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of th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1152
1172장. 진정한 중국몽
“대표님 어서 오십시오.”
북경 공항 입국장.
한국에서 출발해 갓 도착한 동룡제과 대표를 향해 지사장이 꾸벅 고개를 숙였다.
“비가 많이 오네요.”
북경에 쏟아지는 빗줄기에 주미란은 깜짝 놀랐다.
한국에서 출발할 때도 마침 비가 내리긴 했다.
그러나 이 정도로 거세게 쏟아지지는 않았다.
북쪽으로 올라갔던 북태평양 고기압이 찬바람에 밀리며 장마 전선을 형성했다.
본래는 나타나지 않던 가을장마라는 말이 어울렸다.
“다행이십니다. 대표님께서 타고 오신 비행기 이외에 모두 다 결항입니다.”
지사장의 말처럼 입국장은 한산하기 그지없었다.
비바람을 동반한 폭우에 도착편 대부분이 북경 인근 공항에 착륙했다.
운 좋게 주미란이 탑승한 비행기만이 찰나의 소강상태 덕에 착륙할 수 있었다.
“일정은 어떻게 되나요?”
주미란의 심경은 복잡했다.
아직 조카 장태산에게서 특별한 연락이 없다.
최대한 참고 기다렸지만 어쩌면 이제는 조카의 약속에 대한 기대를 접었다는 말이 맞다.
아무리 조카가 잘나가는 사업가라 해도 중국 정치권에 손을 뻗기는 어려울 것이다.
“분위기가 수상합니다.”
머리가 반쯤 벗겨진 지사장이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최악인가요?”
주미란의 인상이 심하게 일그러졌다.
대표라는 신분 때문에 자칫 말도 안 되는 죄목으로 구금될 수도 있다.
식품에 관련된 범죄는 중국에서 특히 형량이 높았다.
한 번 이미지가 망가지면 회복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잘 모르겠습니다.”
“네?”
지사장은 주미란 대표가 믿어온 중국통이다.
진출 초기부터 중국에서 꽌시를 만들며 아리아 초코파이를 키웠다.
그런 그가 아리송한 표정을 지었다.
“왕수룡이 공안에 잡혀갔습니다.”
“보고 받았어요.”
동룡제과 중국 합자 회사 대표였던 왕수룡.
그의 친척이 상무위원 왕정이다.
“자세히는 파악 못 했지만 중앙 쪽 비밀 공안들인 것 같습니다.”
“그럼 일이 더 커진 것 아닌가요?”
주미란의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비밀 공안이 개입되면 사건이 대형화된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
“백방으로 알아봤지만 쉽지 않습니다. 알다시피 비밀 공안이 개입되면 정치 사건과 대부분 연결되어 있다고 봐야 합니다.”
지사장도 꽤 난감한 표정이다.
‘차라리 한국으로 돌아갈까?’
그러나 뜻대로 하기 쉽지 않을 것 같았다.
날씨 때문에 비행기도 대부분 결항일 게 뻔했다.
그때.
“뭐야? 왕정 상무위원이 죽어?”
“어! 진짜네!”
공항 내 몇 되지 않는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공항에 설치된 TV에서 나오는 속보를 보고 난 뒤의 반응이었다.
– 정치국 왕정 상무위원이 심장마비로 자택에서 사망한 채 발견됐습니다. 이에 공안은…….
갑작스러운 사망 소식이었다.
“어!”
지사장의 표정이 심상치 않게 굳었다.
주미란도 중국어를 어느 정도 알고 있어 방송 내용을 알아들었다.
동룡제과와 얽혀 있는 왕정 상무위원의 사망 소식은 당황스러웠다.
“대표님!”
지사장이 심상치 않은 표정으로 주미란을 불렀다.
띠링.
그 순간 주미란의 스마트폰에서 문자 알림음 소리가 울렸다.
당황한 표정으로 스마트폰을 확인하는 주미란.
– 사건 해결되었습니다. 행복한 중국 여행 되십시오.
조카 장태산이 보낸 문자였다.
“설마…….”
주미란은 놀란 얼굴로 다시 TV 화면을 쳐다봤다.
– 자택에서 사망한 채 발견된 왕정 상무위원은 뛰어난 행정력을 바탕으로…….
