는 양을 지켜만 보고 있었다.
“아, 낮은 수.”
“좋아.”
징크스 발동이다. 그런데 그런 내 혼잣말을 들은 건지, 다시 그 땡그런 눈으로 날 올려다 보며 물었다.
“뭐가요?”
이 녀석, 의외로 귀찮은데.
어쨌든 나는 스킬 추첨권을 꺼내다 질렀다. 포상을 받을 때마다 반복하는 짓이긴 하지만, 이번에는 소화해야 하는 물량이 많았기에 시간이 꽤 걸렸다.
내가 주사위를 다 굴리고 추첨권을 다 쓸 때까지도 안젤라는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뭔가를 애타게 바라는 것 같은 표정으로.
“······당분간 굶을 거야.”
안젤라는 뭘 좀 먹고 싶어서 이러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확신은 없었지만, 나는 한번 넘겨짚어 보았다.
그런데 아무래도 내 추측이 맞았는지, 안젤라는 충격이라도 받은 것 같은 표정으로 내게 되물었다.
“왜요?”
“그래야······, 다음에 더 맛있게 먹을 수 있을 테니까.”
내 다소 궁색한 대답에, 안젤라는 눈을 두 번 깜박였다. 그리고 상태창을 끄느라 다시 한번 눈을 깜박인 후 이렇게 반응했다.
“아하.”
그러고서 인벤토리에서 오이를 꺼내다 씹기 시작했다. 본인이 수확한 오이였다. 진짜로 밥을 기다리고 있었던 거였냐.
“납득해 줘서 다행이군.”
솔직히 이해해 줄 거라고 생각 안 했는데 말이지.
“오이 먹을래요?”
“굶을 거라니까.”
“이거 맛없어서 괜찮아요.”
그게 괜찮은 거냐? 하긴 뭐, 괜찮긴 하다.
“······그래.”
나는 오이를 받아서 씹었다.
안젤라의 말대로 오이는 별로 맛은 없었다. 하지만 즙이 매우 풍부하고 알이 굵어서 만성적으로 식량이 부족한 이 세계의 인류종족에게는 꽤나 괜찮은 식량이 되어줄 것 같았다.
“무침 해먹으면 맛있겠네.”
“맛있으면 안 되잖아요.”
“그게 그렇게 되나?”
나는 헛웃음을 터뜨렸다.
어쨌든 나는 8개의 스킬을 손에 넣었다. 레전드 유니크급 하나, 레전드급 둘, 유니크급 다섯. 그리고 안젤라에게서 얻은 15개의 슈퍼 레어 스킬들. 사전에 같은 계열로 맞춰놓은 상점표 레어 스킬들.
나는 이것들을 모조리 승화시킬 계획이었다.
그런데 그 계획이 어그러졌다.
“같은 계열로 여섯 개를 모아도, 일곱 개를 모아도 다른 메뉴가 안 떠서 5개로 승화시키는 게 최고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 동일계열 스킬을 10개 이상 소유하고 있습니다.
– [스킬 초월]이 가능합니다. 실행하시겠습니까?
[주의!] 스킬 초월에 사용한 스킬은 다시 얻을 수 없습니다.
“갑자기 10개라니.”
원래 4개씩 짝 지어놨던 슈퍼 레어 스킬과 레어 스킬의 조합에 새로 뽑은 레전드 스킬과 레전더리 유니크가 합쳐지면서, 레전더리 유니크를 기준으로 10개가 같은 계열로 판정된 결과가 바로 이것이었다.
“후우······. 스읍······, 하아······.”
예상 밖의 사태에, 나는 심호흡을 해야 했다.
“이런 걸 그냥 지를 수는 없지.”
기왕 스킬 초월이란 걸 처음으로 해보는데, 가능하다면 최고의 결과를 얻어내고 싶은 마음이 갑자기 들었다.
나는 5성 명화 중 하나를 꺼내 들었다.
[그랑 아티스테 로코다 미엥이 그린 ‘고요하고 안정된 광기’] – 분류 : 그림– 등급 : 명품(Masterpiece)
– 내구도 :15/15
– 옵션 : [가상공간] – 설명 : 기괴하고 왜곡된, 독특한 센스를 지닌 그랑 아티스테 로코다 미엥이 광기에 차 조형해 낸 가상공간 ‘고요하고 안정된 광기’에 입장할 수 있는 명화. 우연의 산물로 창조된 이 가상공간은 사상 최고의 광기를 맛보여 주려던 아티스테의 기획 의도와 달리 심신을 가라앉히고 무언가에 집중하는데 특별한 도움을 준다.
