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Loser RAW novel - Chapter 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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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년간, 카자크는 매우 행복한 나날을 보냈다.
배신에 배신을 이은 나날이었다.
가장 먼저, 카자크는 그가 몸담고 있던 조직인 ‘죽은 신들의 사회’를 배신했다.
카자크는 이진혁에게 자신이 가나안 계획에 반대하는 파벌의 비밀감찰관인 것처럼 말했지만, 그건 거짓말이었다. 물론 완전한 거짓말은 아니었다. 안젤라가 교단의 ‘정의로운’ 파벌의 감찰관인 건 맞았고, 카자크는 그녀의 선임이었으니까.
‘죽은 신들의 사회’야말로 가나안 계획을 추진하는 주요 조직 중 하나였다. 코드명 ‘신 가나안’ 세계에 범죄자 출신 인퀴지터를 뽑아 관리자로서 파견한 것도 그였다.
카자크는 자신이 누구보다도 ‘죽은 신들의 사회’에 대해 잘 안다고 자부했다. 그래서 그는 조직의 암부를 도려낸다는 명목으로 쥬디케이터를 동원해서 ‘죽은 신들의 사회’를 쳤다.
‘죽은 신들의 사회’가 내린 뿌리는 깊고도 은밀했기에, 쥬디케이터들은 이 임무에 집중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 탓에 그들은 안젤라를 찾아내 말살하는 임무를 포기할 수 밖에 없게 되었지만, 이건 카자크가 의도한 바는 아니었다.
카자크가 그 다음으로 배신한 건 쥬디케이터였다. 업무공조로 인해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게 되자, 카자크는 그들에게도 배신욕을 느끼게 되었고 그걸 참지 않았다.
쥬디케이터에게 무고한 간부 한 명을 고발했고, 쥬디케이터가 그를 심판하자마자 카자크는 그들이 무고한 자를 심판했다는 사실을 교단 기관지에 고발해버렸다.
본래 비밀조직이던 쥬디케이터가 전면에 드러난 순간이었다.
당연하지만 쥬디케이터는 그 과격한 임무성향 상 다소간의 더러운 짓을 묵인하는 조직이었고, 교단 감찰관이 보기에 그것은 묵과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러 있었다. 결국 쥬디케이터 조직은완전히 망가져버렸다.
재판정에 서서 자신을 노려보던 쥬디케이터 수장의 시선을 떠올리면, 카자크는 지금도 저릿저릿해지는 것을 느낀다.
이 일이 대대적으로 알려지자 정의로운 내부고발자, 카자크는 교단 내에서 꽤 인기를 끌었다. 그러므로 카자크는 다음 배신 대상으로 교단 그 자체를 골랐다.
그러나 그 시도는 실제로 이뤄지지 않았다.
카자크가 공공전파를 하이재킹해서 교단의 치부를 낱낱이 고발하는 해적 방송을 했지만, 어떻게 안 건지 그 전에 태클이 들어오고 만 것이다.
그리고 카자크는 사로잡혔다.
스킬 사용을 봉인하는 유물로 묶여 거의 움직일 수 없게 된 그의 온 몸은 피 칠갑에 열 손가락의 손톱은 모조리 뽑혔고, 발가락 쪽도 당연했다. 사타구니는 온통 불로 지져져 짓물러져만 갔고 손목과 발목에는 전기로 지져진 흔적이 선명했다.
“······우······.”
카자크도 플레이어 출신으로 높은 레벨과 그에 걸맞은 강건 능력치를 갖고 있었지만, 고문하는 측도 그에게 걸맞은 수준의 고문으로 그를 대해주고 있었다.
“아······.”
카자크는 맛이 가버린 성대로 낮은 소리를 냈다. 그러다 문득 이렇게 외쳤다.
“배신하고 싶다!”
이렇게 팔다리 다 묶이고 아무 것도 못하는 상황에 놓였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배신욕은 그의 심장을 움켜잡은 채였다.
“누가 말해도 된다고 했지?”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 목소리에 카자크는 반갑게 소리 질렀다.
“오! 내가 말을 안 하길 기대한 건가? 그 기대를 배신할 수 있어서 영광이로군!!”
물론 이런 말장난 같은 배신으로 충족될 배신욕은 아니다. 하지만 사막 한 가운데선 물 한 모금도 감지덕지한 법이다. 그리고 카자크는 그만큼 배신에 목말라 있었다. 이 정도 배신으로도 어느 정도 희열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중증이로군.”
여자는 질린 듯 말했다. 한숨을 한 번 푹 내쉰 여자는 자랑하는 것 같은 목소리로 이렇게 선언했다.
“카자크. 상부엔 네가 죽었다고 보고했다. 이제 넌 공식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야.”
“그 말에 내가 어떻게 대답할 거라고 기대하고 있지? 난 그 기대를 어떤 방식으로 배신해야 하는지 혹시 알려줄 수 있나?”
“그 어떤 기대도 안 했어. 카자크.”