속보 뒤 다시 모습을 드러낸 앵커가 왕정의 저택을 소개하며 그의 일대기를 읊었다.
“며칠 전까지 멀쩡하던 상무위원이 왜…….”
지사장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이었다.
‘태산아……. 너 이 정도로 대단한 거야?’
조카 장태산과 관련된 게 분명한 왕정의 사망.
고마움보다 두려움과 경악이 주미란의 머릿속을 강하게 메웠다.
***
또로록.
호박색 액체가 조명 빛을 받아 반사됐다.
스트레이트 잔에 적당히 채워진 술.
팰튼 호텔 스카이라운지 바.
비가 내리는 북경은 나름대로 운치 있었다.
다른 건물들보다 위치가 좋아 도시가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늦은 오후다.
아침까지 방태민과 술잔을 기울였다.
방태민은 노익장을 과시하며 기꺼이 나와 대작했다.
마지막까지도 술에 취한 모습을 보이지 않고 꼿꼿하게 자세를 유지했던 방태민.
어떻게 중국의 황제가 됐는지 알게 됐다.
환단 섭취 영향도 있지만 그의 정신력 자체가 존경할 만큼 대단했다.
특수한 상태인 나와의 대작에서도 결코 밀리지 않았다.
그 시간 동안 많은 대화가 오고 갔다.
정치와 전혀 관계없는 과거 이야기가 주를 이뤘다.
후세대인 만큼 방태민의 말을 경청했다.
그사이 아침이 밝아 왔다.
그를 배웅하고 호텔로 돌아왔다.
잠시 잠을 청했다.
비행기는 비 때문에 이륙이 금지됐다.
사방이 감시 중이지만 편안하게 휴식을 취했다.
지난 이틀 동안 심력 소모가 적지 않았다.
나름 긴장이 풀리며 쌓였던 피로가 밀려왔다.
육체와는 무관한 정신적 피로가 대부분이었다.
귀신도 적잖이 기를 소모한 듯 침묵했다.
얼마간 시간이 흘렀을 때 창문을 때리는 굵은 빗방울 소리에 잠이 깼다.
기다리고 있을 이모에게 일이 잘 처리됐음을 알렸다.
마침 TV를 통해 왕정 상무위원의 사망 소식도 들었다.
계획한 듯 문자와 사망 소식이 몇 초를 사이에 두고 이모에게 전달된 셈이다.
나로서는 그의 죽음이 심장병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알 수 없는 씁쓸함이 밀려왔다.
적이라는 사실에 그를 쳐냈지만 그렇게 무식하게 제거할 줄은 몰랐다.
왕정은 중국 정치인을 대표하는 상무위원이다.
그런 그가 하루아침에 거짓말처럼 세상에서 지워졌다.
그들의 철저한 수법이 머릿속에 선명하게 그려졌다.
그들이 구성해 놓은 생태계는 눈으로 보지 않아도 빤했다.
가족과 명예를 지켜주겠다는 약속을 한 뒤 손에 피도 묻히지 않고 제거했을 것이다.
누가 봐도 깔끔할 정도로 뒤처리도 깨끗하게.
방태민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성의를 보인 셈이다.
천안문에서 수만 명을 탱크로 깔아뭉개고 총으로 쏴 죽인 인사다운 처리 방식이다.
결정을 내리면 절대 인정을 두지 않았다.
“안주 나왔습니다.”
머리칼을 가지런히 땋은 예쁘장한 여자 바텐더가 과일 안주를 가져왔다.
“주문 안 했습니다만.”
“서비스입니다.”
서비스라고 하기에는 고급 안주다.
여러 과일들이 정성을 가득 들인 듯 그릇에 예쁘게 담겨 있다.
고급 양주를 마시고 있긴 하지만 이런 서비스를 받을 정도는 아니었다.
“쓸쓸해 보여서요.”
20대 후반의 바텐더는 가지런한 치아를 드러내며 보기 좋게 웃었다.
눈빛이 별처럼 반짝였다.
어떤 목적이나 의도는 없어 보였다.
“감사합니다.”
거절하지 않았다.
중국인이라고 모두 경계하고 적의를 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타인을 배려하는 이들도 꽤 많다.
문제는 불의를 추구하는 악인들이 승승장구한다는 데 있다.
