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Loser RAW novel - Chapter 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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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 어린애 장난 같은!”
로제펠트의 목소리가 들렸다. 폭발의 위력은 꽤 강력했으며 범위도 넓었으나, 예상대로 별로 피해를 입은 것 같지는 않았다.
상관없다. 고작 슈퍼레어 스킬로 로제펠트에게 제대로 된 피해를 줄 수 있을 거라는 기대는 처음부터 품지 않았다. 더욱이 내가 원한 건 부가 효과인 상급 투명화 쪽이었다.
“어디냐!”
폭발의 영향과 투명화 덕에, 로제펠트는 순간적으로 내 위치를 놓쳤다. 이 움직임으로 인해 [궁니르의 번뜩임]의 쿨은 돌았을 것이나, 공격 기회를 앗아가고 오히려 내가 턴을 끌어다 쓸 수 있게 된 거다.
그래봐야 1초 정도였으나, 1초면 충분하다.
[뇌신의 징벌]권능 스킬의 사용 조건이 만족되지 않은 지금, 내게 있어 가장 강력한 스킬을 고르라면 역시 신화급 스킬인 뇌신의 징벌이다. 사용에 1초 미만의 준비 시간이 필요하지만, 그 준비 시간은 투명화로 확보했다.
“거기구나!”
그렇게 외친 것은 로제펠트 쪽이었다. 젠장, 역시 꽤 직감이 높은 모양이었다. 발동이 느린 [기아스]를 썼다간 분명 회피 당했을 터. 그러나 나는 옳은 선택을 했다. 놈은 내게 손가락을 내밀었으나 이미 늦었다! [뇌신의 징벌]은 이미 쏘아졌다!!
죽어라, 로제펠트!
빠지직!
번쩍!
“이럴, 수가.”
절망에 가득 찬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내 입에서 말이다.
로제펠트는 [뇌신의 징벌]을 맞고도 거의 경직되지 않은 건지, 곧바로 내게 [궁니르의 번뜩임]으로 반격해 왔다.
그리고 그걸 맞은 난 죽었다.
정확히는 두 분신 중 하나가.
살아남은 분신, 그러니까 지금의 나는 숨죽인 채 로제펠트를 노려보고 있었다. [뇌신의 징벌] 두 발째가 곧 떨어져 내릴 터였다. 첫 발은 무슨 수를 써서 견뎠는지 모르지만, 두 발째는 그렇게 안 될 거다!
꽈르릉!!
“끄아아압!”
번쩍거리는 뇌광 속에서, 로제펠트의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그걸 들은 난 너무 놀라서 그 자리에 굳어버리고 말았다.
지금까지 [뇌신의 징벌]을 맞은 상대는 모두 비명도 못 지르고 갔다. 시체도 못 남기고 그 자리에서 소멸했다. 그런데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는 말은······.
“살아 남았군······.”
로제펠트는 살아 있었다. 비록 왼팔 전체가 까맣게 타들어가고 있었지만, 분명히 살아남았다. 그리고 내 위치를 특정한 듯, 그의 날카로운 시선은 내게 정확히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직감대로, 였어.”
역시 못 이기나. 나는 초연한 감정에 사로잡혔다. 로제펠트가 내게 손가락을 내미는 것이 보였다. [궁니르의 번뜩임]을 쏘려고 하는군. 살아남을 방법은 없어보였다.
아니, 잠깐. 절망하긴 이르다.
방금 전에 이미 [궁니르의 번뜩임]을 한 번 쐈으니 재사용대기시간일 터. 저 손가락 짓은 허세다. 한 번의 기회는 내게 남아 있다!
[에이스의 곡예비행]“하핫.”
뭐, 기회라고 해도 살아남을 기회는 아니지만 말이다.
[삼위일신] – [제1의 분신]에 부가된 분신의 [자폭] 능력은 설령 그 분신이 [제2의 분신]으로 나타난 분신이더라도 아직 분신 상태인 이상 활용이 가능하다.비록 생명력은 심장에 구멍이 뚫린 상태라지만, 마력과 체력은 아직 많이 남았고 이게 전부 자폭 위력에 더해진다. 그렇더라도 이걸로 로제펠트를 죽일 수 있을 거라곤 생각하기 힘들지만······.
“엿이라도 먹으라지!!”
에이스의 곡예비행으로 최대한 로제펠트에게 접근한 나는 망설임 없이 터뜨렸다.
박치기를 경계해 방어 태세를 갖췄던 로제펠트의 동공이 확대되는 것이 보였다. 그를 보며, 나는 통쾌히 외쳤다.
“불꽃놀이다!”
쾅!!
***
시야가 까매졌다가, 다시 새하얗게 물들었다.
그리고 노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고작 1년 만에 다시 방문해 주시다니 고객님. 고객님께서는 꽤나 위험스러운 인생을 만끽하고 계신 것 같군요.”
여기는 카르마 마켓이었다.
