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of th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1068
1080장. 상여자.
“로리아나, 로리아나 왜 그래? 얼굴은 왜 빨개진 거야?”
사라는 옆에 있던 로리아나가 갑자기 얼굴이 빨개지는 걸 목격했다.
그냥 대화 중이었다.
목숨값이 가볍지 않다는 말을 하는 중이었다.
로리아나의 심정이 복잡할 거라 생각했다.
사라와 달리 이곳 이스라엘은 로리아나와 야훼의 텃밭이었다.
그런 곳에서 버젓이 벌어진 아사신의 공격.
죽을 때까지 누구에게도 내놓고 말할 수 없는 엄청난 사건이었다.
“내가?”
로리아나가 얼굴이 빨개졌다는 소리에 재빨리 손으로 얼굴을 만졌다.
“무슨 일 있어? 혼자 볼 빨개질 상상이라도 한 거야?”
“…….”
사라의 농담에 괜히 로리아나의 얼굴이 더 붉어졌다.
‘충격을 받았나? 그것도 아니면…….’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생 엄중한 호위 속에서 살아왔던 야훼 바트였던 로리아나다.
이렇게 위험할 정도로 죽음을 직면한 위기는 처음이었다.
“고마울뿐이야.”
로리아나가 다니엘을 바라보며 말했다.
“도대체 이 은혜를 무엇으로 갚아야 할까?”
사실 사라는 다니엘에게 줄 수 있는 게 많지 않았다.
스스로의 힘만으로 이미 미국 정재계에 영향력을 발휘했다.
가진 바 재력도 가늠하기 힘들었다.
“팔 한쪽은 내줘야지.”
“팔 한쪽?”
로리아나의 말에 사라는 깜짝 놀랐다.
세상 금융계를 지배하는 야훼 바트. 그리고 그런 야훼의 뜻에 의해 움직이는 성녀인 로리아나.
야훼의 허락 없이는 그 무엇도 독단적으로 결정할 수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뭔가 분위기가 달랐다.
불과 몇 시간 전과 달리 강렬한 의지를 드러냈다.
‘팔 한쪽이라면 도대체 그 값이 얼마야?’
사라는 머릿속으로 재빨리 계산을 해봤지만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방계지만 차일드 가문의 전체 자산 규모까지는 정확하게 알지 못했다.
장로들을 통해 관리되는 상상할 수 없는 규모의 금융 자산.
‘변했어. 짧은 시간에.’
사라는 로리아나의 눈치를 살폈다.
아주 미세한 시간 차이로 로리아나의 기세가 변했다.
조금 전까지 보이던 멍한 모습이 아니다.
확신에 찬 눈빛으로 다니엘을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과거보다 더 선명해진 다니엘에 대한 지극한 눈빛이었다.
사라는 로리아나의 변화가 이해되지 않았다.
찰나의 시간에 로리아나의 감정이 이렇게까지 변한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거슬리네.”
로리아나가 다니엘을 보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뭐가?”
“비비안.”
“그렇지? 나만 그런 거 아니지?”
아직도 다니엘 품에 안겨 있는 비비안.
휴가지 섬에서 안면을 튼 여인이다.
그 이후 다시 마주칠 일이 없었다.
유럽과 미국은 생각보다 거리가 멀었다.
딱히 연락해서 만나야 할 이유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 비비안이 다니엘의 품에서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다.
사라도 그 모습에 질투가 났다.
그녀 또한 다니엘의 품에 안기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그의 멋진 모습은 백마 탄 진짜 왕자님과도 비교되지 않을 정도였다.
‘그건 그렇고 로리아나의 감정 표현이 왜 이렇게 강해졌지? 원래 이런 애가 아닌데.’
무척 낯선 로리아나의 반응.
성녀의 신분으로 야훼의 눈치를 봤기에 평소 감정 표현하는 일이 낯설었다.
그 이유 때문에 어린 시절 이후 쭉 두 사람 사이가 멀어지기도 했다.
그런데 오늘은 달랐다.
전혀 감정을 배제하지 않은 거침없는 발언들이 연속 터졌다.
로리아나 안에 잠재된 강한 여성성이 마치 제 모습을 드러낸 것 같았다.
“마음에 안 들어…….”
로리아나가 표현하는 감정 에너지가 옆에 있는 사라에게 오롯이 전해졌다.
‘큰일 나겠네.’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감지한 사라.
대꾸 없이 조용히 상황을 주시했다.
***
‘반드시 구입해야 해!’
