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of th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120
119장. 포인트 교환소장
빛이 터졌다.
그런데 문제는 평소와 같은 밝은 빛이 아니라 아주 새카만 어둠의 묵빛이다.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뭔가 잘못된 게 확실했다.
눈을 떴지만 보이는 게 없다.
짙은 암흑, 싸늘한 기운, 지독한 침묵이 감쌌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동안 만났던 신들은 대부분 순박했다.
신들을 우습게 안 죄로 벌을 받는 것 같다.
“저, 저기 누구 계십니까.”
발음이 조심스러웠다.
뭐가 보여야 대책을 세울 수 있겠지만 응답이 없다.
이런 상황은 처음이다.
신들의 세계에서 무력을 어떻게 사용할 수 있는지 방법도 몰랐다.
아직 산 자인 내가 신들과 맞짱 깔 일이 없다.
딸깍.
그때 맑고 날카로운 라이터 소리가 들렸다.
유명한 지포 라이터 같다.
화르르르.
10미터 전방에서 작은 불꽃이 일었다.
그리고 보이는 한 남자의 실루엣.
검정색의 가죽 롱코트를 걸치고 의자에 앉아 있다.
다리를 꼰 채로 길게 자란 머리칼 때문에 얼굴이 안 보였다.
뭔지 모르지만 제법 폼은 났다.
시가에 불이 붙었다.
길게 흡입하는 남자는 아직도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후우우우.”
불이 붙은 시가를 깊게 흡입하며 남자는 길게 숨을 뱉었다.
세상에!
코로 맡아지는 향기가 끝장이다.
담배를 피우지 않는 나였지만 놀라운 냄새다.
인간계에서는 결코 경험할 수 없는 그런 향이다.
“누구십니까?”
분명 신이 확실했다.
내가 청했고 응답이 확실히 왔다.
하지만 내가 아는 신들과 달랐다.
시가 불빛 사이로 보이는 어스름한 형태는 영화에서 보던 암살자나 음모자 같았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는 공간.
신들 세상에도 청부 조직이 없다고 보장 못 했다.
긴장하며 그를 봤다.
얼굴은 서양인이 확실했다.
누군지 감을 잡지 못했다.
난 분명히 컴퓨터를 잘하는 신을 불렀건만 나타난 자는 분위기만 요상하게 잡았다.
파식.
시가를 다 피운 듯 불이 꺼졌다.
제법 긴 시간이었지만 침묵만이 감돌았다.
온몸에 닭살이 돌며 긴장됐다.
내 마음대로 인간계로 돌아갈 방법을 몰랐다.
지금껏 계약이 끝나고 서로 만족한 상태에서 자연스럽게 신들의 세계에서 빠져나왔다.
그런데 오늘 임자 만난 것 같다.
“부쉬코프 블라드미르 드미트리비치.”
러시아? 동유럽?
이번 신선은 슬라브 민족의 러시아 계통인 것 같다.
누구냐고 묻자 참 빨리도 이름을 알려줬다.
“시……, 신이 맞습니까?”
목소리가 떨렸다.
“아마도.”
젠장! 신이면 신이지 아마도는 또 뭐야!
숨은그림찾기도 아니고 비밀이 많은 신이다.
“널 기다렸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
“저를요?”
“네가 날 부를 수밖에 없으리라 생각했다.”
이 신선은 뭔가 특이한 능력이 있는 것 같다.
“실망이다.”
비웃음이 감도는 목소리다.
“뭐, 뭐가 말입니까?”
“생각보다 늦게 포인트를 모았다. 다른 인간들과 다르게 말이다.”
다른 인간?
나 말고 다른 거래자가 있나 의심이 든다.
암흑 속에서 얼굴도 안 보이는 신과 은밀하게 대화가 이뤄졌다.
그런데 말 속의 의미가 이상했다.
요즘 쏠쏠하게 카르마 포인트를 모았건만 부족하단다.
“어두운데 조명 좀 켜주시면 안 됩니까?”
