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of th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100
99장. 오빠가 책임진다!
“줄리엣?”
“…….”
이곳에서 줄리엣으로 불릴 만한 여자는 한 명밖에 없다.
경영학과 08학번 10조의 연극 여주인공 그녀다.
“경영학과 08학번 아유라라고 합니다.”
여기가 소개팅 장소도 아니고 활짝 웃으며 다가오는 줄리엣의 그녀 아유라다.
넉살 좋게 술잔을 들고 다가왔다.
“…….”
다들 멍청한 표정을 지었다.
한 공간에서 술을 마시지만, 경영학과 법학과는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 않는 상태다.
암묵적인 룰 같은 게 존재하는데 아유라가 깨트렸다.
모두의 시선이 이쪽으로 쏠렸다.
“정말 대단했어요. 연극 준비하느라 일주일이나 피땀 흘렸는데 한 방에 날리셨네요.”
금발로 염색한 아유라의 열정은 대단했다.
일반인 수준에 그 정도 연극을 공연한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이다.
아직 진한 화장이 지워지지 않아 더 화사했다.
그런 그녀가 똑바로 날 보고 웃으며 말했다.
“한 방이라고 하기에는 제 노력이 어땠는지 모르실 텐데요?”
“에이~ 그래도 걸그룹은 아니죠. 순수한 대학생들의 모임에 오염된 자본의 투입이라니요. 그건 반칙이죠.”
그녀는 따지러 온 게 확실했다.
가만히 아유라를 응시했다.
누가 봐도 예쁜 얼굴이라고 감탄할 정도다.
하지만 난 다른 걸 봤다.
‘하늘 아래 누구도 인정하지 않을 관상이라……, 대장부 감이네.’
이마와 미간이 조화롭고 미끈했다.
화려한 아름다움을 잘 이용할 줄 아는 봉황미상이다.
귓불이 도톰하니 욕심과 욕망도 풍부한 관상이다.
입매가 야무진 모습이 목적을 위해서는 물불 안 가리는 인생을 살아왔음이 보였다.
대기업의 리더가 되면 아주 무섭게 조직을 확장시킬 상이다.
“제가 판단하고 제가 내린 결정이며 제가 소유한 순수한 자본의 투입입니다. 그쪽이 입고 있는 고가의 드레스 대여비와 제법 볼 만한 소품들은 경영학과에서 지원했습니까?”
아유라가 입술을 깨물었다.
아무리 강해도 아직 새싹 같은 신입생일 뿐이다.
말빨과 상황 판단에서 밀렸다.
“치이……, 남자가 좀 봐주면 안 돼요?”
예쁜 여자들의 전매특허인 귀여운 척을 날렸다.
“성차별은 꼭 없어져야 할 폐단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됐어요! 오늘은 졌지만 다음에는 어림없어요.”
성격이 보기와 다르게 화통했다.
“법학과 조별 모임에 오셔서 그렇게 말씀하시면 안 되지 않나요? 경영학과 신입생!”
예린 선배가 반격을 시도했다.
나와 대화를 나누는 아유라가 신경 쓰이는 것 같다.
“걱정 마세요. 전 이런 남자 스타일 안 좋아하니까 긴장 타지 마세요. 장태산, 우리 한잔하자. 앞으로 자주 볼 것 같은 예감이 팍 드니까.”
아유라는 자신만만하다 못해 넘쳤다.
예린 선배가 벙찐 표정을 지었다.
이기지도 못할 상대라는 걸 예린 선배는 몰랐다.
아유라가 잔을 내밀었다.
동기라 여겼는지 빠르게 말을 놓았다.
“다음에. 오늘은 여기까지.”
조용히 무릎을 베고 누워 있는 아린 선배를 바닥에 내려놨다.
“싫어어어……, 아우웅~.”
다리를 붙잡으려 손이 허공을 갈랐다.
아린 선배 주사를 정확하게 파악해버렸다.
“아린 선배 부탁한다. 바람 좀 쐬고 올게.”
아유라의 강력한 포스에 찍소리도 못하는 동기들에게 아린 선배를 넘겼다.
“어? 어, 그래.”
동기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오늘 장기자랑 이후로 동기들이 날 오만둥이라 부를 놈은 없을 것이다.
질투야 있겠지만 대놓고 무시는 못할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와아, 지금 나 까인 거 맞지?”
아유라는 직선적이다.
“아마도.”
피식 웃고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술 냄새가 가득 퍼진 대강당은 이미 엉망이다.
한국대학교는 오티 스케일이 남달랐다.
어떻게 수백 명을 한자리에 모아 놓고 술판을 만들 생각을 했는지 누군지 몰라도 대단한 기획자다.
그것도 아니면……, 아무 생각도 없는 무뇌아들이거나 말이다.
“장태산. 개강하면 한 번 찾아가마. 꼭 보자!”
그러시던가.
아유라의 자존심을 팍팍 건드리며 술 냄새 가득한 공간을 빠져 나왔다.
그렇게 마셨어도 하나도 취하지 않았다.
