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of th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1239
1259장. 마탑주(2)
“개인…… 이동 마법이라니…….”
황실수호공작의 마법으로 실력 있는 마법사들이 모두 박살났다.
아린은 때를 놓치지 않고 전군에 공격 명령을 내렸다.
두려워했던 마법사들이 피떡이 된 것을 확인하고 사기가 치솟았다.
기사들과 기마병들이 성문을 열고 거침없이 출진했다.
어느 것도 거칠 게 없었다.
믿었던 마법사들의 허망한 죽음에 왕국 연합군들 역시 정신이 무너졌다.
평소 전력이었다면 상대하기 불가능했던 전투다.
수백이 넘는 기사들은 모두 다 각 왕국의 최정예들이다.
그러나 한순간 사기가 무너지자 최정예 기사들도 허접한 병사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말발굽에 치이고 앞만 보고 도망치다 죽임을 당했다.
상당수 인원은 항복했다.
대부분 파티나 즐기고 아랫사람들을 부리는 데만 익숙했던 기사들은 지키는 시종과 병사들이 부재 상태가 되자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그렇게 전장은 순식간에 정리됐다.
갑옷까지 벗어 던지고 도망치던 자들도 속속 붙잡혔다.
갑옷을 정복하고 성벽 위에서 총지휘하던 아린은 펼쳐지는 광경에 심장이 벅찼다.
마탑과 고위 귀족들을 한꺼번에 쓸어버렸기에 앞으로 제국 부흥군에게는 더욱 거칠 게 없었다.
상상하지 못했던 엄청난 승전보.
상공에서 7서클 마법사들을 상대하고 있던 황실수호공작을 아린은 사랑스러운 시선으로 바라봤다.
그러던 차에 이변이 발생했다.
이동 마법으로 공간이 열렸다.
마법진을 이용한 이동 마법과 달랐다.
이동 마법진을 이용하면 공간에 제약을 받는다.
좌표가 완벽해야 펼칠 수 있다.
한 번 발동하면 멈출 수 없기도 했다.
그러나 개인 이동 마법은 사정이 달랐다.
순수한 개인의 마나와 마법을 이용해 공간을 열고 나타난 자.
아무나 펼칠 수 있는 마법이 아니었다.
공간좌표를 스스로 설정할 수 있는 마법진.
목적지가 위험한 장소일 때 미리 살펴보고 마법을 취소할 수도 있다.
마법진 없이 순수한 개인의 마법 능력으로 이동 마법을 펼칠 수 있는 자는 대륙에서 손에 꼽힌다.
한마디로 8서클 이상의 마법사만 가능한 일.
“데오드란 탑주…….”
아린은 개인 마법진을 통해 홀연히 나타난 상대가 누구인지 알아챘다.
젊은 남성의 얼굴에 새하얀 머리칼을 휘날리며 나타난 인물은 대륙에 단 한 명 있는 데오드란 탑주.
마법사라면 누구나 알아야 할 인물이기도 했다.
대마도사라 불리는 8서클 마법사.
사르칸 마탑의 당대 주인인 데오드란 마탑주가 피로 물든 전장에 모습을 나타냈다.
위이이잉.
탑주의 등장과 함께 대기의 마나가 진동했다.
인간의 한계라는 8서클 마법사는 마나의 축복을 받은 자들이다.
파르르르.
아린의 몸이 거칠게 떨렸다.
마탑주가 그냥 나타났을 리 없다.
만약 앞서 탑주가 직접 이곳에 강림했다면 방어 마법진은 진작 붕괴되었을 것이다.
이런 자리에 탑주가 나타날 거라는 생각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마탑주는 전장에 직접 참전하지 않는다는 불문율이 엄연히 존재했다.
과거 왕국들이나 제국의 전쟁에도 탑주들은 절대 개입하지 않았다.
자칫 드래곤을 깨울 수 있기에 8서클 마법사들은 마탑의 상징적 주인으로서만 그 역할을 수행했다.
그런데 오늘은 행보가 무척 달랐다.
데오드란 마탑주가 눈앞에 직접 강림한 것이다.
“베커…….”
아린은 조용히 사랑하는 남자의 이름을 불렀다.
방어 마법진이 사라져 모든 것들이 깨끗하고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눈에 가득 들어오는 베커 장 공작.