이런 공간은 누구에게나 환영받지 못했다.
“……, 참아. 너와 난 첫 거래다. 내가 널 믿을 수 없다.”
이 신 뭔가 이상하다.
불 좀 켜 달랬더니 허튼소리를 뱉는다.
“신선이시잖습니까. 서로 믿고 살아야 신선계에도 밝은 미래가 있는 거 아닙니까?”
“바보군.”
헐! 이제 날 바보란다.
나에 대한 명백한 도발이다.
“도대체 누구십니까!”
목소리 톤이 살짝 커졌다.
점점 내 간도 부어갔다.
“부쉬코프 블라드미르 드미트리비치.”
“이름 말고 소속 말입니다! 제우스배 출신입니까? 아니면 셀프? 그것도 아니면 일당직입니까?”
아는 지식을 모조리 동원했다.
서양신이기에 제우스를 언급했다.
“제우스라……. 재수 없는 이름이군. 후후.”
제우스를 재수 없다고 감히 말하는 자.
이제야 확실히 깨달았다.
소환될 때 보였던 검은 빛.
그리고 선신을 모욕하는 저 발언.
“아, 악신!”
심장이 쫄깃하게 뛰었다.
“악신이라……, 후후. 정식으로 소개하지. 어둠의 카르마 포인트를 사랑하는 어둠의 신 블라드미르다.”
“아!”
놀라는 사이 몸이 떨렸다.
사채업자도 존재한다는 악신계에 소환이 됐다.
그동안 찝찝했던 어둠의 카르마 포인트의 사용처를 찾았다.
“쫄지 마라. 난 인간의 영혼을 탐하는 다른 놈들과는 달라.”
“여, 영혼을 탐해요?”
“가끔 인간들 중에 광적인 살인을 하거나 대규모 사기를 벌이는 놈들은 대부분 영혼을 판 놈들이다.”
그래 인간 중에도 인간 같지 않는 놈들이 많다.
“한 가지 팁을 주겠다. 영혼을 판 놈들은 눈빛이 죽는다.”
“네?”
“너희 동네 말로 일명 썩은 동태 눈깔 한 놈들은 대부분 욕망에 영혼을 판 자들이라는 의미다. 악신들이 강림한 상태라고 보면 된다. 그들은 그렇게 카르마 포인트를 획득한다.”
“아! 그렇군요.”
이해가 확 갔다.
가끔 티비에 나오는 흉악한 범죄자들이나 똥덩어리 정치인들 눈동자에서 아무 빛이 없는 걸 본 적 있다.
영혼이 깨어 있는 자는 눈빛부터 맑다는 말이 사실이라는 걸 알았다.
“컴퓨터 활용능력을 얼마나 원하나?”
“이것저것 능력 되시는 것 전수해 주십시오. 섭섭지 않게 드리겠습니다.”
악신이라 불리는 어둠의 신들도 포인트가 목적이다.
장사하는 사람이 사람 인성 가리고 파는 건 아니다.
나도 마찬가지다.
“후훗. 겁이 없는 인간이군. 지금 계약이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 아는가?”
“모르겠습니다.”
“어둠의 카르마 포인트는……, 일종의 보증금이다.”
“보증금요?”
신들 참 복잡하게 사는 것 같다.
악신이라서 그런지 누구를 잘 못 믿는 게 확실했다.
“어둠의 카르마 포인트는 어둠의 신들을 소환할 수 있는 첫 번째 조건이다.”
“보증금 밖에 없으면 능력을 교환할 수 없는 겁니까?”
“흐흐. 아니다. 너에게는 아주 맛난 포인트가 넘친다. 다만 보증금 문제가 남았을 뿐이다. 그러나 이제 보증금을 충족했다.”
내가 나쁜 짓을 적당히 했다는 소리로 해석됐다.
어둠 속에서 침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어둠의 카르마 포인트로 교환하는 거 아닙니까?”
“그건 하품이다. 영혼을 판 인간들이 건네는 싸구려다. 순수하지가 않다.”
