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of th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1001
1010장. 떠나는 자와 남는 자(2).
“이제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요. 우리 애가 뭐가 부족해서 그따위 의리를 지켜야 한답니까?”
“맞아요. 누가 봐도 차별이에요.”
“서련이가 여기 이사와 그렇고 그런 사이라더니. 사실인 거 다 알잖아요. 솔로 앨범도 내주고 광고도 다 몰아주잖아요.”
“말이 나와서 말이지. 정산은 왜 따로 하는데요? 그룹이라면 당연히 수익이 들어오면 쉐어를 해야죠. 같이 고생한 게 몇 년인데 입을 닫아요.”
“그러게 말이에요. 우리 애들이 꿔다놓은 보릿자루도 아니고.”
“이제는 더 참을 것도 없어요.”
FOB 멤버의 부모들이 의기투합해 한자리에 모였다.
빅토리 스타에 포섭당했던 미나와 윤나 엄마가 주동이 됐다.
사업 자금 명목으로 목돈을 던져줬던 빅토리 스타. 조용하다 싶더니, 최근 들어 협박을 시작해왔다.
두 사람 몫으로 각각 선지급금 30억을 받았다.
KI그룹에서 밀어주면서 사업체를 확장하게 됐다.
아닌 게 아니라 30억을 받아도 자금이 순식간에 빨려 들어갔다.
올 1월에 마무리 됐어야 할 계약은 뒤로 미뤄졌다.
그사이 덩치를 키운 사업체는 웬만한 중소기업 규모가 됐다.
사세가 확장되면 될수록 자금은 지속적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계약은 종료되지 않았다.
12월 겨울 신곡을 발표면서 시간은 분주하게 지나갔다.
하지만 공식적인 계약은 1월 말에 끝이 났다.
모두들 눈치를 보느라 재계약을 미루고 있었다.
MTS에서도 멤버들의 재계약에 목매지 않았다.
신예 아이비즈가 그사이 FOB 활동의 빈자리를 매웠다.
빅토리 스타 주한성한테서도 연락이 없었다.
그러다 9월이 되었고 계약을 이행하라는 빅토리 스타 측의 통보를 받았다.
결단을 내려야 할 시간이 온 것이다.
주한성은 이자라도 계산해야 한다면서 조건을 더했다.
서련이 빼고 나머지 멤버들 모두를 포섭하라는 요구였다.
“아직도 팔팔한 애들을 이렇게 놔두고 아이비즈라는 걸그룹만 주구장창 밀잖아요. 아무리 휴식기라지만 애들 다음 앨범 계획마저 없다는 건 나가라는 말 아닌가요?”
미나 엄마가 열변을 토했다.
여기 모인 부모들 중에서 가장 속이 타는 사람이었다.
사업이 확장되면서 여기저기서 사모님 소리를 듣고 있었다.
강남에서 놀기 시작하다 보니 돈 들어갈 곳이 허다했다.
미나 명의로 된 건물에 담보까지 설정해 사업 자금으로 끌어 사용했다.
처음에는 사업이 괜찮았지만 주먹구구식으로 운영되다 보니 적자가 지속됐다.
남편은 허세를 부리느라 매일 골프장에 출근 도장을 찍었다.
젊은 계집까지 만나는 눈치였지만 말을 꺼내지 못했다.
본인 역시 뒤로 젊디젊은 남자를 만나고 있었다.
호빠에서 만난 예쁘장한 남자한테 빠져 용돈을 펑펑 쥐여주고 있었다.
안팎으로 딴 주머니를 차다 보니 매일 돈이 모자랐다.
그때 주한성이 제안을 해왔다.
FOB 멤버들 한 명씩 추가될 때마다 5억씩 쳐주기로 약속을 했다.
“저도 같은 생각이에요. 요즘 TV나 인터넷을 뒤져보면 전부 아이비즈밖에 안 나와요. 회사 광고팀도 FOB에 전혀 신경을 안 써요. 참을 만큼 참았어요. 우리도 이제 행동으로 보여줘야 해요!”
윤나 엄마 김서현도 노현정의 편을 들었다.
미나 엄마와 다른 이유로 마음이 급한 처지였다.
빅토리 스타 주한성과 애인 사이로 발전해 버린 김서현이었다.