루이스는 속이 다 타들어가는 것 같았다.
눈으로 본 아사신 무함마드의 상상을 뛰어넘는 능력.
그날 이후 자신감이 바닥을 기고 있었다.
기사단 전체 분위기도 마찬가지다.
무함마드는 고사하고 그 밑에 하위 전사들도 상대하기 벅찼던 게 사실이다.
육신이 다 불에 타고도 생명력을 잃지 않던 검은 뼈다귀 전사들.
지금 생각해도 몸서리가 쳐졌다.
그동안 무수히 상대해 왔던 놈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직접 부딪치지 않았지만 놈들이 품었던 강력한 어둠의 힘은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현재로서는 강한 축에 드는 루이스 자신도 그들과의 일대일을 장담할 수 없었다.
그런데 그런 전사들을 다니엘은 홀로 상대해 박살을 냈다.
게다가 최종 보스인 무함마드의 머리통을 창 하나로 꿰뚫었다.
그때 통쾌함과 짜릿함을 동시에 느꼈다.
문제는 다니엘은 성전의 기사도 아니고 또 자신의 부하도 아니라는 것이다.
그가 없었다면 오늘 이 자리는 통곡의 현장이 되었을 것이다.
기사들은 아사신에게 산 채로 살점을 뜯겼을 게 확실했다.
“루이스 님…….”
에두아르가 다가왔다.
“말하십시오.”
“전에도 말씀드렸듯 다니엘의 무기는 반드시 접수해야 합니다.”
“알고 있습니다.”
“오늘이 기회입니다.”
“네?”
“비비안 님이 계시지 않습니까.”
“!!!”
비비는 아직도 다니엘의 품에 안겨 있었다.
다른 이들이 보고 있음에도 부끄러움은커녕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는 비비.
우두둑.
루이스가 주먹을 쥐었다.
다니엘이 아무리 나무랄 데 없다 해도 여동생을 내주기에는 꺼림칙했다.
그리고 다니엘의 주변에는 이미 너무 많은 여성들이 들끓었다.
루이스도 감히 말을 섞기 벅찬 이들 중 한 명이 지금 눈앞의 로리아나였다.
그녀뿐만 아니라 사라 요한슨도 마찬가지.
‘어쩔 수 없다!’
루이스는 차기 기사단장 신분이다.
성전기사단을 이끌고 악의 세력과 싸우려면 자존심을 내려놓아야 했다.
자기뿐만 아니라 자식들도 가야 할 험난한 삶의 여정.
저벅저벅.
루이스가 다니엘에게 다가갔다.
명분이 좋았다.
다니엘의 품에 여동생이 안겨 있지 않은가.
스윽.
다니엘이 다가오는 루이스를 바라봤다.
그의 시선에는 별 감정이 없어 보였다.
“비비.”
“어? 응.”
비비안은 오빠의 부름에 화들짝 놀라며 다니엘의 품에서 벗어났다.
“하.”
짧은 한숨이 자신도 모르게 새어나왔다.
따뜻하고 든든한 다니엘의 품.
오늘따라 주변에 보는 눈이 많았다.
특히 자신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 로리아나와 사라의 눈빛은 강렬하기까지 했다.
“다니엘, 오늘 도움에 성전기사단을 대표해 경의와 고마움을 표합니다.”
루이스는 정중한 자세로 신사답게 말을 건넸다.
눈앞의 다니엘은 누가 뭐라 해도 이제 무시 못 할 세계의 강자가 되었다.
그가 굴리는 자금만 해도 규모가 얼마나 되는지 아무도 몰랐다.
거기에 오늘 확인한 그의 압도적인 무력.
적이 아니라 반드시 친구로 삼아야 할 또 하나의 이유였다.
“제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다니엘은 의외로 차분하게 대꾸했다.
과거였다면 건방지다 느낄 만큼 건조한 대답이었지만 지금은 겸손함이라고 생각됐다.
“비비 목숨을 구해주심도 발루아 가문의 이름으로 감사함을 전하는 바입니다.”
“비비는 내 친구입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루이스는 다니엘의 대답에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다니엘은 분명 비비를 남다르게 여기고 있는 게 분명했다.
“다니엘 님.”
루이스가 다니엘과 눈을 맞추며 그의 이름을 불렀다.
“네.”
“자리와 어울리지 않게 외람된 청이지만 소유하고 있는 무기를 구매하고 싶습니다.”
루이스는 마음먹은 김에 적극적으로 거래에 나섰다.