[주의!] 최대 입장 가능한 인원은 5명까지입니다.
[주의!] 가상공간 내에서는 시간이 더 빨리 가거나 보다 느리게 갈 수 있습니다.
– 현재는 1:100의 비율로 현실보다 시간이 느리게 흐릅니다.
이 명화가 제공하는 가상공간 내에서라면 보다 빨리 스킬 수련치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된 이상, 전부 S랭크로 올린다.”
강화 가능한 슈퍼레어 스킬과 레어 스킬들을 5강으로 올려두는 건 물론이고, 숙련도까지 전부 S랭크로 올리면 대체 어떤 결과물이 탄생할까?
“너무너무 궁금해!”
“저기, 선배. 혼잣말이 너무 많으신데.”
“나 잠깐 다녀올게.”
“어디를요!”
‘고요하고 안정된 광기’로!
***
안젤라를 혼자 두고 ‘고요하고 안정된 광기’에서 스킬의 숙련도를 올리기 위한 수련에 몰두한 것도 어느새 한 달이 지났다.
“다시 봐도 신기한 곳이로군.”
이 가상공간을 만든 그랑 아티스테의 의도는 최고의 광기를 보여주기 위함이라고 했는데, 사실 그 말이 아주 틀리지는 않았다.
완전무결한 무시.
이 공간은 무엇을 하든 그 어떤 반응도 보여주지 않는다.
하얀 하늘과 하얀 땅이 무제한적으로 펼쳐진 공간. 더군다나 그림자도 생기지 않고, 소릴 질러도 주변에 울려 퍼지거나 하지 않고 훅 사라져 버린다. 발바닥에 피를 묻히고 돌아다녀도 발자국이 찍히지 않고, 아예 땅을 파도 몇 초 후엔 그 흔적도 없어진다.
말로만 하면 별것 아닐지 몰라도, 실제로 이 공간에서는 30분만 그냥 있어도 미쳐 버릴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나 자신이 완전히 무의미한 존재처럼 느껴지고,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느끼게 만드는 공간이니까.
그러나 무언가 집중할 꺼리가 있으면 아무런 방해 없이 집중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이기도 했다. 집중하지 않으면 미쳐 버릴 것 같으니, 수련에 더욱 집중하게 된다. 그냥 말로만 그런 게 아니라, 시스템상으로 실제로 수련치가 훨씬 더 잘 찬다.
결과적으로 정말 완벽한 수행을 위한 공간이 만들어진 셈이다.
이게 의도하지 않은 결과물이라니, 이 공간을 만들고 로코다 미엥이란 아티스테는 얼마나 땅을 쳤을까?
하지만 이 공간이 5성 명화로 인정받고 그는 그랑 아티스테의 좌에 올랐다니 어디다 억울함을 토로하진 못했을 터.
세상사 참 재미있다.
만약 바깥에서 그냥 수련했더라면 얼마나 더 많은 시간이 걸렸을까? 알 수 없는 일이다. 아마 반년쯤은 잡아먹지 않았을까?
레전드급 스킬의 수련은 그만큼 힘들었다. 이걸 올리라고 만든 건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변태적인 수련치의 양은 만약 이 공간이 없었다면 그냥 포기해 버렸을 것 같을 정도였다.
특히 레전더리 유니크 스킬의 숙련도를 연습 랭크에서 S랭크까지 올리는 데는 다른 스킬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수련치를 필요로 했다.
이걸 한 달 만에 해내다니······. 이게 다 광기에 찬 그랑 아티스테 로코다 미엥 덕이다.
레전더리 유니크 스킬의 변태적인 면모는 비단 요구 수련치뿐만이 아니었다. 스킬 포인트도 랭크 업을 할 때마다 어마어마하게 잡아먹었다. 레전드급 스킬은 그보다 좀 낫긴 했지만 결코 낮은 수준은 아니었고. 정말 스킬 포인트를 물 쓰듯 쓴 한 달이었다.
그럼에도 내 상태창의 스킬 포인트 표시는 여전히 999+에서 내려오질 않았다. 이거 혹시 버그인가? 싶은 마음이 들 정도. 뭐, 내게 불리하지 않은 버그라면 환영이지만.
