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Loser RAW novel - Chapter 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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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고요하고 안정된 광기’에서 일주일간의 수련을 마치고 나왔을 때, 바깥에서도 일주일의 시간이 지났다는 것은 안젤라에게서 들었다. 기묘하게도 바깥과 가상공간의 시간 흐름이 우연히 일치했던 모양이었다.
그 일주일 동안, 이들은 인생게임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사흘 동안 단 한 판도 이기지 못한 안젤라가 그 분함을 이기지 못해 그만 추해지고 말았다는 것도 들었다.
그렇게 키르드로부터 자초지종을 들은 나는 결론을 내렸다.
“얘들아, 아이스크림 먹을래?”
이 문제에는 개입하지 말자, 고.
명백히 따지고 들자면 잘못한 건 안젤라지만, 그녀를 탓하기엔 그녀가 너무 서럽게 울고 있었다. 일주일 내내 인생게임을 하고, 사흘 내내 이기지 못했던 상황이란 건 나도 겪어보지 못했던 일이다. 지금 안젤라는 대체 어떤 심경일까? 솔직히 잘 상상이 안 간다.
더군다나 이 비극은 내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 ‘잘 놀고 있어’였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고 할 수 있었다. 내 책임이 완전히 없지도 않은 셈이다.
이제부터 앞으로는 절대 ‘고요하고 안정된 광기’에 들어갈 땐 이들에게 잘 놀고 있으란 말은 남기지 않기로 다짐하며, 나는 애들 먹일 아이스크림을 사기 위해 레벨 업 마스터를 켰다.
= 안녕하세요, 대영웅님! 로제펠트 합트크누플 격살에 따른 현상금을 받아왔어요!!
그러자 바로 크리스티나가 날 반겼다.
“오, 그것 참 반가운 소식이로군.”
= 인류연맹은 물론이고 다양한 단체와 세력에 현상금이 걸려 있어서, 이걸 전부 인류연맹의 금화로 교환하는 건 아깝다고 생각해서 대영웅님께 도움이 될 만한 거라고 판단되는 건 현물로 받아왔어요.
물건이라. 뭐, 크리스티나가 설마 내게 해가 될 만한 일을 하진 않았을 거라고 믿는다. 사실 중간에서 해먹기엔 금화로 환전하는 게 더 이익이었을 테고 말이다.
= 만약 마음에 안 드시면 상점을 통해 매각하셔도 되고요. 대영웅님의 명의로 경매를 진행한다면 더 높은 값을 받으실 수 있을 거예요.
“그건 별로 좋은 생각 같진 않네. 내 이름을 걸고 경매를 통해 팔면, 내게 그 물건을 준 자가 불쾌해할 거 아냐?”
= 아하하, 그런 걱정은 안 하셔도 돼요.
크리스티나는 밝게 웃었다.
= 대영웅님은 스스로 어떤 대업적을 세우셨는지 아직 자각을 못 하신 모양이네요! 로제펠트가 왜 이제껏 잡히지 않았고, 각 세력에서 현상금까지 걸었는지 생각해 보세요.
“그거야 로제펠트가 잘 숨어 다녀서 그런 거 아냐?”
= 잘 숨어 다닐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강하다는 증거예요.
아, 하긴. 그렇군. 아무리 물리적으로 잘 숨어도 스킬이라는 게 존재하는 이상 한계가 있다. 결국 능력치와 스킬이 없이는 잘 숨어 다닐 수도 없다. 능력치와 스킬을 쌓기 위해서는 레벨을 올려야 하고, 자연히 그만큼 강해질 수밖에 없다.
= 게다가 그냥 숨어 다닌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범죄를 저질렀죠. 납치, 살인, 강도······. 인류연맹뿐만 아니라 누구나 싫어하는 일들을요.
그냥 숨어 있는 것뿐이라면 나도 한다. 실제로 나도 지금 숨어 있고 말이다. 하지만 로제펠트는 각 세력에 현상금이 내걸릴 정도로 날뛰었다.
= 대영웅님께서는 인류연맹에서 이미 대영웅이시지만, 이번 일로 인해 다른 세력에서도 영웅임이 알려졌어요. 그런 영웅님께서 물건을 좀 파신다고 대놓고 싫어할 세력은 없어요. 있다면 뭐, 교단 정도일까요?
교단과는 이미 틀어질 대로 틀어진 거나 다름없는 사이다.
“그럼 상관없군.”
= 네, 상관없어요.
“알았어.”
나는 알아들었다.
“그럼 이제 뭘 가져왔는지 보여줘.”
***
인류연맹으로부터는 금화 10만개와 전설급 유물 장신구 선택권 3매를 받았다.
“이번에는 능력치 주사위나 스킬 안 줘?”
= 그야 그렇죠. 이건 어디까지나 현상금인걸요? 다른 세력에서 차지할 수도 있는데, 전력 누출이 될 수도 있는 보상을 내걸 수는 없는 노릇이잖아요.