“흐음.”
다니엘은 바로 답하지 않았다.
“가격은 원하시는 대로 맞춰드리겠습니다.”
돈이 문제가 아닌 상황이다.
이제는 다니엘이 갖고 있는 무기에 의해 생존 문제가 결정될 정도다.
“제가 사용하는 무기에 대해서 아십니까?”
“마법 물품이 아닙니까?”
“맞습니다. 다른 곳에서는 절대 구할 수 없는 마법 무기들입니다.”
다니엘의 목소리에 강단이 실렸다.
“알고 있습니다.”
어렵게 찾아낸 전설의 무구도 다니엘이 소유한 창이나 도끼에 비하면 한참 뒤떨어졌다.
“적절한 가격을 정할 수 없습니다.”
다니엘이 거래에 대해 부정적인 의사를 밝혔다.
“…….”
난감해진 루이스가 입술을 깨물었다.
“도와주십시오! 다니엘 님이 아니라면……. 앞으로 성전기사단은 아사신의 먹잇감이 될 것입니다!”
루이스가 자존심을 다 내려놓고 말했다.
태도 또한 고개를 숙이고 정중하게 예를 차렸다.
기사들이 지켜보고 있지만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들의 무구에 대한 강한 열망이 등 뒤에서 느껴졌다.
“다니엘……. 미안한데 우리를 도와줘.”
비비가 말을 보탰다.
자존심 강한 오빠가 저렇게 고개를 숙이며 간청했다.
처음 보는 모습을 지켜보기 안타까웠다.
그리고 비비는 이미 알아챘다.
다니엘과 함께 여행하는 동안 그의 성향을 어느 정도 파악한 상태였다.
명분을 위해 다니엘이 잠시 뜸을 들이고 있다는 사실을 비비는 알았다.
“비비…….”
다니엘이 비비안을 바라봤다.
비비안이 맑게 웃었다.
“다니엘 님…….”
그 틈에 루이스가 다시 한 번 더 간청했다.
“그렇다면…….”
“다니엘 님. 그 무기 제가 다 구입하겠습니다!”
***
– 다 구입? 포스가 남다릅니다!
로리아나가 나섰다.
야훼와의 거래는 신속 정확하게 체결됐다.
어차피 야훼에게 다 받을 생각 같은 건 없었다.
잠시 갑질 좀 해보고 싶었을 뿐이다.
그나저나 현실에서는 어차피 야훼가 짱이었다.
아사신의 무력이 남다를 만큼 강해졌다 해도 돈은 야훼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밑밥을 깔았다.
로리아나를 확실하게 내 편으로 만들었다.
야훼에게 그에 합당한 조건을 걸었다.
그건 바로…….
– 설마 형님 이걸 노린 겁니까? 와아아……. 진짜 무섭네.
모든 정황을 알고 있는 귀신이 고개를 내저었다.
나도 이렇게까지 되는 걸 원한 건 아니지만 로리아나가 변했다.
본래 알고 있던 로리아나와 달리 감정을 숨기지 않고 있었다.
야훼의 제약에서 온전히 풀려난 로리아나.
거칠 것 없이 판에 뛰어들었다.
완전 상여자다.
“로리아나 님……. 그건.”
도리어 당황한 건 루이스였다.
비비도 얼굴색이 변하기는 마찬가지.
로리아나가 어떤 존재인지 그들은 이미 잘 알고 있다.
“왜 문제 있나요?”
로리아나가 루이스에게 반문했다.
“…….”
혼란스러운 눈빛의 루이스가 입을 닫고 나를 바라봤다.
이 거래의 결정권이 나에게 넘어왔다.
나의 트레이드마크인 부드러운 미소를 입가에 지었다.
그리고.
“난…….”
회귀의 전설 2부
그 남자 그 여자.
“쿨럭…….”
마가 장로는 뒤틀리는 복부를 부여잡다 곧 목구멍으로 무언가를 토해냈다.
“퉤!”
눈앞에 보인 건 새카만 핏덩어리였다.
스윽.
새카만 핏덩이를 토한 후 옷자락으로 입가에 묻은 피를 닦았다.
“어떻게 그런 놈이 있을 수 있지. 분명…… 당시에 같이 온 자들 대부분이 죽었는데…….”
마가 장로의 육신을 빼앗은 무함마드가 눈살을 찌푸렸다.
다니엘이라는 놈이 사용한 건 진짜 마법이었다.
어설픈 하급 마법 정도가 아닌 고위급 마법.
