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Loser RAW novel - Chapter 94
094
————– 94/169 ————–
“그래? 일단 한 명은 구했는데.”
= 네?! 누군데요?
나는 키르드 쪽을 바라보았다.
“본인은 키르드라 하더군.”
= 키르드? 잠시만요. 좀 찾아볼게요.
크리스티나는 태블릿 컴퓨터처럼 보이는 작은 판을 들어 뭔가 입력하기 시작했다.
= ······어, 대영웅님?
“왜?”
= 그 키르드라는 분, 존안을 혹시 보여주실 수 있나요?
키르드라는 분? 존안? 크리스티나의 바뀐 어투가 살짝 신경 쓰였지만, 난 별말 더 않고 그냥 레벨 업 마스터의 화면을 돌려 키르드를 보여주었다.
= 헉.
“왜?”
= 저, 대영웅님.“
크리스티나의 목소리가 급속히 낮아졌다.
“왜 그러는데?”
= 혹시 저분 왼쪽 어깨 뒤에 삼각형을 두 개 겹친 모양의 표식이 있는지 확인해 주실······, 수 있으······, 세요?
“그거야 어렵지 않지.”
= 어렵지 않다뇨! 아, 아뇨. 부탁드립니다.
얘가 자꾸 왜 이러지?
아니, 사실 나도 대충 눈치는 챘다. 만약 크리스티나가 말한 대로 키르드의 왼쪽 어깨 뒤에 특별한 표식이 나타나 있다면, 그는 모르긴 몰라도 대단한 인물의 태생이리라.
나는 키르드를 불러 옷의 등 부분을 잡아당겨 어깨 뒤를 확인했다. 그러자 아니나 다를까, 크리스티나가 말한 대로 삼각형이 두 개 겹쳐진 표식이 제대로 새겨져 있었다.
“있어.”
= 이럴 수가······. 그렇다면 그분은 하워드 가문 적장자의 혈통인 키르드 하워드 님이세요!
응? 그 이름······.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데?
“아, 그러고 보니 내게 처음 이름을 밝힐 때 키르드 하워드라고 했었어.”
= 그걸 처음에 말씀하셨어야······. 아뇨, 아닙니다.
흥분하려던 크리스티나는 애써 자신의 흥분을 가라앉히며 머리를 흔들어 대었다.
“뭐야, 그렇게 대단한 가문이야?”
= 대단한 가문이죠! 인류연맹의 초석을 닦은 세 가문 중 하나인 걸요!! 연맹은 왕국도 아니고 귀족정도 아니지만, 그래도 굳이 비유하자면······.
“왕세자 정도 된다는 소리로군.”
크리스티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 그 정도 되겠죠. 물론 인류연맹의 지도자 자리는 혈연으로 대물림 되는 건 아니니 딱 들어맞는 건 아니지만요. 그래도 유력 가문의 후계자는 결코 적지 않은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어요.
“네가 키르드에게 높임말을 쓰는 이유도 그거겠군.”
인류연맹도 인류다. 지구인류사회에서 일어났던 일이 인류연맹이라고 일어나지 말란 법은 없다. 아니, 오히려 빈번히 일어난다고 이해하는 편이 더 낫겠지.
= 하워드 가문은 이미 키르드 님을 확보해 오는 인물에게 가문의 은인 칭호를 부여하고 결코 적지 않은 보상을 약속한 바 있어요. 만약 대영웅님께서 키르드 님을 데리고 무사히 연맹으로 돌아오시게 되면 그 보상은 대영웅님의 것이 되겠죠.
“뭐, 갈 수 있다면 말이지.”
= 오실 수 있을 거예요.
크리스티나는 강한 어조로 말했다. 그 얼굴을 보고 있으려니 근거는 있냐고 묻고 싶어졌지만, 굳이 묻지는 않았다.
***
크리스티나는 로제펠트에게 걸린 각 세력의 현상금을 수령해서 내게 전해주겠다고 했다. 그리고 하워드 가문에도 연락하겠다고 말했다. 나는 그러라고 했다.
“후······.”
레벨 업 마스터를 집어넣은 나는 긴 한숨을 내뱉었다.
별 기대는 안 했는데 생각보다 꽤 괜찮은 보상을 받을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해야 하려나?
“키르드.”
“네, 로드.”
“널 네 집에 보내줄 수 있을 것 같다.”
“······.”
키르드는 한동안 침묵했다.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 네 출생에 대해 기억 안 나나? 역시 로제펠트가 네 기억을 지워 버린 건가? 아니면······.”
“아뇨, 아닙니다. 그런 건 다 치유되었습니다. 로드께서 주신 [드래곤 국밥]으로요.”
아, 역시 그랬던 건가. 어째 국밥 먹고 갑자기 태도가 바뀌었다 했어. 괜히 캐묻지는 않았지만 대충 그런 것이라고 추측은 하고 있었다. 로제펠트에게서 받았던 세뇌가 국밥 덕에 풀린 것이리라고 말이다.
“그 국밥 맛있어 보였지.”
“네, 안제. 사실 저도 먹고 싶었어요. 드래곤 국밥.”
