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of th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101
100장. 데이트
“오랜만이네…….”
“네? 여기 와 봤어요?”
손유리와 만나기 위해 홍대에 나왔다.
과거 직장생활 시절 동기들이나 친구들과 술 마시러 자주 왔던 홍대다.
2008년의 홍대 분위기는 여전했다.
아직 본격적으로 홍대 클럽 문화가 상업적으로 펼쳐질 때가 아니다.
순수함이 남아 있는 거리를 보자 감회가 새로웠다.
“얼마 전에 와 봤습니다.”
“그래요? 그런데 정말 괜찮아요? 어제 술 많이 안 마셨어요?”
예상대로 오티는 술로 시작해 술로 끝났다.
서련이와 멤버들과 놀다 와 보니 한국대 생도 개가 된다는 걸 뼈저리게 알았다.
법학과 1박 2일 코스의 술자랑 대회는 화려하게 폐막됐다.
다들 속이 뒤집어지고 얼굴이 퉁퉁 부었다.
교수님들은 진작 내빼고 보이지 않았다.
버스를 타고 학교에 돌아왔다.
법대생들은 대부분 해산하는 분위기였다.
오는 와중에 버스에서 강아린 선배를 놀렸다.
어제 그렇게 짬뽕을 하더니 얼굴이 반쪽이 됐다.
내가 다가가자 반쯤 감긴 눈을 떴다.
오늘부터 1일이냐고 물었다.
그러자 기억 안 난다는 눈빛으로 주변을 봤다.
어제 친구 버리고 나와 사귀자고 한 것 기억에 없냐고 물었다.
쥐구멍이라도 숨고 싶은 표정으로 얼굴을 빨갛게 물들인 채 고개를 푹 수그렸다.
잔인하게 오늘부터 사귀는 날 1일이냐 재차 물었다.
선배는 아니라고 울 듯이 말했다.
확실히 버릇을 고쳐놔야지, 그렇지 않으면 큰 사고 칠 선배였다.
“전혀 안 피곤합니다.”
피곤할 일이 없었다.
공기가 좋은 산의 정기를 밤새 창문을 열고 쭉쭉 빨아 마셨다.
서울의 기와는 확실히 달랐다.
태극오행양의심법의 묘용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다.
“그건 그렇네요. 완전 말짱해 보여요.”
학교에서 조원들과 헤어진 후 집에 들러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유료주차장에 차를 파킹하고 그녀와 조인했다.
미대 누나 손유리는 패션 감각이 남달랐다.
긴 다리에 어울리는 연보라 롱 모직코트에 다리에 쫙 달라붙는 청바지를 입고 나타났다.
손에 든 독특한 손가방과 자연스럽게 넘긴 머리칼은 지나가는 여자들을 오징어로 만들었다.
대신 남자들 시선을 확 끌어모았다.
전화번호를 딸만 한데 손유리가 풍기는 고품격 분위기에 다가서는 남자가 없다.
손유리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홍대를 걸었다.
지난 생에 직장에서 잠시 썸을 탔던 회사 여자 동료가 생각났다.
그녀도 이 길을 걷는 걸 좋아했다.
물론 비정규직인 나와 오래 만나지는 않았다.
어느 날 이별 통보를 받았다.
만난 지 100일쯤 되는 날이었다.
그리고 또 어느 날 청첩장이 배달됐다.
공무원과 선을 봐서 시집을 간 것까지는 좋은데 나에게 청첩장까지 보냈다.
여자들의 심리란…….
“풋.”
갑자기 헛웃음이 터졌다.
“왜요?”
손유리가 갑작스런 웃음에 걸음을 멈췄다.
“유리 씨가 고마워서요.”
“네? 제가요?”
과거를 회상함과 동시에 치유가 됐다.
이름도 가물거리는 그녀와의 기억들이 휘발유처럼 타서 사라졌다.
“남자의 어깨에 힘 팍 들어가게 만들어주잖아요.”
“뭘요?”
“둘러봐요. 유리 씨 덕분에 제 가치가 상승하지 않습니까.”
“…….”
손유리는 우리에게 쏠리는 시선을 둘러보고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미대 누나는 보기보다 순수했다.
몸매는 남자들의 영혼을 멍하게 만들 정도로 불순한데(?) 반전 매력이 넘쳤다.
“여기 숨은 맛집 있는데 스파게티 대신 그거 먹을까요?”
홍대에 오니 과거에 먹었던 것들이 자연스럽게 떠올라 침이 고였다.
소울 푸드까지는 아니더라도 추억의 음식이다.
“네~ 맛집 좋아요!”
손유리도 여자다.
메뉴가 바뀌자 기대감이 상승한 것 같다.
“가방 줘요.”
“이, 이 걸요?”
“손이 차갑잖아요.”
손유리가 잠시 당황했다.
