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of th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113
112. 미대에 간 법대생 (2)
“태, 태산 씨…….”
손유리는 놀라며 태산의 이름을 불렀다.
이해가 가지 않았다.
법학과 신입생인 그가 왜 미대 3학년 수업을 듣는단 말인가.
전공 수업을 듣는 미대생들 모두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한국대 개교 이래 3학년 전공 심화 필수 수업에 법대생을 비롯해 타대생이 강의를 신청한 적이 없다.
“신입생, 뭔가 착오가 있는 거지?”
“아닙니다!”
장태산의 힘찬 대답에 교수 심철수는 할 말을 잃어버렸다.
“어머. 완전 잘생겼네. 유리, 너 저 법대생 알아?”
안혜란이 급 관심을 보였다.
미대와 법대는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어 캠퍼스 커플에 결혼까지 연결된 경우가 많았다.
칙칙한 법대 여학생들과 달리 패션의 정점에 달한 미대 여학생들은 법대 남자들을 비상식량이라 불렀다.
어차피 미대 졸업하고 대충 취직할 예정이면 능력 있는 법대생을 요리하는 게 빨랐다.
사법시험 합격률이 월등하다 보니 잘 키우면 인생 대박이었다.
한국대 미대생들 대부분 집안이 살만해 열쇠 몇 개는 문제없다.
법대생들 중에서도 그걸 노리고 미대생들과 인연을 만들기도 했다.
법대생 학벌과 미래, 미대생의 재력과 미모는 서로 동가치의 거래품이 됐다.
특히 잘생긴 법대생들은 미대생들이 일찍 점찍었다.
“장태산 군. 한국대 법대생이 그럴 리야 없겠지만 교양과목으로 신청한 건 아니지?”
심철수 교수가 어이없어 물었다.
“맞습니다. 타과 전공도 교양과목 점수로 인정된다고 들었습니다.”
“여기 실기가 100프로야!”
씩씩한 대답에 심철수 교수가 다시 확인했다.
정신 나간 놈이 아니면 미대생들도 고개를 흔드는 3학년 전공 심화 강의를 들을 리 없다.
그것도 교양과목으로 말이다.
“교수님 조금 전 제가 들었던 말이 거짓입니까?”
“무슨 말?”
“그림쟁이는 오직 그림으로만 말하라던 그 말씀 말입니다.”
“아니 그건 우리 같은 전공자에게나…….”
“저도 그림이 전공입니다.”
“뭐? 그림이?”
말도 안 통하는 장태산의 대답에 심철수 교수 입이 떡 벌어졌다.
홍인대 미대와 함께 대한민국 미술대학의 양대 산맥인 한국대 미대였다.
개나 소나 들어올 수 있는 대학이 아니다.
국내 미술 수재들이 선택받는 곳이 한국대 미대였다.
그런데 법대생이 그림이 전공이라고 말했다.
그것도 거침없이.
“장태산 군, 장난 그만해. 신입생이지만 참는 것도 한계가 있어.”
심철수 교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학점은 더러워도 항상 웃는 지옥부처 심철수 교수 심기가 팍 상했다.
이건 용감을 떠나 객기이자 만용이다.
법대생들이 똘기 강한 건 알지만 정도를 넘어섰다.
“수강과목 다시 신청해. 오늘부터 1주일 기간 동안 정정기간이니.”
화를 누르며 최대한 친절하게 설명했다.
이 정도면 충분히 설명이 됐을 거라 생각했다.
“싫습니다. 전 당당하게 실력으로 학점을 인정받겠습니다.”
“야! 너 이 자식! 그림이 우습게 보여! 법대생들 눈에는 우리가 환쟁이로 보이냐? 어!!!”
심철수는 버럭 호통을 쳤다.
아무리 잘나 봐야 대한민국에서 법대 인맥과 전통을 따라갈 수 없는 예체능계 교수의 분노에 찬 외침이다.
시험 한 방에 인생이 바뀌는 법대생들에 대한 질투이기도 했다.
과거 그가 사랑했던 여자 동기생이 고시 합격한 안경 쓴 찌질이에게 시집갔다.
감춰져 있던 울분이 폭발했다.
“전 그림쟁이가 법보다 좋습니다. 그리고 환쟁이면 어떻습니까? 그림만 그릴 수 있다면 그게 행복 아닙니까?”
“끄응.”
장태산 대답에 심철수는 앓는 소리를 냈다.
말로는 안 될 미친놈이라 결론 내렸다.
“기본 안 되는 놈을 어떻게 가르쳐? 그건 신이 와도 안 돼!”