공들여 육성한 흑마법의 수법으로 다시 태어난 자식들이 눈앞에서 개박살 났다.
총으로도 죽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재생 능력도 겸비하고 있던 자식들이다.
도심 한복판에 몇 마리만 풀면 금세 온 도시가 마비될 정도로 공포를 안겨줄 수 있는 힘 있는 자식 모두가 먼지처럼 사라졌다.
재생 여지도 남기지 못했다.
“놈을 우습게 봤어.”
혹시 모를 이런 날을 대비해 미리 마가 장로에게 생명의 씨앗을 심어 놓은 게 운 좋게 맞아떨어졌다.
덕분에 위급했던 순간을 넘길 수 있었다.
긴 세월 동안 죽은 듯이 흑마법으로 동면했다.
처음 이 세상에 도착했을 때만 해도 단연코 무서울 게 없었다.
엄연히 신들이 존재했지만 자신이 활동하는 곳에 비하면 그들의 영향력은 미미하기 그지없었다.
인간들이 수중에 넣고 있는 무기도 조잡하기 이를 데 없었다.
장난감을 든 병사 수준에 불과했다.
마법 한 수면 수백 명쯤 거뜬히 제거할 수 있었다.
당시만 해도 오만함이 하늘을 찔렀고 세계 정복도 꿈꿨다.
그때 기습을 당했다.
같이 소환되어 온 마법사들이 흑마법사의 동태를 살피는 중에 기습 공격을 당해 중상을 입었다.
흑마법사는 비법을 써서 몸을 숨겼다.
당장 대응하지 않고 이를 갈며 치료를 시작했다.
그러나 마력이 워낙 약한 지구에서는 치료 시기가 길어질 수밖에 없었다.
우선 동면을 통해 중상을 입은 영혼과 육신을 다스렸다.
그사이 가늠할 수 없을 만큼의 긴 시간이 흘렀다.
길고 긴 잠에서 깨어났을 때는 세상이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아사신과의 조우는 우연히 이루어졌다.
그들이 목표하는 바도 자신이 가야 할 길과 같았다.
아사신은 자신이 뿌렸던 흑마법을 어설프게나마 습득하고 있었다.
그사이 지구에도 악신의 무리가 많은 뿌리를 내렸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와 타협하며 아사신에 붙었다.
새로운 육신을 매개로 하여 마법 수련을 재개했다.
제물을 바쳐 힘을 키웠다.
성장 속도를 끌어올리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본향과 비교할 수 없는 미미한 마력은 번번이 좌절을 안겼다.
지구에서 성한 악신도 일정 이상의 도움을 줄 수 없었다.
그렇게 버티고 버틴 긴 세월.
인고의 세월은 어느 정도의 힘을 되찾게 해주었다.
과거와 달리 현대를 살아가는 인간들에게는 진실한 신앙의 씨앗이 대부분 결여돼 있었다.
인구가 증가하고 물질의 풍요가 허락된 만큼 인간들의 정신력은 신성에서 멀어지고 무감각해졌다.
게다가 신앙에 있어 나태해졌다.
그만큼 안팎으로 타락한 인간들의 정신은 악마와 흑마법사들에게 좋은 먹잇감이 됐다.
“흐흐흐흐. 어차피 승리는 내 것이다. 야훼를 대신할 만한 조상신은 없다.”
신성 저주는 이대로 끝난 게 아니다.
가장 강력한 신들 중 한 명인 야훼의 힘을 무력화시킨 것은 성공적이었다.
야훼는 아사신의 공격을 방어하느라 자신이 보유한 포인트를 거의 다 소모했다.
그에 따른 이후 문제는 악신들에게 맡겨도 될 일이었다.
무함마드라는 이름 뒤에 숨은 흑마법사는 이제부터 다른 일을 준비하면 됐다.
“새로운 전사들은 빨리 태어날 것이다. 다니엘이라고 했나. 네가 아무리 강하다 해도 혼자서는 나를 막을 수 없다!”
은탄이 넣은 총 따위는 이제 두렵지 않았다.
성수로 코팅된 마법 무구가 있어야 그나마 흑마법에 대항 가능했다.
고위급 마법사가 분명한 다니엘이라지만 지구에서는 그에 필요한 것들을 구할 수 없었다.
마법 무구를 제작할 수 있는 대장장이는 그가 살던 본향에서도 귀하디귀했다.
“이번에는 물러나주지……. 그러나 곧 다시 만나게 될 것이야. 야훼……. 다니엘! 크하하하하하하하!”
