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of th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1142
1161장. 황제와의 산책(2)
“자금성에서의 산책이라……. 허어.”
자신의 저택에서 멀리 보이는 자금성의 높은 성벽을 바라보고 있는 한 남자.
입술을 비집고 한탄이 터져 나왔다.
한때 자신만이 오롯이 즐겼던 야간 산책의 순간이 떠올랐다.
황제들만이 누릴 수 있는 자금성의 밤.
주석이 되기 전 그도 옛 황제의 초대를 받고 겨우 맛을 봤다.
그 순간을 지금도 잊을 수 없었다.
조용한 밤 자금성을 거닐며 그 당시 황제와 중국 정세를 논했다.
그 황제 앞에 무수히 고개를 조아렸다.
그 자리에 앉고 싶었다.
그래서 모든 수단을 동원해 권좌를 차지했다.
주석이 되었던 첫날 방태민도 저 자금성의 산책길을 홀로 걸었다.
넓고 넓은 자금성 곳곳을 처음부터 끝까지 훑었다.
죽어서도 잊을 수 없는 감격의 시간이었다.
낮에는 누구나 즐길 수 있게 개방된 유원지였지만 밤에는 달랐다.
오직 최고 권력자만이 밤의 시간을 흠뻑 즐길 수 있었다.
황제의 야행이라 불리는 은밀한 산책.
방태민도 그 은밀한 시간을 권력 유지에 톡톡히 이용했다.
오로지 선택받은 자들만이 그 시간을 함께 누릴 수 있었다.
부름받은 자들은 다 황송해하며 고개를 조아렸다.
그럴 때면 부러울 게 없는 진짜 황제가 된 듯했다.
초대된 자들도 밤의 자금성이 주는 무게감에 절로 몸을 떨었다.
그걸 가까이서 지켜보는 재미 또한 쏠쏠했다.
그 무리 중에는 당대 황제도 섞여 있었다.
틈나는 대로 자금성으로 불러 함께 산책하며 이런저런 충고를 해주었다.
그때는 허리를 굽혀 자신에게 일생의 충성을 맹세했다.
“슈건핑…….”
방태민은 현 황제의 이름을 곱씹었다.
지금은 방태민도 슈건핑의 허락 없이는 밤의 자금성에 발들일 수 없었다.
중난하이의 저택만 겨우 허락됐다.
“즐겨라……. 너의 시간도 그렇게 길지 않을 것이다.”
자신도 영원히 황제로 남을 거라 착각했던 적이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까지 오래 살 거라는 예상도 못 했다.
선인의 환단 덕분에 전례 없이 장수를 누리고 있는 방태민.
기어코 슈건핑이 무너지는 날을 눈으로 목격할 때까지 버틸 생각이다.
자신의 계획을 철저하게 무너트리고 권력을 거머쥔 자에 대한 분노와 질투심이 끓어올랐다.
“완진바오의 속이 쓰리겠군.”
그의 심기를 짐작하던 방태민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어리석은 자들이 슈건핑의 진짜 무서움을 모르고 황제로 추대했다.
충분히 꼭두각시로 세우고 조종할 수 있을 거라 여겼던 하수들의 선택이 부른 재앙이었다.
결과적으로는 슈건핑의 손바닥 위에 놓인 꼴이 됐다.
사실 방태민에게는 슈건핑을 제거할 수 있는 몇 번의 기회가 있었다.
그때마다 계산 착오가 생겨 결국 오늘에 이르렀다.
어떤 면에서는 슈건핑이 운이 좋았다.
“장립에게 넌 무얼 줄 생각이더냐…….”
완진바오의 계략은 대충 짐작이 갔다.
하지만 슈건핑의 제안은 쉽게 짐작되지 않았다.
황제는 손에 쥔 패가 더 많았다.
“설마 너도?”
그때 방태민은 기억 한 조각을 떠올렸다.
슈건핑과 함께 거닐던 야행에서 제안한 내용이었다.
“일인지하(一人之下) 만인지상(萬人之上)…….”
당시 방태민에게 무릎 꿇고 겸허히 받들던 현 황제 슈건핑.
“크크크크크크.”
방태민의 입가에 음흉한 조소가 번졌다.
“어리석은 놈.”
방태민은 드러내놓고 슈건핑을 조롱했다.
자신의 예측이 맞다면 슈건핑의 제안에 장립은 분명히…….
휘리리링.
일순간 거친 바람이 한차례 불어왔다.
덜컹덜컹.
거센 바람에 창문이 심하게 흔들렸다.
북쪽 찬바람과 남쪽의 따뜻한 바람이 부딪쳐 만들어낸 한 밤의 소란.