옆에서 안젤라와 케이가 소곤대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무시했다.
“그렇다면 가문으로 돌아가기가 싫은 건가?”
내 말에 키르드는 잠시 망설이다가 답했다.
“······제가 가문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로드께 폐를 끼치는 것이 되겠죠.”
그 답에 나는 고개를 젓지 않았다. 대신 이렇게 물었다.
“그 말은 싫다는 의미로 받아들여도 되는 건가?”
“로드의 결정에 따르겠습니다.”
이번엔 망설이지 않았다. 그 눈빛에는 각오가 엿보였다. 어린애 주제에 비장한 척 하기는. 나는 씨익 웃으며 말해주었다.
“싫다는 소리네.”
“······.”
키르드는 말없이 내 시선을 피했다. 소년다운 반항 끼였다. 그런 반응이 묘하게 귀여워서 나는 소리 내어 웃어버리고 말았다.
“어차피 나중 이야기다. 이 변경 차원에서 인류연맹으로 통하는 포탈을 여는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지. 천천히 생각해라.”
“제가 생각할 일은 없습니다. 전 그저 따를 뿐입니다.”
소년다운 나이브함에, 나는 웃음을 그치고 짐짓 진지한 척 말해주었다.
“그래? 그럼 내 말에 따라라.”
나는 키르드를 향해 씨익 웃어주었다.
“생각해. 너 스스로 네가 어떻게 할 건지, 뭘 어떻게 하고 싶은지에 대해서 말이야.”
“······알겠습니다.”
입을 뻐끔거리던 키르드는 결국 내 말에 그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훗, 귀여운 녀석.
***
야전 마법포병 레벨이 올랐다.
그것도 많이.
드래곤 국밥으로만 10레벨이 올랐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이거 너무 심한 거 아냐?
하지만 국밥은 충분히 맛있었고, 양도 충분히 많았다. 내 특성인 [미식의 대식가]에 딱 맞는 한 끼였던 셈이다.
게다가 애초에 내 포병 레벨은 8레벨로 낮았으니, 폭렙도 당연하다고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로제펠트를 죽임으로써 2레벨이 올랐다. 이건 플레이어를 죽여서 얻을 수 있는 경험치가 2레벨 분량으로 한정되어 있는 탓이었다. 상한이 있고 없고의 차이가 참 크다.
그래서 지금의 내 야전 마법포병 레벨은 20레벨, 어느새 만렙에 달했다.
2차 직업으로의 전직이 일반적이겠지만, 내겐 한계돌파가 있으니 여기서 레벨을 더 올릴 수도 있다. 그렇게 40레벨까지 올리면 대가급 스킬로 묶이겠지. 반격가처럼 말이다.
그런데 내가 2차 직업을 포기하고 1차 직업인 야전 마법포병의 레벨 업을 고집한 건 스킬 포인트를 모으기 위해서였다. 필요 경험치가 확 늘어나는 20레벨 이상의 레벨 업을 노리는 건 아무래도 본말전도다.
그러니 스킬 포인트를 최대한 확보하자는 의도대로 가자면 여기에서 또 다른 1차 직업으로 전직해 레벨을 올리는 게 빠르긴 할 터였다.
그래도 또 여기까지 오니 생각이 또 달라진다. 스킬 포인트가 필요한 건 이전과 같지만, 그냥 잡다한 1차 직업 레벨 업으로 경험치를 낭비하는 건 좀 그렇다.
야전 마법포병도 고르고 골라 올린 직업인데, 이것보다 더 나은 직업이 있을까? 아니, 없다. 전직 가능한 1차 직업 리스트는 이미 다 훑어봤으니 단언이 가능하다.
게다가 슬슬 나도 2차 전직을 경험해 보고 싶은 마음도 생겼다.
“흠······.”
이런 건 혼자 고민하는 게 아니지.
도와줘요, 컨설턴트!
=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 연맹의 대영웅님.
주리 리가 오랜만에 내 앞에 나타났다. 아니, 내 앞이라 해봤자 레벨 업 마스터의 화면 안이지만. 이럴 땐 역시 전문가와 상담하는 게 제격이다.
자아, 그런데 문제는 이번 상담 내용이다. 지금 생각할 수 있는 내 진로는 크게 3가지.
1. 포병 2차 직업으로 전직.
2. 다른 1차 직업으로 전직.
3. 이대로 포병을 40레벨까지 육성.
3번의 선택지를 덮어두고 상담하는 것도 가능은 하다. 그러나 그게 과연 옳은 일일까? 잠깐 고민했지만, 이번 상담에 내 고유 특성을 밝히지 않는 건 말이 안 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래서 나는 뒤늦게나마 주리 리에게 내가 모종의 방법으로 레벨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음을 밝혔다.
= 그러셨군요. 대영웅님께 그런 능력이 있으셨으니······. 모든 것이 설명되는군요.
“미리 말 안 해줘서 미안해.”
역시나 뻘쭘하다. 나는 뒤늦게나마 사과의 말을 건넸다. 그런데 주리 리의 반응은 내 예상하고는 조금 달랐다.