“됩니다.”
“안 돼!”
“그럼 증명해 보이겠습니다.”
“뭐, 뭘 증명해.”
“여기 있는 학생들과 똑같이 이 자리 이 시간에 과제를 내주십시오.”
“똑같이?”
“종목은 상관없습니다. 소묘, 수채화, 유화 등등 마음껏 고르십시오.”
당당한 장태산의 제안에 미대생들 심기가 불편해졌다.
굴러온 법대생이 박힌 미대생들 자존심에 스크래치를 냈다.
이건 선전포고다!
“하하하,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심철수 교수는 시원하게 웃었다.
하지만 눈빛은 차가웠다.
“평가는 내가 한다.”
“물론입니다.”
“떨어지면 닥치고 꺼져 줄 거지?”
“원하신다면요.”
보이지 않는 자존심 대결.
미대생들 머리도 뜨거워졌다.
‘태산 씨…….’
단 한 여인만이 이 순간이 악몽 같았다.
***
‘다들 미안합니다. 나도 이러고 싶지 않답니다.’
양들 키우는 어깨 형들도 아니고 타과 수업에 깽판치고 싶지 않았다.
내 의지가 아니다.
미술과 난 어릴 때부터 무척 친하지 않았다.
현실 남매의 학업 버전이 미술과 나였다.
그런데 얼마 전 사건이 터졌다.
1학년에게만 먼저 허락된 강의 선택 시간.
일단 법학과 강의는 모두 뺐다.
새로워진 사법고시 시험 응시 자격은 법학 관련 35학점 이수자에 일정 이상의 영어능력시험 점수가 필요했다.
법학 강의를 풀로 들어야 가능했다.
내 버라이어티한 대학교 1학년 청춘을 망칠 수 없었다.
다시 회귀한다는 보장은 절대 없다.
법학과 학점을 모두 빼고 독학사 시험을 신청했다.
2월 초에 조용히 1차 접수를 마쳤다.
올해 안에 35학점 이수하는 건 일도 아니다.
그리고 난 과감하게 1학년 1학기 강의 모두를 교양과목으로 선택했다.
흐뭇하게 여학생이 많이 듣는 과목을 수강신청하려는 순간.
눈에 미대 관련 학과가 보였다.
미술의 이해라는 2학점 과목이다.
미술 좀 배워볼까?
잠시 생각했다.
찰나라 말할 만한 아주 짧은 순간이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사건이 벌어졌다.
팟!
빛이 번쩍였고 신들의 초대를 받았다.
그리고.
“이제 왔냐~.”
누군가 날 아주 다정하게 불렀다.
‘여기는 뭐야?’
길고 긴 회랑이 나타났다.
높이는 5미터 정도 됐고 길이는 대충 봐도 수 킬로미터짜리 벽이 양쪽에 보였다.
인간 세상 아니라는 건 금방 알았다.
“누구십니까?”
한 남자가 보였다.
많이 본 얼굴이다.
상투 튼 머리를 질끈 끈으로 대충 묶었다.
덥수룩하게 자란 수염은 자유분방한 이미지의 표상이다.
도포자락 같기도 하고 한복 비슷한 옷차림을 하고 있다.
손에는 자기 호리병이 들렸다.
“화선이 삼촌이다.”
“네? 사, 삼촌요?”
대놓고 이렇게 자기를 삼촌이라 말하는 신은 처음이다.
우리 집에 저런 삼촌 없다.
“왜 삼촌이십니까? 혹시 집안 조상님이세요?”
“무얼 그렇게 따지냐. 좁은 땅덩어리에서 살면 피가 다 섞여. 그럼 삼촌이고 이모잖아. 너도 식당 가면 이모라고 안 불러? 그게 다 그런 이치야.”
“아아…….”
신들 말들은 묘하게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설득력이 있다.
그런데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데…….
“화선이면……, 헉? 취, 취화선요?”
“흐흐흐. 그래 니가 아는 그 취화선 삼촌이다.”
“아아아아!”
장금이 이모, 진이 누님, 남사고와 박유봉 아저씨, 감찬 사자님, 선관도사님에 이은 새로운 국산 신선이 나타났다.
그제야 정확히 얼굴 주인을 알았다.
한국 영화계의 대스타 조민식과 똑같았다.
“얼굴이…….”
“성형했다.”
“성형요?”
“장금이 누님에게 못 들었냐? 신은 불러주는 대로 이름이 바뀐다는 말.”
“들었습니다.”
“얼굴도 마찬가지야. 인간들이 상상하는 형상으로 신들은 얼굴을 바꿀 수 있다. 신들의 특권이지.”