“비가 오겠어……. 비가.”
어느새 하늘은 어둑어둑해져 있었다.
비가 내리고 나면 성큼 다가올 것 같은 가을.
방태민은 뒷짐을 지고 멀리 보이는 자금성의 하늘을 바라봤다.
***
“일인지하(一人之下) 만인지상(萬人之上)요? 사극을 많이 봤나 봅니다. 요즘 같은 세상에 그런 고리타분한 대사리니……. 쯧쯧.”
귀신이 슈건핑의 말에 혀를 찼다.
멍청한 귀신이 분위기 파악을 못 했다.
– 형님. 슈 주석 상태가 안 좋은 것 같습니다. 공산당 총서기라는 분이 봉건주의 시대 황제나 읊던 대사를 치다니 말입니다.
귀신아 저게 농담으로 들려?
– 그럼 아닙니까? 나이도 한참 어린 형님을 뭘 믿고 저런 제안을 합니까? 중국 권력 구조상 절대 불가능합니다.
황제를 보필하는 최측근 재상에게나 허락되는 말이기는 했다.
귀신의 말처럼 나에게는 전혀 어울리지도 않았다.
중국 권력 구조상 절대 허락될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슈 주석이 황제로 추앙받고 있긴 했지만 세상 돌아가는 이치가 그렇게 만만치 않았다.
1억 명에 가까운 중국 공산당원들이 가만있지 않을 것은 자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슈건핑이 직접 언급한 말이었다.
그의 한마디에 담긴 말의 무게는 가치가 달랐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요.”
시치미를 뚝 뗐다.
꾼이 던진 밑밥 한 덩어리를 덥석 물면 인생 프로가 아니다.
밀당은 남녀 사이를 떠나 모든 인간관계가 밀접하게 작용하는 사회생활의 기본이다.
“20년을 나에게 투자해 주게. 그럼 자네를 그렇게 만들어 주지.”
20년 투자?
“내일 아침도 장담하지 못함이 인생사라 배웠습니다. 제게는 너무 긴 시간입니다.”
완곡하게 거절 의사를 표했다.
과거로 회귀하기 전, 장태산이 살았던 2020년이 점점 다가오고 있다.
그 시점 이후의 세상은 나도 전혀 모른다.
그런데 20년을 투자하라는 슈건핑의 제안.
파격적인 제안은 맞았다.
중국 권력 2인자라 할 수 있는 총리직은 아무리 빨라도 50대 후반은 되어야 한다.
“길지 않네. 엊그제 청운의 꿈을 품고 공산당원에 입당했는데 어느새 나도 이리 나이를 먹었어. 하룻밤 푹 자고 일어난 것 같은데 말이야.”
슈건핑이 그간 살아온 시간은 한 차례 죽음을 경험한 나도 가늠하기 힘든 세월이다.
슈건핑은 농담을 던진 게 아니었다.
– 대학원을 다니라고 하지를 않나. 이제는 재상직까지 제안을 하고……. 다들 왜 그런답니까? 아무리 형님이 탐난다고 해도 정확한 정체도 모르면서.
귀신만 알고 있는 나의 정체.
다들 알면 자신들의 우둔함에 머리를 박고 죽고 싶을 것이다.
그래서 세상살이를 요지경이라 부르는지도 모른다.
“오늘 뜻밖의 제안을 계속 듣게 되는 것 같습니다.”
“완 총리가 뭐라고 했나?”
“대학원을 다니라 하더군요.”
완진바오의 제안을 오픈했다.
눈치를 보아하니 슈건핑도 짐작하고 있는 듯했다.
“다른 건 없었나?”
“네.”
“자네에 대한 평가가 박하군.”
– 말투로 보아 뭔가 던질 것 같은데요?
귀신이 슈건핑 바로 앞에 서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과분하다 생각합니다.”
“내 앞에서는 겸손하지 않아도 되네. 립 자네를 보면 묘한 동질감이 느껴져.”
“그게 무슨…….”
너랑 나랑 같다고?
어이가 없는 슈건핑의 어이없는 말이 한쪽 귀로 들어왔다 한쪽 귀로 새어나갔다.
“천하를 갖고 싶지 않나?”
저벅저벅.
느린 걸음을 옮기며 대화가 이어졌다.
방금처럼 한 번씩 중요한 말을 던지고 잠시 눈을 맞출 때를 빼고 그의 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제 꿈은 소박합니다.”
빙그레 웃으며 짧게 대답을 대신했다.
“소박한 꿈이라……. 그 꿈이 뭔가?”