= 아뇨, 당연한 일입니다. 더불어 현명한 판단이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기쁩니다. 이제는 이 주리 리를 믿어주신다는 뜻이기도 하니까요.
그렇게도 생각할 수 있는 건가. 아니, 이건 주리 리가 특이한 거겠지. 크리스티나는 몰라도 링링이었으면 벌써 날뛰고도 남았다. 그래서 나는 변명처럼 이런 말을 덧붙였다.
“널 못 믿어서 밝히지 못한 게 아니야. 그냥 나는 내 이런 능력을 누구에게도 알리지 말라고 교육받았거든.”
아직 튜토리얼 세계에마저 입장하지 못했을 시절, 지구의 플레이어 교육센터에서 말이다.
= 이해합니다. 좋은 스승을 두셨군요.
아니, 사실 튜토리얼 세계에 들어와서 그 교육 내용을 상기해보니 별로 좋은 교사였다는 생각도 안 들었지만. 뭐 그거야 지금 와서 성토해봐야 아무런 의미도 없는 일이다.
= 하지만 대영웅님께 그런 능력을 소유하고 계시더라도, 저는 2차 전직을 한 번쯤은 경험해보시라고 권고해드리고 싶습니다.
전문가 주리 리 선생님께서는 1번 선택지를 추천하시는 모양이었다.
“역시 그런가?”
사실 나도 예상은 했었다. 게다가 여기서 1차 직업에만 주저 앉아있는 건 나로서도 별로 기분 좋은 일은 아니다.
= 그렇습니다. 1차 직업과 2차 직업은 완전히 다른 차원의 것이니까요. 일단 레벨 업마다 오르는 능력치도 차원이 다를 뿐더러, 직업 스킬의 위력과 효율도 완전히 달라집니다. 그리고 평범한 플레이어라면 신경 쓸 것은 아니지만, 능력치의 상한도 더 높아집니다.
나는 귀를 의심했다. 내가 아예 생각지도 못한 변수가 거론됐기 때문이었다.
“능력치의 상한이 높아져?”
= 네. 잘 알려진 사실은 아니지만, 일반적인 1차 직업의 플레이어는 능력치 상한이 99로 정해져 있습니다. 하지만 2차 직업의 플레이어는 그 상한이 255로 높아지게 됩니다.
왜 또 255야? 이놈의 시스템은 16진법을 얼마나 좋아하는 거야? 태클을 걸고 싶은 마음은 하해와도 같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능력치의 상한이 풀린다는 사실 그 자체다.
내 능력치는 모조리 99+로 막혀있다.
비록 한계돌파 덕에 상한을 넘어서도 성장이 가능했지만, 문제는 제대로 표기가 안 되니 내 능력치가 얼만지 제대로 알 수가 없고 잔여 미배분 능력치도 배분이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그렇기에 별 고민 않고 잔여 미배분 능력치를 행운에다 쭉쭉 밀어 넣을 수 있었던 거고, 돌이켜보면 그 결정은 결코 후회할 것이 아니었지만.
그래도 궁금하다. 내 능력치가 어느 정도인지 수치로 한 번 가늠해보고 싶다. 그런 욕망은끊임없이 있었다.
그걸 왜 이제야 알려주냐고 따질 순 없는 노릇이다. 내 능력치가 모조리 99+라고 말한 적이 없으니, 주리 리도 알려줄 이유가 없었을 테니까.
하긴 지금 알았다고 손해 본 건 또 없지. 행운에다 투자한 건 정말 한 치의 후회도 없었고. 행운 대신 직감에다 투자했다면 좋았을 테지만, 정확하게 체크해보진 않았어도 안다. 내 직감은 이미 255를 넘겼다. 어차피 투자 못한다는 소리지.
뭐,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해보면 되니까.
“좋아, 그럼 2차 전직을 하겠어.”
= 알겠습니다. 그럼 야전 마법포병에서 파생한 2차 직업에 대해 알려 드리겠습니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레벨 업 마스터의 화면에 2차 직업 리스트가 주르륵 떴다. 아니······, 뭐가 이렇게 많아?
= 야전 마법포병은 야전보병이자, 마법사이자, 포술사이니까요.
내 표정만 보고 내가 무슨 질문을 할지 알아채기라도 한 듯, 주리 리는 내게 그렇게 설명해 주었다. 그녀의 말을 듣고 리스트를 다시 보니 확실히 느낌이 왔다.
= 하나씩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나는 앉아서 주리 리에게서 현시점에서 전직 가능한 2차 직업에 대한 설명을 주르륵 들었다. 1차 직업 거의 대부분의 설명을 들었던 첫 전직 때보단 낫지만 그래도 꽤 귀가 지쳤다. 하나씩 설명을 들으면서 직감으로 체크하다 보니 정신적으로도 피로가 느껴졌고.
듣기만 한 나도 이런데 주리 리는 얼마나 힘들까. 겉보기엔 전혀 힘들어보이지는 않았지만 분명 힘들겠지. 그래도 이러한 주리 리의 노력은 헛되지 않아, 나는 적당한 2차 직업을 골라낼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이 직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