여자는 싱글거렸다.
“그저 난······, 네가 예전부터 섹시하다고 생각했었지. 영원히 내 것으로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었어. 그리고 지금, 그 꿈이 이뤄진 셈이야.”
입술을 핥는 여자의 눈빛이 고혹적이었다.
“오늘도 뜨거운 밤을 보내보자고.”
치이이익.
고문용 인두가 달아오르는 소리가 들렸다. 지난밤에도 이뤄졌던 뜨거운 행위로 인해 인두에 붙어 있던 카자크의 살점이 타는 소리였다.
그 소리를 듣곤 카자크는 눈을 빛내며 이렇게 말했다.
“소리를 지르지 않으면 되겠군.”
***
레벨이 올랐다.
그것도 4레벨이나!
이번 요리는 바이킹들의 뷔페 콘셉트였는데 내가 그걸 다 먹었더니 이렇게 됐다.
그냥 음식이 테이블 위에 잔뜩 올라오기만 한 뷔페라면 별로 인상적이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는데, 테이블 한가운데 장식처럼 놓인 거대한 지옥 멧돼지 통구이가 굉장히 강렬한 인상을 주었다.
지옥 멧돼지. 알다시피 내가 이 세계에 도착해 처음으로 잡은 필드 보스였다. 요리된 놈은 내가 잡았던 것보다 컸는데, 집채만 하다는 표현이 조금도 아깝지 않았다. 안젤라가 지은 2층짜리 통나무집보다 컸으니까.
이 정도로 큰 멧돼지를 바비큐로 빙빙 돌려가며 구웠는데, 저러면 속 안까지 익을 리가 없지 않을까? 그런 내 선입견을 뒤집고 멧돼지는 뼛속까지 잘 익어 있었다. 물리적으로 이게 가능한가? 싶을 정도로 절묘하게!
뼛속까지 잘 익어 있었다는 말을 했다는 건, 다시 말해 내가 뼈를 봤다는 소리다. 더 정확히 하자면, 다 먹었다는 소리다. 뼈째 말이다. 뼈도 맛있었다. 특히 두개골이 맛있었다.
맛있었다!
물론 맛있었던 건 지옥 멧돼지 통구이만이 아니었다. 황소 통구이, 코뿔소 같은 생물의 통구이, 기린 비슷하게 생긴 생물의 통구이, 뭔지 도무지 모를 생물의 통구이까지 다 맛있었다. 사이드 디시도 맛없는 게 없었고 말이다.
하지만 이 통구이들을 정상적으로 이빨로 뜯어 먹는 데는 시간이 상당히 필요했다. 결국 내 먹는 속도에 내가 답답한 나머지 금단의 방법을 쓰고 말았다.
[집어삼키기] – 등급 : 일반(Common)– 숙련도 : 연습 랭크
– 효과 : 목표를 한 입에 집어삼킨다.
거대 메기를 상대로 뜯어낸 스킬을 사용했다. 하다하다 먹는 데 스킬을 다 쓰는구나, 라고 생각했었지만 이게 괜찮았다. 왜냐하면 이렇게 먹다 보니 새로운 특기가 생겼기 때문이다.
[꿀떡꿀떡] – 희귀도 : 일반(Common)– 등급 : D랭크
– 설명 : 소화력 상승, 소화속도 상승, 소화효율 상승
그냥 보기만 하면 별 쓰레기 같은 특성이 다 있구나 싶겠지만, 내 제2의 고유 특성인 [미식의 대식가]와의 상승효과가 대단했다. 무슨 이야기냐면 소화효율이 올라가서 얻는 건 영양분만이 아니었다는 소리다.
즉, 요리마다 얻는 경험치가 상승했다!
나는 희희낙락해서 통구이 요리를 꿀떡꿀떡 삼키기 시작했고, 안젤라는 내가 먹는 양을 보고 나를 사람 아닌 어떤 다른 생물 보듯 하고 있지만 그게 뭐 중요하겠는가?
레벨이 올랐는데!
그렇게 나는 반격가 40레벨에 도달했다.
그리고 새 스킬이 생겼다.
[반격의 대가] – 등급 : 대가(Grand Master)– 숙련도 : SS랭크
– 효과 : 반격을 할 수 있다.
“이게 뭐야?”
대가급 스킬? 처음 보는 건데? 지금 새로 배운 스킬인데 SS랭크인 건 또 뭐고?
나는 온갖 생물의 통구이로 인해 빵빵하게 부푼 배를 안고 스킬 세부 설명을 열어보았다. 그러자 세부 항목으로 그동안 얻었던 반격가 스킬들이 주르륵 나열되어 있는 것 아닌가! 처음 얻었던 [막고 던지기]부터 30레벨 때 마지막으로 얻었던 [응보의 때]까지······.
“아······!”
그제야 나는 깨달았다. 왜 그동안 직업 스킬들은 간파로 훔칠 수 없었는지. 그건 그 스킬들이 직업이라는 상위 스킬의 하위 옵션에 불과하기 때문이었다.