40대에 들어서면서 부쩍 외로움을 타던 김서현.
그녀가 전직 제비 주한성에게 깊이 빠져들었다.
그때를 놓치지 않고 주한성이 윤나 엄마에게 제안했다.
FOB를 중국 시장에 내놓고 더 키워보자는 얘기였다.
그리고 각자 이혼한 뒤 합치자는 은밀하고 달콤한 프러포즈도 해왔다.
빵집 사장님 정도가 아니라 어엿한 사업을 하는 남자 옆에서 사모님 소리가 듣고 싶었던 김서현.
기꺼이 기쁜 마음으로 승낙했다.
그리고 노현정과 입을 맞춰 원하는 쪽으로 분위기를 이끌었다.
“……난 빠지겠어요.”
갑자기 주민의 엄마가 난색을 표했다.
“왜요? 주민이도 요즘 찬밥이잖아요.”
“맞아요. 팀의 리더라지만 회사에서 전혀 대우도 안 해주는데 왜 참아요?”
노현정과 김서현이 합세해 밀어붙였다.
하나가 이탈하면 분위기를 타고 원하는 바를 얻을 수 있었다.
“주민이가 죽어도 싫대요.”
“네?”
“이런 일로 귀찮게 하면 부모자식간 인연 끊자고……. 그런 말까지 나왔어요. 하아.”
주민이 엄마가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도 여기 있는 다른 엄마들처럼 딸자식 팔아 잘나가는 사모님 소리 한 번 소리 듣고 싶었다.
하지만 주민은 다른 아이들보다 나이가 많았다.
어린 시절부터 해준 게 거의 없어 가타부타 말을 보태기에도 애매했다.
그리고 주민은 성격이 독한 구석이 있었다.
그 성격에 뜻을 따라 주지 않으면 진짜 마음먹은 대로 행동하고도 남을 것이다.
“쯧……. 애 교육을 어떻게 시켰길래…….”
“뭐라고요? 미나 엄마 지금 말 다 했어요?”
주민이 엄마가 노현정을 노려보며 발끈했다.
속상한 상황에서도 기름을 붓는 미나 엄마 노현정이 미웠다.
“주민이 설득 못 할 거 같으면 오늘 빠져도 돼요.”
“흥! 알았어요! 그럼 전 이만 빠질게요.”
그렇지 않아도 심정이 상해 있던 주민이 엄마가 가방을 챙겨 나가 버렸다.
누구 하나 말리지 않았다.
서련이와 주민이가 유난히 친하다는 걸 알고 있는 터라 다들 부담스러워했다.
“주민이 엄마가 갔으니 본론을 얘기할게요. 잠시 후에 회사에서 황 대표 만나기로 했어요.”
노현정이 본격적으로 판을 깔았다.
“네?”
“그, 그렇게 빨리요?”
“번갯불에 콩을 볶아 먹는 것도 아니고…….”
다른 멤버들의 엄마들 모두 당황했다.
회사에 서운한 걸 토로하며 대책을 논의하러 나온 것뿐인데 묘하게 사건이 커지고 있었다.
“어차피 계약 기간도 다 끝났어요. 서련이하고 주민이 빠져도 5인조 그룹 가능해요. 중국 공산당 쪽에서 운영하는 황룡 그룹 알죠? 그쪽 엔터 계열사에서 우리 애들을 원해요. 계약금도 10억씩 지급한다고 했으니까 다들 목돈 좀 만져봐야죠. 중국 시장에서 대박 터트리면 강남에 작은 게 아니라 큰 건물도 올릴 수 있어요.”
큰 미끼부터 던지는 노현정.
10억과 대박이라는 말에 살짝 갈등하던 다른 멤버 엄마들의 눈에 빛이 돌았다.
요즘 들어 정산금액이 부쩍 줄어든 FOB였다.
다들 씀씀이가 커진 상태에서 수입이 줄어들자 생활하기가 힘들었다.
소비심리는 키우기는 쉬워도 줄이기는 본래가 어려웠다.
“그래요. 변호사에게 알아봤더니 계약 기간이 끝난 묵시적 갱신 기간이라 통보만 하면 된다고 했어요. 계약서에 자동 갱신 규정이 없어요. 지난 12월에 발표한 음반 활동도 이제 끝났잖아요. 의리는 다 지켰다고 봐요.”
