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of th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1170
1190장. 응급실의 마법사
“손 이사는 누구인지 아십니까?”
“누구를 말입니까?”
“김현재 사건 암중 지시자요.”
“의원님은 고의로 보십니까?”
“에이. 선수끼리 왜 그러십니까. 당연히 고의죠.”
“정말요?”
“흐흐흐. 우리 손 이사님 요즘 감이 많이 떨어졌어요.”
“가을인데 보약 한 첩 드십시오. 요즘 신경 쓸 일도 많은데.”
삼청동에 위치한 고급 한식집 VIP룸.
커다란 식탁에는 한 상이 떡 벌어지게 차려져 있다.
술잔이 몇 바퀴 돌았다.
회의를 위해 모인 일송회 장로들이 은밀한 대화를 나눴다.
주제는 김현재 전 대표의 교통사고.
전운택과 반종현이 손대균을 향해 웃으며 뼈 있는 말을 건넸다.
손대균의 부친 손국중이 멀쩡했을 때는 감히 입 밖에도 내지 못할 법한 말들이었다.
일송회의 오래 묵은 거두는 그만큼 무서웠다.
하지만 이제 반송장인 손국중의 시대는 갔다.
그 자리를 물려받은 손대균도 회주에게 제대로 찍힌 몸이다.
리앤장 주인이라는 신분만 아니었다면 장로회의에서 퇴출당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아직은 여러모로 쓸모가 있다고 판단되어 남겨두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통하던 손대균의 말발도 더는 먹히지 않았다.
‘개새끼들.’
손대균이 속으로 욕을 퍼부었다.
전운택과 반종현의 비겁하고 야비한 속내를 제대로 확인했다.
이빨을 드러내고 비열한 웃음을 짓는 두 마리의 야수.
손대균이 한두 살 먹은 어린애도 아니고 김현재 사건 뒤에 누가 있는지 정도는 짐작하고 있었다.
그러나 확실하게 범인이 특정되지 않았다.
일송회 장로들도 범인은 아니었다.
돌아가는 분위기로 보아 회주가 벌인 일도 아닌 게 분명하다.
그렇다고 연관이 아주 없다고는 말할 수 없었다.
찝찝하고 저열한 음모의 냄새가 진하게 풍겼다.
“집안에 우환이 많아 예전 같지가 않습니다. 뭔가 알고 계시면 저에게 힌트라도 주십시오.”
손대균은 자신을 스스로 낮추었다.
막상 정황이 궁금하기도 했다.
이렇게 무턱대고 판을 키워버린 장본인이 어떤 미친놈인지 확인하고 싶었다.
“확실히는 모르지만……. 짐작 가는 인사는 있어요.”
반종현이 묘한 표정을 지으며 웃는다.
“누굽니까? 반 회장님 작품입니까?”
전운택도 호기심을 보이며 궁금해했다.
“나도 정확히는 몰라서 장담은 못 하지만 분명한 건 우리 쪽은 아니라는 겁니다.”
반종현이 게슴츠레 눈을 깔며 운을 뗐다.
“우리 쪽이 아니라면…….”
손대균이 그 말을 받고 다시 물었다.
“우리가 아니면 누구겠습니까. 속 시커먼 놈들이 변장하고 있는 야당 쪽이죠.”
“야당요? 누구요?”
전운택이 진심으로 놀라며 눈을 크게 치떴다.
“흐흐흐. 그건 비밀입니다.”
반종현이 다 까놓을 수는 없다는 듯 음흉하게 웃는다.
‘역시…… 그쪽이었어.’
손대균은 반종현을 보자 마음이 착잡해졌다.
여야를 막론하고 타락한 자들은 어디에든 존재했다.
사실 아닌 척하고 모습을 바꾼 자들이 더 무섭다.
겉모습은 새하얀 백로의 모습을 하고 있어도 속은 새카만 까마귀만도 못한 놈들이 적지 않았다.
“반 회장님. 힌트 좀 주십시오. 오늘 2차는 제가 쏘겠습니다.”
야당 쪽이라는 힌트에 전운택이 눈을 빛냈다.
주순자 사건으로 정치권 분위기가 아주 심각했다.
사방에서 봇물 터지듯 쏟아지는 비리 제보에 계획했던 일 대부분이 틀어졌다.
급기야 탄핵 이야기까지 솔솔 나왔다.
그만큼 사건의 정도가 심각했다.
그런 와중에 터진 김현재 전 대표의 교통사고.
한마디로 불똥이 어디로 튈지 짐작도 못 했다.