[반격의 대가]는 괜히 SS랭크로 표기된 게 아닌 듯, 그동안 얻었던 반격가 스킬들을 한데 모아주는데 그치지 않고 새로운 SS랭크 옵션까지 달아주었다. 나는 그 옵션들을 외우고 이해하고 곱씹어 완전히 내 것으로 소화시키기 위해 몇 번이고 다시 읽었다.“······이것만으로는 안 되겠군.”
아무래도 스킬 설명을 읽는 걸론 부족하고 몇 번씩 써봐야 좀 감이 잡힐 것 같다.
“하지만 그 전에······.”
어차피 스킬에 익숙해질 필요가 있다면, 스킬 초월로 새로 얻을 스킬도 함께 써보는 편이 낫겠지. 나는 일단 [반격의 대가]에서 눈을 떼고, 스킬 초월 지시창을 띄웠다.
– 스킬 초월에는 스킬 포인트 1,004가 필요합니다.
– 스킬 초월을 승인하시겠습니까?
“뭣?!”
내가 지닌 스킬 포인트는 999+. 하지만 스킬 초월은 1,000 이상의 스킬 포인트를 요구한다. 그 말인즉슨······.
“이걸 실행하면 내 스킬 포인트가 어떻게 되어버릴지 모르겠군.”
스킬 초월의 실행은 가능하다. 그렇다면 해야지. 해봐야지. 이걸 하려고 지금까지 준비했던 건데. 나는 심호흡을 한 번 하고, 마음을 굳게 먹었다.
따악!
나는 손가락을 퉁겨 행운 공명 상태를 만들었다. 안젤라가 도도도 달려온 건 덤이었다.
“너 부른 거 아냐.”
“알아요.”
그럼 왜 온 거니? 물어보면 대화가 길어질 것 같아서 소리 내어 묻진 않았다.
대신 나는 스킬 초월을 실행했다.
***
[???] +10– 등급 : 권능(Power)
– 숙련도 : 초월 랭크
– 효과 : ???
[주의!] 이 스킬의 열람 및 이용에는 [자격]이 필요합니다.
“또 이 패턴인가!”
나는 탄식했다. [자격]이 필요하다는 건 아무래도 신성을 더 쌓으란 뜻이겠지. 아닐지도 모르지만. ‘권능’이라는 단어에서 느껴지는 인상은 아무래도 그렇다.
그래도 지난번, 그러니까 처음으로 신화급 스킬을 얻었을 때처럼 크게 실망하고 분노하지 않은 건 그때의 학습 효과 덕이었다. 언젠가는 이게 유용하게 쓰일 거라는 믿음이 있기에 견딜 수 있는 거지.
게다가 다행히 내가 얻은 건 지금 당장은 쓸 수도 없는 권능급 스킬 하나뿐 만인 건 아니었다.
– [위업]을 달성하셨습니다! : [스킬 초월] 해보기
– 보상으로 [스킬 분해]가 주어집니다.
– 얻는 스킬 포인트의 양은 스킬의 등급, 숙련도에 따라 달라집니다.
스킬 분해를 얻을 수 있었던 건 내게 있어서 굉장히 다행한 일이었다. 왜냐하면 스킬 초월에 큰 포인트를 질러 버린 결과, 내 지금 잔여 스킬 포인트는 72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무제한인 줄 알았던 스킬 포인트 999+의 신화는 여기서 끝나 버렸다. 버그가 아니었다는 게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지만.
“······스킬 포인트야 또 쌓으면 되지.”
“세상에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건 선배 정도일 거예요.”
내 한숨 섞인 혼잣말에 안젤라가 끼어들었다.
“보통은 스킬 포인트가 부족해서 자기 직업 스킬도 다 못 배우는 게 정상이라고요.”
“그런 것치고는 너는 익힌 스킬이 많던데.”
“직업 스킬 몇 개 버리고 랭크 올리는 거 포기하면서 익힌 거죠.”
이제까지 상대해 온 교단의 플레이어들이 직업 스킬을 거의 쓰지 않은 건 그런 이유였던가! 하긴 교단의 지원을 받아 레전드급 스킬도 돌려쓰는 놈들인데 그럴 만도 하지.
나처럼 직업 레벨을 40레벨까지 올려서 대가급의 스킬을 얻으면 또 모를까, 기껏해야 슈퍼 레어 스킬인 직업 스킬이 눈에 찰 리 없다.
게다가 한계돌파는 고유 특성, 즉 가진 사람이 나밖에 없단 소리다. 그런데 직업 레벨을 어떻게 40까지 올려? 못 올리지. 뭐, 세상은 넓으니 특성이 아닌 다른 방법을 동원해서 레벨을 더 올릴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게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닐 거다.
“아니, 다른 사람이야 어찌 됐건 무슨 상관이야.”
지금은 내 일을 걱정해야 하는 판이었다.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지.”
나는 결정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