마가 장로의 육신을 뒤집어쓴 무함마드, 아니 흑마법사가 광소를 터트렸다.
예루살렘에서 그리 멀지 않은 비밀스러운 공간.
새카만 어둠의 오라가 넘실넘실 일렁였다.
***
‘다니엘…….’
비비안은 숨이 막혔다.
기사단 내에서는 특별한 존재지만 이곳에서는 아니었다.
아사신 측에 포로 신세가 되고 말았다.
그런 자신을 다니엘이 구해 냈다.
이번뿐만 아니라 그가 아니었다면 과거에도 몇 번이나 죽을 뻔했었다.
현생에서 다 갚을 수 없을 정도다.
급기야 지금에 와서는 다니엘이 기사단의 목줄을 움켜쥔 입장이 됐다.
다니엘이 무기를 팔지 않으면 기사단은 보나 마나 금세 무너질 것이다.
사기뿐만 아니라 실력 또한 그들의 상대가 되지 않음을 확인한 상태다.
그 때문에 오빠가 필사적으로 매달렸지만 예기치 못한 강력한 경쟁자가 나타났다.
돈으로는 세상의 끝을 찍은 자가 바로 차일드 가문의 주인이다.
경쟁 자체가 안 될 상황이다.
다만 믿을 건 다니엘이 기사단을 가엽게 여기는 마음과 신의 은총뿐.
모든 전개가 다니엘 한 사람의 입에 달려 있었다.
비비안도 그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 몰랐다.
다니엘의 미래는 이제 예측 불가능의 영역이 되고 말았다.
무언가 강력한 보호막이 다니엘의 미래를 전혀 예견할 수 없도록 막았다.
“세상의 평화 수호가 우선입니다.”
“???”
다니엘의 대답에 모두가 의아해졌다.
갑자기 그의 입에서 튀어나온 세상에 대한 평화 수호 발언.
“방금 도망친 흑마법사는 고서클입니다.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 산 인간을 뽑으라면 그자입니다.”
“가장 오래 살았다니요?”
루이스가 의아한 눈빛으로 물었다.
“제 짐작대로라면…… 수천 년.”
“헛!”
“!!!”
다니엘의 말로써 비밀이 밝혀지자 모두 경악했다.
상상 속 괴수인 흡혈귀를 제외하고 그렇게 오래 살 수 있는 인간은 없었다.
“물론 상당 기간 활동을 못 했을 겁니다. 지금과 같은 힘을 사용할 수 있었다면 진작 세상은 멸망했겠지요.”
다니엘의 말은 모두의 가슴을 서늘하게 하고 또 무겁게 했다.
“보이지 않는 신들이 우리를 보호하고 있습니다. 그분들 덕분에 아직까지 지구는 안전합니다. 하지만…….”
다니엘이 말을 끊었다.
“악이 넘치니…… 아마겟돈 같은 세상이 멀지 않았습니다. 인간들의 탐욕에 어머니 같은 대자연은 멍들고 신음합니다. ‘우리’가 아닌 ‘나’만을 소중하게 여기는 이들이 넘쳐나는 까닭에 인정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그 모든 게 악마가 바라는 일들입니다.”
선지자 같은 말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 다니엘.
“…….”
모두 숙연해졌다.
“재고로 갖고 있는 마법 무구가 있습니다.”
“!!!”
다니엘의 한마디에 루이스와 로리아나의 눈이 반짝였다.
재고량이 얼마나 되는지는 알 수 없었다.
로리아나도 이번 일로 각성했다.
야훼만 믿고 있을 수 없는 사태가 발생했다.
세상이 그만큼 많이 변했다.
스스로의 힘으로 가문과 야훼의 성전을 지킬 때가 된 것이다.
“그 양이 얼마나 됩니까?”
루이스가 속이 타는 듯 되물었다.
“양이 문제가 아닙니다.”
“네?”
“마법 무구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특별한 능력이 필요합니다.”
“우리에게도 방법이 있습니다.”
“어림도 없습니다.”
“그게 무슨…….”
“흑마법사는 단기간에 자신의 병사들을 육성할 겁니다. 그에 반해 기사단은 어떻습니까? 1년 안에 루이스 님만큼의 실력으로 키워낼 수 있습니까?”
“……그건 불가능합니다.”
“로라아나 님은 가능합니까?”
“저도 불가능해요.”
“무구를 놈들이 빼앗아 갈 겁니다.”