그렇다. 난 아직 완전히 죽은 게 아니다. 내겐 [1UP 코인]이 하나 남아 있었으니까. 아무래도 신화급 스킬도 코인을 통한 부활까지 씹어 먹지는 못하는지, 나는 한 번 죽은 후 정상적으로 카르마 마켓에서 부활할 수 있었다.
하긴 [뇌신의 징벌]로 죽인 적들은 전부 네가티브 카르마를 잔뜩 쌓아놓은 악당들이었다. [1UP 코인]을 살 포지티브 카르마를 가지고 있을 리 없었다.
하지만 이 정보는 앞으로 유용하게······. 쓸 수 있을까?
일단 살아남아야 써먹든 말든 할 텐데.
“일단 술부터 좀 줘요.”
나는 무거운 마음에 노인에게 [만전의 술]을 요청했다.
“그러지요.”
노인은 내 퉁명스러운 말투에도 별로 기분이 상하지도 않은 듯 빙긋 웃으며 내게 술병을 내밀었다.
[만전의 술]. 생명력과 체력을 완전히 채워준다.그러나 내가 이 술을 마시는 건 생명력 회복을 위해서가 아니었다.
“크!”
이제 부활하면 나는 완전한 죽음을 맞이하게 될 터였다. 그것도 다른 놈도 아닌 로제펠트 놈에게 살해당해서. 이 이상 기분 나쁜 운명이 또 있을까?
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지금 당장 내게 있어선 최악의 운명이었다.
그렇다고 그냥 죽진 않을 것이다. 지난번, 그러니까 카자크와의 대전 때 얻은 교훈으로 나는 [귀환의 돌]의 귀환 장소를 다른 곳으로 지정해 두었다. 안젤라와 함께 머물렀던 정글의 한구석. 거기라면 아무도 휘말리지 않을 테고, 마음만 먹으면 숨어들 수도 있을 터였다.
나는 이미 [귀환의 돌]을 사용할 마음을 굳힌 상태였다. 그래야 [뇌신의 징벌] 재사용 대기시간을 초기화시켜 다시 한번 놈의 이마에 벼락을 꽂아줄 수 있을 테니까. 쿨 타임을 벌어야 하는 건 [삼위일신]도 마찬가지다.
아예 놈에게 피해를 주는 데만 집중한다면, 어쩌면 동귀어진이 가능할지도 모른다.
“······.”
아니, 왜 난 죽을 생각을 하고 있지? 살 생각을 먼저 해야지.
스스로의 마음에 의구심을 가지는 것과 별개로, 심장이 드글드글 달아올랐다. 어디서 이런 분노가 촉발됐는지, 나도 모르겠다.
나는 억지로 그 분노를 외면한 채, 나는 다시 한번 [만전의 술]을 마셨다.
“후······.”
뜨거운 술기운이 위장을 달구었다. 그리고 나는 받아들였다.
그래, 어차피 살아남는 건 무리다. 아무리 나 자신의 생존을 우선시한다고 해도, 로제펠트를 완전히 따돌리고 도망치는 경우의 수는 생각하지 않는 편이 좋을 것 같았다.
그 정도의 고수다. 교단의 지원도 받고 있고. 날 찾아내려면 얼마든지 찾아낼 수 있겠지.
벌벌 떨면서 숨어 다니다가 뒤통수를 맞느니, 내가 먼저 숨어 있다가 내가 원하는 타이밍에 놈을 덮쳐 동귀어진이라도 노리는 게 이득이다.
목숨이라도 버려서 죽여 버리겠다!!
나는 갑작스럽게 치밀어 오른 살심을 가라앉히기 위해 만전의 술을 세 모금째 들이키려고 술병을 들었다.
그때, 노인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내게 이렇게 알렸다.
“고객님, 고객님께서 기다리시던 새 상품이 드디어 입하되었습니다.”
나는 순간적으로 술병을 들어 올리던 손을 멈췄다. 그 말에 눈이 번쩍 뜨인 건 틀림없었으나, 그것도 잠시 동안뿐이었다.
“어차피 전투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 물건일 테죠?”
카르마 마켓의 물건들은 이름을 바꾼다거나, 종족을 바꾼다거나, 뭐 그런 물건들뿐이었다. 그나마 도움이 되는 건 [1UP 코인] 정도인가. 어쨌든 큰 기대는 할 수 없었다.
“뭐, 그렇긴 하지요.”
아니나 다를까, 노인은 내 말을 딱히 부정하지는 않았다.
“일단 재고가 다 떨어졌던 [1UP 코인}이 재입고되었습니다.”
“다 줘요.”
나는 더 생각도 안 하고 바로 대꾸했다. 입고됐다고 해봐야 세 개겠지. 생각할 것도 없었다. 그러나 노인은 인자하게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제 설명을 다 들으시고 결정하셔도 늦지 않습니다.”
하기야, 이 노인에게 화풀이를 하는 것도 유치한 짓이다. 나는 고개를 끄덕여 이어질 설명을 재촉했다.
“새로 입고된 상품으로써, [백년백련의 씨앗]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노인은 작은 씨앗 하나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효과는 심플합니다. 사용하면 죽은 자를 되살릴 수 있습니다.”