그렇군. 그 동안 능력치 주사위나 스킬을 퍼준 건 어쨌든 내가 인류연맹의 소속이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훈장의 포상이었고 말이다.
그래도 의문은 남는다.
“유물은 누출이 안 되고?”
= 그건······, 현상금을 내거는 도중에 세력 간에 경쟁이 붙는 바람에······. 그나마 대영웅님께서 현상금을 차지하셔서 다행이네요!
어이없는 결말이었다.
그리고 인류연맹의 하워드 가문에서 따로 사례를 해왔는데, 금화 10만개와 하워드 가문 전속 그랜드 마스터 셰프의 5성 요리 시식권 5매가 바로 그것이었다.
가문 하나가 연맹 전체와 비슷한 보상을 해줄 수 있다니, 재력이 대단한 모양이다. 돈보다 더 부러운 건 가문 전속 셰프를 데리고 있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과연 인류연맹의 3대 가문이라고 해야 하나.
게다가 이게 전부가 아니라, 키르드를 성공적으로 가문으로 되돌려 보내주면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추가로 하겠단다.
“대단하군.”
= 대단하죠?
“그래, 대단해.”
하지만 어째선지, 이걸 받고도 꼭 키르드를 하워드 가문으로 되돌려 보내야겠다는 생각은 그리 크게 들지 않았다.
뭐, 키르드 본인이 결정할 문제지.
= 그리고 교단에서는요.
이어진 크리스티나의 입에서 나온 단어에 나는 순간 귀를 의심했다.
“교단!? 교단에서 현상금을? 나한테?”
= 그야 그렇죠. 교단도 체면이 있는데. 걸어둔 현상금을 지급하지 않을 리 없죠.
나는 명백한 교단의 적이다. 인류연맹 소속이기도 하고, 이제까지 교단 소속을 많이도 죽여 왔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라는 건가.
“대단하군.”
= 대단하죠.
뭐, 그거야 그렇고.
교단에서 내게 준 현상금은 다음과 같았다.
[진은제 헤일로]와 신화급 유물인 [진리의 검].진은은 교단 특산물로 교단이 진은 광산을 독점하다시피 하고 있어 그 가치는 같은 무게의 금보다 수백 배 더 비싸다고 한다. 그걸로 만든 헤일로, 그러니까 천사의 머리 위에 올라가 있는 광륜 같은 거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거였다.
“그거 장비품이었냐!”
이제껏 꽤 많은 수의 교단 끄나풀, 그러니까 천사들을 잡아왔음에도 단 한 명도 헤일로를 드롭템으로 주지 않은 건 좀 억울하다. 난 행운이 꽤 높은 편이니 억울하다기보단 이상하다고 해야 하나? 어쩌면 그들의 헤일로는 사실 장비품이 아니었을 가능성도 있겠다 싶다.
= 교단에서 천사로 종족변경하면 일반 헤일로가 달린 상태로 변경된다고 하던데요. 더 좋은 헤일로를 구하면 바꿔 낄 수도 있는 모양이지만 이 진은제 헤일로가 좀 비싸야 말이죠.
아, 그렇군. 그렇다면 드롭템이 안 나온 것도 납득이 된다.
= 진은이 교단에서 생산량을 통제해서 가치가 더 상승한 것도 있지만, 이 진은제 헤일로가 대단한 가치를 지닌 것도 사실이에요.
허, 지구 시절 다이아몬드와 같은 일이 일어난 건가. 다이아몬드도 생각보다 흔하고 인조 보석을 만들어낼 수 있을 정도인데 그렇게 가격이 높았던 건 독점과 생산제한, 그리고 이미지 전략이 만들어낸 허상 덕이었으니 말이다.
마음속으로는 그렇게 폄하하면서, 나는 진은제 헤일로를 꺼내 보았다.
[진은제 헤일로] – 분류 : 헤일로– 등급 : 성물
– 내구도 :1,000/1,000
– 옵션 : 신성 +25, 위엄 +50, [헤일로] ㄴ [헤일로] : 활성화 시 소모한 신성의 회복속도 +100%
– 설명 : 유일교단의 최고위 성물 제조창에서 심혈을 기울여 만든 진은제 헤일로. 굳이 철사로 고정할 필요는 없다. 그저 머리 위에 띄워 올리는 것만으로 천사장에 준하는 신성과 위엄을 얻을 수 있다.
그리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진은의 가치, 정확히는 이 진은제 헤일로의 가치를 말이다.
신성을 올려주다니! 신성 25의 가치는 금화로 환산하기 힘들 정도다. 위엄은 어디다 쓰라고 올려주는지 잘 모르겠지만, 그거야 뭐 어쨌든.
활성화 효과인 [헤일로]도 마음에 든다. 아무리 넥타르 덕에 내 신성이 많이 쌓였다지만 다시 쌓이는 속도가 신경 쓰여 마음껏 쓸 수 없었는데, 회복속도를 두 배로 끌어 올려준다면 더 원활한 스킬 사용이 가능할 터였다.