다니엘이 단정 짓듯 말했다.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낫습니다. 이대로는 도저히 상대가 안 됩니다!”
루이스가 무구에 대한 집착을 보이며 강변했다.
아무 짓도 안 해보고 개죽음을 당할 수는 없었다.
아사신이 세력을 다시 잡으면 자신과 가문이 가장 먼저 당할 것이다.
사랑하는 아내와 자식들도 그 대상이 된다.
생각만으로도 끔찍했다.
“방법은 있습니다.”
“방법요?”
“그게 어떤 건가요?”
루이스와 로리아나가 동시에 다급하게 물었다.
“패키지.”
“???”
다니엘은 이해 못 할 말을 연신 내뱉었다.
무구를 패키지로 팔겠다는 말이 선뜻 이해되지 않았다.
“무구와 신성력이 담겨 있는 성수, 그리고 기사들 교육까지 한꺼번에 묶어서 팔겠습니다.”
“헛!”
“아!!!”
듣고 있던 이들 모두가 깜짝 놀랐다.
상상도 하지 못했던 패키지의 범위였다.
“그, 그게 가능합니까?”
루이스가 놀라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다니엘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난 지키지 못할 말은 뱉지 않습니다.”
다니엘이 확고하게 선포하듯 선언했다.
“……구매하겠습니다.”
로리아나가 두말 않고 구매 버튼을 먼저 눌렀다.
“저도 구매하겠습니다!”
루이스도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살기 위해서는 다니엘에게 영혼이라도 팔아야 할 상황이었다.
조용히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는 다니엘.
“짐작하겠지만 그 가격……. 생각보다 셀 겁니다.”
***
“고마워요. 진심으로.”
로리아나의 붉은 입술이 나비 날개처럼 나풀거렸다.
단둘이 남았다.
내가 요구한 조건을 맞추기 위해 루이스와 기사단은 서둘러 본국으로 돌아갔다.
사라도 일 때문에 급히 미국으로 떠나야 했다.
“우리 사이에 고맙다는 말은 지양하기로 하죠.”
가벼운 미소로 분위기를 돌렸다.
– 야훼가 이런 분위기를 좋아할까요? 꼰대 기질에 질투가 심한 것 같던데.
그 야훼, 이제 그런 짓 못 한다.
빚을 다 갚기 전에는 로리아나와 나 사이에 개입하지 못하도록 특약 조항을 넣었다.
인간이 있어야 신도 존재하는 법이다.
아무리 그를 섬기는 성녀라고 해도 멋대로 조종하면 신벌 받는다.
“……그래도 고마워요.”
로리아나가 날 응시하며 다시 입을 열었다.
두 눈이 별빛처럼 반짝였다.
제한이 풀린 로리아나는 자신의 마음에 떠오른 감정을 한껏 개방했다.
“나도 고마워요. 이렇게 내 앞에 있어줘서.”
– 으으으으……. 닭살 돋습니다.
귀신이 옆에서 연신 초를 쳤다.
이럴 때는.
와이파이 차단!
“…….”
역시, 세상이 조용해졌다.
온전히 로리아나와 나만의 시간이 됐다.
창밖으로 지중해 파도가 환히 보였다.
지난밤의 어지러웠던 기억의 파편들이 포말에 부서지며 사라졌다.
“당분간 바쁘겠군요.”
“……가문을 점검할 시간인 것 같아요.”
장로가 오염될 정도라면 그만큼 조직에 문제가 심각하다는 징조였다.
스윽.
아공간에서 빨간 마력석이 박혀 있는 목걸이 하나를 꺼냈다.
“이건…….”
“당신을 지켜줄 겁니다.”
“……고마워요. 진심으로.”
세 번째 고맙다고 말하는 로리아나.
스르륵.
그녀의 머리칼을 뒤로 모아 한쪽 어깨로 넘기고 목걸이를 걸어줬다.
손끝이 스치자 파르르 떠는 로리아나.
긴장감이 고스란히 나에게 전해졌다.
마법 목걸이가 그녀의 하얀 목에 걸렸다.
그 순간.
와락!
로리아나가 느닷없이 내 품에 안겨왔다.
긴 말이 필요 없는 순간이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뜨겁게 타오르는 입술이 포개졌다.
“하아…….”
나지막하게 새어나오는 신음.
길고 긴 키스가 이어졌다.
그리고.
“당신을 내 마음의 선물……. 거절하지 말아 주세요.”
그녀가 뜨거워진 숨을 내쉬며 속삭였다.
회귀의 전설 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