항상 당당하던 그도 마탑주 앞에서는 작아 보였다.
현실적으로 상대가 되지 않았다.
7서클 마법사가 제아무리 고서클 마법사라 불려도 8서클 마법사 앞에서는 어린아이 수준에 불과했다.
불과 한 서클 차이지만 마나량은 열 배 이상이었다.
거기에 인간들 사이에서는 마법의 끝을 달리는 자리였다.
간단한 1서클 마법도 8서클 마법사가 시전하면 7서클 마법 이상의 수준이 된다.
“…….”
전장이 일순간 고요해졌다.
도망치거나 항복하던 왕국 연합군, 추격하던 제국 부흥군 모두 하늘만 멍하니 올려다봤다.
“탑주님을 뵈옵니다!!!”
살아남은 7서클 마법사들이 데오드란 탑주를 확인하고 고개를 깊이 숙였다.
오로지 베커 장 공작만이 의연하게 마탑주의 앞에서 뻣뻣하게 버티고 서 있었다.
‘신이시여. 진정 제국을 버리시나이까!’
아린은 그 모습에 깊은 절망을 맛봤다.
왕국 연합군보다 더 두려운 존재인 마탑주.
사랑하는 남자가 걱정됐다.
단 한 번의 마법으로 세상에서 존재 자체가 지워질 수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아린도 마법을 펼쳐 그를 도울 수 없었다.
8서클 마법사가 뿜어내는 마나의 위엄에 마법 자체가 말을 듣지 않았다.
드래곤은 아니지만 일반 마법사에게는 그 정도로 강한 공포심을 안겼다.
“미안해요……. 베커.”
아린은 피가 날 정도로 강하게 입술을 깨물었다.
모든 게 자신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저 이 악몽 같은 순간이 깨고 나면 사라질 꿈이기를 바랄 뿐이었다.
***
젠장! 빌어먹을!
욕이 입술을 비집고 튀어나오려 했다.
8서클 인간 마법사는 자르반 탑주에 이어 두 번째다.
볼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8서클 마법사는 진짜 강한 존재들이다.
평생 마법을 수련해 온 노괴물들.
데오드란 탑주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마나는 사람을 질식시킬 듯 촘촘하고 무거웠다.
보는 것만으로 마나가 위축됐다.
자르반 탑주와 달리 상대는 적이다.
두렵지 않다면 그게 이상한 일이다.
– 진짜 쫄리나 보네. 흐흐. 우리 동네에서는 애들 수준에 불과한데.
알파닥은 나의 심리를 간파하고 대놓고 염장질이다.
마신을 모시는 마족임이 명확해진 알파닥.
왜 나와 엮였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솔직히 이런 상황에서도 별반 도움이 안 된다.
직접 싸워주기라도 한다면 지금껏 쌓였던 모든 원한 관계를 청산해 줄 수도 있는데…….
– 꿈 깨라. 난 이곳에서 힘쓰면 안 돼. 그리고 본체도 아니야. 괜히 힘쓰다 도마뱀들 깨어나면 골치 아파.
이럴 때 도와주면 평생 업고 다닐 수도 있다.
알파닥 소원 찬스를 사용하겠다!
– 겨우 저서클 마법사 하나 치워주고 8서클 마법사를 상대하라고? 너도 양심 좀 있어라. 그리고 애들은 맞으면서 크는 거야. 힘내. 흐흐흐.
웃음소리가 고약하고 얄밉다.
알파닥에게 끝내 도움은 받을 수 없을 것 같다.
그렇다면.
“다시 묻겠다. 네놈이 한 짓이냐?”
알면서 묻는 괘씸한 데오드란 탑주.
“아마도 그런 것 같소.”
나도 명색이 제국 황실수호공작이다.
일개 마탑주에게 쫄아 하인처럼 대답할 수는 없다.
“정신 나간 마족은 아닌 것 같은데……. 겁을 상실했군.”
– 아이씨! 여기서 정신 나간 마족이 왜 나와!
알파닥이 발끈했다.
이쯤 머리를 스치는 생각 하나.
“내가 마족이라면?”
툭 내뱉은 질문.
말은 깠다.
어차피 서로가 좋게 끝날 판이 아니다.
“……네놈은 마족이 아니야. 진짜 마족은 몸에서 대단한 비린내가 풍기지. 맡으면 코가 썩을 지경으로 말이야.”