이번 생에 연애는 처음이 확실해 보였다.
연애 좀 해본 여자라면 남자 친구가 가방 들어주는 일이 많았다.
손을 내밀자 손유리는 조심스럽게 가방을 내밀었다.
손유리의 가방을 왼손으로 들었다.
그리고 그녀의 왼손을 아무렇지 않게 잡았다.
연애는 타이밍의 예술이라고 노바 형님이 전수해 준 사랑의 기술법에 나와 있다.
파르르 손유리의 손을 통해 떨림이 전해졌다.
여자가 손을 잡혀 주는 건 마음을 허락하는 신호라 했다.
손은 제2의 심장이라고 노바 형님은 말했다.
손을 잡는 순간 작업의 반은 끝났다는 사랑의 기술법의 내용이다.
“불편하면 손 놓아도 됩니다.”
말도 못 하고 손유리는 얼굴만 붉혔다.
하지만 절대 손을 빼거나 놓지 않았다.
이렇게 날이 좋은데 손유리와 뻘쭘하게 걷는 것도 이상한 일이다.
그냥 손을 잡고 싶었다.
겨울이 주는 스산함에 따뜻한 온기가 필요했다.
“사람이 많아 자칫 미아가 될 수 있습니다.”
저녁이 되자 오고 가는 퇴근한 인파로 거리는 북적였다.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일지라도 여자의 마음을 편하게 만들어 줘야 함이 남자의 매너라고 기술서에 기록되어 있다.
그렇게 손유리를 이끌고 거리를 걸었다.
지나가는 남녀들 모두 그녀와 날 보는 게 느껴졌다.
천천히 홍대 거리를 걸었다.
마음은 스무 살이지만 정신은 30대다.
이게 쉽게 고쳐지지가 않았다.
나이가 허락한 청춘의 맛을 더 느껴보고 싶었다.
맛집에 도착했다.
홍대 중앙에서 살짝 빗겨난 골목에 위치한 길거리 포장마차였다.
“떡볶이 싫어하지 않죠?”
“네…….”
어째 자신 없는 목소리다.
“순수 순대파 아니면 허파하고 간 포함 정통파?”
“……, 순대요?”
손유리가 놀라 다시 물었다.
“여기 야채 튀김이 죽음입니다. 달짝 매콤한 떡볶이 소스에 찍어 먹으면…….”
상상만으로도 입에 침이 고였다.
나도 후에 알게 됐지만 이걸로 떼돈 벌어서 홍대에 건물 몇 채를 샀다는 소문이 들릴 정도로 대박 분식 포장마차다.
“아주머니, 순대 섞어서 1인분하고 야채튀김 2인분, 떡볶이 2인분 주십시오.”
“그려. 총각이 잘생겼으니까 오징어튀김은 서비스~.”
과거 내가 만났던 50대 주인 아줌마는 몇 년은 더 젊어져 계셨다.
“이런 음식 좋아하시나 봐요?”
손유리가 의외의 시선으로 날 봤다.
“왜요?”
“순대만 두 번짼 거 아세요?”
“보기보다 강하게 자랐습니다. 저 어렸을 때 집이 가난했습니다. 떡볶이집 사장이 로망이었습니다.”
“가난요? 집이요?”
청담동 집을 보고 왔기에 전혀 상상을 못 할 거다.
“자수성가했다고 말 안 했나요?”
“태산 씨 나이하고 그 말이 어울린다고 생각해요?”
“엄마가 재벌가의 딸입니다.”
“네~.”
내 말은 믿지 않고 엄마가 재벌 딸이라는 말은 왜 저렇게 쉽게 납득하는 거지?
나라도 그래야 믿을 것 같다.
집과 차가 평범한 집안에서 소유할 물건이 아니다.
“태산 씨 바람둥이죠?”
뜬금없는 어택이 들어왔다.
손유리의 눈빛은 진지했다.
“제가요?”
“아린이가 그랬어요. 법학과 2학년 불여시? 뭐 그런 여자분이 대놓고 좋아한다고 말이에요. 그리고 경영학과 신입생 퀸카도 호감 가득하다고 그러던데요?”
질투의 감정도 감지됐다.
“타인의 관심은 각자의 자유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아린 선배도 술에 취해서 본심을 말했습니다.”
“뭐, 뭘요?”
당황하는 손유리.
“유리 씨 버리고 자기하고 사귀자고 말입니다. 옆에 있던 동기들 모두 들었습니다.”
이러려고 그런 거 아닌데 본격적으로 분란을 일으켰다.
술에 취한 척해 놓고선 기억 다 하고 있던 아린 선배에 대한 소소한 복수다.
후훗! 아린 선배 당해봐라.
“아……, 아린이가요?”
“오는 차 안에서 오늘부터 1일이냐고 물었더니 대답을 안 하던데요?”