김서현도 한마디 보태며 뛰어들었다.
“그래요! 어차피 해체될 것 같은데 그전에 목돈 한번 만져봐야죠.”
“맞아요. 회사가 우리 애들 국물까지 다 빨아 마셨으니 우리도 실속을 차려야죠.”
“저도 동의해요!”
우연인지 남편들은 한 명도 자리에 끼지 않았다.
딸들이 성공하자 각자 본인들 사업에 뛰어들어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일부 멤버 한둘의 문제가 아니라, 여기 부모들 모두 같은 입장이었다.
세상 물정에 관심 없고 착하기만 한 FOB 멤버들 모두 부모들을 철석같이 믿었다.
이렇게 자신들을 팔아넘길 거라고 꿈에도 생각 못 하고 말이다.
‘다 끝났네. 수고했어 윤나 엄마.’
‘수고는. 호호호.’
노현정과 김서현은 서로를 보며 눈웃음을 쳤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아무것도 모르는 다른 멤버들의 부모들을 한통속으로 끌어들였다.
다른 멤버들의 미래 따위는 전혀 관심도 없었다.
***
“잠시 후에 만나기로 했습니다.”
“그랬군요.”
“……이렇게 될 줄 알았지만 섭섭합니다.”
전화를 받고 서울로 올라왔다.
비행기가 뜨지 못하는 상황이라 차를 이용했다.
서련은 하루 더 휴식을 취하도록 했다.
비바람을 뚫고 도착한 MTS 사무실.
착잡한 표정의 황연태 대표가 어두운 표정으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정황 사항을 전해들은 나도 마찬가지 심정이다.
FOB로 인해 내가 엔터 사업에 진출했다.
서련이를 돕기 위해 시작했지만 다른 멤버들과의 인연에 의미가 없다고 말할 수 없었다.
그녀들을 성공시키기 위해 포인트 써 가며 신들의 음악도 구입했다.
직접 안무도 짰고 물심양면 도움을 아끼지 않았다.
쌓아온 시간들이 길다 해도 피할 수 없는 회자정리의 시간.
준비하고 있었던 일이라 담담하게 받아들였지만 마음이 아파오는 건 인지상정이었다.
“정산은 어떻게 됐습니까?”
“지난달에 얼추 마무리됐습니다. 부모들이 벌여 놓은 사업이 많아 선불로 가져간 금액이 꽤 됩니다.”
“건물들은 남아 있습니까?”
“아직 팔지는 않았어도 몇 개는 근저당이 잡혀 있습니다.”
“……안타깝군요.”
멤버들에게 반드시 부동산 교육을 시키라 했지만 결과는 그렇지 못했다.
아무리 생각하고 말해 줘도 나의 말은 가족들만 못했다.
작년 주민이 생일 자리에 몇 명이 참석하지 않아 이미 그때 분위기는 얼추 짐작했다.
이 걸그룹이 수명을 다했다는 것을.
모두들 한숙소가 아닌 제 부모 집이나 독립된 공간에서 따로 생활했다.
각자의 계산과 선택으로 살아갈 나이이기도 했다.
숙소 생활을 할 때처럼 끈끈한 맛이 사라진 건 당연했다.
더 이상 사회 초년생들이 아니었다.
걸그룹들 중에서는 단연 탑을 찍었다.
지금까지 그녀들이 벌어들인 수익만 해도 100억대가 넘었다.
그걸 지켜내지 못했다면……. 그녀들의 미래는 뻔했다.
과거 한때 잘나가던 연예인들의 운명처럼 어느 날 갑자기 나락으로 떨어질 것이다.
인기와 돈을 한꺼번에 잃어버린 연예인의 삶은 비참할 수밖에 없다.
겨우 몇몇 남아 있는 팬들을 의식하다 결국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으로 남을 수 없게 된다.
무슨 일만 터졌다 하면 연예면 1순위를 차지하는 건 당연했다.
평생 짊어져야 할 업보인 것이다.
그것을 대가로 피땀 흘려 받은 돈을 그들의 부모들이 다 날려버렸다.
내가 회귀하기 전 봤던 그녀들보다 더 인기를 얻었지만 큰 줄기는 바꾸지 못한 것 같다.
“서련이와 주민이만 재계약을 요청했습니다.”
