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Loser RAW novel - Chapter 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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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배에 걸린 채 살균병기, 인류연맹에서 칭하기는 필드보스로써 이 정글에 배치된 케찰코아틀은 자신을 지배한 자로부터 이 정글의 모든 인간형 생물을 죽이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리고 그 대상이 된 게 지금의 이 뱀인간들이었다.
이들이 처음부터 뱀의 하반신을 갖고 있던 건 아니었다. 이들은 본래 이 정글의 토착 민족이자 뜨거운 피가 돌던 인류 종족인 아마조네안들이었다.
안젤라는 이들을 정글 엘프라고도 불렀지만 이들의 혈통은 엘프의 먼 친척조차 아니다. 이런 오해는 외부인들이 보기에 숲에 사는 엘프와 정글에 사는 아마조네안들이 닮아보였기 때문에 생긴 것이리라. 아마조네안 여성들도 엘프 못지않게 아름다웠던 것도 일조했을 테고.
아마조네안들 무리가 여성으로만 이뤄져 있다는 헛소문도 유명하다. 대외적인 활동을 하는 이들이 대부분 여성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 오해를 산 원인일 터였다.
실제로 외부인이 아마조네안 남성을 보는 경우는 매우 드문데, 그들은 아마조네안 사회의 비처에서 정치적이고 종교적인 일에 종사한다.
반대로 전투와 전쟁, 사냥은 여성들의 일이다. 아마조네안 여성들은 아름다운 만큼 강인해서, 그들의 투창 실력은 일품이라고도 전해진다.
그러나 그 투창 실력이 아무리 뛰어난들, 거대한 날개 달린 뱀인 케찰코아틀을 상대로 어찌할 바가 있을 리 없다.
원래대로라면 케찰코아틀의 독 샤워를 맞고 전멸해야할 운명의 아마조네안들이었지만, 케찰코아틀은 이들을 어여삐 여겼다. 그래서 그녀는 아마조네안들을 다 죽이는 대신 이들의 하반신을 뱀의 모습으로 변이시키고 파충류로 바꿔놓았다.
아마조네안들은 파충류로 바뀌었기에 동면에 들 수 있었고, 죽지도 살지도 않은 상태에 빠져들었다.
이렇게 함으로써 케찰코아틀은 인류종족을 다 죽이라는 지배자의 명령을 왜곡시키는 것에 성공했다. 그것은 과연 과거에 신이라 할 만한 존재가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이적이었다.
‘그럼에도 저는 그들에게 재앙을 내린 재앙신이겠죠. 실제로도 그렇고요. 저는 그들을 볼 면목이 없습니다.’
케찰코아틀은 회한이 깃든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며 그렇게 한탄했다.
그녀의 말이 맞았다. 하루아침에 완전히 다른 존재가 되어버린 아마조네안들은 스스로의 몸에 일어난 일을 어떻게 생각할까? 신의 축복? 아니다. 아무리 긍정적으로 받아들여도 천벌, 보통은 악신의 저주라 여길 것이다.
‘그러니 부디 저 대신 그들을 구원해 주시기 바랍니다. 동시에 그것이 제가 당신께 드릴 수 있는 감사의 표시이기도 합니다.’
꽤나 뻔뻔한 소리였지만, 확실히 내겐 쓸모 있는 보상이었다. 아마조네안들을 구원함으로써 얻는 우호도와 신앙은 내게 큰 보탬이 될 테니까.
“그럼 일단 깨워야겠지.”
나는 가장 먼저 이 영역에 걸려 있는 [시간동결] 스킬을 해제하기 위해 움직였다. 아마조네안들은 그냥 얼어붙어 있는 게 아니라 생체 시간이 정지당해 있었다.
당시만 해도 케찰코아틀에겐 신성이 남아 있었는지, 시간동결 스킬은 무려 신화급 스킬에 해당했다. 운이 좋다면 스킬을 뜯어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언감생심이었다. 이 신화급 스킬도 [차단]을 하기 위해 3번에 걸쳐 랭크를 떨어뜨려야 했을 정도였다.
그렇게 시간동결 스킬을 해제했지만, 그럼에도 아마조네안들은 쉬이 눈을 뜨지 못했다. 이 공간이 아직 차가운 탓도 있겠지만, 아마 생명력이 지나치게 저하되어 있는 탓일 터였다.
나는 마력을 생명 속성으로 전환해 아마조네안들을 향해 흩뿌려 주었다. 그제야 아마조네안들은 하나둘씩 눈을 뜨기 시작했다.
“오, 오오······.”
“이곳은······.”
아마조네안들이 완전히 눈을 뜨기 전에, 미리 목을 가다듬어 둔 나는 나름 위엄 있는 목소리로 그들에게 고했다.
“정신이 드느냐.”
내 목소리를 듣고 날 본 아마조네안들은 서로 눈치를 보다가, 그중에 가장 지체 높아 보이는 이가 대표로 나서서 말했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너희를 깨운 자다. 너희는 아주 깊은 잠에 빠져들어 있었지.”
