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of th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105
104장. 제가 그랬습니다.
“아직도 못 찾았다고? 도대체 지분이 다 어디로 갔단 말이야!”
버지니아주 맥클린에 위치한 팰튼 호텔 본점 사무실 회장실에서 크라우만 팰튼이 노기를 터트렸다.
요 근래 미칠 지경이었다.
미국발 서브프라임 여파로 세계 경기가 죽어나갔다.
호텔업은 세상이 안정되고 여유가 넘쳐야 돈을 벌 수 있는 직종이다.
경기가 바닥을 치자 호텔 경기도 무섭게 하락했다.
돈맥경화의 여파는 여행업계와 호텔계의 목을 움켜잡았다.
정신없이 필요한 자금을 수급하고 객실 예약률을 높이기 위해 크라우만은 동분서주했다.
그런데 얼마 전 제대로 뒤통수를 맞았다.
자본금 확충을 위해 풀어놨던 주식이 공매도에 맞아 바닥을 쳤다.
신문 칼럼에 호텔업계 위기라는 말이 나오기 무섭게 주가가 반 토막 났다.
불경기에 놀란 주주들이 모조리 투매에 나섰다.
누군가 그 주식을 쪽 빨아서 받아 갔다.
“유니온스라는 사모펀드에서 20프로 정도 주식을 매집했습니다. 다른 펀드 몇 곳에서도 동시 매입한 것 같은데……, 파악이 안 됩니다.”
팰튼 호텔의 주가 담당 이사 해리슨이 난색을 표했다.
요즘 급격하게 주식거래가 발생했다.
하루에도 엄청난 양이 거래되기에 그걸 다 알아낼 수 있는 방법은 주주총회를 소집해 주주를 파악하는 방법밖에 없다.
“유니온스에 연락해 봤어? 매입가의 2배로 쳐준다고 그래! 벌레 같은 모건 새끼들! 나 몰래 주식 전부를 넘기면 어떡하냐고!”
모건 쪽에서 과거 투자용으로 팰튼 호텔 지분 20프로를 소유했다.
비밀 약정으로 처분 시에는 통고해 주기로 했건만 배신을 때렸다.
주가가 급하락하고 모건도 서브프라임 여파로 죽기 일보 직전이라 모든 걸 내다 팔았다.
JP 모건 쪽에 대해 크라우만의 분노는 상상을 초월했다.
주요 이사들과 직원들에게 팰튼 호텔 특별 할인가로 객실을 제공했었다.
그런데 은혜를 잊고 등 뒤에서 칼을 찔렀다.
“연락은 취했지만 답이 없습니다. 사모펀드의 특성상 투자자의 의도가 중요합니다.”
“하아……, 내 살다 이렇게 크게 당해 본 적은 처음이야. 해리슨, 말이 되냐고! 100억 달러 자본이 단돈 30억 달러에 주인이 바뀌게 생겼단 말이야. 이런 꼴 보려고 내가 미친 듯 사업한 건 아니잖아…….”
크라우만은 허탈한 표정으로 의자에 몸을 뉘였다.
경영권이 담보가 되지 않는다면 사업은 끝이었다.
불경기를 핑계로 경영진들을 갈아치워도 할 말이 없었다.
“……, 그런데 한국 쪽에 끈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한국? 그 작은 나라에 뭐?”
“유니온스 측에서 대주주가 된 이후로 첫 번째 조건이 한국에 있던 특정인에 대해 대주주급 의전을 요구했습니다. 알아본 바에 의하면 한국 투자회사가 회사 주식 1프로를 소유하고 있습니다.”
“뭐야? 그 자가 사모펀드 투자자라도 된단 말이야?”
“사모펀드 특성상 소유주는 알아낼 수 없습니다. 유니온스도 버뮤다 쪽에 법인을 설립했습니다. 하지만 어느 정도 끈이 있는 건 확실합니다.”
“조사해봐! 그리고 지분을 더 끌어모으기 전에 유니온스에서 부탁한 인물들에 대해서는 나보다 더 각별히 대하라고 지시해!”