[진리의 검(Sword of Truth)] – 분류 : 무기, 유물(Artifact)– 등급 : 신화(Myth)
– 내구도 :1,000/1,000
– 옵션 : 공격력 +1,000, 빛 속성/불꽃 속성 스킬 위력 +20레벨
– 고유사용효과 [불꽃의 검] : 신성을 소모한다. 활성화 시 추가 공격력 +1,000을 부가해 주며 [인간]과 [악마]를 대상으로 100%의 추가 피해를 입히는 불꽃을 검에 입힌다. [불꽃의 검]에 직접적으로 타격당할 경우 상대는 지속적으로 적에게 불꽃 피해를 입는 [염멸] 상태이상에 걸린다. [염멸] 상태이상은 극도 상태이상으로 분류되며, 평범한 수단으로 해제되지 않는다. [염멸] 상태이상은 중첩시킬 수 있으며, 중첩시킬수록 지속 피해를 강화하고 적을 약화시켜 [불꽃의 검]으로 인한 피해를 추가적으로 입게 만든다. 이로 인한 추가 피해는 1,000%까지 늘어날 수 있다.
– 고유지속효과 [낙원의 수호자] : [불꽃의 검]이 활성화되어 있을 경우 자동적으로 발동한다. [낙원의 수호자]가 발동되어 있는 동안은 적으로부터 입는 피해의 90%를 무효화하며, 위치를 강제로 이동시키는 스킬에 대한 저항력이 1,000% 상승한다. [진리의 검] 소유자의 등 뒤 일정 범위를 [성지]로 지정할 수 있다. [성지]는 적대적인 상대를 자동적으로 밀쳐내며, [진리의 검] 소유자를 쓰러뜨리기 전까지 완전무결한 보호 상태에 놓인다.
– [숨겨진 옵션] – [숨겨진 옵션] – 설명 : 낙원을 지키는 천사가 들고 있었다고 전해 내려오는 검. 해당 신화에는 최초의 인류가 낙원에서 추방된 후에 등장한다.
신화급 유물도 굉장하다. 옵션의 숫자 자체는 [3대 삼도수군통제사 대장선 천자총통]보다 적지만 일단 기본 공격력 자체가 높은 데다 옵션으로 얻는 추가 효과도 절대적인 수준이다.
“······아무래도 자존심 싸움은 인류연맹이 교단한테 진 것 같은데.”
결국 난 교단의 힘을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 사실은 처음부터 싸움으로 성립할 것도 아니었죠. 규모 차이가 너무 커요.
인류연맹의 규모가 작다고 하더니 정말 작은 모양이다. 적어도 교단에 비하면 말이다.
“하지만 실제론 교단의 적일 터인 내게 이런 걸 주다니. 교단 관계자는 속이 좀 쓰리겠군.”
= 그런 의미에선 우리가 이겼네요!
뭐, 그런 걸로 해두자.
교단 외의 세력에서도 못지않은 포상이 주어졌다.
먼저 도관법인 천계에서는 전설급 보패 하나와 전설급 법구 하나, 마구니 동맹에서는 욕망의 독과 마라 파피야스의 오금뼈, 그리고 타천한 이들의 모임에서는 타천사의 포옹과 타천사의 구원이라는 전설급 두루마기를 보내왔다.
세력 이름만 해도 태클을 걸고 싶은 게 한가득이다. 대체 뭐야? 도관법인이라는 건. 마구니 동맹은 또 뭐고? 차라리 타천한 이들의 모임이라는 세력 이름이 정상적으로 보일 정도였다.
하지만 나는 굳이 따지고 들지 않았다. 받아먹고도 불만을 말할 수야 없으니 말이다. 여기선 조용히 넘어가고, 마음에 담아뒀다가 다음에 태클을 거는 게 나을 것 같았다.
= 모두 금화 10만개 이상의 가치가 있는 물건들뿐이로군요.
크리스티나는 씁쓸하게 중얼거렸다.
“아니, 크리스티나. 이건 네가 유능해서 다른 세력에서 더 귀하고 좋은 물건들을 뜯어온 거잖아. 자부심을 가져.”
= 그, 그렇죠. 저 대단해요! 에헴!!
원래 크리스티나가 이렇게까지 단순한 성격은 아니니, 그냥 내 술수에 넘어가주는 편이 좋다고 판단한 결과가 이거였겠지. 그래도 그녀의 반응을 보고 있자니 은근히 웃음이 나왔다.
“수고했어.”
= 별말씀을요. 이게 제 일인 걸요!
그렇게 크리스티나를 돌려보내고,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애들이 뭔가를 고대하는 눈빛으로 손가락을 빨고 있었다. 아, 그러고 보니 아이스크림을 사주기로 했었지.
하지만 나는 아이스크림을 사기 위해 다시 레벨 업 마스터를 켜는 대신, 다른 아이템을 인벤토리에서 꺼내 들었다.
[그랑 아티스테 오를레앙 오를레오가 그린 ‘천상의 맛’]“밥 먹자, 얘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