“그럼…….”
“네 카르마 포인트를 주면 된다. 싱싱하고 빛나는 그 포인트를!”
이 어둠의 신이 내 선한 카르마 포인트를 노렸다.
처음으로 그의 눈동자가 어둠 속에서 빛났다.
호흡도 살짝 거칠어짐을 느꼈다.
흥분하고 있다.
저 신.
동시에 심장이 차가워졌다.
조금 전 받았던 두려움과 낯선 신경들이 무뎌졌다.
훗. 지금 딱 들켰다.
신들과 장사 한두 번 하는 것도 아니고 날 호갱으로 봤다.
“거절하겠습니다. 정중히.”
“뭐, 뭐라고!”
당황하는 신을 보자 여유가 천천히 피를 타고 흘렀다.
그래, 바로 이 맛이다.
내가 언제부터 신들 눈치를 봤나.
신계 포인트 교환소장 장태산이다!
“제 어둠의 카르마 포인트가 어둠의 신들과 계약할 수 있는 계약금이라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목소리를 쫙 깔았다.
“맞다! 그러니까 나와 계약하면 된다. FSB! 러시아 연방보안국에서 난 해커의 신으로 불렸다. 미국의 NASA를 비롯해 NSA, GCHQ, MSS 등등 세계 각국 비밀조직 중 내가 못 뚫었던 인터넷 방어망은 없다! 핵무기 비밀번호까지 알고 있다! 날 믿으라. 너에게 인터넷을 지배할 수 있는 능력을 주겠다!”
어쩐지 분위기에 힘 빡 주었던 이유가 있다.
줄줄이 세계 각국 비밀첩보조직 이름이 나왔다.
러시아 연방보안국의 전신은 KGB다.
그곳에서 날렸던 해커인 건 알겠다.
하지만 세상이 변했다.
“그 실력으로요?”
도전 한 발을 날렸다.
“뭐라고! 내 실력은 지금까지 탑이다!”
“블록체인 기술 아세요?”
“뭐? 블록체인?”
블라드미르의 목소리가 떨렸다.
고객님이(?) 당황한 모습이 훤히 보였다.
“그럼 비트코인은요?”
“……그게 뭐냐!”
“인공지능 A.I가 우주 별들 셀프로 발견하는 건 압니까? 자동주행 자동차 주행 프로그램은 제작할 수 있습니까?”
“무슨 소리야! 아직 그런 건 개발되지 않았어! 최근 버전까지 다 훑어도 없어!”
그렇지요.
2008년은 아직 스마트폰 열풍 시작도 안 됐습니다.
신들도 미래를 모르는 게 확실했다.
승기를 잡았다.
“확실해요? 책임질 수 있습니까? 아니면 신의 탈 버리고 다시 개로 태어나겠다고 약속할 수 있습니까?”
강하게 밀어붙였다.
“…….”
어둠의 신 블라드미르는 입을 다물었다.
2020년까지 살다 온 나다.
2008년 인터넷과 컴퓨터 지식들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했다.
핸드폰에 개인비서 기능까지 추가된 시대다.
내가 알고 있는 단편 지식만으로 해커 천재를 구석으로 몰았다.
“불 좀 켜도 됩니까?”
“니, 니가 무슨 수로!”
“그럼 허락받은 것으로 알겠습니다.”
갑과 을의 관계가 뒤바뀌자 여유가 한없이 넘쳤다.
블라드미르는 날 우습게 봤다.
나는 신들의 세계로 나무도 점프시켰던 능력자다.
기를 집중했다.
그리고 간절하게 생각하며 한 물체를 소환했다.
파아아앗!
갑자기 환환 빛이 터졌다.
유세라 팀장이 사무실 장식용으로 구입한 커다란 마법사 야광 구슬.
그 녀석이 소환되며 아낌없이 푸른빛을 토했다.
그리고 보이는 공간과 사람.
“헐? 이게 다 뭐야!”
난 깜짝 놀라고 말았다.
# 120
회귀의 전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