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of th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1219
1239장. 나…….
쿠우우우우웃,
이륙한 비행기는 고도를 높이며 목적지로 향했다.
비행기는 평온하고 안락했다.
이동 시에는 비행 통제 구역이 자동으로 설정됐다.
미국 내 영공을 통해 이동하고 있지만 주변 상공에 호위기들이 따라붙었다.
미국 대통령 전용기 에어포스 원.
“…….”
오늘따라 기내는 조용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오른손으로 턱을 괸 채 생각에 잠겼다.
이동할 때면 보좌관들과 유머러스한 대화를 즐기던 오바마의 평소 모습과 달랐다.
보좌관들도 덩달아 침묵했다.
무거운 기운이 기내에 흘렀다.
‘나도 늙었군…….’
창밖을 보며 생각에 잠겨 있던 오바마는 유리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씁쓸해졌다.
그렇다고 지나온 세월에 대해 후회하지는 않았다.
인간으로 태어나 목표했던 것들을 충분히 이뤘다.
세계의 최고 권력을 손에 쥐었다.
그 어떤 것과도 비교 불가능한 미국 대통령만의 권좌가 주는 힘이었다.
두려울 것 없이 자신의 신념을 관철시켜 왔다.
테러와의 전쟁도 수시로 치렀다.
시뮬레이션 게임처럼 세계의 흐름이 그의 손안에서 조종됐다.
그런 과정에서 여러 가지 뿌듯한 성과를 내기도 했다.
의회로 인해 좌절한 일도 몇 가지 존재했지만 그 정도는 충분히 소화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오늘과 같은 치욕과 패배감을 맛본 건 처음이다.
다니엘과 대면하게 될 때마다 민망한 상황이 번번이 연출되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
몽둥이를 들고 달을 향해 휘두르는 어리석은 자로 취급받는 사태가 초래됐다.
결국 토끼 간을 노리는 멍청한 거북에 비유되고 말았다.
앞으로는 더 이상 만날 일이 없다는 모욕은 기본적으로 깔려있었다.
인내심 하나는 누구보다 자신하는 오바마도 자신의 인내에 바닥을 드러냈다.
동요하지 않겠다 몇 번이나 다짐했지만 소용없었다.
그리고 얻게 된 결론.
‘도대체 누가 그를 통제할 수 있단 말인가.’
단판의 협상을 펼치려 시도했지만 도리어 협박당하는 입장이 됐다.
힐러리를 회생 불가능한 상태로 만들어 버릴 수 있다고 엄포를 놓은 다니엘의 경고.
그의 말은 결코 농담이 아니었다.
사실 힐러리에게는 커다란 문제점이 몇 가지 존재했다.
민주당 내부에서도 극소수만 알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 내부적 일을 다니엘이 어느 정도 알고 있다는 눈치를 보였다.
말문이 막혔다.
이 시점에 악재가 터지면 정말 수습이 불가능했다.
승승장구하는 트럼프를 견제할 수 있는 인재는 민주당에 힐러리밖에 없다.
그녀는 오바마와 국정 철학도 비슷하다.
미국을 위해서는 안정적인 국가 경영 능력이 필요했다.
‘너무나 냉정해. 아무리 차일드 가문의 조력을 받는다지만 그 이상의 무엇이 존재해. 마치 미래를 다 알고 있는 것 같아.’
가끔 의심이 들었다.
다니엘이 미래를 볼 수 있는 초능력자가 아닌가 하고 말이다.
더구나 다니엘의 지시를 받는 로버트는 거침없이 승승장구했다.
여러 자료를 검토한 오바마는 압도적인 수익률과 파격적 투자 방식에 혀를 내둘렀다.
미래 예측 정도가 아니라 확신이 없다면 승부를 내지 못했을 것이다.
대통령 신분만 아니면 따로 만나 조언받고 싶을 정도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다니엘이 미국의 대통령인 자신을 겁박한 것이다.
누가 들으면 믿지 못하고 웃을 일이지만 오바마로서는 심각했다.
심각한 점은 그가 미국 대통령 자리의 판세를 바꿀 만한 위협적인 자라는 사실이다.
그렇다고 제거할 수도 없다.
어느 틈에 세계를 움직이는 권력의 한 축이 됐다.
게임 규칙을 바꿀 수 있는 게임 체인저가 된 다니엘.
“하아.”
오바마의 입에서 한숨이 끊이지 않고 흘러나왔다.
정신적으로 느끼는 피로감 지수가 높아졌다.
덩달아 백악관에서의 시간적 흐름이 느려지고 있다.
