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of th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126
125장. M.T.S에서 (1)
“절벽을 향해 돌진하는 브레이크 고장 난 스포츠카가 따로 없네.”
수많은 선물 지표와 주식, 외한시장의 그래프가 모니터에 연달아 보였다.
이 순간에도 나를 대신해 고용한 인력들이 돈을 긁어모으고 있었다.
선물과 주식, 환율에서 실패를 모르고 질주했다.
선물시장은 곧 닥쳐올 파국을 모르고 기록적으로 가격을 갱신했다.
오일을 비롯해 원자재들이 미친 듯 오르고 있었다.
축제의 마지막 피날레 같았다.
“다들 후끈 달아올라 있어…….”
예견된 폭락을 향해 달려가는 인간들의 욕망들이 그래프로 투영됐다.
누가 봐도 투기장이었지만 불나방처럼 뛰어들었다.
2017년과 2018년 세상을 뜨겁게 만들었던 비트코인 거품의 2008년 버전이었다.
나만 아니면 된다는 생각으로 폭탄 돌리기에 여념이 없었다.
냉정한 승부사들은 이럴 때 정작 숨을 죽이는 법.
나 또한 그러했다.
돈에서 점점 초월해졌다.
평생 개인이 만질 수 없는 자금이 내 손을 타고 움직였다.
대부분 만질 수 없는 모니터 상의 숫자일 뿐이다.
초연해지자 더 냉철하게 파악됐다.
개인과 집단, 나아가 국가까지 개입되어 있는 전투장이 눈앞에 펼쳐졌다.
과거와 같이 피는 튀기지 않았지만 더 무서운 전장이었다.
보이지도 않는 자금과 물질의 흐름에 국가가 파산했다.
그에 속한 국민들 또한 파산의 파편을 맞았다.
적과 아군, 동맹군들이 치열하게 가상의 공간에서 싸웠다.
“16일에 투자은행 베어스턴스가 부도를 맞아 모건에 합병된다. 그것도 주당 2달러로.”
한때 월가를 비롯해 세상을 호령했던 대호가 쓰러진다.
헐값에 팔렸다.
냉철한 승부의 세계에서 패배자는 저렇게 끝장난다.
동시에 승자는 독식하는 법.
나도 대호 가죽 한쪽을 차지했다.
공매도를 통해 엄청난 이득을 봤다.
입맛을 다셨다.
먹을수록 배는 더 고팠다.
“이번에도 대박이었다.”
시선이 FX 마진 그래프로 향했다.
쉬지 않고 돌아가는 외환시장 그래프가 오늘도 가열하게 움직였다.
단 하나의 움직임만으로도 파멸할 수 있는 독이 든 꿀물.
며칠 전 난 엄청난 대박을 맞았다.
가장 규모가 큰 단일 외환시장인 달러와 유로화 시장에서 한탕 크게 먹었다.
1.5달러 대 1유로.
미국 달러가 사상 최저치로 유로화에 가치를 잃었다.
가용할 수 있는 자금을 이용해 풀로 거래를 마쳤다.
단순 계산으로 투자이익이 엄청났다.
FX 마진거래가 아니라면 이런 수익은 불가능했다.
2007년에 비해 2008년도는 더욱 시장 규모가 확대됐다.
하루 거래량 3조 2천억 달러 거래가 몇 천억 달러 더 확장됐다.
3,500조 시장이니까 가능한 수익이다.
10일에 걸쳐 천천히 매도했다.
가장 큰판이기에 소리 없는 수익이 가능했다.
선물시장까지 합치면 총 자본금은 상상 이상이었다.
회귀한 뒤 단 2년도 안 돼 벌어들인 천문학적 자금이다.
“아직도 부족해.”
조세피난처에 숨겨져 있는 어둠 속의 자금이 32조 달러 정도다.
그들에 비하면 새 발의 피다.
대한민국에서 빼돌린 조세피난처 자금도 8,000억 달러에 가까웠다.
이제 커다란 수조의 물 한 바가지 정도 수준이다.
어둠 속에서 자금을 움직이는 큰 손에 비하면 새끼 손 정도 됐다.
그들과 한판 승부를 위한 판돈으로는 부족했다.
돈이 전부가 아니다.
긴 시간 동안 축적한 정치 능력과 권력, 정보 통제 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지금도 해킹을 시도한 흔적이 곳곳에서 발견됐다.
교묘하게 유동 아이피와 각국을 뛰어넘어 IP 방어를 하고 있지만 불안했다.
“블라드미르는 신의 한수였다.”
2020년을 살다 왔다고 방심하지는 않았지만 블라드미르를 만나고 반성 많이 했다.
괴물들에게 다구리 맞으면 나도 죽는다.
급히 블라드미르가 개발한 최신 방화벽을 몇 개나 깔았다.
우회와 회피는 기본이다.