“알겠습니다.”
“그리고 힐러리 쪽에 베팅 금액을 늘려. 여차하면 정부의 힘을 빌려야 할 수도 있으니까 말이야.”
“조치하겠습니다.”
“누군지 몰라도……, 거저먹으려 들면 죽여 버릴 거야! 가죽을 벗겨 캘리포니아 사막에 던져 버릴 것이야!”
알지 못하는 적을 향해 크라우만 팰튼은 으르렁거렸다.
적이 얼마나 무서운 존재라는 걸 전혀 알지 못하고 말이다.
***
“로버트. 무차별 공매도를 준비해 주십시오. 대상은……, 한국 안아 그룹입니다. 메일로 자료 보내놨습니다.”
“보스. 어느 정도까지입니까?”
“경영 인수입니다.”
물어서 뭣하나. 목표한 놈의 숨통을 끊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돈 주고 그놈을 사버리는 게 가장 확실했다.
대한민국 국민은 자국 주식에 대한 공매도가 불가능했다.
하지만 해외 자본은 언제나 가능했다.
서브프라임 여파가 거세질 때 잠시 공매도가 중단된다.
그 허점을 파고들었다.
“처리하겠습니다.”
“한국 대기업들은 지배구조가 복잡합니다. 출자로 엮인 핵심 기업 몇 개만 매입하면 끝날 겁니다.”
“한국 기업들의 지배구조는 월가에서도 유명합니다.”
기형적인 한국 대기업에 관한 이 같은 사실은 세계적으로 알아준다.
그렇기에 돈으로 빼앗기가 가장 수월했다.
얽히고 얽힌 지분으로 한 개사의 대주주가 되고, 그 지분으로 모든 그룹을 쥐락펴락하는 환상적인 수법이다.
하지만 이제는 낡아가는 소프트웨어다.
순환출자된 핵심만 흡수하면 나머지는 고구마 줄기에 달린 씨알처럼 줄줄 딸려왔다.
“언론을 활용할 필요가 있을 겁니다. 회사 명의로 미국과 한국 언론사 몇 개 포섭해 주십시오.”
진정한 참 언론들이 세상에서 사라져 갔다.
2010년이 넘으면서 기레기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직장 언론인들만 남는다.
돈이면 언론도 흔들 수 있다.
“기간은 어느 정도입니까?”
“짧을수록 좋습니다. 최대한 빠르게 마무리됐으면 좋겠습니다.”
“보스 뜻대로 되실 겁니다.”
돈이 주는 힘을 아는 로버트였다.
목소리에 힘이 가득 담겼다.
“지주회사로 개편할 생각입니다. 뛰어난 경영자가 있다면 추천 바랍니다. 한국 언론과 정부가 반대할 명분이 없는 한국계였으면 합니다.”
“찾아보겠습니다. 보스.”
상생의 방법을 아는 따뜻하면서도 냉철한 경영자를 원했다.
자기와 가족만 배불리는 그룹 오너들은 이제 사라져야 할 때였다.
“터트릴 때까지 비밀을 유지하십시오.”
“보스, 보안은 걱정 마십시오.”
내가 누누이 강조한 일이 보안과 비밀 유지다.
월가에서 밥 먹고 살아온 로버트는 철저하게 내 뜻을 따랐다.
세계 금융의 중심지인 월가만큼 썩은 곳은 세상에 없었다.
“보스. 그리고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뭔가요?”
“팰튼 쪽에서 유니온스로 연락이 왔습니다.”
“주식 인수 문제인가요?”
갑자기 자다가 어퍼컷을 맞고 대주주 자격을 상실한 팰튼 그룹이었다.
나 같아도 심장이 미치고 팔짝 뛸 일이다.
“그렇습니다. 좋은 가격으로 매수할 의향이 있다고 합니다.”
속이 바짝 탈 얼굴도 모르는 팰튼 그룹 경영주 얼굴이 훤히 보였다.