지난 8년간 한팀처럼 움직였던 보좌관들의 움직임도 수상했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성대한 파티가 끝나가고 있다.
이제 각자 자신의 살길을 궁리해야 할 시점임을 부인할 수 없었다.
당사자인 오바마만큼이나 다들 심란한 입장이다.
힐러리가 아닌 트럼프가 당선된다면 당장 다들 짐을 빼야 한다.
그 수를 대략 가늠해도 연방 행정부에 속한 인원만 1000명이 넘어간다.
먹고 먹히는 권력의 전쟁판.
‘그런데 왜 무관심해 보이는 거지? 지난 행보를 보면 애국자가 맞는데.’
다니엘은 사드 철회를 단호하게 거절했다.
무관심한 방관자처럼 굴었다.
거기서부터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다니엘과 접촉하고 있는 야당 측 인사를 대통령에 당선시켜 주겠다 분명하게 말했음에도 거절했다.
사실 한국 정치권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시뮬레이션과 여러 정보를 조합한 결과 현 대통령은 심각한 수준의 레임덕에 빠질 것이다.
어느 나라 국민도 자신들이 뽑은 대통령이 일개 주술사의 통제하에 있는 걸 원치 않았다.
힐러리가 갖고 있는 약점 중 하나도 이와 같다.
영험한 주술사가 힐러리의 곁에 존재했다.
힐러리도 비밀리에 접촉하고 있지만 오바마는 진작부터 알고 있었던 일이다.
‘국민의 마음이 하늘의 마음이라고…….’
오바마는 다니엘이 던진 말이 마음에 단단히 걸렸다.
과거와 달리 잊고 있던 국민의 마음.
오바마는 깊은 고심에 빠졌다.
트럼프의 알 수 없는 흥행 돌풍.
무언가 크게 놓치고 있음이 분명했다.
그러나 그것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잡히지 않았다.
아무리 고심해 봐도 오바마로서는 국민들의 현재 마음을 짐작하기 어려웠다.
기본 상식이 장착된 이들이라면 서부 악당 같은 트럼프를 지지하는 게 얼마나 상식 밖의 행위인지 알 테니 말이다.
***
“장태사아아아아안!!!”
나의 이름을 목청껏 부르며 한 여인이 달려왔다.
사라라랑.
긴 머리칼이 바람을 타고 날렸다.
농담이 아니라 바람보다 더 빠른 속도로 달려왔다.
그리고.
와락!
충격이 느껴질 정도로 품에 격하게 안겼다.
좋다!
로버트 같은 남자들과 안는 것과 느낌이 사뭇 달랐다.
품에 쏙 안기는 그녀.
부드럽게 두 팔로 그녀를 품었다.
“보고 싶었어!!!”
심장 박동으로 전달되는 그녀의 진심 어린 마음.
처음 만날 때와 달리 이제는 마음을 그대로 표현할 줄 알았다.
“나도.”
“정말?”
“응.”
스으윽.
어미 품에 안긴 캥거루 새끼처럼 깊숙이 파고드는 그녀.
그렇게 한참을 그녀는 내 품을 독차지했다.
스윽.
잠깐의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갈증이 해소된 듯 고개를 드는 손유리.
“건강해 보여.”
“나 완전 튼튼해졌어.”
나이를 거꾸로 먹는 것 같다.
학교에서 처음 봤을 때보다 피부가 더 고와졌다.
러시아에서 가장 척박한 동네에서도 이렇게 꿋꿋하게 버텼다.
그 대신 외모와 달리 눈빛은 현숙해졌다.
세월이 주는 고통을 이겨낸 자만이 담을 수 있는 현명함이 두 눈에 또랑또랑하게 자리잡았다.
그러나 나를 향해서만큼은 어린아이같이 천진난만함을 감추지 못했다.
“선배는 이곳 체질인가봐.”
“그렇지? 나 여기 완전 좋아. 오염되지 않은 하늘과 땅, 바람이 날 숨 쉬게 만들어.”
과거라면 위리안치 당하는 유배지와 다를 것 없는 장소다.
사하 공화국은 러시아에서도 가장 낙후된 곳들 중 하나다.
그런 곳에서도 손유리는 행복을 찾아냈다.
한국에 있는 누구와도 연락하지 못했다.
가끔 비밀 보안 통신을 통해 엄마와 통화하는 게 전부인 곳에서 생활하고 있다.
손대균 선배와는 전혀 연락하지 않았다.
서로 애써 피하고 있었다.
딸의 안전을 위해 손대균 선배가 스스로 고통을 짊어졌다.
손유리 역시 직접 두 눈으로 위험을 확인했기에 고통스러워도 인내했다.