해커들에게 저주의 바이러스 함정도 준비해뒀다.
요즘 며칠 동안 바빴다.
로버트에게 받았던 페이퍼 컴퍼니들도 몇 번 더 섞었다.
로버트가 혹시 모를 적들에게 잡혀도 알아내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물론 로버트가 직접 관리하는 사모펀드 회사들은 어쩔 수 없다.
미끼로 사용하기에는 알맞았다.
수익이 나는 족족 비밀계좌로 이체했다.
로버트를 믿지 못하는 게 아니다.
돈은 입이 없지만 사람은 입이 달렸다.
머릿속에서 들린 적들이 날 노린다는 경고를 난 잊지 않았다.
유비무환.
개인이 사용할 수 있는 자금도 한계가 있다.
집 사고 차 사고 밥 사 먹고 좀 더 쓰면 아랍 왕자들처럼 프리미어 구단 정도 구입하는 게 사치의 끝이다.
그 돈 충분히 쓰고 남는 돈 모조리 저축하는 거다.
“거대한 자금이 흐르고 있다. 내가 파악 못하는…….”
인류가 그동안 쌓아 놓은 주식이나 환율 시장 모두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조작되었다.
아니 세력이 만들어냈다.
개개의 주식에도 담당하는 세력이 있듯 세상의 자금에도 놈들이 있다.
이제야 어렴풋이 느껴졌다.
과거 나는 전혀 짐작도 못할 정도의 세계급 세력들의 자본금이 살짝, 아주 살짝 보였다.
두렵기까지 했다.
“발각되면 죽는다. 나뿐만 아니라 주변인들 모두.”
미친놈들이다.
세계대전도 그들이 짜놓은 판일 수 있다.
지금 중동에서 벌어지는 여러 사건들도 음모자들이 만들어낸 수작질이 분명하다.
여차하면 북한 위협을 구실로 대한민국에 핵폭탄을 던질 수도 있다.
내가 아무리 대단한 능력자라 해도 핵폭탄 앞에서는 개미 신세다.
2010년도부터 북한의 핵 위협은 본격화된다.
대륙 간 탄도미사일을 쏘아 올린 후부터는 미국 형님이 조져버리겠다고 길길이 날뛰었다.
트럼프는 미친놈이라는 걸 미래에서 맛봤다.
물론 2020년까지 핵전쟁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국제 정세는 불안했다.
아랍의 봄 사건 이후로 중동은 계속 피의 길을 걸었다.
2020년에도 게릴라전으로 몸을 숨겨버린 IS 잔당들로 인해 세계 곳곳에서 테러가 수시로 발발됐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의 종교 투쟁은 계속됐다.
북한의 협박질과 미국의 불질러 정신도 부딪쳤다.
아직 2008년도에는 그 불씨가 미약했다.
그렇다고 쫄지는 않는다.
한 번 죽고 회귀해 봤더니 간이 커졌다.
“꿈속 할배가 그랬지. 이웃집 개들 확실히 조지라고 말이야. 흐흐흐.”
놀 것 다 놀면서 할 일을 착착 진행했다.
최대한 몸을 사렸다.
적들이 나를 알아도 감춰놓은 보따리 크기를 모를 것이다.
나만 알고 세상 누구도 몰랐다.
해외 법인계좌 비밀번호는 난수표처럼 내 머릿속에만 박혔다.
“오늘은 여기까지!”
일할 때는 일하고 쉴 때는 쉬어야 하는 법.
미련 없이 자리에서 벗어났다.
삐이이이.
“네. 대표님.”
“커피 한잔할까요?”
“네.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유세라 팀장에게 커피를 부탁했다.
시간은 어느새 금요일 오후 3시를 가리켰다.
강의가 없어 오늘은 온전히 회사에서 업무를 봤다.
밖으로 나갔다.
“라라~♫.”
넓은 사무실 한쪽 개방형 탕비실에서 유세라 팀장은 콧노래를 부르며 드립 커피를 직접 내렸다.
바리스타 자격증을 꽁으로 취득한 게 아니라는 걸 몸소 보였다.
그윽한 커피향이 가득 퍼졌다.
사무실 중앙에 마련한 나무숲에 앉았다.
직원을 더 들일 것도 아니어서 사무실 중앙에는 화초와 나무들로 간이 휴식공간을 만들었다.
원목 의자에 앉아 커피를 기다렸다.
“여기 커피 대령했습니다.”
새하얀 잔에 커피 한 잔이 담겨 건네졌다.
유세라 팀장은 화사하게 웃었다.
“향이 그윽합니다.”
“그렇죠? 에티오피아에서 자연 재배한 듀에나 내추럴 원두로 내렸어요. 캐러멜과 초콜릿, 견과류 향이 베이스로 깔리고 풍미 밸런스가 완벽합니다. 마시면 균형 있는 바디감이 느껴질 거예요.”