어쨌든 난 다 해냈다! 스킬 초월의 재료가 될 모든 스킬을 S랭크를 찍고야 말았으니, 이제 나가서 스킬 초월을 해보는 것만 남았다.
사실 여기서 스킬 초월을 해도 되지만, 그 전에 사소한 의식을 치르고 싶다.
“배가 고프다.”
그 의식의 이름은 식사다.
아, 물론 식사도 여기서 해도 상관없지만, 난 별로 그러고 싶지 않다.
이 ‘고요하고 안정된 광기’은 정말 악독해서, 단 한순간도 집중력을 놓기 싫게 만들었다. 잠이야 어불성설, 잠깐 한숨 돌리기도 싫고 먹기도 싫고 마시기도 싫은 한 달간이었다.
그렇게 한 달 동안 침식을 잊고 스킬 수련에만 집중했더니 지금은 풀을 뜯어먹어도 맛있게 먹을 자신이 있다.
어쩌다 보니 음식이 맛있게 느껴질 때까지 굶는다는 목적도 함께 달성한 셈이 되었다.
이럴 때 5성 요리를 먹으면 경험치가 얼마나 잘 오를까? 기대되는군. 나가자마자 안젤라를 꼬셔서 같이 먹어야지.
물론 이번엔 공짜로 나눠주지는 않고, 유니크급 스킬 하나쯤은 뜯어내 볼 생각이다. 한번 맛을 들여놨으니 거부는 못 할 터. 괜찮은 거래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좋아! 나간다!!”
나는 가슴 벅차게 이 지긋지긋한 가상공간에서의 탈출을 선언했다.
***
‘고요하고 안정된 광기’에서 나오자마자, 안젤라와 눈이 마주쳤다. 날 멀뚱멀뚱 쳐다보던 그녀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금방 나오셨네요?”
“뭐? 금방?”
“네, 금방이요.”
바깥과의 시간 배율은 들어왔을 당시에는 100배였으나, 도중에 배율이 조금씩 뒤틀리기도 해서 바깥에서 며칠이 지났는지는 정확히 모른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안에서 한 달을 지냈는데 금방이라니.
아, 설마 안젤라가 비꼬는 건가?
“며칠이나 지났는데?”
“며칠이라뇨?”
“응? 설마······, 몇 달 지난 거야?”
“아뇨.”
안젤라는 고개를 저었다. 그제야 내가 정말로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모른다는 걸 받아들인 것 같았다.
“하루도 안 지났어요. 한 반나절쯤?”
“······그래?”
“네.”
아무래도 내가 들어가 있던 동안, 시간 배율이 바뀐 모양이다. 1:1000 정도까지 말이다. 아니면 한 달이 반나절로 바뀔 수가 없지.
혹시나 싶어서 상태창을 열어 신성 항목을 확인해 봤더니, 신성은 단 1도 늘어나지 않았다. 내가 들어간 지 일주일도 지나지 않았다는 방증이니, 이로써 안젤라의 말이 사실이라는 게 증명된 셈이다.
“뭐, 좋아.”
나는 더 이상 쓸데없이 안젤라를 의심하지 않기로 했다. 내 곁을 1년이나 지켜준 사람이다. 이제 그 본의를 의심하는 게 더 이상한 지경이다.
“안젤라, 밥 먹을래?”
“밥이요?!”
밥 소리 나오니까 눈을 반짝이는 게, 진짜 개 같다.
“실은 나, 명화 안에서 한 달이나 있었거든. 배고파서 뱃가죽이 등에 달라붙을 것 같아.”
“그건 좋은 일이네요!”
내가 배고프다는데 좋은 일이라니. 이 여자를 정말로 믿어도 되는 걸까?
“하지만 조건이 있어.”
“먹고 나서 보여 드릴게요!”
나는 꽤 대충 말했음에도 안젤라는 찰떡같이 알아듣고 대답했다. 나는 헛웃음을 흘렸다. 먹을 게 걸리니 이 여자의 지능이 갑자기 평소의 세 갑절은 더 늘어나는 것 같다.
“이해가 빨라서 좋군. 유니크급은 보여줘야 돼.”
“그야 물론이죠! 그 정도 가치는 있으니까요!!”
“그러냐.”
“그래요!”
“그렇군.”
나는 명화 ‘천상의 맛’을 꺼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