미국 다른 기업과 달리 가족 그룹 경영형태의 팰튼이었다.
“경영에 관심 없다고 전해주십시오. 그러니 투명하고 공정하게 사업 상황을 주주들에게 보고하고 경영하면 된다고 하십시오.”
이건 팰튼가에 대한 명백한 협박이다.
미국 기업 경영자는 업무상 횡령이나 배임을 저지르면 무기징역까지 받았다.
어설픈 한국 법원과 처벌 내용이 달랐다.
대주주만 행사할 수 있는 감사 기능의 권능이다.
“그리 전하겠습니다.”
세계여행 때 꼭 필요한 세계적 호텔 체인이다.
예약 없이 언제나 로열 스위트룸을 공짜로 이용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정당하게 투자하고 획득한 권리다.
세상에 돈이 넘쳐도 아껴서 나쁠 것 하나도 없다.
그걸 다시 넘기라고?
노 땡큐다.
“수고하십시오. 로버트.”
“일 진행 내용은 수시로 보고하겠습니다. 쉬십시오. 보스.”
언제나 믿음직한 로버트와의 통화가 끝났다.
며칠 사이로 폭풍 같은 시간이 흘렀다.
오동성 사건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아직까지도 신문과 인터넷 포털에 이름이 오르내렸다.
하지만 빠르게 사건들이 사라져갔다.
오늘 아침 갑작스럽게 잘 나가는 남녀 연예인들의 열애설이 터졌다.
우르르 모든 언론들이 그 연예인들에 대해 나팔을 불었다.
나에게는 지겨운 전형적인 물타기 수법이었다.
안아 그룹에서 엄청나게 로비를 했음이 확실했다.
“난 시작도 안 했어. 이 사람들아.”
풀은 뿌리를 뽑지 않는 한 계속 자라는 법이다.
전초제근(剪草除根)의 사자성어가 괜히 있는 게 아니다.
꿈속 할배도 충고했다.
안 되는 놈들은 안 되니까 절대 오지랖 넓게 용서하지 말라고 말이다.
지금껏 알고 있는 안아 그룹에 대한 정보 정도면 처벌도 충분했다.
아들의 망나니짓은 그 부모의 행동을 보고 배운 바였다.
아비나 아들이나 개차반이다.
전형적인 금수저 집안의 갑질이 피를 타고 유전됐다.
“그깟 얼마 되지도 않는 돈이 허무하게 사라지는 걸 똑똑히 지켜봐라.”
과거에는 전혀 알 수 없었던 돈의 무서움을 알아가고 있었다.
몇 천 원이 없어 배불리 먹지도 못했던 시절을 기억한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개인이 품을 수 없는 한도의 돈이 나에 의해 지배당했다.
그러자 또 다른 세상이 보였다.
돈 몇 푼 없는 것들이 보이는 갑질이 참으로 우스웠다.
진짜 부자는 드러내지 않았다.
그룹이나 대기업이라 불리며 어깨에 힘주며 살아가는 이들이 안타까웠다.
몇 단계 위에 서서 그들을 보자 전혀 부럽지 않았다.
한국에서 기업하기는 어렵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청문회에 나가야 한다.
잘못하면 감옥도 몇 번 다녀와야 하는 게 총수들의 운명이다.
IT 발달로 과거처럼 어설픈 회계장부로 뿌리칠 수 없다.
“머슴 중에서도 상머슴으로 만들어 주마.”
돈 벌어서 뭐 하겠는가.
잘못된 놈들 회초리로 사용하는 데 아주 제격이다.
“동성아……, 다시 태어나면 형아 만나지 말아라.”
오동성과 연관되기 전까지는 그냥 나쁜 대기업 중 한 곳에 불과했다.
그러나 나와 지독한 악연으로 얽혔다.
아들에 대해 사건을 파헤치다 보면 서련까지 다칠 수도 있다.
무심히 안아 그룹 전 주가를 살폈다.
핵심 주가인 안아 그룹과 안아생명 주가가 목줄이다.