슈건핑이 그 꿈이 궁금한지 물었다.
“인류 평화입니다.”
“……진심인가?”
“네.”
뚝.
움직이던 걸음을 멈추고 나를 돌아보는 슈건핑.
“푸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그러더니 갑자기 박장대소를 터트렸다.
– 이왕 하는 농담이라면 차라리 우주 평화라고 하시죠.
귀신도 나의 말을 믿지 않았다.
농담이 아니라 진심이다.
나와 내 가족, 그리고 이웃들이 행복하다 보면 그게 다 인류 평화의 한 일환이라고 본다.
물론 그 와중에도 욕심 많고 교활한 옆집 개들을 두들겨 패는 일도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들이 정신을 차려야 세계 인류 평화가 올 테니까 말이다.
“립……. 자네는 정말 예상 못 할 친구야. 그래서 매력 있어.”
슈건핑은 끝내 나의 진심으로 농담으로 받아들이는 듯했다.
휘리리리리링.
그 순간 거친 바람이 한차례 불어왔다.
바람결에 담겨 있는 기운에서 한기가 느껴졌다.
어느새 길었던 여름이 다 가고 있었다.
쿠르르르릉.
기단과 기단이 교차하는 듯 하늘이 어두컴컴하게 변하며 천둥소리가 울렸다.
비라도 쏟아질 분위기다.
“각하.”
시진핑을 불렀다.
저벅저벅.
느릿하게 계속 앞으로 나아가는 슈건핑.
“말하게.”
“부족하지만 필요하시면 최대한 도와드리겠습니다.”
“제안은 거절인가?”
눈치가 빨랐다.
“지금도 각하를 비롯해 대인들의 넘치는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더 이상 욕심을 부리면 하늘이 노할 것 같습니다.”
“이무기도 역천(逆天)하지 못하면 승천할 수 없는 법이야.”
– 역천하지 못하면 승천을 못 한다고? 와아아아! 이 아저씨 지금 살아 있는 형님 신선에게 문자 쓰는 겁니까?
귀신이 슈건핑의 가르침에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나도 마찬가지 심정이다.
자금성을 차지하고 앉아 황제라고 거들먹거리는 꼴이 우스웠다.
죽으면 지옥 한구석에서 다른 귀신들에 둘러싸여 얻어터질 미래를 몰랐다.
여태 살아오면서 지은 죄가 장난 아닐 터였다.
절대 선신은 될 수 없는 인사.
“승천보다 그냥 지금의 삶이 좋습니다. 각하께서는 젊은 놈이 야망이 없다 꾸짖을 수 있겠지만 각자 깨달으며 살아가는 방식이 다 다르지 않겠습니까.”
슈건핑에게 솔직하게 내 입장을 밝혔다.
슈건핑이 개폼 잡고 자금성 산책을 제안했지만 내 눈에는 전부 허세로 보였다.
지금 이 길을 슈건핑만 걸었겠는가.
중국 역대 황조 주인들과 거주자들.
반란군, 서양 연합군도 그들만의 역사를 남기며 발자국을 찍었을 것이다.
그들도 슈건핑 못지않게 이 길을 걸으며 여러 감정을 느꼈을 터.
어디선가 이곳을 주시하고 있을 방태민 전 주석도 마찬가지.
누구 눈치도 안 받고 자금성 야행을 즐기는 게 행복의 전부가 아니다.
이 길을 홀로 걷기 위해 대가로 치렀을 수많은 이들의 죽음과 피.
권력의 꽃길 뒤에 감춰진 이면의 잔혹함이 눈에 선하게 보였다.
“부럽군.”
예상치 못한 답변이 돌아왔다.
“네?”
“어린 시절 나도 그랬지. 부모님과 함께 평범한 행복을 누리고 싶었네.”
과거를 회상하는 듯한 모습의 슈건핑.
“그러나 운명이 허락지 않더군. 잔혹하게 한 발자국 권좌를 향해 나가지 않으면 바로 뒤에서 사신이 창으로 찌르더군. 그래서 이곳까지 걸어왔어. 죽지 않기 위해 말이야.”
슈건핑 집안의 업보.
중국의 권력자 집안에서 태어난 대가라 할 수 있었다.
투두둑 투두두둑.
그때 먹장구름이 잔뜩 끼던 하늘에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타다다닥.
경호원들이 우산을 들고 급하게 달려왔다.
오늘은 하늘이 여기까지만 산책을 허락하는 것 같았다.
“집을 주겠네.”
집? 무슨 집?
“중난하이에 자네 거처를 허락하지.”
“!!!”
회귀의 전설 3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