부활? 그건 [1UP 코인]으로도 가능한 일이다. 그것만이라면 씨앗을 따로 팔 필요가 없을 터였다. 그렇다면······.
“눈치채셨군요. 그렇습니다. 이 씨앗은 죽은 타인을 되살릴 수 있습니다. 오히려 본인에게는 못 쓰죠. ‘사용’해야 부활시킬 수 있으니까요.”
과연 이걸 어디다 쓸 데가 있을까? 당장 내가 죽을 판인데.
“고민에 빠지셨군요. 누구 되살릴 분이라도 계십니까?”
내가 고민에 빠졌다고? 노인의 지적을 받고서야, 나는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비로소 자각했다.
키르드를 되살리면, 그 녀석에게서 답을 들을 수 있다. 왜 갑자기 내 앞을 가로막고 로제펠트의 공격을 대신 받아주었는가, 란 질문의 답을.
“하지만 주의하셔야 합니다. 되살릴 대상에도 제한이 있으니까요. 일단 시체가 있어야 하고, 그 시체는 아직 장례 절차를 밟지 않았어야 하며, 죽은 지 사흘이 지나서는 안 됩니다.”
노인의 이어진 설명에 나는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끄덕임의 이유는 명확했다. 키르드를 되살릴 수 있다고 생각했기에 끄덕인 것이다.
“······얼마죠?”
“일만 명의 목숨값입니다.”
포지티브 카르마 1,000점.
[1UP 코인]의 열 배에 달하는 가격이다.“저 하나 되살리는 것보다 비싸네요.”
“자신의 것을 되찾는 것보다 타인의 것을 사오는 것이 더 비싼 법이죠.”
노인의 궤변에 잠깐 속아 넘어갈 뻔했다. 아니, 그래도 너무 비싸다. 게다가 사봤자 사용하지도 못하고 다시 죽을 가능성이 너무나도 높았다.
“다른 건 또 없나요?”
나는 별 기대를 갖지 않은 채 노인에게 물었다. 카르마 마켓에 이 절망적인 상황을 타개할 만한 물건이 있을 리 없다고, 막연하게 생각하며.
“있습니다.”
노인은 이런 내 내심을 아는지 모르는지, 평소와 별다를 바 없는 태도로 내 질문에 대답했다.
“그런데 고객님, 오랜만에 뵈었더니 영혼의 격이 많이 높아지셨군요.”
신상 설명은 어딜 간 건지, 노인은 갑자기 딴소릴 했다. 나는 노인의 말에 대꾸하지 않은 채, 잠자코 이어질 말을 기다렸다.
“그런 고객님께 딱 맞는 상품이 있습니다.”
상품 설명을 하는 내내, 노인의 표정은 한결같았다.
그러나 그 설명을 듣고 난 내 표정은 더 이상 이전과 같을 수 없었다.
***
“어욱.”
로제펠트는 상처 입은 몸을 끌어 앉고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온몸이 다 정상이 아니었다. 기습적인 박치기에 당해 주저앉은 코뼈는 나은 수준이었다. 신화급 스킬로 여겨지는 번개에 맞아 팔 하나가 완전히 맛이 갔으며, 자폭에 맞아 전신에 화상을 입었고 갈비뼈도 두어 개쯤 나갔다.
“이렇게······, 이렇게 크게 다친 게 얼마 만인지······.”
로제펠트는 이를 갈았다. 이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저지른 이진혁도 모를 것이다.
이름 : 로제펠트 합트크누플
고유 특성 : [9999 차단]
– 희귀도 : 고유(Unique)
– 등급 : SSS랭크
– 설명 : 적의 공격으로 인한 피해를 99.99% 차단한다.
적으로부터의 피해를 만 분의 1만 남기고 싹 다 차단해 주는 로제펠트의 고유특성을 뚫고도 이 정도의 피해를 입힌 거다. 만약 이 고유특성이 없었다면 이진혁의 박치기 한 방에 한 줌 핏물이 되어버릴 수도 있었다는 생각에 간담이 서늘해졌다.
그러나 그건 실제로는 일어나지 않은 일이다.
로제펠트는 주저앉은 채 재생 스킬을 사용했다. 그러자 그의 온몸을 그슬린 심각한 화상이 천천히 낫기 시작했다. 킁, 하고 코를 풀어 비강 안에 차 있던 코피를 한 번에 뿜어낸 그는 이를 득득 갈았다.
“부활해서 오기만 해봐라. 이번엔 고문을 해주지. 죽지도 살지도 못한 채 고통 속에서 나날을 보내게 만들어 버리겠어.”
당연하게도 로제펠트는 이진혁이 ‘완전히’ 죽지 않았음을 알고 있었다. 그도 잔뼈 굵은 플레이어다. 게다가 이진혁은 권능 스킬을 해제할 수 있을 정도의 실력자. [1UP 코인]으로 부활해 올 가능성에 대한 염두는 두는 것이 당연했다.
게다가 무엇보다, 아직 카르마 연산이 이뤄지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한 번 사라졌던 이진혁의 모습이 그 자리에 다시 나타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