대신 이 기회를 잘만 이용한다면 다음 선거까지도 큰 문제 없을 것이다.
“힌트라……. 나도 확신은 못 하지만……. 야당 쪽 차기 대권주자들 중에 하나일 거라고…… 생각해요.”
“대권주자급이요!”
전운택이 먹잇감을 발견한 살쾡이처럼 입맛을 다셨다.
“짐작은 그래요. 대권주자 와이프가 찾아와 넌지시 성의 표시를 요구했는데……. 흐흐흐.”
반종현이 뒷말은 뱉지 않고 삼켰다.
‘대권주자급이라…….’
그 말에 손대균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몇몇 야당 인사들이 있었다.
정작 조국일보 반종현과 연관되어 있는 인사는 얼마 없었다.
“흐흐. 그랬군요.”
힌트로 언급된 대상을 전운택이 바로 알아챘다.
“만나서 밥이라도 한 끼 먹어요.”
“그래야죠. 우리 쪽과도 사이가 나쁜 건 아니니까요.”
반종현과 전운택이 서로 눈길을 주고받으며 이를 드러내놓고 웃었다.
“손 이사님도 조만간 시간 가져봐요. 내년쯤이면…… 세상이 바뀌어 있을 테니까.”
반종현이 선심 쓰듯 한마디 보탰다.
“그래야죠. 회를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인물 같으니까요.”
손대균도 적당히 응대했다.
“인물요? 하하하하. 맞습니다. 인물은 인물이죠. 권력을 위해서 동지의 뒤통수도 과감하게 후려치니 본받을 만한 위인이죠.”
반종현이 호탕하게 큰소리로 웃음을 터트렸다.
“그건 그렇고 주순자 건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린 것 같은데.”
“다음 순서로 넘어갑시다. 이제는 멈출 수가 없어요.”
“그럴까요? 김현재가 고꾸라진 마당에 두려울 게 뭐가 있습니까! 하하하하.”
유난히 화기애애한 분위기의 일송회 장로회의장.
손대균은 씁쓸함을 애써 감추며 입에 술잔을 가져갔다.
***
착한 물주?
김국조 이 양반 용기가 가상하다.
호구 물주에서 바로 착한 물주로 호칭을 변경했다.
“네???”
어리둥절한 표정의 의사와 간호사가 다시 묻는다.
“깊게 알 거 없어. 하늘에서 우리 응급센터를 위해 봉으로 내려주신 분이니 각별히 신경 써. 흐흐.”
김국조가 너스레를 떨며 웃는다.
“…….”
아직도 사태 파악을 못 한 응급실 직원들.
“장태산 대표님. 가운 착용하고 이 명찰을 가슴에 달고 계십시오. 그리고 원하는 만큼 구경하셔도 됩니다.”
김국조 교수가 새하얀 가운 한 장과 명찰을 건넸다.
보통 보호자들이 착용하는 것으로 응급실 이용 가능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명찰이다.
특이한 건 다른 보호자들이 부착하는 명찰은 파란색인데 반해 이건 하얀색 바탕이다.
거기에 가운까지 그럴싸하게 걸쳤다.
누가 보면 의사로 착각하기 딱 좋았다.
“감사합니다.”
응급실 한 번 둘러보기 힘들다.
김현재 전 대표는 응급실 옆에 있는 집중 외과 처치실에 입원해 있었다.
중환자실과 조금 달랐다.
아웅대 병원에만 존재하는 특별한 응급 처치 시스템으로 출입 방법이 까다로웠다.
외부와의 접촉을 일체 차단하고 병원 내 감염을 예방하기 위해 무균실로 운영됐다.
곳곳에 CCTV가 완벽하게 작동했다.
자체 경비원들이 상주하고 있는 것은 물론이다.
지금은 김현재 전 야당 대표가 입원해 있다 보니 보안이 더 철저해졌다.
간호사들이 투명 창 너머 수시로 내부를 살폈다.
의사들도 마찬가지.
해킹과 마법을 사용하면 특별 면회가 어느 정도 가능하겠지만 무리수를 두고 싶지 않았다.
자칫 실수라도 하게 되면 다른 환자에게도 폐를 끼칠 수 있다.
정공법을 택했다.
전문구 회장을 비롯해 여러 인맥을 동원했다.
거액을 쾌척하겠다고 하자 총장부터 시작해 모두가 발 벗고 나서주었다.
기부금 1000억이 전혀 아깝지 않았다.
응급센터 쪽으로의 투자가 옳은 선택이다.
무턱대고 돈을 뿌려 포인트를 축적하는 것보다 체계적으로 더 많은 포인트가 벌렸다.