“오늘 다른 멤버들의 계약이 종료되면……. 업계 최고 대우로 재계약하십시오.”
“최고 대우로 말입니까?”
“거기에 더해 회사 직분도 주십시오.”
“직분이라 하심은…….”
“회사를 세운 공로가 혁혁합니다. 후배들 교육 담당 팀장급이 일단 좋을 것 같습니다.”
“아!”
예상치 못한 파격적인 제안에 황연태는 탄성을 토했다.
보통 이런 경우는 거의 없었다.
재계약을 해도 해체가 된 걸그룹들은 예능이나 연기자로 반짝 활약하다 함께 사라져 버리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그러나 난 생각이 좀 달랐다.
그래도 끝까지 의리를 지킨 서련이와 주민이는 지켜주고 싶다.
본인들이 싫다고 말할 때까지 함께 갈 마음도 있다.
그게 바로 내가 꿈꾸는 동반자적 삶이다.
삐이이잇.
그때 인터폰이 울렸다.
– 대표님. FOB 멤버 부모님들이 오셨습니다.
“들어오시라고 해.”
– 네!
“회장님, 불편하시면 이사실에 가 계셔도 됩니다.”
“아닙니다. 마무리는 제가 하고 싶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지금부터는 이사로 호칭해 주십시오.”
“그렇게 하겠습니다.”
스르르르릇.
그때 문이 열리며 다섯 명의 화려한 아줌마들이 안으로 들어왔다.
자식을 팔아 잘 먹고 잘살아서 온갖 명품으로 온몸을 도배했다.
한 치 앞을 보지 못하고 당당하게 어깨를 펴고 들어오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초창기 시절 눈을 어디에 둘지도 모를 정도로 눈치 보며 잘 부탁한다고 고개를 숙이던 모습들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자식들이 피땀 흘려 노력한 결과물을 부모라는 이유로 착취했다.
쌉싸래한 맛이 입안을 가득 채웠다.
“어서 오십시오.”
황연태 대표가 자리를 권했다.
“황 대표님 반가워요. 그리고…… 얼굴 보기 힘든 장태산 이사님도 말이에요.”
미나 어머니가 도도한 표정으로 인사를 먼저 건넸다.
“…….”
고개를 살짝 숙여 보이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감정 없는 눈빛으로 그녀를 한 번 쳐다봤다.
“뻣뻣한 건 여전하시네요. 우리 애들하고 비슷한 또래면서.”
내 행동이 거슬렸는지 대놓고 나에게 자신의 자식뻘이라고 말하는 그녀.
“제가 정 뗄 때는 냉정한 편입니다.”
빙긋 웃으며 솔직하게 말했다.
“그렇겠죠. 어차피 이제 우리 애들은 회사에 돈도 못 벌어주는 구박덩어리니까요.”
하는 소리마다 웃기는 소리였다.
FOB 멤버들은 지금도 달에 1억 이상씩 가져가고 있었다.
더 이상 그 돈에 부모들이 만족을 못 하는 것뿐이다.
“그렇게 생각하신다니 유감입니다.”
“저도 유감이에요.”
“다들 앉으십시오. 장 이사님도 착석하십시오.”
황연태가 불편한 표정으로 중재에 나섰다.
스으윽.
모두 자리에 앉았다.
“차 마시겠습니까?”
“차 마실 분위기는 아닌 것 같네요.”
윤나 엄마가 톡 쏘듯 내뱉었다.
“맞아요. 길게 말할 게 있나요.”
미나 엄마가 말을 이어받았다.
두 사람이 이 판을 이끄는 핵심 주동자라는 뜻이다.
“원하는 바를 말씀해 주십시오.”
조용히 의중을 물었다.
“일개 이사 주제에 황 대표 앞에서 너무 나대는 거 아닌가요?”
미나 엄마가 본색을 드러내며 싸가지없는 눈빛과 말투로 날 훈계했다.
“후훗.”
차갑게 새어나와 버린 비웃음.
“지금 내 말이 우습게 들려요?”
못 배운 티를 숨기지 못하고 앙칼진 목소리로 소리쳤다.
“아주머니께서 그렇게 들었다면 맞을 겁니다.”
“뭐, 뭐라고 아주머니?”
회귀의 전설 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