대한민국 그룹들 중에 가장 많은 개수인 12개의 회사가 순환출자에 참여했다.
그들이 품고 있는 계열사가 50개 중에 34개다.
핵심인 안아와 안아생명만 무너트리면 모든 계열사를 품에 안을 수 있다.
핵심 그룹 말고 몇 개 비상장 회사들이 남겠지만 모두 다 떨거지다.
모기업의 밀어주기가 없다면 독자생존이 불가능했다.
“훗.”
차갑게 비웃음이 터졌다.
안아 그룹 주가는 오동성 사건으로 15프로 이상 폭락했다.
여기에 공매도 세력까지 가담하면 며칠 내로 반절까지 떨어진다.
언론사들이 나팔만 불어주면 끝난다.
안아 그룹은 대웅조선 인수를 위해 주식을 많이 풀어놨다.
본래 이때도 서브프라임 사건과 무리한 대웅조선 인수 때문에 주가가 폭락하는 시점이다.
9만 원대 주가가 반년 만에 2만 원대로 대폭락한다.
그 시기를 앞당길 생각이다.
누가 뭐라고 해도 망할 판인 회사를 인수하는 건실한 투자자의 모습이다.
띠이이이.
인터폰이 울렸다.
“대표님. KNB 엔터테인먼트 황연태 실장님이 찾아오셨습니다.”
일찍 출근한 유세라 팀장의 낭랑한 목소리가 들렸다.
요즘 자주 얼굴을 보니 무지 좋아라 한다.
시간 날 때마다 밥 먹고 커피를 마셨다.
설날 휴가를 10일 책정했다.
팰튼 호텔 스위트룸 숙박은 덤이다.
휴가 때마다 가족들과 여행을 가는 재미로 사는 것 같다.
세상에 이런 회사 없다는 걸 알고 최선을 다했다.
“들어오시라고 하세요.”
“네.”
대표 업무 자리에서 일어났다.
대표실 자동문이 열렸다.
“어서 오십시오. 황 실장님.”
“…… 어……, 네.”
밖에서 나를 편하게 대하는 게 불가능한 듯 머뭇거리는 황 실장이다.
회사가 코딱지보다 좀 더 컸다.
연예인 뺨치는 유 팀장에 사무실 크기, 그리고 대표실 분위기에 기가 죽었다.
KNB 엔터테인먼트 회사 대표와 이사가 구속이 됐다.
멍하게 있을 황 실장을 불렀다.
내 회사에서 특별하게 공식적으로 지분을 인수한 회사다.
“커피 좋아하시죠?”
“…… 네.”
황 실장도 함부로 반말하지 못했다.
나를 복잡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자신이 이곳에 왜 왔는지 모르는 것 같다.
아직 내가 최대주주라는 걸 몰랐다.
“유 팀장님, 커피 두 잔 부탁합니다.”
“네~ 대표님.”
인터폰으로 주문했다.
“앉으십시오.”
밖에서와는 달리 내 몸가짐도 달랐다.
청바지 따위는 입지 않았다.
셔츠에 카디건으로 몸을 단정히 감쌌다.
형 동생 할 때 분위기가 아니라는 걸 황 실장도 눈치챘다.
이곳은 세상 돈과 전쟁을 계획하는 전투 지휘실이다.
함부로 농담을 나누는 환담의 장소가 아니다.
유 팀장도 함부로 침범하지 못하는 집무실이다.
황 실장이 가죽 의자에 조심스럽게 앉았다.
“갑자기 호출해 당황하셨습니까?”
“그, 그렇지…… 요.”
“KNB 대표와 이사가 구속되었더군요.”
오동성 사건에 묻혀 뉴스에 잠깐 나왔다 사라졌다.
“…… 누군지 몰라도 우리 회사에 억하심정이 있는 것 같습니다. 갑자기 멀쩡한 회사가 횡령과 배임이라니…….”
“제가 그랬습니다.”
“네? 뭐, 뭐라고!!!”
# 105
회귀의 전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