인과가 존재하면 포인트 축적 비율이 많이 달라졌다.
아웅대 응급센터에서 근무하는 센터장을 비롯해 김국조 교수 같은 신념 있는 의사와 간호사들이 쌓은 포인트가 나에게 제법 돌아왔다.
그들에게는 현실적으로 필요한 돈이 지급됐고 나는 포인트를 버는 것이다.
일석이조의 효과.
그래서 호구라 불려도 개의치 않는다.
오히려 미안할 정도다.
죽어보면 알게 되는 오묘한 카르마 포인트의 세계.
띠리리리릿.
그때 응급실 데스크 전화가 요란하게 울렸다.
퍼뜩 스쳐 지나가는 불길한 기운.
“아웅대 응급센터입니다. 무엇을…….”
간호사가 친절한 목소리로 응대하는 그 순간.
– 수원 119 중앙센터입니다. 교통사고 환자 다수가 응급센터로 이송 중입니다!
119 대원의 다급한 목소리.
“네? 다수요?”
간호사가 놀라며 다시 확인했다.
무척 조용했던 응급실이었기에 모두가 통화 내용을 들을 수 있었다.
김국조 교수를 비롯해 모두의 시선이 전화기를 든 간호사에게 향했다.
– 유치원 통학버스를 음주운전 대형 트럭 차량이 들이받았습니다. 안전벨트를 착용하고 있었지만 측면을 들이받아 중상 환자가 다수입니다!
유치원 통학버스라는 단어가 똑똑히 들렸다.
“아, 알겠습니다!”
간호사가 크게 당황하며 답했다.
“무슨 소리야? 유치원이라고 했어?”
바짝 예민해진 김국조 교수의 목소리가 뒤를 이었다.
“네……. 대형 트럭 음주 차량이 유치원 통학버스를 받아 중상 환자가…….”
“아!”
급기야 김국조 교수의 입에서 비명이 터졌다.
“교수님! 지금 소아과 환자들을 받기에는…….”
응급실 소속 의사가 말끝을 흐렸다.
성인과 달리 소아과 외과 수술은 전문성이 특히 더 요구됐다.
다 발달하지 않은 신체를 비롯해 아직은 여러 기능이 미숙한 아이들은 그만큼 수술 위험도가 높았다.
“그럼 어떡해? 우리가 안 받으면 애들 다 서울로 보내?”
김국조 교수가 쐬기처럼 질문을 쏘아붙였다.
“…….”
일순간 응급실이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다들 뭐 해! 중상 환자들이 온다잖아! 배드 확보하고 혈액과 기구들 체크해!”
불호령이 떨어졌다.
“넵!”
타다다닥.
의사들과 간호사들이 발 빠르게 움직였다.
순식간에 응급실 분위기가 긴장 모드로 전환됐다.
귀신이 있었다면 이 틈에 김현재 대표를 보러 가자고 재촉했을 것이다.
그러나 웬일인지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성인도 아니고 유치원생들이 당한 사고였다.
삐뽀삐뽀.
그때 밖에서 요란한 앰뷸런스 소리가 들렸다.
한두 대가 아니다.
“신경외과, 흉부외과를 비롯해 모든 외과에 노티해! 무조건 응급실로 달려오라고 말이야!”
“넵!”
“소아과도 빼먹지 말고 각 의국에 쉬고 있는 인턴, 레지던트 모두 소집해!”
김국조 교수가 전장의 장수처럼 명령했다.
야전사령관이 따로 없다.
“넵!!!”
의사와 간호사들이 익숙한 듯 순식간에 재빠르게 움직였다.
“여기 응급실입니다. 지금 코드 제로입니다! 대기 중인…….”
“병원 관제센터에 연락해! 쉬고 있는 의사들 다 오라고 방송하란 말이야!”
방금 전 응급실 문을 보며 불길하다고 말했던 김국조 교수.
그의 예감이 현실이 됐다.
뿐만 아니다.
스스슷.
응급실 밖에서 안으로 들어오는 흐릿한 모습들.
아웅대 병원에 상주하는 저승사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 안타깝게도 오늘은 애들이네요.
– 전생의 업이 얽혀 있다지만 이렇게 운명이 가혹하다니…….
– 부모들 가슴이 찢어지겠습니다.
– 어쩔 수 있나. 이 또한 하늘이 정한 운명……. 엇!
남녀 저승사자가 응급실로 들어서다 나를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씩.
그들을 보며 미소 지었다.
끼이이이익.
밖에서 브레이크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왔습니다!!!”
회귀의 전설 3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