“!!!”
손유리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친구의 배신에 어쩔 줄 몰라 하는 것 같다.
그런데 세상에 저렇게 눈이 컸나?
“향기로운 꽃은 가만히 있고자 하는데 각종 벌들이 날아오는 거, 꽃이 죕니까? 유리 씨도 잘 알지 않나요? 법대 남자 선배들 중에 고백한 사람들 많다고 하던데 아닙니까?”
“그……, 그건 그렇죠.”
대답하면서도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아린 선배에게 따지려는 분위기다.
지금은 참아주세요.
“분위기가 왜 이래? 벌써 사랑싸움이야? 사람은 심성이 고와야 복 받아. 예쁜 처자 많이 먹어.”
“네…….”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순대와 떡볶이, 튀김이 한 상 차려졌다.
“유리 씨에게 바람둥이냐고 물으면 실례가 되듯 남자에게도 그 말은 좋은 말이 아닙니다. 우리가 가까워져도 기본 예의는 지키는 걸로 하죠.”
내 말에 손유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손은 잡았지만 정식 연인 관계는 아니다.
적당한 거리는 가까운 사이일수록 더 필요한 법이다.
“먹어 봐요.”
손유리를 간단하게 제압하고 떡볶이 소스에 야채튀김을 찍어 건넸다.
“피이~ 진짜……, 바람둥이 같아요. 왜 이렇게 매너가 좋아요?”
“이건 미인에 대한 기본 매너죠.”
공격이 끝나면 재빨리 방어에 임해야 하는 법.
미대 누나가 싫지 않았다.
아린 선배와 달리 조용한 성품이다.
부잣집 딸인 것 같은데 야상을 걸칠 줄 아는 털털한 맛도 있다.
바삭.
손유리는 붉은 입술로 앙 하고 깨물어 먹었다.
미녀는 먹는 모습도 왜 이리 복스러운지 모르겠다.
“어!”
손유리가 놀라 탄성을 뱉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떡볶이와 튀김을 먹기 시작했다.
“맛있습니까?”
“네~ 완전 특별한 맛이에요.”
“중국산 고춧가루가 아니라 국산 고추장에 청양고추 가루가 들어 있어 끝 맛이 톡 쏩니다.”
여자는 맛있는 걸 먹으면 성격이 천사로 변한다고 누군가 그랬다.
손유리 얼굴 표정이 살살 녹아 내렸다.
“순대도 먹어 봐요. 이 맛도 특별합니다. 주인아줌마 집에서 직접 만든 겁니다.”
내장에 잔뜩 야채와 선지, 고기소, 잡채가 넘치도록 들어있다.
다른 순대에 비해 2배 정도 컸다.
“……, 처음 봐요.”
“뭐가요?”
“이런 순대요.”
“특별하죠?”
“네. 정말 특이한 순대 같아요.”
“떡볶이 소스에 찍어 봐요. 아주 기가 막힙니다.”
손유리는 수제 순대에 강한 호기심을 보였다.
젓가락으로 순대를 집었다.
특수 떡볶이 소스에 찍어 입에 넣었다.
“!!!”
손유리가 화들짝 놀랐다.
“맛있어요! 정말 맛있어요!”
이게 유레카급 발견도 아니고 손유리는 소리쳤다.
“우리 집 순대 맛이 기가 막히지? 예쁜 처자가 먹을 줄 아네.”
주인집 아줌마가 흐뭇하게 손유리를 봤다.
“학생은 어떻게 잘 알아? 처음 보는 것 같은데?”
아줌마 눈썰미가 장난 아니다.
“보이지 않는 단골입니다.”
“그래? 내가 잘생긴 남자들은 눈에 꼭 집어넣는데 이상하네? 호호호~.”
미래에서 온 단골을 아줌마가 아는 게 더 이상한 일이다.
아줌마의 다정스런 수다가 이곳의 추가 양념이었다.
싱싱한 농산물만 사용하는 곳이다.
좋은 재료로 맛없는 요리를 만들 수도 있지만 나쁜 재료로는 결코 맛있는 요리를 만들 수 없다고 장금이 누님이 말했다.
주인아줌마 손맛까지 더하니 금상첨화다.
그리고 관상학적으로도 아줌마는 이화(二火)의 기운과 목(木)의 기운이 조화로웠다.
불로 조리되는 음식 장사에는 최상의 관상이다.
그렇게 손유리와의 분식 데이트가 맛있게 진행됐다.
이제야 학생 같은 맛이 났다.
다음 스케줄로 손유리와 클럽에 가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띠리리리 띠리리리.
그때 갑자기 울리는 핸드폰 소리.
황 실장이라는 이름이 화면에 떴다.
“여보세요.”
“태, 태산아 크… 큰일 났다!!”
# 101
회귀의 전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