다시금 웅성임이 있었다.
“기억이 납니다. 우리는 잠들어 버렸죠. 잠들기 전에, 우리는 거대한 날개 달린 악마의 저주에 의해 이런 끔찍한 모습으로 변모해 버렸습니다. 우리를 잠들게 만든 것도 그 악마일 터입니다. 그 악마는 죽었습니까?”
그렇게 말하면서도 분이 안 풀려 이를 갈며 섧게 말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이들에게서 신앙심을 뜯어내려면 그냥 내가 그 악마를 죽였다고 말하는 게 유리해 보였다.
“아니다.”
그러나 나는 고개를 저었다.
“나는 너희들이 말하는 그 악마에게서 부탁을 받고 왔다.”
진실을 말해주는 이유?
그냥 변덕이었다.
“너희를 긴 잠에서 깨우고, 너희에게 걸려 있는 저주를 풀어달라고 하더군.”
내 대답이 의외였던지, 아마조네안 대표는 몇 번 입을 끔벅거리다가 큭, 하고 이를 꽉 깨물더니 날 노려보며 분노에 차 말했다.
“그럴 거면 왜! 애초에 왜 저희에게 이런 끔찍한 저주를!!”
직접적인 은인인 내 앞에서마저 숨기지 못할 정도로 원색적인 분노에, 나는 혀를 끌끌 찼다.
“그야 너희를 파멸의 운명에서 빗겨가게 하려고 그랬지.”
어쨌든 이들을 깨운 건 나다. 내 말을 무시하지는 못한다. 그 증거로, 대표의 얼굴에선 분노의 기색은 씻겨나가고 대신 창백한 공포가 자리했다.
“파, 파멸의 운명······.”
“짚이는 구석이 전혀 없나? 갑자기 불이 붙지 않는다든가, 거래를 했든 전쟁을 했든 뭘 했든 어떤 식으로든 관계를 맺고 있던 주변 종족의 소식이 갑자기 끊어졌다든가.”
내 말을 들은 아마조네안의 대표는 내 질문에 대답하지 못하고 그대로 말을 잃었다.
역시 짚이는 게 있었던 모양이로군. 그야 그럴 테지.
“너희가 말한 그 날개 달린 악마는 본래 너희를 완전무결하게 이 세상에서 지워 버리기 위해 파견된 악신의 사도였다.”
나는 엄숙히 선언했다. 사실 악신의 사도가 아닌 교단의 노예였지만, 그런 것까지 일일이 설명할 필요는 없겠지.
“그러나 그 악마는 악신의 명령을 비틀어 버리고 너희가 이 세상에서 지워진 것처럼 포장했지. 그렇기에 비록 세월은 지났지만 너희는 이렇게 눈을 뜰 수 있게 된 거다.”
나는 씨익 웃어주었다.
“자아, 어떤가. 너희의 그 모습은 죽는 것보다 더 치욕스러운가?”
단순한 변덕이자 심술이었다.
쭉 뻗은 길을 놔두고 괜히 돌아가는 길을 선택한 거나 다름없지만, 뭐 어떤가. 돌아가는 게 가장 빠르다는 격언도 있지 않은가? 좀 다른가? 아아, ‘급할수록 돌아가라’였군.
“······그렇다면 우리는 그동안 우리의 은인을 원수로 대한 것이나 다름없군요.”
아마조네안 대표의 머리가 푹 숙여졌다. 분노로 인해 꽉 쥐어졌던 주먹은 힘없이 풀렸다. 진실은 항상 좋은 것만은 아니다. 그것은 찬란하게 빛나는 칼날이고, 누군가를 치유할 때보다는 상처 입힐 때가 더 잦다.
그렇다고 그걸 깊은 어둠 속에 묻어놓고 잊는 것도 안 될 일이다. 그 칼날은 아무리 깊은 어둠 속에 묻어놔도 빛을 잃지 않을 테고, 언젠가 세상에 나와 사람들을 상처 입힐 테니까.
그럴 거라면 차라리 드러내놓는 것이 낫다. 적어도 상처를 덜 입도록 대비는 할 수 있을 테니까.
“응, 뭐. 그렇지. 그래도 신경 쓰지 마. 모르면 그럴 수도 있지. 너희 입장에서야 모르는 뱀이 갑자기 찾아와서 한마디 말도 없이 너희를 뱀인간으로 만들어 버린 거잖아.”
아, 너무 가벼운 말투로 말해 버렸다. 기껏 처음에 무게 잡은 게 다 헛것이 되어버렸군. 나는 헛기침을 해 다시 목소리를 가다듬고, 이번에는 묵직한 말투로 말했다.
“너희들이 이제부터 해야 할 일은 후회도 속죄도 아니다. 너희들이 지금 당장 해야 하는 일은 단 하나. 아는 것, 인지하는 것이다.”