– 비……린내? 야! 나이도 어린놈의 새끼야! 네놈이 맡아 봤어? 나 향수 아주 비싼 거 쓰거든! 그리고 마나로 매일 샤워도 해!
알파닥이 악을 쓰는 소리가 귀청을 때렸다.
백날 말해봐야 막상 들어야 할 인간들은 못 듣는다.
알파닥의 고함에 잠시 두려움에 휩싸였던 마음이 살짝 풀렸다.
“듣는 마족 섭섭하겠어. 아무리 그래도 마족은 인간과 다른 무서운 존재인데.”
“그깟 마족들 두렵지 않다. 마계에서 벗어나지도 못하는 마족 따위는 마탑에서 기르는 잡종개만도 못한 놈들이다.”
– 자, 잡종개! 으아아아아아아아!
알파닥이 미친 듯 고함을 질러댔다.
고막이 찢어지다 못해 터지려 했다.
대놓고 마족들을 시고르자브종 취급하는 데오드란 탑주.
– 죽여버릴 거야! 지옥까지 따라가 입을 찢어 버릴 거라고!!!
데오드란 탑주에게 저주가 내리는 환상이 보였다.
“그건 그렇고……. 이렇게 찾아온 이유가 뭐지?”
– 베커 공작! 저 자식 주둥이 찢어버려! 내가 소원권 열 개 쏜다!
성질 고약한 알파닥이 드디어 분개했다.
솔직히 나도 그러고 싶다.
그러나 마탑주는 만만하게 볼 허접한 마법사들과 달랐다.
주둥이 찢기 전에 내 온몸의 가죽이 벗겨질지도 모른다.
그래도 일단 콜!
“이유? 근본도 모르는 놈이 공작 행세더냐? 황가의 피가 확인되지도 않은 계집을 황제라 부르더니 간이 부었군.”
말투가 귀에 거슬린 모양이다.
그렇다고 사과하기에는 우리 사이가 좋지 않다.
“일개 마탑주 주제에 제국 황실과 본 공작을 능멸하는가?”
어차피 이판사판이다.
제국 공작으로서의 위엄을 드러냈다.
“후후훗.”
차갑게 웃는 데오드란 탑주.
스윽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실드!!!”
마나를 모조리 불어넣어 방어 마법을 펼쳤다.
어차피 고서클 마법사들끼리는 마나와 마나의 대결.
끼릭.
화살로 데오드란을 겨냥했다.
시위를 놓을 타이밍을 노렸다.
“그따위 허접한 마법과 마력활로 날 어찌해 볼 수 있다 생각하는가?”
……아니 생각 안 했다.
그냥 최후의 발악용이다.
내가 무너지면 발아래에 있는 제국군은 끝난다.
여기 남아 있는 7서클 마법사들만으로도 무적 전력이다.
“길고 짧은 건 대봐야 아는 거 아닌가?”
겁 없는 웅장한 말들이 튀어나왔다.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을 거라면 자존심은 지키고 싶다.
– 걱정 마. 넌 안 죽어.
알파닥이 위로의 말을 던졌다.
말이라도 고맙다.
– 넌 안 죽는다고!!!
농담으로 받아들이자 알파닥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왜?
짧고 굵게 물었다.
– 넌 그분께 보호를 받는 존재야. 저런 허접 인간 마법사의 마법 따위에 죽지 않아.
그래? 그럼 진작 말해 줬어야지!
갑자기 어깨에 힘이 빵빵하게 들어간다.
8서클 인간 마법사에게 대항해 볼만 했다.
알파닥의 말대로라면 마신이 날 보호한다.
“데오드란. 순순히 항복하라. 그럼 제국의 주인께서 널 용서해 주시…….”
“닥쳐!”
화가 머리끝까지 난 데오드란 탑주가 허공을 향해 손을 뻗더니 주먹을 움켜쥐었다.
콰득!
“!!!”
그 순간 갑자기 숨이 턱 막혔다.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모가지가 강하게 조여졌다.
눈물이 핑 돌 정도로 고통스럽다.
이상했다.
분명 알파닥은 죽지 않는다고 했는데…….
– 이 꼴통아 죽지 않는다고 했지 고통을 못 느낀다고는 안 했잖아!
뭐, 뭐라고???
회귀의 전설 3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