술은 좋은 사람들과 적당히 취하게 마셔야 맛있는 법이다.
오늘의 술자리는 C다.
***
“달려 달려!!!”
“으아아아아아아!”
“비켜! 다 죽을 수 있어!!!”
애들이 지르는 비명이 야간 개장한 썰매장을 울렸다.
주변에 아무도 없다.
오로지 관리하는 직원만이 존재했다.
본래 스키장 말고 썰매장 야간 개장은 안 됐다.
하지만 아메리카 블랙 카드는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었다.
썰매장 직원들에게 특별 보너스 20만 원씩을 개별적으로 지급했다.
함박웃음을 지으며 다들 묵묵히 자리를 지켰다.
“아직 애들은 애들이네…….”
매니저 황 실장이 따뜻한 커피믹스를 들고 흐뭇하게 멤버들을 봤다.
그와 단둘이 밖이 투명하게 보이는 대기실에서 전기보일러 앞에 앉아 애들을 구경했다.
“힘들었겠죠.”
“그래. 데뷔하기 전에는 데뷔하기 위해서 죽어라 노력하고, 데뷔해서는 생존하기 위해 미친 듯 노력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이 바닥이 다른 곳보다 경쟁이 치열해.”
고등학교 시절을 담보로 연예계에 뛰어든 FOB 멤버들은 동심으로 돌아갔다.
애처럼 눈썰매를 들고 부지런히 뛰어다녔다.
한 명이 아니라 여러 명이라서 더 즐거운 것 같다.
소리를 꽥꽥 지르며 스트레스를 날리는 중이다.
장기자랑을 위해 이곳까지 불러놓고 그냥 보낼 수 없었다.
“숙소 잡아 놨습니다. 내일 아침까지 푹 쉬고 올라가세요.”
“고맙다. 회사에서도 못하는 걸 네가 해주는구나.”
“동생들이잖아요.”
“그런데 너 춤은 어디서 배웠냐? 전문가에게 배운 것 같은데 누구냐? 사실 아까 깜짝 놀랐다. 박지영과 택연이보다 훨씬 나았다.”
“그 정도는 아니죠.”
“무슨 소리야. 너 데뷔할 마음 없냐? 노래하고 춤, 학벌에 마스크까지 빠지는 게 없다. 월드스타로 키워줄 테니까 데뷔하자!”
황 실장 눈동자가 이글거렸다.
“자수성가 했다니까요.”
“돈 얼마나 벌어? IT 쪽이야? 그것도 아니면 뭐야?”
이 아저씨 내가 하루에 얼마나 버는지 알면 이런 말 막 던질 수 있을까?
나도 요즘 내가 얼마나 버는지 몰랐다.
통장 보기 무섭다는 말을 실감하는 중이다.
“그래도 CEO잖아요. 안 되면 공무원 하죠. 판사 좋잖아요~.”
“형이 인생 선배로 충고하는데 때려치워라. 공무원 해서 언제 집하고 건물 장만할래. 형이 너 보니까! 물건이다! 넌 한 방에 뜰 수 있어. 그냥 나랑 손잡자!”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황 실장이다.
그가 봐도 내 상품성은 아주 높은 것 같다.
그러나 연예인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스타가 되면 평생 주변 눈치를 보고 살아야 한다.
음주운전 한 번이나 말실수에 스타에서 지상에 떨어진 짱돌이 될 수 있다.
연예인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만인의 연인이 될 각오가 필요한 특별한 직업군이다.
“됐습니다. 부모님이 안 좋아하십니다.”
부모님이 아니라 내가 싫다.
“아쉽네…… 딱 먹히는 스타일인데…… 학벌도 좋고…… 쩝. 그래도 마음 변하면 말해라.”
“네.”
황 실장은 얼굴과 달리 편안한 성격의 소유자다.
“서련이 좋아하냐?”
황 실장의 질문이 훅 들어왔다.
“귀엽습니다. 애가 당돌하기도 하고 말입니다.”
“네 나이에 어울리는 대답은 아닌 것 같다. 그런데 너 스무 살 아니냐?”
“스무 살 맞습니다.”
“그런데 네 말투가 왜 이렇게 친근하지? 군대 다녀온 내 친구들이랑 대화하는 것 같단 말이야.”
황 실장은 정확히 볼 줄 알았다.
내가 겉모습만 스무 살이지 과거 살던 삼십 대 말투는 어디다 버리지 못했다.
“애들 2집 준비 안 합니까?”
“해야지……, 그런데 회사가 돈을 안 쓴다.”
“네? 왜요?”
“아무래도 이상해. 사장과 이사가 뭔가 꾸미는 것 같은데 알 수가 없다.”
“FOB는 수익 나지 않았나요?”
“우리야 그렇게 계산하지만 윗대가리들은 계산법이 달라. 과거 망했던 애들까지 몽땅 넣고 믹서로 돌린다.”
“황 실장님도 오너가 되면 그러실 거 아닙니까?”
“난 달라.”
“뭐가요?”