내 말을 들은 아마조네안 대표의 눈빛이 변했다.
“알려주십시오. 저희가 알아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이제야 좀 마음에 드는 얼굴을 하는군. 나는 그 질문에 흔쾌히 대답해 주었다.
“사실 이미 너희가 아는 것이다. 너희를 이 세상에서 지워 버리고자 하는 존재가 있다는 것.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그 존재는 실로 신적인 존재여서, 너희의 힘으로는 도저히 대항할 수 없을 것이다.”
간신히 살아났던 아마조네안들의 눈빛이 다시금 죽어버렸다.
“그, 그런······. 그런 걸 안다고 무엇이 바뀝니까? 신을 상대로 저희가 뭘 어떻게 할 수가 있겠습니까?”
“방법이야 있다.”
나는 다시금 이를 드러내어 보이며 웃었다.
“적의 적은 친구라는 격언이 있지. 항상 들어맞는 격언은 아니다만, 대충은 들어맞기에 이런 격언도 전해져 내려오는 것일 터다.”
그렇게 운을 떼곤, 나는 아마조네안들을 둘러보았다. 시선이 모여드는군. 나쁘지 않다.
“나는 너희를 없애 버리고자 하는 세력의 적이다.”
거짓말이 아니다. 나는 교단의 적이니까. 그리고 아마조네안들은 교단에 의해 전멸당할 뻔했다. 적의 적은 친구. 그러니 우리는 친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원하는 건 단순한 우호관계가 아니다. 이들이 내게 신앙을 바치는 것. 그럼으로써 내가 신성을 얻고 더 강해지는 것이다.
“그러니 나를 지지해라. 내게 힘을 실어줘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로 말미암아 얻은 힘으로, 너희의 적을 치리니!”
무력하게 텅 비고 말았던 아마조네안 대표의 눈에 총기가 돌아왔다.
절망적으로 거대한 원수, 손도 못 뻗을 정도로 압도적인 악적. 그런 상대에게 들이밀 수 있는 칼날이 바로 여기에 있다.
“······그것이 너희가 할 수 있는 일이다.”
자아, 잡아라.
나는 너희의 희망이다.
***
아마조네안들에게 걸려 있던 저주는 광역 저주였기에, 일일이 하나씩 저주를 풀 필요가 없었던 것은 다행이었다. 그 저주 또한 신화급 스킬로, 여러 번 [차단] 시도를 했어야 했기 때문이다. 만약 일일이 저주를 풀어야 했다면 내 위엄이 많이 손상될 뻔했지.
아마조네안들의 저주를 풀어주고 이들에게도 만찬을 베푸니, 이들과의 우호도도 500을 달성하게 되었다.
재미있었던 것은 뱀인간이었던 때에는 활성화되지 않았던 인류종족과의 접촉 퀘스트와 우호도 퀘스트가 저주를 풀자마자 활성화되어 보상이 들어온 것이었다. 역시 파충류는 인류가 아니라는 건가? 아니, 그야 그렇긴 하겠지만.
나는 다른 종족들에게 했듯 이들에게도 이진혁교의 교리를 전했다. 뭐, 교리라고 해봤자 다른 신도들이랑 친하게 지내라, 자비를 베풀어라, 문명을 발전시키고 번영하라, 이런 거였지만.
이렇게 나는 내게 신성을 가져다주는 세 번째 집단을 만드는데 성공했다.
한 번에 백 명이 넘는 신자를 받아들였으니, 이진혁교의 교인이 확 불어난 셈이 되었다. 그렇다고 당장 신성의 등급이 오른 것은 아니었지만, 일주일에 2 올랐던 신앙이 3 오르게 바뀌었으니 더 빨리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게 된 것에 만족해야 했다.
이 모든 일련의 과정을 거쳤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교단의 끄나풀과 조우하지 않았다. 케찰코아틀을 지배에서 벗어나게 한지도 꽤 시간이 지났음에도 말이다.
“아무래도 쥬디케이터도 카자크도 더 이상 절 노리지 않는 모양이네요. 완전히 포기한 것 같아요.”
안젤라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지만, 내 입장은 달랐다. 인퀴지터건 쥬디케이터건 상관없으니 맞서 싸우고 승리해 그 보상을 받아 챙기고자 했던 계획이 어그러졌으니 말이다. 물론 이런 내심을 안젤라에게 드러내놓을 수는 없지.
게다가 너무 나대는 것도 좋지 않다. 카자크와 대결했다가 순식간에 목숨 두 개를 날려 버린 경험을 벌써 잊기엔 별로 세월이 오래 지나지도 않았다.
뭐, 좋은 게 좋은 거라 쳐야지.
“그럼 다음 지역으로 움직이자.”
만약 교단이 안젤라나 이곳의 필드 보스 관리에 관심이 없어졌다면 이젠 망설일 필요가 없다.
이제부터 나는 본격적으로 가나안 계획을 망쳐 버릴 생각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