“외롭지 않아?”
“씨큐리티 여직원들과도 친해졌어. 다들 엄청 착해. 같이 사냥도 하고 요리도 하고 술도 마시며 밤새 수다도 떨어.”
씨큐리티 직원들이 이곳에 교육차 파견을 나와 있다.
월급의 두 배가 넘는 특별 수당이 지급되는 좋은 기회였다.
이곳은 최적의 훈련 장소가 돼 줬다.
시간이 흐를수록 참여 경쟁률이 높아졌다.
훈련도 받고 돈도 벌며 때 묻지 않은 러시아의 천연 자연을 즐길 수 있는 기회였다.
차르의 허락으로 이곳 일대는 나의 영지가 됐다.
허락 없이는 아무도 들어올 수 없는 곳이다.
첩보 위성들 몇 개가 상공에 떠 상시 감시했다.
작은 움직임이라도 생기면 시은 선배의 비밀 보안팀이 즉각 알려왔다.
군에서 활약하던 씨큐리티 남직원들은 각종 무기를 다룰 줄 알았다.
대전차와 대공 무기도 사용 가능한 수준이다.
준 군사 요새나 진배없다.
차르가 선물한 최신형 공격형 헬기도 존재했다.
전투기급은 아니지만 무장이 장착된 프로펠러 비행기도 격납고에 대기 중이다.
현재 이곳에서만 훈련 중인 직원들이 100명을 넘는다.
누구의 눈치도 볼 필요가 없다.
군대에서 전역한 씨큐리티 직원들은 자신들 병과에 맞게 능력을 키워나갔다.
게다가 마법이 바탕에 깔렸다.
멀린 같은 사악한 마법사의 공격에 대비할 필요가 있어서 취한 조치이다.
과거부터 이곳에 올 때마다 시범적으로 알고 있던 마법진을 설치했다.
아무도 감지하거나 느끼지 못했다.
마력석과 마법진이 하늘과 땅을 감시하는 셈이다.
흑마법사들이 싫어라 하는 신성 마법 주문도 걸어놓았다.
이 몸이 신이라 가능했다.
이곳은 나만의 왕국이자 신전과 같았다.
그런 곳에서 손유리가 살고 있다.
“그림 실력은 많이 늘었어?”
“응!”
손유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표정과 몸짓에서 자신감이 넘쳤다.
기본 실력이 탄탄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프랑스 유학 시절 나름 아픔도 겪었던 손유리.
특히 예술가들은 역경과 고난을 통해 성장하는 법이다.
옹이 없는 나무는 바람에 쉽게 흔들리고 부러진다.
감정적으로 밑바닥을 경험해 봐야 어느 정도 그것을 예술로 승화시킬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손유리는 인생에서 얻은 큰 경험이 많았다.
사랑하는 나와의 이별도 부모님과의 갈등도 맥락이 같았다.
프랑스에서 홀로서기하며 치열하게 살아왔던 성장의 시기도 한몫했다.
그리고 눈으로 직접 본 악마와의 전투까지 모든 게 그림의 소재가 됐다.
“기대되는데?”
“그래도 태산이 너만큼은 아니야. 넌…… 넘사벽이야.”
솔직히 나는 사기 캐릭터다.
예술계 신들이 듬뿍 퍼준 버프가 차고 넘쳤다.
“천재는 하늘이 내리는 법이야.”
“그것도 인정.”
손유리는 확실히 내 팬이다.
남들이 들으면 싸가지 없다고 할 만한 말들도 기쁨으로 받아들였다.
“한 수 가르쳐 줄까?”
“그 전에……. 해줄 거 없어?”
“뭐?”
“그거 있잖아…….”
손유리가 잔뜩 기대에 찬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녀 목소리가 쫙 깔려 귓속을 파고들었다.
바라보는 시선이 무척 뜨겁다.
쿵! 쿵!
덩달아 심장이 빠르게 뛴다.
누가 뭐라 해도 부정할 수 없는 건 손유리와 가장 가까운 사이란 거다.
눈빛과 눈빛이 서로 섞였다.
이럴 때는 말보다 행동이 먼저.
스윽.
손유리의 머리칼을 천천히 쓸어넘겼다.
주변에 기립해 있던 직원들도 눈치껏 빠져줬다.
주변 사방에 아무도 없다.
“나…….”
손유리가 어깨에 고개를 기대왔다.
그리고.
촉촉하게 젖어드는 그녀의 목소리.
아직 저녁 해가 많이 남아 있는데…….
“배고파. 맛있는 요리해 주면 안 돼?”
응? 뭐, 뭐라고???
회귀의 전설 3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