“난 내가 먹을 만큼만 먹는다. 같이 먹고 살아야 오래간다. 예전에 한탕 벌던 업체들 중에 남아 있는 놈들이 없어. 다들 욕심이 너무 컸어.”
살짝 찔러봤는데 대답이 걸작이다.
스스로 먹을 양을 정해 놓는 양심적인 사람이라고 밝혔다.
그 말이 왠지 믿음이 갔다.
황 실장은 지금 이 순간이 면접 장소라는 걸 몰랐다.
“회사 팔렸다는 소문 못 들었습니까?”
“무슨 소리야? 회사가 왜 팔려. 지분 투자자 들어왔다는 얘기는 들었다. 그 투자자 누군지 넌 아냐?”
비상장 주식회사라 공시 의무가 없다.
밑에 직원들은 주인이 바뀐 걸 모르고 있다.
아직 알리고 싶은 생각은 없다.
“회사 팔리고 애들 정리되면 어떡합니까? 애들이 그렇게 뜬 것도 아닌데.”
“……, 마누라 처가 쪽이 좀 사는데 가서 무릎 꿇고 사정해야지. 쟤들 가능성 있는 애들이다. 내가 사장이 되어서라도 그냥 안 보낸다.”
황 실장의 의지가 강력하게 보였다.
KNB 엔터테인먼트는 2020년에도 강력하게 연예계에서 집권하는 업체다.
양아치 사장과 이사 이름을 들어보지 못했다.
아마 황 실장이 회사를 인수하는 것 같았다.
“으아아아! 추워!”
“손발이 다 얼었어! 힝!”
2시간을 미친 듯 눈밭 위에서 구르고 난 뒤에 대기실로 멤버들이 들어왔다.
대여한 스키복으로 단단하게 무장했지만, 산속 겨울바람을 다 막아주기는 무리다.
빨갛게 볼이 상기된 채 우르르 안으로 밀려왔다.
“따뜻해~.”
“실장님하고 오빠는 왜 안 놀아요?”
“나이 먹어 봐라. 이렇게 추운 날 밖에서 노는 건 강아지하고 애들만 그러는 거다.”
“그럼 우리가 강아지예요!!!”
잘 놀고 와서 황 실장을 보고 애들이 괜한 시비를 걸었다.
“그럼, 우리 집 똥강아지들이지.”
“또, 똥강아지!!! 으으으으. 누가 아재 아니랄까 봐!”
멤버들과 황 실장은 티격태격 잘 놀았다.
황 실장은 엄한 것 같지만 저렇게 따스한 마음을 소유한 남자다.
멤버들을 보는 표정도 아빠 눈빛이다.
“황 실장님 그만 괴롭히고 이리와. 컵라면하고 오뎅 먹어.”
“우와와와와와와! 역시 오빠 짱!”
“태산 오빠 너무 너무 사랑합니다.”
소란스런 걸그룹을 위해 간식을 준비했다.
“적당히 먹어라. 국물은 다 마시면 안 돼! 나트륨 때문에 얼굴 붓는다! 오뎅도 꼭꼭 씹어 먹고!”
황 실장의 잔소리가 이어졌다.
“네네!”
말만 네하고 애들이 우르르 오뎅을 건져 먹기 시작했다.
“마, 맛있오!”
“오뎅아~ 오뎅아. 넌 어느 별에서 왔니?”
“요즘 너무 행복해~.”
멤버들 모두 사이가 좋았다.
오뎅을 나눠 먹으면서 웃음꽃이 끊이지 않았다.
며칠 사이 처음 볼 때 찌들어 있던 힘겨움과 나른함이 많이 날아가 보였다.
본전 뽑겠다고 회사에서 너무 돌렸다.
이제 그 악습을 끝낼 때도 됐다.
“오빠도 먹어.”
서련이가 오뎅 꼬지 하나를 나에게 건넸다.
다른 멤버들하고는 확실히 달랐다.
“오빠! 내 거도 먹어!”
“내 거도!!!”
갑자기 치열한 경쟁이 붙었다.
애들이 오뎅을 들고 사방에서 먹으라 난리다.
“이 녀석들아! 내 거는!”
서운한 황 실장이 버럭 호통을 쳤다.
“실장님 저기 보세요~. 오뎅하고 물은 셀프라고요!”
“크으…….”
황 실장은 리더 주민의 말에 침을 삼켰다.
“태산아. 아~.”
황 실장 보는 앞에서 오뎅을 먹여주는 주민이다.
“오빠~ 국물이 끝내줘~ 체하니까 천천히 마셔.”
“오빠. 입술에 묻었잖아. 내가 닦아줄게.”
“아이 태산 오빠 왜 이렇게 귀여워? 어깨 뭉친 것 같은데 마사지 해줄까?”
걸그룹의 극진한 서비스를 받으며 그냥 앉아서 주는 오뎅 먹고 국물 마시니 노바 형님도 안 부러웠다.
그것도 진심으로 받는 풀서비스.
얘들아! 너희들 인생은 앞으로 오빠가 책임진다!!!
– 카르마 포인트를 듬뿍 획득하셨습니다!
물론 보너스는 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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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의 전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