“아!”
장금이 누님이 말해줬던 게 모두 이해가 갔다.
신은 인간이 아니다.
기로써 존재하는 그들에게 얼굴 바꾸는 건 일도 아닌 것 같다.
“그런데 왜 저를…….”
강의 계획 작성 중에 불려올 이유가 없다.
단지 미술에 대해 잠시 생각해 봤을 뿐이다.
간절히도 아니고 그저 손톱만큼의 관심이었다.
“이거 왜 이래. 선수끼리.”
“네? 선수요?”
회귀해서 선수라는 말 참 많이 듣는다.
“태산아. 서로 돕고 살자. 포인트 넉넉하면 불쌍한 신선 삼촌에게 기부 좀 해줘야지. 그리고 난 너에게 내 기술도 넘겨주고. 이게 바로 상부상조의 협동 정신 인류애 아니겠냐.”
인류애는 산 사람들끼리 나눠야 하는 말 아닌가?
취화선 삼촌 말도 참 잘 한다.
내가 아는 취화선, 오원 장승업은 달랐다.
세속적인 삶을 초탈해 편안한 왕실도 탈출해 인생 마음껏 살다간 인물이다.
그런데 지금 눈앞에 있는 취화선은 삼촌이라 부르며 내 카르마 포인트를 빼앗아가려는 사기꾼 같았다.
그렇게 미술이라는 학문이 땡기는 건 아니다.
배워보고는 싶지만 지금 딱히 필요하지 않았다.
“배워서 뭐 하게요?”
신선 한두 번 상대해 본 나다.
이제는 신선 갑질 전문가다.
“미술도 돈 되는 거 알지? 과거와 달리 요즘 세상은 그림 잘 그리면 밥 먹고 사는 데 지장 없다.”
“에이 선수끼리 왜 그러세요. 그림 잘 그려도 죽어야 돈 벌잖아요. 그리고 저 돈 많아요.”
전혀 매력 1도 안 땡기는 제안이다.
“태산아! 넉넉하면 인심을 쓸 줄 알아야지! 그럼 신선 돼서도 노랭이 취급받아!”
이번에는 협박이다.
“살아서 잘 베풀고 있습니다. 카르마 포인트 팍팍 벌어 다들 무시 못 하는 자수성가 신선 될 겁니다.”
“끄응.”
신선 삼촌 얼굴이 다급해졌다.
“여자 친구에게 멋들어진 초상화 하나 남겨주는 것도 남자의 매력 아니겠냐? 다빈치 알지? 걔도 그걸로 유명해졌잖아.”
화선이 삼촌이 레오나르도 다빈치도 아는 것 같다.
“요즘 카메라 화질이 얼마나 좋은데요~. 그림이 못 따라옵니다.”
“손맛이 다르잖아. 정성도 다르고. 여자들은 능력 있는 남자에게 뻑 간다. 내가 인간 세상에 살 때 기생들에게 그림 한 장 넘기면 술하고 밥은 거저먹었다.”
취화선 삼촌 불리한 건 절대 말 안 한다.
그림질로 기생들 치맛자락 수없이 당긴 건 대한민국 국민들 다 안다.
미인이 따라주는 술이 없으면 절대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
한국 버전 노바 형님이다.
“그런 건 낭만이 살아 있는 과거 이야기죠. 요즘 시대는 비싼 카메라로 찍어줘야 먹힙니다. 그리고 술 하고 밥 거저먹으면 욕먹어요. 제가 거지도 아니고 왜 얻어먹습니까?”
“…….”
자신의 제안을 번번이 거절하자 취화선 삼촌 신선은 답답한 표정을 지었다.
낙담한 표정이 짠했다.
나에게는 넘치는 카르마 포인트지만 신선들에게는 꼭 필요한 양식이다.
“카르마 포인트 벌기 힘든 것 아시죠?”
“물론이다……, 여기 다 그려도 술값 대기도 벅차다.”
“여기가 일터예요?”
“먹고 살아야지. 신선은 거저 밥 나오는 줄 아냐?”
“생전에 포인트 많이 못 벌었어요?”
“……, 내 성질이 지랄이잖냐. 벌면 까먹고 벌면 까먹고…….”
“그럼 어떻게 신선 됐습니까? 옥황상제배? 그것도 아니면 셀프?”
“그게…….”
큰 손으로 얼굴을 긁적이는 취화선.
부끄러운 듯 힘겹게 입을 열었다.
“이, 계, 계약직 신선이다.”
“네? 계약직 신선요?”
# 113
회귀의 전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