정치인들이나 성공한 경제인들 대부분이 꽌시와 불법으로 권력과 돈을 얻었다.
선한 자들은 바보 취급을 당한다.
살아남기 위해 선한 마음을 숨겨야 목숨을 부지할 수 있는 곳이라고 할 수 있다.
“무엇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힘내세요. 주변에 가족이나 좋은 친구들이 있잖아요. 파파께서 겨울이 되어야 소나무가 푸른 줄 안다 하셨어요.”
바텐더는 부친의 격언까지 언급하며 나를 위로했다.
고마운 간섭이다.
세상 살다 보면 가끔 선의로 다가와 진정한 위로를 주는 이들이 있게 마련이다.
이 여자 바텐더도 마찬가지.
“이름이…….”
“위청이에요.”
그녀의 이름을 기억했다.
이런 직원들이 많아야 팰튼 호텔도 승승장구할 수 있다.
“그럼.”
이름을 밝히고 자신의 자리로 돌아간 바텐더 위청.
다시 유리잔을 깨끗하게 닦는 일에 집중했다.
자신의 직업을 소중하게 여기고 있음이 엿보였다.
안타까웠다.
중국이 만약 천안문 사건 당시 민주주의를 받아들였다면 지금 이곳은 전혀 다른 세상이 되었을 것이다.
누가 뭐라고 해도 동양 유교문화의 본고장은 중국이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종교 등 전반에 걸쳐 주변국에 영향을 미친 것도 부정할 수 없다.
그런 중국이 공산당 일당 독재로 정신이 더 지독하게 오염돼 버린 것이 안타깝다.
공산당은 앞으로도 더욱더 사람들을 옥죄일 것이다.
자신들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수만, 수십만, 수백만 정도는 눈 깜짝하지 않고 죽일 수 있는 이들이 중국 정치인들이다.
– 역시 남자는 얼굴입니다.
옆에서 과일 안주의 기를 빨아 먹던 귀신이 입을 열었다.
나의 침묵에 덩달아 침묵하느라 답답하던 차에 끼어들 핑계가 생겼다.
귀신아.
– 네! 형님!
사람 성의 무시하는 거 아니다.
저 바텐더가 순수한 마음의 발로로…….
– 에이. 그건 아니죠. 다른 테이블 보세요. 형님보다 더 마셔도 과일 안주 서비스 안 나가요.
귀신이 예리하게 현실을 자각시켰다.
스윽 사방을 훑어봤다.
귀신의 말처럼 몇몇 테이블에서 술을 마시던 이들이 있었지만 서비스로 과일 안주가 보이지는 않았다.
저들은 나만큼 쓸쓸하지 않잖아!
– 크크. 괜찮아요. 남자나 여자나 잘나고 예뻐야 눈에 더 들어오는 법입니다. 그게 죄는 아니잖아요.
귀신의 팩트 일격에 입을 다물었다.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말이다.
외모가 뛰어난 이들은 일반인들보다 평생 수익이 20% 정도 더 높다는 연구 결과도 있었다.
쪼로록.
잔이 두 개다.
귀신의 잔에도 술을 채워줬다.
– 형님 심란하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왕정의 죽음이 형님 탓은 아니잖아요. 그리고 왕정이 착한 놈도 아닙니다.
귀신이 아는 체를 했다.
작은 위로는 됐다.
“안타까워서 그런다……. 이 나라가.”
중국인들도 다 같은 지구별의 자식들이다.
그러나 그들을 이끄는 지도자들의 음흉하고 악함으로 인해 지옥으로 끌려가는 이들이 많았다.
그 점이 진심으로 안타까웠다.
– ……다 조상들 탓 아니겠습니까. 후손들을 위한다고 이따위로 길을 인도한 그들의 죄가…….
귀신이 씁쓸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살아서 귀신도 국적은 중국인이었다.
“조상이라…….”
중국 조상들의 입장을 생각해봤다.
다들 자신들을 한족이라 여기지만 소수민족들이 모여 완성된 용광로 속에서 융화된 중국 핏줄이 그들의 현재다.
다양했던 그들의 조상들 모두가 다 이런 사상을 갖고 있지는 않았을 게 분명하다.
꿀꺽.
잔을 비웠다.
그 순간.
파아아앗!
회귀의 전설 3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