커피 공부 진짜 열심히 한 것 같다.
커피를 마신다고 그렇게 구체적으로까지 향과 맛을 알지 못한다.
다만 좋은 원두로 만든 커피는 목 넘김이 부드럽다.
마시고 난 뒤에 깔끔한 뒷맛이 남는다.
커피를 조용히 음미했다.
“어때요?”
“역시……. 맛있어요.”
맛있다는 말에 유세라의 눈이 반달이 됐다.
그녀의 마음이 담겨 있어 맛이 더 좋았다.
다도와 비슷했다.
예와 마음이 담겨야 기가 담기는 법이다.
물도 살아 있는 생명이라 순수한 마음을 좋아했다.
그런데 누가 이런 잡스러운 기억을 심어놓은 거야?
여러 신들의 기억들을 짬뽕하다 보니 내 머리의 기억이 누구의 저작물인지 분간이 쉽지 않았다.
어차피 피와 살이 되는 지식이라 쓸어 담았다.
“오늘은 학교 쉬는 날이에요?”
“강의를 월, 화, 수로 몰았습니다.”
“부러워요……. 난 대학교 시절에 취업준비에 정신없었는데.”
저 얼굴에?
거짓말이다.
유세라 팀장 정도라면 학교 퀸에 가까웠다.
남자들이 가만있었을 리가 없다.
“그래서 지금 불행합니까?”
“아니요! 절대 아니에요.”
유세라는 손사래까지 쳤다.
나에 대해 아직도 유세라 팀장은 정확히 파악을 못했다.
막연히 대학생인 줄 알고 있었다.
나에 대한 정보는 이 사무실에 남아 있지 않았다.
철저하게 흔적을 지웠다.
“대표님, 데이트 재밌어요?”
유세라 팀장이 마주 앉아 커피를 마시며 물어왔다.
잽을 날리는 모습이 귀엽다.
“글쎄요.”
웃으며 말을 돌렸다.
“거짓말 안 하셔도 됩니다. 대학교 1, 2학년 때 제법 날렸답니다. 대표님 같은 훈남을 여자들이 가만 놔두지 않을 거 알아요. 남자들이 착각하는데 남자가 여자를 꼬시는 게 아니라 여자가 남자를 먼저 허락하는 거랍니다. 고로 여자들이 더 적극적이라는 뜻이에요.”
이제야 과거를 이실직고하는 유세라 팀장.
거기에 하나 더 빠졌다.
그 말 동의한다.
여자들이 허락하기 전에 먼저 매혹의 향기를 발산한다는 사실.
그렇기에 남자들이 늑대처럼 반응하는 것이다.
“사무실 환경은 괜찮습니까?”
“더 바랄 게 없어요. 경호업체 직원들이 지하주차장부터 시작해서 완벽하게 보호해주니 든든해요.”
경비뿐만 아니라 보안시설도 대폭 강화했다.
보안실을 따로 만들어 건물과 주변 동태까지 감시했다.
안전해서 나쁠 건 하나도 없었다.
“무슨 일 있으면 바로 경호실 호출하십시오.”
“네.”
“필요하면 경호원이 출퇴근 지원할 겁니다.”
“그건 됐어요. 제가 공주님도 아니고 오버 같아요.”
유세라가 웃었지만 그녀는 몰랐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전장의 한복판에 서 있게 됐다는 걸 말이다.
“밑에 직원 더 뽑아드려요?”
“아니요. 대표님만 불편하시지 않다면 지금이 딱 좋아요.”
“그럼 됐습니다.”
괜히 직원 더 들여서 좋을 것 없다.
내 직업은 비밀이다.
사람의 눈이 많다면 어떻게든 소문이 날 수밖에 없다.
지금도 20층 사무실은 유세라 팀장 말고는 아무도 올라올 수 없다.
천천히 커피를 마셨다.
창밖으로 보이는 시원한 전경이 제대로 휴식 타임 분위기를 더했다.
조용한 휴식.
그렇게 유세라 팀장과 난 나른한 봄날 오후를 즐겼다.
띠리리리 띠리리리.
핸드폰이 울렸다.
“여보세요?”
“하하. 이사님 잘 지내시죠?”
M.T.S 엔터테인민트 황연태 대표의 전화다.
“네, 덕분에 잘 지내고 있습니다.”
“내일 바쁘십니까?”
“무슨 일 있습니까?”
“예전에 말씀드렸던 지망생들 면접일이 내일로 잡혔습니다.”
“면접요?”
“투자자 아니십니까. 관심이 너무 없으십니다. 회사에 출근도 안 하시고 이렇게 방치하시면 안 됩니다. FOB 애들 신곡도 한 번 들어봐 주십시오. 대표님 음악적 감각이 탁월하시지 않습니까.”
할 일 없는 오후의 딱 좋은 제안.
콜!
# 126
회귀의 전설